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2화 (32/472)

32화. 개복이요!?

“수술 말고 항생제로 치료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항생제요?”

“네, 제가 인터넷을 보니까 항생제를 쓰면서 지켜볼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순간 태경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올 뻔했다.

‘하여간 인터넷이 문제야.’

그놈의 인터넷 때문에 지금처럼 환자와의 대화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원하는 답을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써 놓은 것들 중에서 믿어 버리는 것 같다.

환자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러한 글들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

물론 지금 산모는 임신한 상태로 수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환자분 그 내용은 사실과 다른 편이에요.”

“그렇지만 분명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써 놓은 글을 봤어요.”

“충수염에 항생제를 쓰면서 조금 미룰 수는 있으나 그것도 특정 상황에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미룬 거지 수술은 언젠가 해야 해요.”

“그러면 태아에게……아니 우리 축복이에게 문제는 없나요?”

태경은 심적으로 힘든 산모에게 태아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하기로 했다.

“가장 걱정되시는 것이 지금 태아 문제일 텐에요.”

“맞아요. 저는 우리 축복이가…….”

“여보, 우리 일단 의사 선생님 말씀부터 들어 보자. 응?”

옆에 있는 남편이 아내를 토닥이며 안정시켰다.

“선생님 말씀해 주세요.”

“우선 수술 자체에 대해서 설명 드릴게요. 현재 뱃속에 태아로 인해서 산모님의 맹장이 위로 밀려 있어요. 그에 따라 지금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작은 크기로 개복해서…….”

“개, 개복이요!?”

태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모의 눈이 휘둥그레져 되물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태경과 의진이 움찔할 정도였다.

“산모분 아마 많이 놀라셨을 텐데요. 개복을 하는 이유가…….”

“안 돼요. 흐흑! 우리 축복이 흑…… 개복하면 아이 유산될 수 있다고 인터넷에서 봤어요.”

“여보 자꾸 울면 당신 힘들잖아.”

“흐흑! 몰라. 개복하면 안 돼. 우리 축복이 위험하면 나는…… 나 수술 안 할래.”

수많은 환자들을 대해 왔지만 외과 특성상 산모를 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나 산모는 아이를 위해서는 상당히 민감해지는 시기라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저 마음이 오죽할까.’

더군다나 저 산모는 반복된 계류유산 끝에 10년 만에 가진 아이니 그 마음은 더 절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산모의 상태로 이 상황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이가 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드리는 거예요.”

“흐흑! 싫어요. 수술하다 우리 축복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안 돼요. 못 해요. 흐윽!”

“산모분 자꾸 우시면 힘 빠져요.”

산모가 더 통곡하듯 울기 시작하자 의진이 달랬다.

“실례지만 잠시 밖으로 나가실까요?”

“네, 선생님.”

그사이 태경이 남편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안녕하십니까?”

출근한 이찬희가 접수처에 있는 직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 쌤 오늘 기분 좋은가 봐요.”

“요 며칠 잠을 좀 설쳤는데 어제 간만에 꿀잠 잤거든요.”

“하긴. 저도 잠 잘 자면 그날 기분 좋더라고요.”

“ER에 환자 많이 없던데 별다른 이벤트 없었죠?”

“조금 전까지 큰 이벤트는 없었는데 좀 전에 생겼어요.”

“그래요? 심각한 환자라도 들어왔어요?”

“OP(수술) 환자 들어왔어요.”

“OP요?”

OP란 말에 이찬희가 목청을 높이며 되물었다.

“네. 어펜디사이티스(Appendicitis, 충수염) 환자인데 임산부예요.”

“압빼에 임산부 환자면 동의 받기 쉽지 않겠네요.”

“안 그래도 좀 아까 김 선생님이 정 쌤 진료실로 수술 설명하러 가셨는데 환자분 계속 울고 큰소리도 한 번 났어요.”

“임산부니까 마음이 심란하시겠죠. 복강경으로 하신대죠?”

“아뇨. 개복으로 하신대요.”

“개복으로요? 주수가 어떻게 되는데요?”

“24주요.”

“아…… 그러면 태아도 크기 때문에 복강경은 어렵겠네요.”

“이 쌤 잠 못 잤어? 표정이 안 좋네.”

응급실에서 나온 임정숙 간호사가 이찬희에게 물었다.

“아니에요. 수 쌤. 이 쌤 오늘 잠 잘 잤대요.”

“근데 표정이 심각한데?”

“방금 제가 임산부 OP 얘기 했거든요. 그래서 걱정하시는 거 같아요.”

“그런 거야?”

임정숙 간호사와 동료는 이찬희의 수술실 공포증을 염려했다.

“예? 아, 아닙니다.”

“안 그래도 임산부라서 수술 중에 신경 쓸 것도 많을 거고. 환자분이 10년 만에 임신이라서 흔한 입덧약도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정말요? 아, 역시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들은 강하고 위대한 거 같아요.”

“거기에 기저질환 약도 멀리하고 오롯이 아기만 생각했대.”

“이 쌤? 어시 괜찮겠어요?”

“최 쌤이 들어가면 어때요? 오늘부터 병원 나오시잖아요.”

“그래 맞다. 최 선생님이 있었지.”

두 사람은 대화를 하는 동안 이찬희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 * *

“남편분 많이 놀라셨죠?”

“아닙니다. 저도 제약회사에 다녀서 업무상 의사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제약회사 직원이세요?”

“네, 그중 선생님처럼 배려하시면서 말하는 분은 상당히 드문 편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제약회사 직원이라니. 이 얼마나 기막힌 타이밍인가.

‘하! 다행이다.’

아무래도 제약회사 직원이라면 일반 사람보다는 의학적인 지식이 있기에 대화가 좀 수월해진다.

생각지도 않은 호의에 감사한 태경은 이 틈에 빨리 동의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산모분은 이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전신 마취 후 개복을 할 겁니다. 유산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 확률은 얼마나 되나요?”

“확률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내 논문에 의하면 1%도 안 됩니다.”

“그런가요? 그건 참 다행이네요.”

“하지만 제 경험상 이런 확률적 수치는 사실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보호자들에게 말씀드리는 부작용들의 확률과 상관없이 발생된 당사자에게는 100%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그러네요.”

“더군다나 환자분은 천식이 있기 때문에 전신 마취와 관련된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는 편입니다. 그 부작용의 결과가 한 생명, 더군다나 수태된 태아일 경우에는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결코 안심을 시켜 드릴 수가 없습니다.”

무거운 대화에 남편은 잠시 말문을 닫았다. 아내와 달리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의 표정도 짐짓 심각해진다.

당연한 반응이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아이일 텐데 보호자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반드시 솔직하게 알려 줘야 한다.

의사로서 전달할 수 있는 내용만 말하는 게 아닌 반드시 전달해야만 하는 내용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 편하게 해 드리고 싶지만 의료인으로서 거짓 안심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말씀 잘 알았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침묵하던 보호자가 입을 열었다.

“실은 여기 오기 전 아내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이 소개해 준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거기 선생님도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밝혔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을 왔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임신 후 몇 번 응급실을 왔었다.

그때마다 의료진에 대한 인상이 좋아 우리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근데 그 의사는 지금 선생님처럼 솔직하게 말해 주지 않았고 하품하면서 가벼운 수술이니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익숙한 수술이겠지만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 겪는 일이기에 그런 태도가 친숙하기 힘듭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의사의 시니컬한 태도에 상처 받은 환자들이 꽤 있다.

그걸 알기 때문에 태경은 환자가 치료받은 동안에는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태경이 마지막 보드를 따고 다짐한 것이 실력에 취해 권위적인 의사가 되지 말자였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병마에 지친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의사의 그런 태도를 보고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았는데 선생님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제가 잘 달래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를 마친 남편이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기에 태경은 남편과 눈을 똑바로 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 * *

진료실 밖에서 태경이 남편을 설득하는 사이 안에서는 의진이 산모를 달래고 있었다.

“산모분 물 좀 드세요.”

의진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며 산모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흐윽! 감사합니다. 우리 축복이 잘 크고 있었는데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속상해요.”

“그럼요. 당연히 속상하죠.”

“의사 선생님들이 보기엔 유난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 뱃속에 아기가 저한테는 목숨보다 소중하거든요.”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산모를 위로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었다.

10달 동안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산모들의 마음이 어떤지 의진은 산부인과의로서 일하면서 수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산모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다.

“제가 홀몸이었다면 맹장 수술이 아니라 더한 수술도 아무렇지 않게 받았을 거예요. 근데 축복이가 있으니까…… 수술을 한다는 게 두렵고 무서워요.”

“그냥 수술을 하는 것도 두려운데 아이가 있으니까 더 그렇죠. 산모님 축복이 많이 사랑하시죠?”

“네, 선생님 제가 10년 동안 매일 간절하게 바라던 아이예요. 축복이는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부족한 아이에요.”

“그런데요, 아까 김태경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 주셨지만 수술을 안 하면 산모님도 축복이도 힘들어져요. 더 건강하게 축복이를 만나기 위해 수술하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건강하게요?”

“네. 산모분이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잖아요.”

점차 눈물을 그친 산모는 손을 꼭 잡고 말하는 의진에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 선생님. 절 수술하시는 선생님 잘하시나요?”

“네?”

“죄송해요. 그냥 불안해서요. 절 수술하시는 선생님이 어떤 의사인가 싶어서요.”

산모는 이미 한차례 먼저 방문했던 병원의 심드렁한 태도를 보인 의사에게 상처를 받았었다.

실례된 질문인 줄 알지만 자신과 아이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수술할 태경이 어떤 의사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같은 의사끼리 누가 이렇다 저렇다라는 말도 안 하지만 그보다 더 안 하는 소리가 누가 실력이 좋더라는 말이에요. 실력이 좋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가 환자 입장에서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 봐 전 함부로 그런 말을 권하지 않아요.”

“아, 네. 그렇겠네요.”

의진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던 산모에게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근데 이렇게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태경 선생님은 정말 환자를 생각하는 좋은 의사 선생님이세요.”

“환자를 생각하는 좋은 의사요?”

“네, 환자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진료하는 분이시기도 하고요.”

철컥-

“여보?”

태경과 대화를 끝낸 남편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아내를 잘 설득하기 위한 생각뿐이었다.

“있잖아. 내 말 잘 들어 봐. 당신 입장에서 수술이 걱정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리 수술…….”

“할게.”

“어!?”

“나 수술할게.”

“정말이야?”

“응. 우리 축복이를 위해서 수술할 거야.”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말을 생각했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결심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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