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4화 (24/472)

24화. HIV

뭔가 이상하다.

“제가 돈이 없어요.”

“전 대리, 그게 무슨 말이야?”

뭔가 이상한 가운데 환자의 단호한 다음 말이 이어졌다.

“돈이 없어 안 돼요. 그러니까 대충 여기서 빠르게 끝내 주세요. 빨리!”

태경의 눈빛이 환자의 표정을 예의주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돈이 없어 치료를 꺼려하는 사람들이야 무수히 봐서 태도만 봐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지는 않았다.

‘뭔가 있다.’

환자의 불안한 눈빛과 예민한 언행.

척 봐도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 돈이라는 통상적인 이유를 말한 것처럼 보였다.

‘뭘 숨기는 거지?’

환자와 함께 신경 쓰이는 게 또 하나 있었다.

“……!”

냄새가 미묘하게 다르다.

‘암모니아 냄새인데 뭔가 이상하다.’

평상시와 같은 2단계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다른 냄새가 흐릿하게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태경은 의사로서 검사 결과에 의해서만 판단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실했던 다섯 번째 바이탈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환자 분명이 뭔가 있어.’

이 냄새 덕분에 환자의 상태를 알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했다.

“저기 같이 오신 보호자분은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저는 직장 상사입니다.”

“실례지만 보호자분은 잠시만 응급실 밖에 보호자 대기실에 있으시겠어요?”

“제가 그래도 우리 직원 보호자로 온 사람인데 옆에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처치 때문에 그러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보호자가 처치실 밖으로 나간 뒤 태경은 뿜어져 나오는 피를 멸균 거즈로 단단히 막았다.

그리고 환자에게 바로 질문을 하려다가 직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근무자들도 잠깐 다들 나가 있어요.”

“……예?”

“저희 다요?”

과한 처사였다. 직원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당연했다.

“네, 전부 다요.”

그래도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환자의 마음과 정보를 얻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임정숙 간호사는 물었다. 예민하고 불안한 환자와 단둘이 괜찮겠냐는 뜻이었다.

“그럼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잠깐만 다들 나가 있죠.”

“예? 저희 진짜로 싹 다 나가요?”

“그럼 가짜로 나가? 자 얼른얼른 나갑시다.”

역시 베테랑 간호사다. 태경을 무한 신뢰하는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직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탁-

집중처치실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태경이 환자의 눈을 마주했다.

“진건면 환자분 이제 여기에 환자분과 저밖에 없어요.”

불안한 시선이 의미 없이 처치실 주변을 맴돌았다.

“혹시 저한테 하실 말 있지 않으세요?”

“…….”

불안한 시선을 멈춘 환자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떨궜다.

“무엇이 걱정되시는 말해 주시겠어요?”

“그냥……그냥 빠르게 치료해 주세요.”

“환자분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말해도 돼요.”

“선생님, 저희 공장 지금 주문이 밀려서 계속 야근하고 있어요. 부장님도 저 때문에 병원까지 따라오시고 그래서 빨리 들어가 봐야 해요.”

환자는 갑자기 많은 말을 쏟아 내며 여전히 빨리 나가고 싶어 했다.

“전 할 말 없어요. 그러니까 어서 치료나 해 주세요. 치료 더 안 해 주시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태경은 환자가 말해 주길 바랐지만 그의 태도는 여전히 방어적이며 강경했다.

‘어쩔 수 없군.’

결국 검사로 직접 파악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치료하죠. 응급실 오면 간단한 피검사를 하거든요. 여기서 바로 할 수 있는지 봐 드릴게요.”

“네.”

“대신 여기는 장비가 없어서 팔 전체가 아니라. 상처 부위 근처만 마취를 할 거예요.”

“네.”

“그래서 더 많이 아플 겁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저기……선생님, 그 검사라는 게 뭔가요?”

“……!”

여기서 태경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통상의 환자들은 위와 같이 말할 때 많이 아프냐는 물음이 먼저다. 그런데 검사의 종류를 묻다니.

더 이상 짐작이 아니었다. 이 환자는 확실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그 검사 무슨 검사냐고 물었습니다.”

“특정 병을 보기 위한 확진 검사는 아니고 백혈구나 적혈구 등 간단한 치료에 필요한 것들이에요.”

태경은 이 검사마저도 환자가 거부할까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확진 검사가 아니라는 불필요한 말을 붙인 것이다.

“환자분 괜찮죠?”

“네, 그건 할게요.”

환자의 검사가 신속하게 이뤄지고 잠시 뒤 결과가 나왔다.

태경의 눈빛이 상당히 진지하다.

‘백혈구가 낮아.’

환자의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았다.

이러한 세포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들이며 통상 상처가 발생하면 증가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염증 수치는 상승이라…….’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가 낮아지는 병 중 숨기고 싶은 병은 하나밖에 없었다.

* * *

“저기요?”

보호자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전건면 환자 보호잔데 그 친구 많이 안 좋은가요?”

“아까 함께 오신 회사 상사분이시죠?”

처치실 상황을 주시하며 스테이션에서 업무를 보던 임정숙 간호사가 답했다.

“네, 맞습니다.”

“계속 기다리셔서 그렇죠?”

“아니 그런 것보다 기다리는 건 괜찮은데, 아까 피도 많이 나고 혹시 어디 많이 안 좋은가 해서요.”

“지금 선생님께서 소독도 하고 환자분 상황에 따라 봉합도 할 수도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팔이 심하게 다치거나 그런 건 아닌 거죠?”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아직 처치 중이니까 일단 대기실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혹시 제가 들어가 보면 안 되겠죠?”

“죄송하지만 보호자분 그건 좀 안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보호자가 가장 궁금한 건 환자의 상태다.

임정숙 간호사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걱정을 덜하도록 환자에 대해 말해 주고 싶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지금으로서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아는 건 처치실 안에 있는 태경뿐이었다.

* * *

태경이 한층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환자를 마주했다.

“환자분?”

“네, 선생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나왔어요.”

“어떻게 나왔습니까?”

“그전에 제가 할 말이 있어요.”

“예? 할 말이요?”

“조금 전에 한 피검사를 통해 어떤 병이라고 진단된 것은 아니며 정보가 기입되지도 않았어요.”

“아, 그래요?”

순간 왠지 모르게 안심하던 환자의 표정은 곧장 이어진 태경의 다음 말에 무너졌다.

“하지만 저는 의사인지라 결과를 보고 몇 가지 병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그러한 병이 치료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환자분에게 지금 물어볼 거예요.”

“뭐……뭐를요?”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검사 받은 적 있으세요?”

“보……보건소 검사요?”

“없어요?”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환자분 신속검사 해 본 것 없습니까?”

“……있습니다.”

확신에 찬 눈빛을 본 전건면 환자가 체념한 듯 답했다.

“맞습니까?”

휴대폰으로 환자의 병명을 찾은 태경이 화면을 환자에게 돌리며 물었다.

“…….”

휴대폰 화면에는 작은 글자로 ‘HIV’라고 적혀 있었다.

“네, 선생님.”

한 번의 짧은 침묵을 삼킨 환자가 입술을 떨며 답했다.

“맞습니다.”

보건소에서 신속검사라고 칭하며 익명으로 검사를 해 주고 결과를 알려 주는 병은 딱 하나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인 HIV(AIDS, 에이즈)였다.

“환자분?”

“하!”

환자는 울컥하며 깊은 숨을 토해 냈다.

“흑!”

그러더니 이내 참았던 마음이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 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본인이 아니면 그 어떤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흑! 흑!”

태경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휴지를 건넸다. 그렇게 환자가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아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그게 일주일 좀 넘었어요.”

“검사는 보건소에서만 받으신 건가요?”

“……예. 보건소 두 군데를 갔는데 결과는 같았습니다.”

“증상은 있었나요?”

“그냥 몸살이 좀 오래 가더라고요.”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몸살 기운은 없습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빠르게 치료해 드릴게요. 대신 항생제 처방을 좀 강하게 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치료를 권고해 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그게 알려지면 저 회사 짤려요.”

태경은 이럴 때 참 난감하다. 사실 HIV는 생각보다 차별을 지대하게 받는다.

직장에 알려지는 순간 매장 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들의 개인 사생활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선생님 저 너무 막막하고 두렵고 무서워요.”

AIDS는 굉장히 무서운 병이다.

그만큼 치료 시 더 조심해야 된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당할 일은 아니다. 또한 일상생활을 공유 못할 정도의 전염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혈액이나 정액 등으로 감염이 되는데 살아가면서 직장 동료와 그것을 나눌 기회가 많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환자는 조금 달랐다.

이미 피가 많이 나서 직장 동료들에게 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네, 환자분 편하게 말하세요.”

“저 너무 막막하고 두려워요.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잠시 진정하던 환자는 스스로 자책하며 더한 울분을 쏟아 냈다.

“제 자신이 원망스럽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흑흑!”

환자의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환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태경은 의사이기에 환자를 설득하여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설득해야 했다.

‘일단 치료부터 생각하자.’

물론 그전에 우선 환자의 다친 팔 치료가 가장 먼저였다.

* * *

“어! 선생님 나오시네요.”

“선생님 무슨 상황이에요.”

환자가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태경이 잠시 밖으로 나왔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직원들도 당연히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울음소리도 들리던데 환자분은 괜찮은 거예요?”

“잠시 이쪽으로 좀 모이세요.”

태경은 환자가 있는 집중처치실에서 직원들은 살짝 이동시켰다.

“선생님 저 환자 무슨 일이에요?”

“아까 보니까 많이 불안해 보이던데…….”

“맞아요. 혹시 PTSD 환자예요?”

“그건 아니고 지금부터 목소리 낮추고 내 말 잘 들어요. 저 환자 HIV가 의심되고 있어요.”

“잠시 만요. HIV라면 설마 AIDS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아요.”

“네!?”

“에, 에이즈요?”

“말도 안 돼. 에이즈라니…….”

직원들은 놀란 토끼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환자가 좀 이상했지만 설마 에이즈 의심 환자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환자가 있는 집중처치실에서 봉합하고 처치할 거예요. 그러니까 합당한 보호장ㅂ…….”

“선생님. 안 돼요!”

“안 된다니. 뭔가 안 된다는 거죠?”

“그게 ……저, 저희는 AIDS환자 안 받아요.”

한 직원이 눈치를 보며 말했지만 다른 직원들의 표정도 같은 마음이었다.

처치실을 나올 때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벌어졌다. 전에 근무했던 병원은 대학병원이라 HIV 환자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치료도 해 주었다.

반면 몇몇 의원들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들의 마음도 지금 직원들의 마음도 이해는 됐다.

“맞아요. 그런 환자 저희는 안 받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희는 받을 수 없어요.”

그래도 이건 엄연한 차별이다.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이런 태도를 태경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저희가 누구를 말하는 거죠?”

직원들을 대하는 태경의 말투가 처음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누굴 말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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