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6화 (26/472)

26화. 4초? 아니, 3초다

직원들의 작은 소동이 일단락되고 임정숙 간호사는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보호자분?”

“네.”

초조한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전건면 환자의 직장 상사가 벌떡 일어섰다.

“계속 기다리시느라 힘드시죠?”

“아닙니다. 치료 끝났나요?”

“아직 치료 중이고 환자분 상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혹시 목숨이 위태롭거나…….”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오른팔 베인 부분에 혈관이 끊어져서 지금 혈관봉합을 하고 있어요.”

“혈관이 끊어져요? 그 친구 괜찮은 거죠?”

“네, 아무래도 혈관봉합이다 보니까 시간 좀 걸려요. 혈관이 작기 때문에 신중하게 진행되거든요.”

“다친 사람이 힘들지 기다리는 게 뭐 힘들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저희 직원 치료해 주시는 선생님들이신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간혹 공장 현장에서 다친 환자와 동행한 회사 보호자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었다.

바로 자신들의 알 권리였다. 어떤 상태인지 얼마나 다쳤는지 치료비는 얼마나 나올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대다수였다.

환자의 치료가 우선이라고 해도 의료진에게 막말까지 일삼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하다.

그런데 이 보호자는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모쪼록 우리 전 대리 좀 잘 치료해 주세요.”

“그럼요. 저희 선생님이 실력도 좋으시고 환자분들 많이 아끼시는 분이세요. 너무 걱정 마시고 잠시만 더 기다려 주세요.”

“저기, 선생님? 잠시 만요.”

“네?”

대기실을 나오려는 임정숙 간호사를 보호자가 불러 세웠다.

“뭐 좀 물어보려고요.”

“네, 말씀하세요.”

“다른 곳은 괜찮은 거죠?”

“네? 다른 곳이요?”

“그러니까 그게…… 전 대리 팔 말고 어디 다른 곳은 이상 없나 해서요.”

기분 탓이겠지만 어딘가 묘한 질문이었다.

“지금 환자분은 팔을 치료받고 계세요. 그럼.”

엄밀히 말하면 다른 곳도 이상이 있다고 말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HIV가 의심이 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환자 본인이 직접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 *

“아! 이거 안 되겠는데…….”

태경이 네 번째 봉합을 하려다 멈칫했다.

봉합을 하려고 보니 경계가 생각보다 맞지 않았다. 그라인더에 잘려서 경계가 매끄러웠지만 봉합을 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이 선생, 가위 곧은 거 줘.”

“여기 있습니다.”

태경은 가위로 경계를 다시 자르고 봉합하기 좋게 만들었다. 아까같이 한쪽 동맥으로 바늘이 들어가서 다른 쪽 혈관을 뚫고 나오기를 반복한다.

잘린 동맥에 피가 다시 잘 흐르면서 새어 나오지 않도록 그 미묘한 강약을 조절한다.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작은 혈관에 집중한 지 30분이 지났다.

“이 선생, 집게.”

“네. 선생님.”

이찬희가 절단된 동맥 앞뒤로 집어 놓았던 집게를 다시 풀었다.

“식염수 뿌릴까요?”

“그래, 꼼꼼히 뿌려.”

식염수를 뿌리자 어디에서도 혈액이 세어 나오지 않았다.

‘혈관봉합에 이렇게 긴장하다니.’

태경은 속으로 안도했다. 일전에도 몇 번 혈관 수술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긴장된 건 처음이다.

HIV 의심 환자라는 것에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된 것이다.

“환자분 잘하고 계세요. 혈관봉합은 끝났고 나머지 봉합할게요.”

이제 근육과 피부의 봉합이다. 물론 중요한 과정이지만 혈관에 비해서는 너무나 쉬운 과정이었다.

‘4초? 아니, 3초다.’

봉합 속도를 본 이찬희가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을 확인했다.

‘연습을 얼마나 했으면……. 나도 껍데기 사서 연습하자.’

태경은 거의 3초에 한 땀 속도로 빠르게 봉합해 갔다. 그리고 혈액이 차올라 생기는 합병증을 방지하기 위해 배액관을 설치한다.

배액관을 집게로 집고서 근육 봉합선 안으로 밀어 넣고, 근육 봉합을 마지막으로 처치가 끝났다.

“환자분 끝났습니다.”

태경의 고갯짓에 이찬희가 처치실을 나갔다.

“수고하셨어요.”

“수고는 선생님이 하셨죠.”

“제가 환자분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오래 안 걸려요.”

“네, 하세요.”

“환자분이 지금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제가 그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제가 의사기 때문이죠. 환자분 아까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다고 했죠?”

“네, 두 번 받았습니다.”

환자는 처음보다 태경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에이즈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정성껏 치료해 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HIV 사람들인 모인 커뮤니티 글을 계속 찾아봤다.

-제일 서러운 건 아팠을 때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글은 병원에 관한 글이었다.

-몸이 아파 동네 병원을 갔고 피 검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에이즈 환자는 치료할 수 없다고 거부당했습니다.

-저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의사가 그러다 걸리면 책임질 거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다들 종합병원만 가세요. 돈이 많이 나와 그렇지 거긴 그래도 치료는 해 주니까요.

-참고로 전 장염으로 죽을 뻔했는데도 병원 안 가고 버텼습니다. 병원 사람 진료 거부에 경멸하듯 쳐다보는 그 눈빛 괴롭거든요.

전건면 환자는 치료를 받는 내내 아침에 봤던 커뮤니티 글을 떠올렸다.

그리고 적어도 눈앞의 김태경이라는 이 사람은 좋은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너무 두려워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저는 환자분이 2차 검사를 받아 보셨으면 해요.”

“2차 검사라면 확정 검사를 말하는 거죠?”

“맞아요. 환자분이 보건소에서 두 번의 검사를 받은 건 모두 1차 검사인 선별 검사예요.”

환자는 관련된 글을 찾아봤지만 막상 2차 검사에 대한 건 잘 몰랐다. 하소연 섞인 심정글에 더 눈이 갔기 때문이다.

“HIV는 1차 검사와 2차 검사가 있습니다. 1차에서 양성으로 나오면 2차 검사를 의뢰하고 그때 양성이 나오면 감염 확진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럼 제가 양성이 아닐 수도 있을까요?”

“그건 지금 여기서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아닌 것 같습니다.”

1차 검사의 민감도가 높아 간혹 2차에서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태경은 그 멘트는 덧붙이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말하세요. 아는 선에서는 답해 줄게요.”

“확정을 받게 되면 일상생활은 가능 할까요?”

“가능합니다. 그러긴 위해선 관리를 잘 받아야 하구요.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시스템이 잘되어 있습니다. 외국처럼 약값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요.”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요.”

“HIV 의심 환자라고 회사에 알려야 할까요?”

예상 못한 질문이었다.

태경은 어떻게 답을 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환자와 마주한 그의 시선이 처치실 바닥으로 향했다. 환자의 동맥에서 나온 혈흔이 보였다.

“이 질문은 환자분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제 개인 문제겠죠? 괜한 질문을 드린 것 같네요.”

“다만 제가 환자분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솔직하게 회사에 알렸을 겁니다.”

“오늘 치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 선생님, 혹시…… 혹시 말입니다.”

살짝 머뭇거리며 주저하던 환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2차에서 양성으로 확정 받으면 전 앞으로 에이즈 환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지금처럼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 올 일이 있다면 그때도 선생님께 와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제가 치료할 수 있다면 오늘처럼 치료할 겁니다. 약속하죠.”

초점 없는 눈으로 병원을 들어왔던 전건면 환자의 표정은 처음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 때문에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태경에게 짧은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 뒤 처치실을 나섰다.

“고맙습니다.”

* * *

“세상에! 혈관을 다 봉합하다니. 안 아팠어?”

“마취해서 크게 아프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전 대리 애썼어. 병원비 이런 건 일절 걱정하지 말고 회복하는 데만 전념하라고 사장님이 신신당부했어. 알았지?”

“네, 부장님 감사합니다.”

치료를 마친 전 대리는 보호자인 부장과 함께 병원 로비를 나서고 있었다.

“회사 일 걱정 말고 며칠 푹 쉬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

“죄송합니다.”

“아니, 다친 사람이 누군데 왜 자네가 죄송해.”

“제가 부주의해서 그런 거니까요.”

“아무리 집중해도 현장일 하다 보면 예고 없이 사고 오는 날도 있어. 이미 벌어진 일 자꾸 생각하지 마. 전 대리 미안해.”

“왜 부장님이 사과를 하세요.”

“어찌 됐든 우리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내가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가족들이 알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부장님. 저기 좀 잠깐 앉으시겠어요?”

전 대리는 병원 앞마당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왜? 힘들어?”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부장님께 꼭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 * *

“김 선생님 어디 가셨어?”

“좀 전에 환자분 처치 끝나고 진료실 들어가시던데요.”

“외래환자 있나?”

“수 쌤? 저희도 같이 안 가도 괜찮을까요?”

스테이션에 있던 후배 간호사가 태경에게 사과하러 가는 임정숙에게 함께 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나랑 팀장님이 대표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도 그렇잖아.”

“죄송해서 그렇죠.”

“진짜 죄송한 거 맞아?”

“그럼요. 아까 일하는데 김 선생님이 하신 말 생각하면서 나이팅게일 선서까지 다 떠올랐다니까요.”

“진짜 오랜만에 듣네. 나는 선서를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근데 팀장님은 어디 가셨어?”

“저기 오시네요.”

화장실에서 나온 최 팀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표정은 또 왜 그래요?”

“행여 선생님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그만두신다고 하면 어쩌나 싶네요.”

“그렇게 걱정되시는 분이 왜 그러셨어요.”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 그만해요.”

“김 선생님 그만두는 일 없으니까 염려 마시고 가서 잘 말씀드려요.”

“그래도 임 선생이랑 같이 가니까 든든하네요.”

최 팀장은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태경의 진료실로 향했다.

똑똑-

“선생님?”

진료실 문을 노크했지만 안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김 선생님?”

“안 계신 거 아닌가.”

“아니에요. 분명히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찰칵-

“선생님 안에 계세……!”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임정숙 간호사는 요상한 자세로 있는 태경을 보며 깜짝 놀랐다.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거기서 왜 그러고 계신 건지…….”

뒤따라 들어온 최 팀장도 덩달아 태경에게 물었다.

“쉿! 조용!”

창가 쪽 벽에 바짝 붙어 쪼그려 앉아 있는 태경은 작게 속삭이며 두 사람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 다 얼른 고개 숙여요.”

“예? 아!”

태경의 눈짓을 따라 시선을 창밖으로 넘기던 임정숙 간호사는 대번에 허리를 숙여 쪼그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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