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심장을 되돌리는 것
“이제 진짜 지겹다.”
“하! 뭐 지겨워. 하긴 틈만 나면 한눈을 파니 지겹겠지.”
“너 그거 의부증이야?”
“뭐, 의부증! 의부증이라서 몰래 여자랑 톡하다 걸리고 그래서 이렇게 때렸냐?”
“야! 내가 무슨 여자랑 톡을 해!”
“했잖아!”
“그러는 너는 나 안 때렸어? 나는 안 맞았냐고.”
“저기 환자분들?”
이제 막 엉덩이 좀 붙이고 쉬려던 이찬희는 젊은 부부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 네까짓 게 뭔데 나를 때려!”
“누가 들으면 진짜 때린 줄 알겠네. 네가 하도 들이대니까 밀었지 언제 때려.”
“여기 어! 얼굴에 상처 난 거 안 보여?”
“그럼 너는 내 코 물어서 상처 난 건 어쩔 건데?”
“저기요 두 분 그만 좀 하시죠.”
간혹 집에서 부부 싸움을 하고 병원을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선생님 이거 전치 몇 주짜리예요?”
“저는요? 제 와이프가 제 코를 물어뜯었는데 제가 더 심한 거죠?”
문제는 꼭 병원에서까지 싸움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여기 병원입니다.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릴 테니까 잘 들으세요. 두 분 다 소독약만 바르면 되는 찰과상 정도입니다.”
“들었지? 나 찰과상이래. 너랑 끝이야.”
“야! 너만 찰과상이냐. 나도 찰과상이야.”
병원에서 제집 안방인 양 떠들며 예의가 없는 부부는 지식에도 예의가 없었다.
“자기야 근데 찰과상이 뭐야?”
“몰라. 찰과상이 뭐지?”
“선생님. 찰과상이 뭐예요?”
“찰과상은 피부가 살짝 긁힌 정도로 가벼운 부상이라는 거예요. 그 말인즉슨 두 분 처치 끝났으니 수납하시고 돌아가시면 된다는 뜻입니다.”
“아니, 선생님 이 인간이 절 때렸어요. 자세히 좀 보세요.”
“선생님 이 여자는 절 물었다니까요.”
“여기 다른 환자분들 안 보이세요?”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에 이찬희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답답한 속마음과 달리 차분하게 주의를 줬다.
“자꾸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경찰 부릅니다.”
“네! 경찰이요?”
“아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의사 선생님 말을 좀 막 하신다. 안 그래 자기?”
“그러게.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면 안 되죠.”
“그러니까 이만 수납하시고 귀가하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수납하고 갈 건데 환자한테 좀 너무하시네요.”
-코드블루~ 코드블루 307호 성인!
사람 좋은 이찬희의 참을성이 가라앉을 때 즈음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307호 성인!
“코드블루?”
방송을 듣자마자 이찬희는 경주마처럼 응급실을 뛰어 나갔다.
“어머, 어머 뭐야 왜 저래.”
“자기야 우리 이만 집에 갈까?”
“그래. 여기 의료진들 좀 별로다 그치?”
“원래 의사들이 좀 싸가지가 없잖아.”
* * *
“하!”
병실 문을 연 태경이 재빨리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재빨리 CPR(심폐소생술)을 위한 자세를 취하고 우선 가슴 압박부터 들어간다.
양손의 깍지를 끼우고 일정한 리듬에 맞춰 가슴을 최대한 압박하고 동시에 최대한 이완을 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압박이 아니라 이완이다.
이완 시에 관상동맥으로 혈액이 가고 그 혈액이 공급되는 정도에 따라 심장 리듬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산소 공급!’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산소 공급이었다.
“앰부백(ambu bag, 호흡 정지된 환자의 호흡을 돕는 고무주머니) 아직 안 왔습니까?”
“선생님 여기요. 가져왔어요.”
태경의 외침에 임정숙 간호사가 앰부백을 가져왔다.
“제가 하겠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이찬희가 앰부백을 급히 받았다.
여전히 CPR을 하고 있는 태경의 반대편에 선 이찬희가 환자의 입에 갖다 댔다.
“공기 새지 않도록.”
“네 선생님.”
이찬희는 앰부백을 짜며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반대 손으로 환자의 턱을 들어 밀착시킨다.
“EMR(전자 차트) 기록 좀 주세요.”
“환자 보호자 아직이에요?”
“피검사 확인해 주세요.”
차례대로 병실에 도착한 의료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머지는 태경의 뒤에서 압박 교대를 준비한다.
간호사들 역시 의사의 오더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환자분 힘내요.’
태경이 완벽한 자세로 CPR을 지속하며 속으로 환자를 응원한다.
환자에게 심정지가 오면 그야말로 작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여기 모인 모든 의료진들이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이들이 미리 할 일을 나누고 협의한 것은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의 할 일과 역할이 분담된 것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료인의 협주가 시작된 것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의사와 간호사 모두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코드블루의 순간이 오면 환자의 심장을 ‘반드시’ 되돌려 놓겠다는 각오로 달려든다.
“손 교대하겠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압박의 힘이 약해질 때쯤 뒤에 서 있던 의진이 말했다.
늘 미소 가득한 그녀의 표정이 비장함으로 가득하다.
“선생님 교대하겠습니다.”
“그래.”
대답과 동시에 태경이 손을 빼던 그때였다.
슈륵!
어디서 한 움큼의 액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거!”
환자의 입에서 피 한 움큼이 앰부백 안으로 쏟아진 것이다.
“앰부백 다른 거주세요.”
이찬희가 황급히 앰부백을 교체하고 태경도 압박 교대를 준비를 한다.
“혈관 수축제 주시고 ABGA(동맥혈채혈, 산소포화도를 알기 위한 채혈) 해서 결과 프린트해 주세요!”
총 지휘를 맡은 태경이 간호사들에게 말한다.
“발등에서 채혈할게요.”
환자의 몸이 CPR로 인한 압박으로 널뛰기 때문에 발등에서 동맥혈을 채취한다. 그 뒤 동맥혈을 기계로 가져가 결과를 뽑아 왔다.
“저기…… 선생님, 가서 제세동기 가져올까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새로 들어온 신입 간호사가 태경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제세동기는 필요 없어요.”
지금 이 환자에게 제세동기는 오히려 해가 된다.
제세동기는 심장이 떨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심장 자체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즉 과도한 움직임을 멈추기 위함이다.
지금과 같이 심장이 멈춘 환자에게 사용하면 가뜩이나 움직이지 않는 심장을 더 못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제세동기는 심장이 너무 떨려서 심정지가 온 경우에 필요한 것이다.
신입 간호사가 잘하고픈 마음에 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제발!’
모니터와 환자를 오가는 태경의 눈빛이 점점 초조하게 변해 간다.
카디악 어레스트(심정지).
이미 수백 번도 넘게 겪은 심정지였지만 이 상황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실제 심정지에서 환자가 다시 소생할 확률은 매우 낫기 때문이다.
“에피(epinephrine, 혈관수축제) 2앰플 주시고 ABGA 한 번 더 나갈게요.”
이 상황이 닥치면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뿐이다.
“맥박 확인할게요.”
잠시 압박을 멈추고 박동이 돌아 왔는지 점검한다.
“맥박 없습니다.”
이 말과 동시에 또 다시 압박과 앰부백의 바쁜 손놀림이 재개된다.
“정 선생 교대.”
“교대하겠습니다.”
의진의 힘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 다시 태경이 압박을 시작했다.
“수액 풀 드랍.”
“네, 알겠습니다.”
태경의 말에 간호사가 수액 조절기를 완전히 열었다.
턱턱-
환자의 몸이 태경의 압박에 맞춰 격하게 움직인다. 왜소한 몸이 안쓰럽게 보였다.
심폐소생을 하다 보면 갈비뼈 골절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나 마른 환자들은 더 그렇지만 지금은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제발 돌아와라. 제발!’
무조건 심장을 되돌리는 것, 그것이 우선이다.
“지금 ABGA 결과 얼마지?”
“잠시 만요.”
태경의 말에 결과지를 받아 든 의진이 외쳤다.
“맥박 한 번 더 확인할게요!”
그 말에 전투적인 압박을 하던 태경의 손길이 잠시 멈추고, 의진이 목에 있는 혈관으로 손끝을 대 본다.
307호 실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의진의 손끝을 향했다.
“돌… 돌아왔어요!”
심각하다 못해 비장함이 감돌던 의료진의 얼굴도 드디어 화색을 찾았다.
“하아!”
태경의 입에서 묵직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병실을 가득 메웠던 포르말린 냄새가 달라졌다.
“……!”
복도까지 진동했던 냄새가 마치 배수구로 빠진 물줄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다행이다.’
돌아온 환자의 맥박을 보며 태경이 속으로 말했다. 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서 감사했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긴 이르다.
“ROSC(returen of spontaneous circulation, 지속적 자발순환회복)가 돌아왔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어요.”
태경은 환자를 위해 또다시 오더를 내렸다.
“혈압하고 심전도 촬영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리고 엔도트라키얼 인투베이션(endotracheal intubation, 기관 내 삽관)할게요. 준비해 주시고.”
“알겠습니다.”
“ABGA도 30분마다 3번 나가고 이후 한 시간마다 2번 더 나갈게요.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정 선생, 이 선생 수고했어.”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간결한 인사말과 함께 의사도 간호사도 본인들의 업무에 복귀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창준 환자, 애썼어요.”
이제 다시 불씨가 잡힌 환자의 생명은 오로지 태경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러니까 끝까지 애써 줘요.”
어렵게 살린 환자의 생명이 혹시나 꺼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리고 싶기 때문이다.
“환자분, 내가 옆에 있을게요.”
태경은 환자를 독려하며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환자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은 이 순간은 세상을 전부 다 가진 것 같은 벅차오름을 느낀다.
당분간 태경은 환자를 위해 당직실에서 잘 생각이다.
* * *
“저기요?”
편의점에서 비타 음료를 사온 총무부 최 팀장은 병원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시 저희 병원 오신 건가요?”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는 조금 전 병원을 나올 때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아……저, 그게 악!! 시x!”
“……!”
“죄, 죄송 악! 죄송합니다. 악!”
젊은 남자는 자신의 고함에 놀란 최 팀장에게 사과하며 자리를 떠났다.
“취객인가?”
“뭐가요?”
“아니 병원 앞에 이상한 사람을 봐서.”
“새벽이잖아요.”
“자! 이거 한 병씩 마시고 힘내서 마무리 잘하자고.”
최 팀장은 접수처 직원들에게 사 온 음료를 나눠주며 격려했다.
“잘 마실게요.”
“저도요. 팀장님.”
“다들 정신없이 바빴죠?”
“말도 마세요.”
“외래 환자에 응급실 환자까지 몰려서 정신없었죠.”
“근데 환자분들 때문에 바쁜 건 당연한 건데 기자분들 때문에 바쁜 건 좀 힘들던데요.”
“그건 영이 씨 말이 맞아. 세상에 무슨 기자들이 그렇게 끈질기게 전화를 하는지 병원 전화 불나는 줄 알았다니까요.”
너트뷰 영상에 댓글이 달린 뒤로 태경을 인터뷰하겠다는 기자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었다.
“차라리 이 정도면 김 선생님이 인터뷰 한 번 해 주시는 게 낫지 않아요?”
“나도 좋은 기회라고 부추겼는데 선생님이 안 하시겠대.”
“왜요?”
“인터뷰까지 하게 되면 환자들 제대로 진료하기 힘들어진다고.”
최 팀장은 사실 태경을 통해 병원 홍보를 제대로 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우선이라는 태경의 말을 듣고는 그의 뜻을 존중했다.
“근데 김 선생님 대학병원에서 억울하게 쫓겨났다는 소리 있던데 사실이에요?”
“어허!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너튜브에 누가 그런 댓글을 달아서요.”
“하긴, 근데 김 선생님이 딱 봐도 대학병원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
“그건 맞아요. 다들 대학병원 있어 봐서 알잖아요.”
“잘 알지. 실력 좋고 환자 생각하는 선생님들은 대학병원 정치에서 살아남지 못하더라고.”
“이쯤 돼면 그 병원은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겠네요?”
“당연히 엄청 후회하겠지.”
“왜 대학병원에서 꼭 하나씩 스타 의사 만들려고 혈안이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쫓아낸 사람은 부러워서 배가 아플걸.”
최 팀장의 말대로 지금 신화대학병원은 쫓아낸 태경의 문제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