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정신 바짝 차리자
“유테루스(자궁) 조심스럽게 들고 서 있어. 그동안 수술하게.”
“네!”
이찬희는 갓 훈련소에 들어온 신병처럼 군기 바짝 든 모습으로 자궁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이 선생 목숨이다 생각하고 조심히 들어.”
“넵! 알겠습니다.”
전공의인 퍼스트 어시에게 자궁만 들고 있게 한 것이 미안했지만 수술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몸에 붙어 있는 소중한 자궁을 번쩍 드는 것이 아니다. 옆으로 살짝 들어 시야 확보를 위해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과거 몇 번의 임산부 수술에서 이렇게 충수가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까 태경이 당황한 이유기도 했다.
초음파를 미리 보았고 대략적인 위치도 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최후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유테루스를 들고 있다니…….’
정작 미안한 태경과는 달리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신 바짝 차리자.’
예전 임산부 수술을 참관한 적이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른 상황이었다.
이찬희는 지금 수술에 집중할 수도 태경의 손끝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지금 머릿속 전두엽은 물론이요 두 손과 시선 그리고 모든 신경까지 오직 유테루스에 집중할 뿐이었다.
‘왜 심장까지 두근거리는데…….’
그 집중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 전까지 밀려오던 긴장감이 유테루스로 인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눈도 깜빡이지 말고 조심히 다루자.’
그도 그럴 것이 이찬희는 지금 단순히 장기를 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벅차고 경이롭지?’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가장 귀한 생명 그 자체를 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선생이 큰 역할을 해 주네요.”
그렇게 이찬희가 목숨보다 소중한 생명과 마주한 사이 수술은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쌤이 유테라스 들고 있는 덕분에 안이 잘 보이네요.”
“그러게요.”
태경은 이제 한결 넓어진 시야로 큼직하게 소장들을 밀고 충수를 찾기 시작했다.
‘충수야 어디 있니? 밀당 그만하자.’
그렇게 3분 정도 찾던 중 드디어 밀당의 주인공이 보였다.
“이놈…… 찾았다.”
“환자분이 산모라 그런가 오늘처럼 충수가 반갑긴 또 처음이네요.”
“저도 수 쌤이랑 같은 마음입니다.”
충수를 찾자 의진과 임정숙 간호사가 한층 밝은 말투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젖은 거즈 주세요.”
“네, 선생님.”
우선 젖은 거즈로 충수를 감싸 놓는다. 혹시나 안의 내용물이 터져 나와 다른 장기에 합병증을 야기할까 봐 해 놓는 것이다.
“이 선생? 유테루스 잘 들고 있지?”
“…….”
“이 선생? 이찬희!”
“아, 네. 문제없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충수를 찾은 다음엔 뭘 해야 할까?”
태경은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이찬희에게 물었다.
“충수에 혈액을 공급하는 아타리(artery, 동맥)를 찾으면 됩니다.”
“정답. 다시 유테루스에 집중해. 라이트 가까이 비춰 주세요.”
“네, 선생님.”
충수 찾기에 집중했던 태경이 이번엔 동맥 찾기에 나섰다.
이 동맥은 대장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맹장 주변의 지방막에 파묻혀 있다.
“타이(tie, 혈관 결찰을 위한 봉합실)할 것 주세요.”
불빛을 비춰 동맥의 주행 경로를 잘 확인한 태경이 지방막에 구멍을 내고 실로 묶는다.
이후 충수 주변의 지방을 조심스럽게 잘라 낸다.
“헤모락 주시고요.”
길고 가느다란 충수를 위로 잡아당기면서 대장이 시작되는 맹장과 충수 경계 부위를 헤모락(hemolock, 혈관을 잡은채로 유지되는 플라스틱 집게로 5mm를 주로 사용함)로 집는다.
“하나 더요.”
“네, 선생님.”
태경은 충수 끝을 두 집게로 연달아 잡은 뒤 실로 강하게 결찰했다. 충수를 절제하자 분뇨 냄새가 사라졌다.
‘휴! 속이 다 시원하네.’
태경은 냄새가 사라지는 순간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희열을 느낀다.
환자를 힘들게 했던 원인이 정확히 제거됐기 때문이다.
“소독할게요.”
충수를 절제한 이후 대장 쪽 면을 10% 포비돈으로 소독한다.
“이제 닫기만 하면 됩니다. 유테루스 다시 잘 집어넣자. 이 선생 유테루…….”
고개를 돌리던 태경은 놀란 표정과 함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머, 세상에! 이 선생?”
“이 선생님 괜찮아요?”
“이 선생 우는 거야?”
의진과 임정숙 간호사도 덩달아 놀랐다.
“우, 울긴요.”
우는 것까지 아니었지만 사실 동공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찬희는 손에 들고 있는 생명 때문에 감격해서 울컥했다는 말은 쪽팔려서 하지 못했다.
“힘들었나 보네.”
“아니에요. 전 괜찮습니다.”
내뱉은 말과 달리 이찬희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자궁을 받쳐 들고 있는 그의 양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던 것이다.
“유테루스가 꽤 무겁거든요.”
“하긴, 저 무게가 만만치 않지.”
생각해 보니 그럴 만했다. 소중한 자궁이지만 태반과 양수까지 하면 무게가 무거운 편이었다.
“아닙니다. 하나도 안 무겁습니다.”
게다가 배 위에서 불편한 자세로 허리는 구부정하고 손을 뻗은 채 지금까지 들고 있었으니 아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짠하기도 했다.
“이 선생이 아주 안전하게 잘 들고 있었네. 이제 넣을까?”
“네, 선생님. 조심히 잘 넣으셔야 합니다.”
이찬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까지 집중하며 유테루스를 넘겼다.
“이 선생이 이 산모분의 아이를 잘 지켰네.”
태경은 건네받은 유테루스를 들고서 원래 있던 그곳에 그대로 안착시켰다.
“임산부 수술할 때마다 느끼지만 유테루스는 참 소중하네요.”
임정숙 간호사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지만 자궁에 있는 태아는 언제 봐도 소중하다.
“정 선생, 아이 태명이 축복이라 했던가?”
“네. 10년 만에 축복같이 왔다고 축복이라 했어요.”
“24주가 되면 외부 소리도 반응할 만큼 태아의 청각이 발달됐다는데 맞지?”
“네, 맞아요. 이쯤 되면 외부 소리에 반응할 정도예요.”
“축복아, 수술 소리 때문에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야 한다.”
태아의 건강을 기원한 태경은 이찬희와 함께 배를 닫으며 수술을 마무리했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 * *
“아~ 타스 형 세상이 와 이래 뿌노.”
“오늘도 한 곡조 뽑으시네요?”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가 배식 카트 앞에 서 있는 오계순을 반갑게 맞았다.
“내 노래 없인 못 산데이. 우리 후나 씨는 어쩜 이리 노래를 잘하나 모르겠다.”
“맞아요. 저희 부모님도 얼마나 좋아하시나 몰라요.”
“원래 나이 들면 트로트 안에 위아더 월드다 안카나.”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참, 그 계훈 환자 쇠고기 곱게 갈아 죽으로 해 왔으니 오늘은 쪼메 더 먹으라고 해라.”
“죄송해요. 환자분이 소고기 죽이 꼭 먹고 싶다고 해서요.”
며칠째 소고기 죽만 찾는 중환자실 환자를 위해 오계순이 따로 특식을 만든 것이다.
“와, 고 간호사가 죄송하나. 괘안타.”
“그래도요.”
“됐다. 보호자가 재료도 사다 주고 우리 병원이 대학병원 맹키로 환자가 억수로 많은 것도 아니라 괘안타.”
“그건 그렇지만 번거로우시잖아요.”
“그라고 사람이 아프면 입맛부터 싹 사라지뿐데 먹고 싶은 거라도 잘 묵어야 빨리 낫지 않겠나.”
“하여간 오 여사님이 최고세요.”
“환자들 밥이나 드려라.”
중환자실을 지나 수술실 옆 보호자 대기실을 지나던 오계순이 다시 한번 걸음을 멈췄다.
“흐! 제발 우리 선이 수술 잘 끝나게 해 주세요.”
두 손을 모으고 흐느끼며 울고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아까도 울고 있더만 여적 울고 있네.”
“수술 끝나고 마취도 잘 깨어날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드립니다.”
“보호자가 그리 울면 기운 다 빠집니더. 자 퍼특 눈물 닦으이소.”
남자는 오계순이 자신의 손에 올린 손수건 때문에 고개를 들었다.
“병원 주방장입니더. 지나가다 너무 서글프게 울어가 우리 막내아들 생각나 들어 왔심더.”
“가,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가족 분이 수술 중인갑제. 혹시 아내가 수술 중인교?”
“그걸 어떻게…….”
“보통 젊은 양반이 심각하게 울면 대부분 아내가 수술 아니겠나. 내 이래봬도 병원 짬이 오래되다 보니 척 보면 대충은 안다.”
“듣고 보니 어르신 말씀이 맞네요.”
“보아하니 신혼인 거 같은데 아내가 많이 아픈가?”
“그게…….”
아내 이야기에 다시금 울컥해진 남자를 보며 오계순은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아내가 암인가? 젊은 사람이 딱해 어쩌나.’
“실은 와이프가 지금 임신 중입니다.”
“우야꼬. 임신 중에 수술하고 있는기가?”
“네, 그래서 걱정이 많습니다.”
“와 안 그렇겠나. 내 무신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술 잘될 끼다.”
“네, 저도 그렇게는 생각하는데 충수염 수술이 처음이라…….”
“방금 충수염 수술이라 했나?”
“네, 아내가 지금 충수염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기 아빠 걱정 마라. 낸 하고 서글프게 울어가 혹시라도 암인가 시퍼 전전긍긍했데이.”
오계순은 갑자기 얼굴을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나도 우리 막내아들 가졌을 때 수술했거든.”
“아, 그러세요. 고생하셨네요.”
“내는 유방암이었다. 나는 오른쪽 유방을 제거해서 없다.”
오른쪽 가슴을 가볍게 두드린 오계순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지금 맹키로 의료가 발달이 안 돼서 의사들이 내 보고 얼른 수술하고 항암 하자 안 카드나. 근데 그라면 우리 아를 포기하란 소린데 그럴 수 있나. 내 죽어도 그리 몬 한다고 애 낳고 하겠다고 억시게 고집 부렸다.”
“어르신도 많이 힘 드셨겠어요.”
“아이다. 뱃속에 내 새끼만 생각하느라 힘든지도 몰랐다 아이가. 아마 지금 수술 받는 아내도 내랑 똑같은 맴일끼다.”
사람, 여자, 욕쟁이 할머니, 밥집 아줌마 등 수많은 이름표가 있었지만 오계순도 엄마였다.
‘엄마’라는 이름표가 주는 용기와 사랑은 우주를 초월할 만큼 위대하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맞아요. 저희 아내도 축복이 일이라면 본인은 안중에도 없어요.”
“거봐라 마 대한민국 엄마들이 이리 강하다. 그라고 우리나라 의사덜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데 충수염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 마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네요.”
“자! 이거 한 병 마셔.”
최 여사는 주머니에서 피로회복제 한 병을 건넸다.
“아닙니다. 어르신 괜찮습니다.”
“내 이거 아무나 주는 거 아니다. 보호자가 쌩쌩해야 환자도 잘 돌본데이.”
“감사합니다.”
“저기 집도 선상님 오시네. 표정을 보니께 수술이 잘됐나 보다. 축복이 아빠 힘내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최 여사는 때마침 들어오는 태경을 가리키며 대기실을 나갔다.
“걱정 많이 하셨죠?”
“아닙니다. 선생님 수술은…….”
“여기 보이시는 게 환자분 몸에 있던 문제의 충수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잘 제거됐고요. 수술 역시 잘됐습니다.”
“그래요? 우리 축복이도 괜찮은 거죠?”
“그럼요. 태아도 문제없습니다. 아무래도 환자분 기저질환 때문에 걱정이 더 되셨을 텐데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태경의 말을 들은 남편은 그제야 아내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 * *
“자분……환자분!?”
산모는 연신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환자분, 환자분 눈떠 보세요? 제 말 들리세요?”
“여기……어디에요?”
마취가 풀린 산모는 비몽사몽인 듯 보였다.
“수술 잘 끝나고요 지금 회복실이에요.”
“수술…….”
“어머, 환자분!?”
간호사는 산모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며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시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