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양성
신화대학병원.
“아흐! 진짜 짜증나네.”
수술실에서 나온 수간호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터트렸다.
“선생님. 위에다가 뭐라고 한 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
“이게 진짜 뭐예요?”
수간호사는 수술실에서 함께 나온 의사들에게 하소연 섞인 짜증을 쏟아 냈다.
“한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니 막말로 수술실 계속 뺑이 돌리는 건 둘째 치고 교수라는 사람이 수술 실력이…….”
수간호사의 말문을 막아 버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태경의 자리를 차지한 의사였다.
이사장의 친구이자 국회의원 아들인 그는 교수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여러모로 골치 아픈 케이스였다.
“실력이 안 되면 인성이라도 좋든지 인성이 안 좋으면 실력이라도 좋든가.”
“왜 아닙니까. 둘 중 하나라도 하는 게 없으니 원.”
“같은 의사로서 저희도 민망해 죽겠습니다.”
“아니 이러다 나 진짜 수술실에서 환자 경칠까 너무 걱정돼요.”
새 교수는 환자에 대한 사명감보단 ‘의사’라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평생 환자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환자를 위해 공부하기보다 언론에 나가 얼굴을 알리는 데 더 집중했다.
“대학병원 교수가 실력이 부족하면 아랫사람 보기 쪽팔려서라도 공부하거든. 근데 이 교수는 그런 것도 모르네.”
태경과 사이가 좋던 마취과 최동훈이 손을 씻으며 그들의 말에 동조했다.
“최 선생님 보시기에도 그렇죠?”
“나뿐만 아니라 전과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근데 우리가 이런다고 별수 없잖아요.”
최동훈 옆에 있던 또 다른 동료 의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 잘난 이사장과 병원장 백인데 우리가 뭘 어쩌겠어요.”
“휴! 김태경 선생님 보고 싶다. 우리과 구세주였는데.”
사실 그동안 대놓고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다들 태경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잘되고 있는 사람을 왜 찾아. 여기가 뭐 좋은 데라고.”
“하도 답답하니까 그렇죠.”
“우리보다 더 답답하고 더 보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
“설마! 병원장이요?”
설마의 인물이 병원장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말해 뭐해요.”
“인맥으로 교수 시키고 스타 의사 만들고 있는데 실력이 이렇게 없을 줄 몰랐던 거지.”
“쌤통이네요. 난 우리 병원장님 별로예요. 사람이 너무 계산적이잖아.”
신화대병원 의료진들은 태경을 쫓아낸 병원장이 못마땅했다.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출근한 이찬희가 인사를 하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오늘 좀 일찍 오셨네요.”
“금요일이잖아요.”
“아!”
이찬희 말에 임정숙 간호사가 짧게 긍정했다.
“어제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오늘이 금요일인 것도 몰랐네요.”
주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금요일은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은 날이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급증하는 날이기도 했다.
“오늘은 더 정신이 없겠네요.”
“아직 출근 안 하셨나 봐요.”
“누구? 김 선생님이요?”
“네.”
“출근 안 하셨죠.”
“그래요? 나한테는 부지런하라고 하시더니만.”
“왔어? 307호 가 봐. 김 선생님이 이 쌤 출근하면 오라고 하셨어.”
지나가던 의진이 이찬희에게 인사를 하며 전했다.
“출근 아직 안 하셨다고…….”
“그거야 퇴근을 안 하셨으니까 출근도 안 하신 거죠.”
“예?”
“어서 올라가 보세요.”
그제야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이해한 이찬희는 병동으로 향했다.
“선생님?”
퇴근을 반납한 태경은 심폐소생술로 살려 낸 307호 환자 곁을 계속 지키고 있었다.
“이제 안정적이네.”
환자의 모니터를 쭉 둘러본 이찬희가 혼잣말을 했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며칠 더 지켜봐야 해.”
“졸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자긴 누가 자. 눈 감고 있었다. 이 선생?”
“네.”
“내가 왜 출근하자마자 불렀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몰라? 환자 죽여 놓고 그런 말이 나와?”
“예? 화, 환자를 죽이다니요.”
정신이 번쩍 나는 말에 이찬희는 크게 반응했다.
“스토먹 캔서(stomach cancer, 위암) 수술 복기 제대로 한 거 맞아?”
물론 진짜 환자를 죽인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환자는 테이블 데스야.”
태경은 전날 이찬희의 이미지 훈련으로 스토먹 캔서 수술을 했다.
퇴근한 이찬희는 복기 노트를 작성해 메일로 보냈는데 거기서 실수가 있던 것이다.
“아닙니다. 어제 분명히……!”
얼른 휴대폰으로 메일함을 보던 이찬희는 자신의 실수가 있음을 발견했다.
“뭐가 잘못됐는지 보이지?”
“보입니다.”
너무 졸린 나머지 수술 마무리 부분을 통으로 날린 것이다.
“복기할 때도 똑같이 수술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다시 마무리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됐고,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새로 써와.”
“네? 아니 굳이 새로 처음부터…….”
“왜 싫어?”
“그럴 리가요. 당연히 써야죠.”
태경과 눈이 마주친 이찬희는 더 대들다가 강력한 숙제를 받을 것 같아 빠르게 수긍했다.
* * *
근로자 작업복을 입은 한 남자가 보건소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 네 부장님.”
얼굴 위로 불안함과 초조함 가득한 그는 벨소리에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뭐야 전 대리. 어디 갔어?
“잠깐 볼일이 있어 밖에 나왔습니다.”
-뭣처럼 중식 파티 하려고 했는데 그럼 점심 먹고 들어올 건가?
“네, 저 신경 쓰지 말고 맛있게 드세요.”
-그럼 이따 보자고.
전화를 끊은 남자는 별안간 벤치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하!”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던 그는 뭔가 결심한 듯 마스크를 쓴 채 보건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저기…….”
“뭐, 도와드릴까요?”
곧장 임상병리실로 향한 그는 머뭇하다 직원에게 다가가 간신히 입을 뗐다.
“시, 신속…….”
“잘 안 들려서 그러는데 조금 크게 말씀해주시겠어요?”
“신속검사를 받으려고요.”
“아! 네,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검사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있던 그에게 직원이 다가왔다.
“저,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저희가 도와…….”
“……!”
직원의 말을 들은 남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 *
“자! 오늘까지만 야근하면 당분간 야근은 없어.”
“부장님 저번 주에도 그 소리 하신 것 아십니까?”
“미안해. 이게 다 자네들이 제품을 잘 만들어서 그런 거 아냐.”
“애들이 아빠 얼굴 까먹겠다고 와이프가 뭐라고 합니다.”
“대신 사장님이 보너스에 월급 인상까지 확실하게 약속하셨어.”
“그럼 또 바로 힘내야죠.”
연일 계속된 야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다들 힘내자고.”
월급 인상에 신난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한 직원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어이, 전 대리?”
부장이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를 불렀다.
“전 대리?”
“……네, 부장님.”
“자네 무슨 일 있어?”
“아, 아닙니다.”
“오늘따라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죄송합니다.”
“요즘 통 이상해. 혹시 몸 안 좋으면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계 앞에서 딴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
“네, 부장님.”
그렇게 부장이 평소와 다른 전 대리를 걱정하며 돌아서던 그때였다.
탁- 탁-
“으악!”
“부장님!! 사고 났습니다.”
딴생각에 집중을 못하던 전 대리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 했는데. 자네 괜찮아?”
“부장님. 전 대리 피를 많이 흘리는데요?”
“일단 지혈부터 하자고.”
“여기 구급상자 가져왔습니다.”
“전 대리 팔 좀 봐 봐.”
“만지지 마세요!!”
부장과 동료가 지혈을 하려고 팔을 만지려 하자 전 대리가 고함을 내질렀다.
“자네 왜 그래?”
“아니, 피, 피가 묻을까 봐서요. 더럽잖아요.”
밀려오는 아픔으로 전 대리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뭐라고?”
“옷 버리실까 봐서요.”
“다친 사람이 별 걱정을 다 하네.”
그는 희한하게도 다친 팔을 다른 사람이 못 만지게 수건으로 꽁꽁 둘러멨다.
“일단 병원부터 가자고. 어서!”
“아닙니다. 저 혼자 가겠습니다.”
“팔 다친 사람이 어떻게 혼자 병원을 가.”
“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어허. 이 사람. 자꾸 이러면 나 화내. 얼른 일어나.”
직원을 아끼는 부장은 한사코 말리는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 * *
담석 수술을 마치고 진료실에서 예약 환자를 보던 태경이 응급실로 향했다.
“인마!”
금요일답게 다양한 환자들의 소리가 응급실을 가득 메웠다.
“내가 누군 줄 알아?”
“으아앙! 싫어! 무섭단 말이야.”
“야, 이 쉽새야 술 더 가져오라고.”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술 취한 환자, 자전거에 넘어져 피가 나는 어린 환자, 요관 결석으로 소리치는 환자까지.
환자 모두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어디 갔었어.”
“환자분 저 엄마 아니에요.”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정신없는 와중에 베테랑인 태경이 태연한 표정으로 환자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저 죽을 거 같아요.”
환자는 태경을 보자마자 곡소리를 내며 하소연을 쏟아 냈다.
“눈앞에서 조상님이 보여요.”
“환자분 안 죽어요. 옆에 있는 사람은 조상님이 아니라 우리 의료진입니다.”
“저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죠?”
“환자분 아직 30대 중반이에요. 걱정 마세요. 통증이 심하시지만 절대 죽지 않습니다.”
“정말이죠?”
“그럼요. 저희가 강한 진통제 드릴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통증 좀 멈춰 주세요.”
요관 결석 환자는 통증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진통제 처방하시고 아까 말한 엔터라이티스(enteritis, 장염) 환자 수액 다 맞으면 마무리하세요.”
“네, 선생님.”
“선생님 여기 좀 봐 주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처방을 마친 태경을 불렀다.
“이 친구가 다쳤습니다.”
태경은 작업복을 입은 두 남자를 보고 환자가 현장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대번에 알았다.
“우리 공장 직원인데 작업 중에 손을 베였습니다.”
공장이나 현장에서 그라인더 같은 것에 절단되는 사고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부장님 저 치료받고 갈 테니까 이만 가 보세요.”
“시끄럽고 우선 치료부터 받아.”
“전건면 환자분?”
태경은 다친 손을 거적때기로 싸서 꼭 부여잡고 있는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처치실로 이동할게요.”
처치실로 이동한 태경은 환자를 베드로 안내했다.
“머리가 이쪽이에요. 잠깐 다친 곳 좀 볼게요.”
“잠시 만요!”
태경이 다친 팔에 손을 대려 하자 벌떡 일어난 전건면 환자가 구석으로 몸을 기댔다.
“저 그냥 가면 안 되겠습니까?”
“……!”
예상치 못한 환자의 돌발 행동이었다.
“전 대리 왜 그래? 어?”
“저 괜찮습니다. 부장님.”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의사 선생님 저 그렇게 큰 부상 아니거든요. 그냥 진통제만 주세요.”
거짓말이다. 팔을 감춘 거적때기 위로 조금씩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환자분이 부상 때문에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불편하지 않게 잘 도와드릴게요.”
“저 멀쩡해요. 저 정말 괜찮아요. 진짜에요.”
“네,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일단 상처만 살짝 볼게요.”
“…….”
“상처 부위를 봐야 진통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건 괜찮죠?”
“……네.”
태경의 설득에 전건면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지 않게 잘 볼게요.”
천을 치우자 하나의 핏줄기가 옆으로 쭉 뻗어 나갔고, 그러다 다시 뻗었다.
“어! 어!”
자신의 핏줄기에 놀란 환자의 동공이 파르르 움직였다.
“피, 피가…….”
“환자분 괜찮아요. 움직이지 마세요.”
저렇게 박동하듯이 뿜는 것은 누가 봐도 동맥이 손상된 것이다.
게다가 천으로 감싸서 전체적으로 상처 부위가 더럽다.
감염이 우려스러웠다.
“식염수 주세요.”
“얼마나 가져갈까요?”
“한 20개 정도 갖고 와요.”
“네.”
태경은 멸균된 식염수로 상처 부위를 닦았다.
감염 우려 때문에 많은 양의 식염수를 부어 균과 불순물들을 일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선생님 제가 하겠습니다.”
응급실에서 상주하는 응급구조사가 처치실로 들어오면 말했다.
“상처 보면서 제가 할게요. 괜찮으니 다른 일 도와주세요.”
태경은 동맥이 손상된 것 같기에 빨리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다. 상처 부위는 오른쪽 팔 아래로 15cm 정도 되었다.
‘다행이 매끄럽네.’
근육도 약간 손상되었지만 그 경계가 매끄럽다.
“수처(suture, 봉합) 하실 거예요?”
“가능하겠는데요.”
식염수를 지속적으로 부어 보니 봉합도 가능할 거 같았다.
더러운 상처의 경우 감염 우려 때문에 지연 봉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비돈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전건면 환자의 경우 포비돈으로 소독도 하고 봉합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거즈 주시고요. 그 수술 여기서 빨리 할까 해요. 정 선생 오라고 콜 해 주세요.”
“아, 안 안돼요!”
“네!?”
“안 된다고요!”
가만히 있던 환자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아니, 고함에 가까웠다.
“안 됩니다.”
처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순간 당황했다.
“전 대리 진짜 왜 그래?”
“전건면 환자분?”
“안 돼요.”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태경도 살짝 당황했다.
“안 된다니요. 환자분 무슨 이유가 있으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돈!”
뭔가 이상하다.
“제가 돈이 없어요.”
“전 대리 그게 무슨 말이야?”
뭔가 이상한 가운데 환자의 단호한 다음 말이 이어졌다.
“돈이 없어 안 돼요. 그러니까 대충 여기서 빠르게 끝내 주세요. 빨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