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지랄들 하고 있네
“저희가 누구를 말하는 거죠?”
직원들을 태하는 태경의 말투가 처음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누굴 말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 그거야 저희 병원을 말하는 건데요. 그리고 병원 내 모든 직원을 뜻하기도 하고요.”
“지금 처치실 안에 있는 사람은 치료가 필요한 엄염한 환자입니다.”
“그래도 에이즈 의심 환자잖아요.”
“그럼 에이즈 의심 환자라고 해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치료를 하지 말자는 겁니까? 환자를 거부하자고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면 되잖아요.”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환자를 거부한다면?”
“솔직히 지금까지 저희 병원에서 그런 환자 안 받아왔어요. 치료한 적도 없어요.”
“그건 누구의 결정이죠?”
“그게 통상적으로 그래 왔었거든요…….”
“결정권자는 저입니다.”
계속해서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직원들의 말을 태경이 한 마디로 무 자르듯 잘랐다.
이보다 더 단호한 말투는 없었다.
“전건면 환자 내가 치료합니다. 조금이라도 걱정되거나 두려운 사람들은 들어오지 마세요. 그리고 의료인이라면 확실한 근거와 지식 안에 판단하세요.”
화가 난 태경이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며 치료에 필요한 집기를 가지러 갔다.
“의사는 물건을 고르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나한테 온 환자는 절대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 * *
“수 쌤 지금 응급실 난리 났다면서요?”
“난리? 무슨 난리?”
접수처 직원이 잠시 병동 환자를 보고 응급실로 향하는 임정숙 간호사에게 물었다.
“집중처치실에 있는 환자요.”
“그 환자가 왜?”
“그게…….”
직원이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HIV 의심 환자래요.”
“뭐!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임정숙 간호사는 그제야 태경이 직원들을 내보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직원들이 환자 치료 못 한다고 했더니 김 선생님이 화나셔서 안 들어와도 된다고 혼자 치료하신다고 하셨대요. 그래 갖고 지금 최 팀장님도 들어가셨어요.”
“최 팀장님이 왜?”
“의견이 갈리니까 최 팀장님에게 김철기 원장님께 전화해서 원장님께 상황 알리고 의견 물어보라고요.”
“뭐라고?”
임정숙 간호사는 황당한 얼굴로 응급실로 향했다.
* * *
은은한 수면 등이 켜진 병실 안.
김철기는 따뜻한 눈빛으로 잠든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기야 우리 민기…….”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의 잠꼬대가 시작됐다.
“내일은 아빠랑 같이 소풍 가자.”
아내가 잠꼬대를 한다는 것은 깊게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김철기는 아내의 품에서 아기 인형을 조심스레 꺼내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오늘도 세면장 가세요?”
요양병원 당직의가 김철기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오늘도 갑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안 힘드세요?”
김철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인형을 매일 밤 손질하고 있었다.
“인형의 묻은 손때 제거랑 가끔 옷을 세탁하는 게 다인데 힘들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르신도 항암 치료 중이시잖아요.”
“감사하게도 약이 잘 맞는지 크게 힘든 건 없습니다.”
“저기 근데 어르신, 왜 매일 인형을 닦고 옷을 빨아 입히세요?”
“다른 사람 눈에는 그냥 인형일 뿐이지만 아내에겐 죽은 아들이니까요.”
“아! 그러셨군요.”
“아내가 자고 일어나서 깨끗해진 인형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어요.”
“아내 분을 위하시는 게 참 대단하세요. 우리 요양병원에서 애처가로 소문나셨어요.”
“당치 않은 소리. 못해 준 게 많아서 그래요.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선생님도 가족에게 잘하세요.”
“네, 어르신.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당직의와 대화를 마친 김철기는 세면장으로 향해 인형을 손질했다.
* * *
“씻기니까 깨끗하구나. 내일도 잘 부탁한다. 민기야. 어!”
Rrrrrrrrr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젖은 인형 머리를 닦던 손길이 멈칫했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병원 일에 손을 뗀 뒤 단 한 번도 전화를 하지도 오지도 않았었다. 김철기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최 팀장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요?”
-원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시골 생활은 불편하진 않으시고요?
직원들은 김철기가 아픈 걸 모르고 있었다.
“공기 좋은 곳에서 불편한 거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무슨 일로 전화를 했나요?”
-아, 네. 원장님 불쑥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별말은. 괜찮으니 말해 봐요.”
-다름이 아니라 병원에 작은 문제가 생겼는데 상의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작은 문제?”
-네, 김태경 선생님에 관한 건입니다.
“김 선생이요?”
-네, 그게 그러니까 어떤 일이냐 하면요.
최 팀장은 김철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HIV 의심 환자이다 보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선뜻 치료하기가 좀 그렇고 또 뭔가…….
“최 팀장?”
-네, 원장님.
“지금 뭔가 대단한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더 이상 병원 원장이 아닙니다.”
-예!?
“그 말은 우리병원에 관한 모든 권한을 김태경 선생님에게 위임했다는 뜻입니다.”
-…….
“또 환자에 대한 모든 결정뿐만 아니라 직원들에 대한 모든 권한 역시 김 선생님에게 있다는 말이지요.”
김철기의 발언은 태경에겐 힘을 실어 주고 직원들에겐 경각심을 느끼게 했다.
“난 김 선생님을 믿습니다. 때론 좋은 리더를 알아보는 눈도 필요한 법입니다. 최 팀장?”
-아, 네……네. 원장님.
“앞으로 나한테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말아요.”
-죄, 죄송합니다. 원장님.
“그 죄송은 나한테 할 게 아니죠. 그럼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김철기는 뿌듯한 표정과 함께 인형을 들고 세면장을 나섰다.
“HIV 환자라…….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어.”
* * *
“아무래도 우리 실수한 거 같아요.”
“아까 보니까 김 선생님 화나신 거 같은데.”
“내가 그래서 전화는 하지 말자고 했잖아.”
전화를 마친 최 팀장과 직원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다들 정말 무슨 생각으로…….”
“지랄들 하고 있네.”
임정숙 간호사가 말하려던 찰나 거한 욕설이 그녀의 말을 덮어 버렸다.
“아주 지랄들 났다. 다들 제 정신이가?”
거침없는 언변의 주인공은 식당 주방장 오계순이었다. 마침 응급실에 들린 그녀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어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겠다는데 병원에서 내쫓으라는 잡소리를 하노.”
“아니, 여사님 그게 아니고 에이즈 의심 환자라고 하니까 겁나서…….”
“시끄럽고마! 주댕이 닫아뿌라.”
“바로 닫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전염되는 줄 아나? 그랬으면 에이즈 환자를 치료한 김 원장도 직접 밥을 갔다 줬던 내도 마 진작 걸렸데이.”
“네? 우리 병원에 에이즈 환자가 있었어요?”
“그럼 있었제. 그것도 얼라였다 아이가.”
벌서 30년 가까이 된 일이다.
급성 충수염에 걸린 어린아이는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20군데가 넘는 병원에서 진료 거부를 당했다.
거친 장맛비를 쫄딱 맞은 부모와 아이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우리병원이었다.
김철기는 고통 속에 눈도 못 뜨는 아이를 보며 오늘 태경이 그런 것처럼 일말의 고민 없이 수술을 했다.
“누구보다 환자의 고통을 잘 알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와 그렇게 이기적이가.”
“…….”
“어째 대학들 나온 사람들이 국민핵교 문턱만 넘고 밥하는 내보다 더 문디들이나. 응?”
“죄송합니다.”
“그 죄송 번지수가 틀렸다. 머리 장식으로 달고 다니지 말고 다들 반성해라. 알긋나?”
“네.”
“알겠습니다.”
“그라고 앞으로 한 번만 더 김 선생님 말에 토 달면 내 밥 국물도 없다. 고마 알아서들 해라.”
김철기에 이어 오계순에게도 쓴소리를 들은 직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저기 선생님?”
필요한 물품을 들고 처치실로 향하는 태경을 임정숙 간호사가 불렀다.
“제가 들어가서 도울게요.”
“저도 도울게요.”
“저도.”
“괜찮아요. 이 선생이랑 환자 혈관봉합할 겁니다. 이쪽은 저희한테 맡기고 다른 환자들 보세요.”
태경은 더 이상 별다른 말없이 이찬희와 함께 처치실로 들어갔다.
“수 쌤 저희 어떡해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다들 경솔하게 행동하래?”
“임 선생 그러지 말고 어쩌면 좋을지 생각 좀 해 봐요.”
“팀장님도 그래요. 직원들이 그러면 말려야지 원장님께 전화를 하면 어떡해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지…….”
“뭘 어째요. 좀 전에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요? 어서 다들 일하러 가요. 어서요.”
* * *
“환자분?”
태경이 살짝 충혈된 눈빛으로 멍하게 앉아 있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다친 부위를 봉합하기 위해 이제 국소마취를 할 거예요.”
“네.”
“마취가 조금 아플 겁니다.”
“괜찮습니다.”
태경은 정성스럽게 국소마취를 했다. 통증이 있을 법한데 환자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아마 일주일 전에 보건소 검사를 하고 난 뒤 모든 절망을 다 써 버려서 그런 것 같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암이나 중중 질환을 선고받은 초기에는 세상 모든 것에 무감각하며 절망하게 되는 순간이 말이다.
태경 역시 잘 알고 있다. 이때는 고통조차 별 감흥이 없어진다.
“환자분 이제 5분 정도 있다가 마취되면 봉합할게요.”
“네.”
“동맥을 연결하는 거라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 외에는 금방 끝날 겁니다.”
환자는 한 마디 대답할 힘도 없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이거요.”
태경은 이찬희가 건넨 의료용 고글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전공의 때 HIV 환자들을 처치하면서 고글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바빠서 방광염에 걸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HIV보다 그날의 당직이 더 두려웠다.
지금도 그때의 습관처럼 하려고 했다. 그런 태경을 정신 차리게 한 것은 이 고글이었다.
“그래도 고글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껴야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환자를 생각하면서 치료에 전념했다가 눈앞에 흐르는 피 속에 있는 바이러스가 어떤 놈인지 상기된 것이다.
“안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렇지.”
이찬희의 말이 맞다. 정확한 의학적 지식으로 저 바이러스는 무서운 놈이기 때문이다.
‘기분 탓이 아니었나?’
냄새만 보아도 달랐다. 은은한 암모니아 속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지속적으로 일렁였다.
“환자분 마취 잘됐죠?”
“네. 안 아프네요.”
“그럼 시작할게요. 이 선생 마이크로(micro) 기구들 풀자.”
“네, 선생님.”
혈관봉합 시 아주 작은 바늘과 끝이 굉장히 얇지만 안정적인 힘으로 잡아 주는 기구가 필요하다.
교차되어 있고 뒤끝이 연결된 긴 핀셋 역시 혈관 수술에 필수 도구다. 눈에 착용하는 확대경이 있으면 좋겠지만 응급실에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소독하겠습니다.”
이찬희가 소독 후 식염수를 분사해 잘린 동맥을 보이게 했다.
“석션 하자. 그 주변 보이게 해 주고.”
“네, 선생님.”
태경이 절단 부위의 위와 아래를 끝이 굽어진 기구에 노란 고무를 끼워 집어낸다.
노란 고무를 끼우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혈액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는 고무를 끼워서 집는 부위의 혈관 손상을 방지할 수 있었다.
‘혈관봉합이라 확대경 없이 쉽지 않으실 텐데…….’
어시를 하며 태경의 손끝에 집중한 이찬희가 속으로 말했다.
사실 혈관봉합은 전문분야 중에서도 전문분야다.
수술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며 혈관 전문으로 하시는 교수님들은 대부분 수술의 귀신들이다.
여기가 대학병원이었다면 바로 그런 분들에게 콜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본인 뒤에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해내야만 한다.
‘역시! 손놀림이 다르다.’
확대경 없이도 혈관봉합을 이어 가는 태경의 솜씨를 이찬희는 꼼꼼히 눈에 담았다.
‘바늘 강약이 일정하다.’
아주 작디작은 바늘이 잘린 혈관 앞뒤로 이동하면서 봉합한다. 한 땀, 한 땀. 매우 천천히 하지만 정성스럽게 한다.
봉합하는 힘이 너무 강해서도 너무 약해서도 안 된다. 한참을 했는데 이제 세 땀이다.
“아! 이거 안 되겠는데…….”
태경이 네 번째 봉합을 하려다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