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Heimlich maneuver
“정 쌤? 그 소식 들으셨어요?”
병동 스테이션에서 환자 차트를 보던 의진에게 간호사가 물었다.
“소식? 무슨 소식?”
“아까 수술 들어가셔서 아직 모르시나 보다.”
“뭔데. 뭔가 빅뉴스라도 있는 거예요?”
“아까 ER에 취한 환자가 왔는데 세상에 그 환자분이 자기 집인 줄 알고 똥 싸려고 했다는 거 있죠?”
“대변?”
“네. 속옷까지 순식간에 벗어서 선생님들이 말리느라고 애먹었대요.”
“최 선생님 병원에서 일한 지 2년 됐다고 했나요?”
“2년 좀 안 됐어요.”
“그럼 아직이네.”
“뭐가요?”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진짜 별의별 사람 다 만나는데 그 정도면 진짜 약과에요. 베드에 대소변 보는 환자는 은근히 흔해요.”
“아, 진짜요?”
“그럼. 예전에 진짜 황당했던 일 있었거든요.”
“뭔데요?”
“취한 환자가 보호자로 온 본인 아내 보고 자꾸 이따 집에서 볼 건데 어떻게 알고 왔냐는 둥 사랑한다는 둥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마누라는 내 껍데기랑 산다는 둥 아주 자기 치부를 싹 다 토해 내더라고.”
“어머어머 뭐야.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던 거네요.”
옆자리에 있던 다른 간호사도 의진에 이야기에 집중하며 거들었다.
“맞아요. 이마 찢어져서 온 환자였는데 화난 아내가 남편 핸드폰을 이마에 던지고 병원을 나간 거예요.”
“솔직히 아내 입장에서는 화나죠.”
“그렇죠. 근데 그 뒤가 더 대박이에요.”
“더 대박이 있어요?”
“유주얼 서스펙트급 반전이 있었죠.”
“뭔데요? 정 쌤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주세요.”
“어! 콜왔네.”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던 이야기는 갑자기 울리는 병실 콜에 멈췄다.
“네, 말씀하세요.”
-여기 207호인데 선생님 좀 빨리 불러 주세요.
“보호자분 무슨 일이세요?”
-그게 숨을 못 쉬는 거 같아요. 빨리요.
“바로 갈게요.”
탁-
“207호에 장염 고열로 아이가 입원했거든요. 보호자분인데 숨을 못 쉬는 거 같다고…….”
“내가 가 볼 테니까 담당 선생님께 빨리 콜해요.”
“네, 선생님.”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진은 207호실로 뛰었다.
* * *
탁-
병실까지 전력 질주한 의진이 병실 문을 열었다.
“보호자분? 아이한테…….”
“영감! 어휴 괜찮아요?”
당연히 입원한 아이가 잘못된 줄 알았던 의진의 눈앞에 괴로운 모습의 노인이 보였다.
“남편이 찹쌀떡을 먹다 목에 걸렸는지 갑자기 숨을 못 쉬고 있어요.”
“제가 좀 볼게요.”
노인 옆으로 다가간 의진은 대번에 떡이 문제라는 걸 파악했다.
‘기도가 막혔구나.’
생각보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떡은 목에 달라붙기 때문에 자칫하다가 기도가 막혀 숨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빨리 나와야 할 텐데.’
의진은 일으켜 세운 노인을 뒤에서 안았다. 그리고 한손으로 주먹을 쥐고 다른 한손은 그 위에 포개며 꽉 힘을 줬다.
이러면 횡경막(가슴과 배를 나누는 근육으로 이뤄진 막)에 강한 압력이 가해지고 이물질이 경구로 빠져나오게 된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하인리히 메뉴어버(Heimich maneuver, 큰 소아 및 성인의 기도이물 시 행해지는 응급처치)다. 의진은 노인의 복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후으으!”
“선생님 제대로 하시는 거 맞죠? 이 사람 숨이 이상해요.”
노부인은 남편을 걱정하며 물었지만 의진은 대답 대신 하던 행동에 집중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복부를 세차게 압박하던 찰나,
턱-
“무슨 일이예요?”
기도를 막고 있던 떡이 노인의 입에서 나와 때마침 콜을 받고 병실로 도착한 이찬희 정수리 위로 안착했다.
“후!”
그리고 곧이어 노인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우! 살았다.”
“영감 괜찮아요?”
“어머님 무슨 일이에요?”
편의점에 갔다 온 며느리는 모여 있는 의료진을 보며 깜짝 놀랐다.
“철우가 또 아프……아니구나.”
혹시나 잠든 아이가 또다시 아픈 건가 싶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말도 마라. 찹쌀떡 드시다가 목에 걸려서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 해 주셨어.”
“예? 세상에 아버님 괜찮으세요?”
“이제 괜찮다 애미야. 할멈 나 요단강 건널 뻔했어.”
“아주 그냥 건너지 그랬어요? 내가 당신 때문에 아주 속이 타요. 속이!”
놀란 노부인은 노인을 걱정하면서도 핀잔을 주었고 두 사람은 의진에게 연신 고마워했다.
“우리 영감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별말씀을요.”
“손주가 아파서 새벽에 병원을 온 건데 선생님 아니었으며 손주 깨어나는 것도 못 보고 죽을 뻔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어르신. 앞으로든 음식을 드실 때 천천히 꼭꼭 씹어 드세요. 그리고 특히 떡 종류는 목에 잘 달라붙을 수 있으니 특히 더 조심히 드셔야 해요.”
“이제 떡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요.”
“그 떡 이리 내요. 앞으로 식탐도 줄여요.”
“알았어. 죽다 살아나도 당신 잔소리는 여전하구먼.”
“시끄러워요!”
노부부의 귀여운 티격태격을 뒤로한 채 세 사람은 병실을 나왔다.
* * *
“보통 보호자는 입원실에서 음식 잘 안 먹는데 할아버지가 많이 배고프셨나 봐요.”
“원래 나이 들수록 허기를 빨리 느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연세 있으신 분이라 걱정했는데 떡이 빨리 나와서 다행이네요.”
“아까 보니까 하인리히 메뉴어버 잘하더라. 아주 그냥 교과서에 나온 자세 그 자체던데?”
“국경없는 의사회로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거짓말 아니라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했거든요.”
“하인리히 메뉴어버를?”
“네, 아프리카에도 떡 비슷한 음식이 있거든요. 그거 먹고 기도 막힌 환자들이 종종 왔었어요.”
“역시 경험만큼 좋은 공부는 없네.”
“선생님도 오늘 당직이시죠?”
“……!”
태경은 의진에 말에 당황한 듯 걸음을 멈췄다.
“뭐야 갑자기.”
“네? 뭐가요?”
“갑자기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뜬금없어서.”
“뭔가 호칭을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리고 원래 선생님 맞잖아요.”
“됐고, 둘이 있을 땐 그냥 하던 대로 선배라고 불러. 알았어?”
“넵. 선배님.”
“마지막 님도 빼고.”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
“혹시요. 혹시 말이에요.”
“뭐야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별건 아니고요. 선배 혹시 여ㅈ…….”
“하! 미치겠네.”
의진이 신중하게 말을 꺼내려던 순간 화장실을 갔던 이찬희가 돌아왔다.
“어머! 이 쌤 머리가 왜 그래?”
“그러게. 화장실 가서 머리 감고 온 거야?”
어찌된 영문인지 이찬희의 머리는 물에 빠진 빗자루 꼴이었다.
“그게 아니라 찹쌀떡이 제 머리에 떨어졌잖아요.”
“정말? 나 정신이 없어서 몰랐네. 근데 이 쌤 이거 아무래도 머리 좀 잘라야 할 거 같은데.”
“제 말이요. 껌 붙은 거처럼 안 떨어진다니까요. 파마하려고 일부러 기른 건데…….”
“그냥 깔끔하게 스포츠로 밀어.”
“자고로 패션의 완성은 머리빨인데 밀라니요. 선생님 여자 친구 없으시죠?”
“정 선생님!”
이찬희가 태경에게 던진 질문에 귀를 기울이던 그때 스테이션에서 있던 간호사들이 의진을 불렀다.
“쌤? 빨리 말해 주세요.”
“궁금해 죽는 줄 알았잖아요.”
“뭘요?”
“아까 하던 얘기 결말이요.”
“아아! 그거요. 아내가 응급실 나가자마자 남편이 멀쩡하게 일어나더니 ‘어후 저 미련 곰탱이 그렇게 티를 냈는데 그걸 모르냐. 지겹다. 지겨워.’라고 하는 거 있죠.”
“헐! 미친x이 일부러 그런 거네요.”
“또라이다. 바람난 것들 아주 그냥 고자로 만들어야 해.”
“바람은 뭐고 고자는 또 뭐야.”
“아니 선생님들 무슨 이야기들을 하신 거예요.”
“두 분도 궁금하세요?”
“솔직히 궁금한데요.”
“그럼 이 쌤 퇴근하면 알려 드릴게요.”
“에? 저는 왜요?”
“이 쌤은 곧 퇴근하고 우리는 당직해야 하니까. 약 올라서.”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저두 알려 주세요.”
“이 선생? 빨리 퇴근 안 하면 3개다.”
“수고하셨습니다. 전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3개라는 말이 숙제를 의미하는 걸 바로 인지한 이찬희는 칼같이 병동을 벗어났다.
* * *
“자! 과일 드세요.”
이제 막 설거지를 끝낸 남자가 손질한 과일을 들고 아내에게 향했다.
“우리 축복이 엄마랑 같이 과일 먹자.”
“오빠가 평일에 집에 있으니까 정말 좋다.”
“그렇게 좋아?”
“그럼 좋지. 근데 요즘 회사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저번에 직원들 월차 쓴다고 부장님이 눈치 줬다며.”
“나는 예외지.”
“왜?”
“우리 부서에서 당신 임신한 거 모르는 사람 없거든.”
“우리 축복이가 효녀다 그치?”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앉은 아내는 자신의 부른 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럼 효녀고 말구.”
“맞아 효녀야. 다 포기했는데 10년 만에 이렇게 찾아와 주고…….”
“에이. 선이야 또 왜 그래.”
“오빠 나는 있잖아……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까 알겠더라고. 내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내 목숨보다 귀하고 소중한데……흐.”
아내의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오빠랑 내 부모님들은 우리를 그 어린 나이에 고아원에 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우리 엄마 아빠 안 미웠거든. 근데 내가 엄마가 되니까 너무 미워. 흑!”
아내는 보육원에서 자란 남편과 자신의 지난날이 떠올라 울컥했다.
“선이야 울지 마. 응? 우리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했잖아. 자꾸 울면 축복이가 걱정하잖아.”
“알았어. 그만 울게. 축복아 엄마가 미안.”
“엄마 울지 마세요. 아빠가 걱정하잖아요.”
남편은 아내를 웃기기 위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그게. 뭐야! 크크. 하여간 우리 오빠 몸치인 거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 방금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는데.”
“하나도 안 웃었거든요.”
“그러세요? 축복아 엄마가 거짓말 하네. 그럼 확인을 해 봐야겠네.”
“뭐래. 됐어. 저리……아!”
남편과 귀엽게 장난을 치던 아내는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아랫배 아파?”
“아니야.”
“아까 괜찮다고 하더니 아침부터 계속 아팠던 거야?”
남편은 아내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아냐. 쉬면 괜찮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주고자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했다.
얼마 후 아이 소식이 있었지만 유산하고 말았다.
그렇게 10년 동안 자연유산과 계류유산을 6번 겪은 아내는 지쳤고 두 사람은 아이를 포기했다.
그런데 포기를 하고 살고 있던 와중에 기적적으로 축복이가 찾아온 것이다.
“당신 또 아픈데 참고 있는 거지? 병원 가자.”
“그 정도 아니라니까.”
문제는 10년 만에 생진 아이다 보니 아내가 아이에게 해가 될 만한 건 티끌만큼도 용납하지 않았다.
24주가 되는 동안 그 어떤 약도 입에 대지 않았다. 입덧이 심해 목이 헐 당시에도 의사가 처방한 입덧 약조차 먹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걱정이었다.
“선이야? 너 진짜 참는 거 아니지?”
“그럼. 어제 먹은 치킨이 좀 얹힌 거 같아.”
“소화제 좀 줄까?”
“약 먹을 정도 아니야.”
“정말이지?”
“아프면 아프다고 할게. 오빠 나 졸리다. 좀 잘게.”
“그럴래? 한 숨 푹 자. 이따 저녁에 떡볶이 해 줄게.”
“기대할게.”
평소와 같은 태연한 아내의 표정에 남편은 단순한 체기라고 생각했다.
3시간 뒤-
“크! 너무 맵지도 않고 딱이다. 역시 요리는 백종원 아저씨지.”
아내가 먹고 싶다던 떡볶이를 만든 남편은 뿌듯한 표정으로 침실로 향했다.
“여보? 일어났어?”
“…….”
옆으로 누워 뒤척거리던 아내는 남편의 부름에도 대답이 없었다.
“내가 떡볶이 끝내주게 만들…….”
침대에 누운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의 낯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으!”
“선이야?”
아내가 아랫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이야 왜 그래?”
“오빠 나 배가…… 배가 너무 아파. 우리 축복이 잘못된 거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