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유, 유테루스를요?
“안녕하십니까?”
투박한 워커에 태극기를 붙인 배낭과 숏컷 머리를 한 최모나가 접수처에 있는 직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최 선생님.”
“고향은 잘 다녀왔어요?”
임정숙 간호사가 밝은 얼굴로 안부를 물었지만, 최모나는 늘 그렇듯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예, 잘 다녀왔습니다.”
“할아버님 다리는 괜찮으시고요?”
“계단에서 넘어지셨는데 뼈는 부러지지 않고 깁스하셨습니다.”
“연세도 있으신데 다행이네요.”
“예, 그건 맞습니다.”
최모나는 할아버지의 일로 휴가를 얻어 고향에 다녀온 길이었다.
“최 쌤도 단톡 봤죠? 새로 오신 선생님 때문에 병원 환자가 많이 늘었어요.”
“봤습니다.”
“더 이상 재정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대신 다른 걱정이 생긴 거 아닙니까?”
“다른 걱정이요?”
“환자가 늘어난 만큼 업무량이 늘어나겠구나 하는 걱정 말입니다.”
“아! 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참, 최 쌤 OP 들어갈 수도 있어요.”
“예, 그럼 다들 수고하십쇼.”
의국으로 향하는 최모나를 보며 조용히 지켜보던 신입 간호사가 물었다.
“근데요 최모나 선생님이요. 제가 저번에도 느꼈는데 말투가 좀 독특하지 않아요?”
“그게 최 쌤 집안이 군인 집안이라 그래.”
“군인이요?”
“응. 할아버지랑 아버지 오빠까지 전부 직업군인이셔.”
“우와.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사용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입에 붙었대.”
“어쩐지 안 그래도 다나까만 사용해서 군인 말투 같았거든요.”
최모나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군대 말투를 사용했다.
병원 직원들은 처음 최모나의 말투를 어색해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았다.
“근데 이찬희 선생님한테는 그래도 편하게 말하시던데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두 분이 동갑이라서 이 쌤이 말 좀 편하게 하라고 몇 달을 괴롭혔거든.”
“전 최 선생님 볼 때마다 죄송한데 꼭 로봇 같아요. 환자 볼 때도 그렇고 표정 변화가 별로 없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안 그래도 회식 때 이 쌤이 로봇하고 일하냐고 뭐라고 했더니 학창시절 내내 별명이 최로봇이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데 나 그때 진짜 웃겼잖아.”
“자! 자! 여기서 더하면 투머치야. 그만하고 다들 업무 준비하자고.”
임정숙 간호사가 길어진 대화를 끊고 업무 준비를 시켰다.
* * *
“최모나 쌤 하이.”
“어.”
“고향 잘 다녀왔고?”
“잘 다녀왔다.”
“김태경 선생님 뵀어?”
“아직. 옷 갈아입고 인사드려야지.”
“내가 김 선생님에 대해 좀 알려 줄까? 그간 얼마나 스펙터클한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아니. 별로 안 궁금한데.”
“근데 최 선생은 김 선생님 어떤 분인지 하나도 안 궁금한가 봐.”
태경이 부임 후 그를 궁금해하던 다른 직원들과 달리 최모나는 관심이 없었다.
“꼭 궁금해해야 해?”
“그래도 앞으로 함께 일할 직장 동료고 우리 상관인데 궁금한 게 당연한 거 아냐?”
“딱히. 내가 크게 영향 받을 사람도 아니고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잖아.”
“친구야.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어? 주변에 관심도 좀 주고 그래.”
“인생은 원래 독고다이야.”
“차가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겠다.”
“의학적으로 정확히 어디를 찌르는지에 따라 피가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 거지.”
“됐다. 됐어. 이런 최모나가 한 때 소아외과를 전공하려 했다는 게 미스터리다.”
“그런가? 그게 왜?”
“너 아이들 사랑해?”
“아니.”
“거봐. 애들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소아외과 안 된 거야.”
“그럴 수도. 그러는 이 선생은 환자를 볼 때마다 사랑으로 진료하나 봐?”
“그거 당연한 거 아냐? 제네바 선서 기억 안 나?”
“안 나. 입씨름 계속할 거면 이따 하자. 나 OP 준비해야 돼.”
“어! OP? 혹시 임산부 압빼 말하는 거야?”
철컥-
최모나가 답을 하려는 찰나 태경이 의국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김태경 선생님. 최모나라고 합니다.”
태경을 본 최모나는 군기 든 군인처럼 인사를 건넸다.
“그래, 반가워요. 인사는 나중에 더 하고. 지금 임산부 충수염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순간 말끝을 흐린 태경이 이찬희와 최모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임산부 충수염 수술 들어간 적 있나?”
“인턴 때 한 번 들어갔습니다.”
“이 선생은?”
“인턴 때 한 번 전공의 때 한 번 들어갔습니다.”
“이 선생이 들어와 어시 서.”
“네! 제가요? 최 선생이 아니라요?”
당연히 최모나가 수술실로 들어갈 거라 생각한 이찬희가 놀라 되물었다.
“왜? 싫어? 싫으면 최 선생이…….”
“아니요.”
“객기로 들어올 생각 말고 자신 없으면 말해. 나도 억지로 시킬 생각 없어.”
“아닙니다. 제가 어시 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럼 이 선생은 수술 준비하고 가고 최 선생은 진료 봐.”
“알겠습니다.”
“네, 선생님.”
* * *
이찬희는 솔로 손톱 밑과 손가락 사이를 박박 문지르며 조금 전 의국실에서 일을 떠올렸다.
‘객기로 들어올 생각 말고 자신 없으면 말해.’
매섭게 말하는 태경의 눈빛 때문도 객기 때문도 아니었다. 출근 후 임산부 충수염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제도 그렇고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충수염을 반복적으로 다뤘기에 실전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 나 뭐하는 거냐.”
이찬희는 순간 다 씻은 손에 또다시 소독액을 묻히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직 수술에 대한 생각만 하느라 수술실 공포증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수술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니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한 것이다.
“의식하지 말자 의식하지 말자.”
“소독약으로 도배할 거야?”
스크럽(scrub, 수술 전 손 씻기)을 위해 옆자리에 선 태경이 말했다.
“무슨 손을 그렇게 오래 씻어. 하루 종일 손만 씻고 있을래?”
“아닙니다.”
“왜 긴장돼?”
“조금 긴장되네요.”
“솔직한 건 좋은데. 아직 늦지 않았다.”
“네?”
“이번에도 수술하다 도망가거나 실신하면 곤란해. 충분히 준비된 다음에 들어와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란 소리야.”
“아니요. 선생님. 긴장한 건 사실이지만 저 그러지 않을 겁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지금은 수술실에 대한 두려움보다 환자와 수술에 대한 생각이 더 크니까요.”
“좋은 자세네. 그럼 숙제 하나 내줄 테니까 잘 들어.”
“지금 숙제를요?”
수술을 코앞에 둔 상황에 느닷없이 숙제라니. 이찬희는 태경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술실 들어가는 순간부터 오직 환자랑 내 손만 쳐다봐. 다른 건 쳐다보지도 생각하지도 마. 알겠어?”
“예.”
태경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환자에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정직해. 자신이 집중하는 것에 뇌가 따라간다는 소리야. 수술실에 들어가는 걸 겁내지 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찬희는 태경과 함께 수술실로 향했다.
* * *
수술실로 들어선 태경이 건네받은 수건으로 자연스럽게 물기를 닦아 낸다.
수술실 특유의 냄새를 느끼며 그의 시선이 산모를 향했다. 산모는 어찌나 울었던지 눈에 눈물 자국이 있는 채로 마취되어 있었다.
“환자 눈이 부었네요.”
“마취되는 순간까지 울었어요.”
“정 선생 G/A(전신마취) 잘 된 거지?”
“네. 기도 수축은 없었습니다. 혹시나 태아에게 영향이 있을까 봐 논문 찾아 최소량만 썼는데도 다행이에요.”
“그러게. 이제 큰 고비는 넘긴 샘이네. 수고했어. 끝까지 잘 부탁해.”
“그럼요. 걱정 마세요.”
사실 충수염 수술이야 수도 없이 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놀란 산모를 설득하여 수술실로 들어오는 게 더 힘든 관문이었다. 태경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다들 충수염이 익숙하겠지만, 여기 환자는 두려움을 안고 결심한 수술일 겁니다. 뱃속에 태아도 있고 지금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을 수술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수술에 집중해 주세요.”
“네, 선생님.”
“네.”
“시작합시다. 보비(bovie, 전기 소작기).”
보비를 건네받은 태경이 충수가 있을 것이라 예측된 오른쪽 배의 일부분을 절개했다.
그리고 절개를 하고서 깊게 손을 뻗어 장을 하나하나 빼 가면서 충수를 찾아간다.
태경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벌어진 틈으로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 왔다.
“유테루스(Uterus, 자궁) 크기 때문에 어펜딕스(appendix, 충수) 찾는 게 쉽지 않겠어요.”
“그러게요.”
의진과 임정숙 간호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찾아야죠.”
아이를 품고 있느라 커질 대로 커진 자궁으로 인해 좁아진 영역에서 길고 긴 소장 사이를 헤집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음파를 볼 때는 이 즈음인 것 같은데…….”
태경이 절개선으로 손을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소장의 일부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젖은 거즈 좀 여기 올려놔 주세요.”
“네, 선생님.”
소장을 꺼내면 증발이 잘 된다. 그것을 막아야 수분 손실이 적기에 젖은 거즈 위에 소장을 올려놓는다.
이후에도 태경은 5분 정도 소장을 뺐다 넣었다 반복했다.
‘분명히 이쯤에 나와야 하는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과 함께 태경의 눈에는 답답함이 차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장기들이 너무 밀려 있다.’
소장에서 대장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충수가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다.
“선생님?”
집중하는 태경을 향해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저, 절개선이 작은 것 같습니다. 좀 더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일부러 작게 넣으신 거야.”
“일부러요?”
“산모 때문에.”
“아, 그렇군요.”
의진의 말대로 태경은 일부러 절개선을 늘리지 않는 것이다. 산모를 위해 가능한 절개선을 작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충수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충수를 찾아 절제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비주세요.”
결국 태경은 절개선을 더 넣었다. 그리고 자궁을 밑에서부터 들어서 밖으로 꺼냈다.
“……!”
“어머나!”
그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볼 때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신비롭네요.”
“나도 애를 낳았지만 엄마란 존재는 위대한 것 같아요. 어머, 이 쌤 표정 봐.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라…… 새삼 어머니들이 대단하다 싶어서요.”
“감격은 나중에 하고. 이찬희 선생?”
“네, 선생님.”
“좀 더 가까이 와 봐.”
태경의 지시에 이찬희가 수술 베드에 몸을 더 밀착했다.
“손 내밀어. 두 손 다.”
“네.”
“내가 지금 뭐 시킬지 알겠어?”
“그게…….”
“내가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 수술에 집중하라고. 왜? 또 쓰러질 것 같아?”
“아닙니다. 선생님 손끝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 가장 시급한 게 뭐야?”
“충수를 찾기 위한 시야 확보입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좋아. 그럼 들어야겠지?”
“네?”
이찬희는 태경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내리며 반문했다.
“유, 유테루스(자궁)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