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29화 (29/472)

29화. 찹쌀떡

그의 시선이 환자인 아내가 아닌 남편에게 쏠렸다.

‘이건…….’

바로 옆에 서 있는 그에게서 악취가 더 진하게 올라왔기 때문이다.

‘독한 분뇨다.’

이고철에게서 3단계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문제다.’

지금까지 정리한 다섯 번째 바이탈 지표로 3단계다. 그것도 이토록 냄새가 진하면 중중 질환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었다.

“선생님 와이프가 지금 하는 게 아픈 거냐고 물어보는데요.”

“아픈 거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경은 일단 복통에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의 진료를 먼저 보기로 했다.

“제가 배를 눌러 볼 거예요. 자, 이쪽 아파요?”

“아니라는데요.”

“이쪽은요?”

“괜찮답니다.”

“이번에는 무릎을 한 번 올려 볼게요. 여기는요?”

“그쪽도 아프지 않답니다.”

“됐습니다. 일어나도 됩니다.”

아내의 배를 촉진해 보니 전형적인 변비처럼 보였다.

“검사를 하겠지만 아마 변비 때문인 거 같아요.”

“그러면 다행인데 동네 베트남 친구가 맹장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게 걱정되서 병원에 왔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방금 촉진해 보니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X-ray와 간단한 피검사를 해 볼게요.”

“제가 검사 안내해 드릴게요.”

“잠시 만요. 선생님.”

태경이 두 사람과 함께 검사실로 가려는 임정숙 간호사에게 제동을 걸었다.

“혹시 남편 분께서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신가요?”

“저요?”

질문이 조금 황당하다는 듯 이고철은 다시 되물었다. 그런 반응이 이해가 갔다.

큰 키와 좋은 체격 밝은 낯빛까지. 겉모습만 봤을 땐 이고철은 전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저한테 아픈 곳이 없냐고 물으신 건가요?”

“네, 남편분께 물었습니다.”

태경도 말하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 생긴 신기한 능력에 어느 정도 확신은 있었지만, 이렇게 멀쩡하다 못해 건강함이 느껴지는 보호자에게 물어볼 만큼 자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호탕하게 답을 한 이고철은 부인과 함께 검사실로 향했다.

* * *

잠시 뒤 검사 결과를 본 태경이 올라온 영상을 보고 있었다.

엑스레이 영상을 보니 예상대로 변이 가득 찬 것이 단순 변비로 볼 수 있었다.

“역시 변비 때문이었네요.”

태경은 모니터를 부부가 볼 수 있게 돌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 보이시죠? 보시면 이게 전부 다 변이에요.”

“이게요? 여기 하얗게 표시된 덩어리들이 다 변인가요?”

“맞아요. 아무래도 환자분이 변비가 심하신 거 같네요.”

“와이프가 화장실을 가면 30분 넘게 앉아 있어도 못 보는 날도 많았다고 하네요.”

“나 화장실 힘들다.”

“변비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약을 복용하면 지금보다는 좀 수월하게 변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행여 맹장이나 어디 안 좋은 거면 어쩌나 했는데 단순 변비라니 다행이네요.”

“아내분께 복용할 때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변을 본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통증의 양상이 변하면 그땐 병원에 다시 내원하시고요.”

“선생님 저희 와이프가 정말 감사하다고 하네요.”

푸엉은 베트남어와 짧은 한국어를 섞으며 인사를 전했다.

“선생님 좋은 의사다. 감사하다.”

“와이프가 한국 와서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진료 받았다고 더 감사하다고 합니다.”

“진료 잘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남편분 잠깐만요.”

태경은 부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들을 불러 세웠다.

조금 전, 이고철은 정확히 아픈 곳이 없다고 답했었다. 하지만 밝게 웃고 있는 얼굴과 대조적으로 그에게서 느껴지는 악취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실례지만 남편분 건강검진 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결국 태경은 한 번 더 질문해 보기로 했다. 대신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캐물을 생각이다.

“하하! 아까도 그러시더니만……. 선생님이 보시기엔 제가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입니까?”

참 난감한 질문이다. 의사 가운을 입고 아픈 냄새가 나서 그렇다고 말하면 누가 믿어 주겠나.

1단계나 2단계 냄새만 났어도 태경 역시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볼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외국 생활도 오래 하셨다고 했고 병원 진료도 오랜만이라 하니 혹시나 싶어 물어봤습니다.”

“혹시 저희 부부 검사를 권유해서 진료비를 더 받게 하시려고 하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직업이 의사이다 보니 제가 그런 쪽으로 오지랖이 넓습니다.”

“아! 그렇군요. 좋은 뜻으로 물어보신 건데 순간 선생님을 오해했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의사 앞에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전 건강 하나는 타고났습니다.”

의사들이 들었을 때 가장 공감 못하는 말이 바로 저 멘트였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강하지만 반대로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가 노가다 꾼입니다. 베트남에서 하던 사업이 망해서 그 빚을 갚으려고 막노동에 새벽에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까지 뛰고 있어요.”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긴요. 제가 진 빚인데 다 갚아야죠. 이쪽 일이 고되다 보니 몸이 약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자잘한 근육통이야 늘 달고 살지만 걱정할 만큼 아픈 곳은 전혀 없습니다.”

“남편 아파?”

길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푸엉이 궁금한 듯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남편 슈퍼맨. 튼튼한 사람.”

“보셨죠? 전 감기 한 번을 안 걸렸어요. 오죽하면 와이프가 평소에도 저보고 슈퍼맨이라고 하겠습니까.”

“내시경은 받아 본 적 있나요?”

“예, 한 3년 전에 건강검진 하면서 위랑 대장 다 받았는데 대장에 작은 용종 제거한 거 말고는 이상 없었습니다.”

이고철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작은 용종은 특이점이라고 볼 수 없었다.

“건강 빼면 시체인 사람입니다. 어쨌든 제 건강을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시겠지만 건강검진은 꼭 받으세요. 그리고 이거 가져가세요.”

태경은 이고철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우리 병원은 응급실까지 있어서 24시간 진료가 가능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일하시다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 있다면 진료 보러 꼭 오세요.”

“이렇게 꼼꼼한 의사 선생님은 또 처음 봅니다. 감기 걸리면 그때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해요.”

이고철은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웃는 얼굴로 진료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태경의 마음은 그리 개운하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진료를 권하고 싶었지만 본인이 원치 않는 이상 계속해서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뭐 이번에는 아니겠지.”

지금까지 다섯 번째 바이탈이 한 번도 틀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냄새의 오류로 이고철을 병원에서 다시 볼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 * *

“이제 열도 다 내리고 괜찮네요.”

간호사는 1인 병실에서 장염으로 입원한 어린이 환자 상태를 보고 있었다.

“아까 담당 선생님이 말씀하셨겠지만, 지금 맞고 있는 항생제가 장염 잡아 주는 성분이거든요 이 거 다 맞고 나면 아침에 퇴원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간호사가 병실을 나서자 가족들은 잠든 아이를 보며 안도했다.

“안 아픈지 철우가 깊이 잘 자네요.”

“세상에 저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린 아들의 장염으로 207호에 입원한 보호자는 시부모님과 함께하고 있었다.

“아범이 출장 가서 네가 혼자서 애 입원까지 시키고 고생했다.”

“아니에요. 어머님.”

“아범 클 때도 장염이 잦아서 병원을 자주 갔었는데 우리 강아지가 이런 것도 아빠를 쏙 닮았네.”

“그나저나 철우 아빠가 괜히 전화 드려서 이 시간에 병원까지 오시고 죄송해요.”

착한 며느리는 늦은 시간 병원을 찾은 시부모를 걱정했다.

“네가 왜 죄송해.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네, 저녁은 드셨어요?”

“시간이 몇 시인데 먹었지. 넌 먹었니?”

“저는 괜찮아요. 어머님 저 편의점에 보리차 좀 사러 갔다 올게요.”

“그래그래. 걱정 말고 다녀와. 요 앞에 24시간 분식집도 있더라. 가서 너 요기도 좀 하고 오고.”

“네, 어머님 아버님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됐어. 우린 괜찮아.”

“아가 나 음료수 좀 사다 다오.”

“뭔 음료수에요. 물드세요.”

“괜찮아요. 아버님 뭐 사다 드릴까요?”

“시원한 사이다 좀 부탁한다.”

“네, 금방 다녀올게요.”

며느리가 나가자마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당신 진짜 이럴 거예요? 그만 좀 먹어요.”

“사람 참. 먹는 것 같고 왜 그래.”

“손주가 아파서 입원했는데 먹을 게 들어가요?”

“입원했다는 소리 듣고 부리나케 오느라 저녁도 못 먹었잖아.”

“그래도 그렇죠. 며느리 보기 민망스럽게.”

“이 사람아 우리가 자식 한둘 키워. 원래 애들은 열도 나고 장염도 걸리면서 크는 거야.”

“그게 아파서 누워 있는 손주 앞에서 할 소리예요? 그만 자셔요!”

노부인은 병실에서 찹쌀떡을 먹는 남편을 말리며 타박했다.

“하여간 평생 배고픈 걸 못 참는다니까.”

“이 사람아 우리 나이에 굶으면 쓰러져. 잘 먹는 게 보약이라고.”

“아이고 철우 깨겠어요. 시끄러운 소리 그만하시고 이제 그만 좀 먹어요.”

“알았어. 이것만 먹고 그만 먹을게. 후우……. 후…우.”

맛있게 찹쌀떡을 먹던 노인은 전과 다르게 긴 호흡을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냈을 때처럼 길게 숨을 내쉬며 급하고 강하게 숨을 들이마시려고 하고 있었다.

“훕!!”

그러던 중 쇳소리와 함께 들어가던 노인의 숨이 턱 막혔다.

“영감, 왜 그래요? 걸린 거예요?”

“후우, 후우!”

앞좌석에 ‘털썩’ 머리를 댄 노인은 손을 목에 대고 계속해서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영감!!”

남편의 모습에 놀란 노부인이 등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삐-

-네, 말씀하세요.

남편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부인은 병실에 있는 비상 호출벨을 눌렀다.

“여기 207호인데 선생님 좀 빨리 불러 주세요.”

-보호자분 무슨 일이세요?

“그게 숨을 못 쉬는 거 같아요.”

-바로 갈게요.

* * *

“이번에는 제대로 고쳤습니다.”

숙제 검사를 받으러 온 이찬희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 그 자체였다.

“이제 손으로 쓰는 게 익숙해졌나 봐. 이 선생 표정이 행복해 보이네.”

“그럴 리가요. 전혀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찬희의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모든 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리는 퇴근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고쳐 왔네.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라고 하면 좋겠지만 죄송한 거 맞아.”

안 그래도 저런 소리를 다 하나 싶던 이찬희였다.

적어도 환자와 관련된 일에서는 그 어떤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태경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연습이 아니야. 아무리 작은 실수라도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어. 자꾸 강조해서 잔소리 같겠지만 연습도 훈련도 다 실전이라고 생각해.”

“네, 선생님.”

“의사는 환자 앞에 늘 완벽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련해야 하고.”

“명심하겠습니다.”

평소라면 태경의 말을 어느 때보다 진지한 자세로 머릿속에 새겨 넣을 이찬희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퇴근을 30분 남짓 앞둔 마음이 콩밭에가 있었다.

병실에서 치킨으로 토론하던 환자들 때문에 머릿속엔 온통 치맥을 먹을 생각뿐이었다.

안 그래도 일주일 동안 기름진 음식 끊기 챌린지를 하고 있어서인지 더 간절하게 치맥이 생각났다.

“다음은 대장암이랑 급성 탈장 수술로 하지. 퇴근 잘하고.”

“아니! 선생님?”

“왜 오늘 이미지 트레이닝한 대장암에 탈장까지 더 늘어난 거냐고 묻고 싶지? 간단해. 실수했으니까.”

“아니, 선생님 그래도 그건……네, 이찬희입니다.”

배로 늘어난 숙제에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찬희는 급히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207호 빨리 가 보세요.

“열 떨어진 거 아니었어요?”

-그랬는데 숨을 못 쉬고 있다고 응급 콜이 왔어요.

“네에!?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207호 담당 이찬희는 바로 진료실을 나갔고 통화 내용을 들은 태경 역시 뒤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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