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9화 (19/472)

19화. 너튜브 의사

쉬는 날인 오늘 어찌된 영문인지 이찬희는 병원에 나왔다.

그는 지금 수술실 앞에서 꼼꼼하게 손을 소독하는 중이었다.

‘이 선생. 급한 환자 수술이 잡혔어.’

두 시간 전 태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응급수술이 잡혔는데 올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힘들 것 같으면 말해.’

‘아,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태경은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찬희는 본인이 나서서 선뜻 가겠다고 답했다.

“집중하자.”

지금 이찬희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오늘은 어시를 잘하자.”

며칠 전 진행된 태경과의 첫 수술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터라 더 심기일전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어.”

그날처럼 병신같이 수술실에서 또 도망쳐선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술실이 무섭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다.

“제대로 보여 드리자.”

수술실 공포증은 의사로 살아가는 동안 부딪혀서 극복해야 하는 문제였다.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긴장하지 말자. 난 할 수 있다.”

이찬희는 각오를 다지며 수술실 문을 열었다.

“어서와.”

미리 도착한 태경이 그를 맞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

수술 베드가 깨끗한 것이다. 있어야 할 환자도 없고 마취의 의진도 보이지 않았다.

이찬희는 아까 태경으로부터 환자를 직접 인솔할 테니 수술실로 곧장 오라는 연락은 받았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아닙니다. 선생님, 환자는 아직 입니까?”

“환자라니?”

“오늘 환자 수술 있으니 병원 오라고 하셨는데…… 수술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수술해야지.”

“네?”

“나이 25세 남자. 복통을 느꼈고 점차 하복부 우측에서 통증을 느끼며 병원에 왔다.”

태경은 갑자기 환자의 증상을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환자는 오심과 구토를 느끼며 발열 증세도 있어. CT에서 appendix(충수)의 최대 직경이 9mm로 비대해졌으며 wall의 thickness(두꺼워짐) 등 염증으로 인한 소견이 확인됐다. 이 환자의 증세는?”

“…….”

“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환자 증상 몰라?”

“Appendicitis(충수염)입니다.”

“정답. 마취도 잘됐고 혈압도 정상. 이제 지금부터 수술 시작한다. 이 선생, 시작해.”

“네?”

다짜고짜 수술을 시작하라니. 이찬희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선생. 환자 보고만 있을 거야? 집도의가 가만있으면 어떡해.”

“선생님, 죄송하지만 지금 뭘 하시는 건지…….”

“이찬희!”

수술실이 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가 들렸다.

“내가 지금 너랑 아이들 소꿉놀이처럼 병원놀이하는 거 같아?”

마스크와 수술모자 사이로 보이는 태경의 눈빛이 살벌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베드에 환자 누워 있어.”

분위기를 파악한 이찬희는 지금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큰 호통을 받은 이찬희는 마치 진짜로 환자가 있는 것처럼 실제 수술같이 진행했다.

“수술 끝났습니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나고 수술 부위를 봉합하는 행동과 함께 모의 수술이 끝났다.

“수고했어. 긴장도 하지 않고 아주 잘했네. 다짜고짜 수술 있다고 불러내서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지?”

“처음에 조금 당황하긴 했습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겠어?”

“네, 알 것 같습니다.”

태경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안 순간 이찬희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구나.’

자신의 수술실 공포증 때문이라는 것을.

“외과의는 평생 수술실과 멀어질 수 없어. 네가 의사가 아니라면 두려운 부분을 덮어두고 모른 척해도 돼.”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외과의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수술실을 두려워하면 안 돼.”

맞는 말이다. 이찬희는 태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 극복하고 맞서고 싶었지만 그때뿐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환자를 두고 도망간 이 선생을 용서하지 않았어.”

“죄송합니다.”

“그래서 나한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해.”

“어떤 징계든 달게 받겠습니다.”

“나한테 용서받고 싶으면 수술실 공포증 극복해.”

“극복하겠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 건데?”

“…….”

정확히 계획을 묻는 태경의 말에 이찬희는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도와줄게.”

“예?!”

“앞으로 내가 시키는 건 토 달지 말고 해. 참고로 빡세게 굴릴 거야. 어떻게 할 거야 말 거야?”

“합니다. 해요. 무조건 하겠습니다.”

그동안 태경은 이찬희를 도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논문은 물론이요 해외 의학 학술지까지 뒤져 가며 찾아봤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수술을 반복하고 익숙해지는 것.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 마음 속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술을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학부 때처럼 해부학 실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까 모의 수술해보니까 어때? 별 감흥 없었지?”

“아니요. 진짜 수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수술의 순서를 읊조리는 게 아니었다.

“지금 출혈이 안 잡이고 있잖아?”

“환자 혈압이 떨어지는데 뭐하고 있어?”

태경이 중간 중간 새로운 상황을 던져 줘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진짜 수술을 하는 것처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같이 수술실로 부를 거야.”

태경이 이찬희를 위해 생각한 건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사람의 뇌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

유명한 뇌 학자가 말하길, 뇌는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것과 실제로 한 것에 똑같이 반응한다고 했다.

그 말에 힌트를 얻은 태경은 실제 수술실에서 상황을 연출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지 훈련을 하다 보면 상황에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도 길을 갈 때도 연습하고 또 연습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네, 이해했습니다. 근데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뭐가?”

“제가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서요.”

“개인사잖아. 이 선생한테는 일종의 트라우마일 텐데. 나중에 털어놔야 속이 풀릴 것 같을 때 그때 말해 주든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는 나중에 받는 걸로 하고 한 가지 더 있어.”

“한 가지 더요?”

“그래. 이미지 훈련한 수술은 물론이고 어시하고 집도하는 모든 수술을 직접 손으로 쓰면서 복기해.”

“네? 손으로 직접이요?”

“그래. 오늘은 담낭염 수술이랑 충수염 수술 써서 내 메일로 보내.”

“아니, 선생님 죄송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손으로 쓰는 건 좀 구시대적인데요. 선생님?”

태경은 수술실 밖으로 나와 별안간 걸음을 멈추며 이찬희를 쳐다봤다.

“여기 있네. 구시대적인 사람.”

“예?”

“내 얼굴 그만 쳐다보고 발밑에 있는 거나 챙겨.”

태경은 복도 한 쪽에 놓여 있는 열 권이 넘는 노트 뭉치를 가리켰다.

“이게 뭡니까?”

“수술 복기 노트.”

“복기 노트요?”

이찬희는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한눈에 봐도 빛바랜 노트 속은 더 가관이었다.

“……!”

수술 상황마다 나노 단위로 자세히 쓴 것도 모자라 수술 부위 장기까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니 이찬희 또한 의예과 시절 교수님께 수술 노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수술 복기 노트를 만들면 그 수술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었다.

‘이걸 진짜 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하지만 말이 쉽지 수술의 전 과정을 그것도 수기로 작성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에서도 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세상에!”

“왜 놀랐어?”

“당연하죠. 아니 도대체 이런 미친놈이 누구랍니까?”

교과서를 써도 될 만큼 말도 안 되게 완벽한 복기 노트였다.

“눈앞에 있잖아. 그 미친놈.”

“그럼…… 선생님께서 그 미친놈 아니, 죄송합니다.”

이찬희는 노트와 태경을 번갈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생각해 보니 태경은 이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선생님 참 지독하십니다.”

“참고로 그거 내 보물이다. 5일 안으로 사진 찍어서 저장하고 고대로 갖고 와.”

“아니 5일 안에 이걸 다 어떻게 찍습니까?”

“아직 집에 더 있어. 그거 끝나면 다른 것도 갖다 줄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일은 너무 빡셉니다.”

“왜 싫어? 싫으면 이리 내놔.”

“5일! 무조건 5일 안에 하겠습니다.”

“좋아. 바로 그런 정신이야. 이 선생, 출출하지 않아? 뭐 먹을래?”

“됐습니다. 집에 가서 숙제해야 합니다.”

“그럼 문단속 잘하고 퇴근해. 수고했어.”

“아니, 선생님?”

이찬희의 외침에도 태경은 쿨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거 옮기는 것 좀 도와주세요.”

은근히 툴툴거린 이찬희였지만 사실 민망함 때문이었다. 어느 누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와줄까 싶었다.

* * *

-안녕하세요. 세상의 잇슈를 전하는 잇슈자판기 잇자입니다.

오늘은 구독자분께 제보 받은 영상으로 시작했는데 여러분 어떻게 보셨습니까?

딱 봐도 위급한 상황인데 침착하게 환자를 살려냈습니다.

저는 의사 드라마에서 뜸금포 러브라인 보다가 이렇게 사람 살리는 걸 보니까 진짜 의느님을 본 것 같습니다.

이분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참의사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의사한테 진료 받아야 합니다. 이만큼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가 어디 흔합니까? 실력이 좋으면 콧대가 높고 콧대가 높으면 말 한 마디 걸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도대체 영상 속 의사분이 어느 병원 소속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아쉽게도 제보자분도 이름도 병원도 모른다고 합니다.

혹시 이분께 치료받은 분이 있다면 주저 마시고 댓글에 남겨 주세요. 이런 멋진 의사가 있는 병원은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들 너튜브 보는 건 좋은데 이상한 영상은 보지 마.”

임정숙 간호사는 출근 전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고 있었다.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럼 뭔데?”

“교통사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사람 구하는 영상인데 지금 인동에도 올라가고 난리 났어.”

“사람 구하는 영상?”

“응. 엄마 여기 봐 봐.”

“엄마 운전 중이잖아.”

“쓰러진 사람 막 피 솟구치는데 의사 선생님이 치료하니까 피가 뚝 멈췄다.”

“그래? 의사 선생님이 큰일 하셨네.”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아들과 달리 임정숙 간호사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지금 댓글 삼천 개 넘어가고 사람들이 돈쭐 내준다고 어디 병원이냐고 계속 물어본다니까.”

“돈쭐? 그건 또 뭐야.”

“돈으로 혼내 준다는 요즘 말이야.”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 창의력도 좋아요. 그 병원이 엄마 다니는 병원이면 얼마나 좋을까?”

“왜? 엄마네 병원 환자 없어?”

“환자가 없는 건 아닌데 많이 줄었어.”

“그럼 어떻게? 엄마 짤리는 거야?”

“짤리긴 왜 짤려. 직원들이 힘내서 열심히 해야지.”

“어! 어느 병원인지 찾았다.”

여전히 너튜브를 보던 아들은 새로 올라온 댓글을 발견했다.

“그래 어느 병원이래?”

“안녕하세요. 이분 얼마 전에 우리 어머니 수술해 주신 선생님 같습니다. 제가 영상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담당 선생님이셨다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실력도 인성도 좋고 직원 분들도 다들 친절하셨다고 하네요. 병원 이름은…….”

빵- 빵-

아들이 댓글로 병원 이름을 말하는 사이 얄밉게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임정숙 간호사가 경적을 울렸다.

“엄마. 이 의사 선생님 짱 멋진 거 같아.”

“그러게. 좋은 일해서 복 받나 보나. 그 병원 이제 엄청 바빠지겠다.”

* * *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한 임정숙 간호사는 꽉 찬 주차장을 보며 의아해했다.

“아직 병원 오픈 시간도 아닌데 왜 만석이지? 이상하네.”

“선생님!”

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린 임정숙 간호사를 의진이 불렀다.

“정 쌤 오셨어요? 오늘 얌체 주차족들이 너무 많네요. 오픈 전에 전화 돌려서 차 빼라고 해야겠어요.”

“아니에요. 다 우리 병원 찾아온 사람들 차예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 정문 쪽 봤어요?”

“아니요. 나 작은 사거리로 와서 정문 못 봤는데 왜요?”

병원 주차장이 뒤편에 있었기에 임정숙 간호사는 보지 못했다. 그보다 갑자기 정문을 운운하는 의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요! 설마 누가 또 똥 쌌어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실은 나도 오늘 차 끌고 왔는데 차가 꽉 차서 공영 주차장 대고 오는 길이거든요. 근데…… 아니다. 직접 보세요.”

“예?”

의진은 하던 말을 멈추고 임정숙 간호사의 손을 끌며 정문으로 향했다.

“아니, 정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예요?”

“장난 아니죠.”

“호, 혹시 우리 병원 무슨 문제 생겼어요?”

정문에는 난데없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니요. 문제는 아니고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거 같네요.”

“아휴, 좀 알아듣게 얘기해 봐요.”

“병원 찾아왔대요.”

“설마 이 사람들 다 우리병원 진료 보려고 찾아온 거예요?”

“맞아요. 제가 물어봤어요.”

“갑자기요? 환자 줄어서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래요.”

“영상 보고 왔대요.”

“네! 영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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