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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35화 (35/472)

35화. 응급실 처음 오십니까?

“환자분!?”

간호사는 산모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며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시면 안 돼요.”

수술이란 말을 들은 산모는 상체를 일으키려는 듯 별안간 고개를 들려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수술 끝났는데 고개 드시고 그러면 안 돼요.”

“우리 아이는…….”

산모는 링거 바늘이 꽂힌 손을 천천히 들어 배를 만지며 아이에 대해 물었다.

“우리 축복이는? 축복이 잘 있죠?”

“그럼요. 수술 아주 잘 끝났어요.”

“하!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조금 이따 병실 올라가실 거예요. 혹시 춥진 않으세요?”

“괜찮아요.”

“불편한 점 있으면 손만 살짝 드세요.”

“감사해요.”

수술이란 큰 산을 넘은 산모는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 수술 전과 달리 표정이 편해졌다.

* * *

“고생했어.”

수술실에서 나온 태경은 이찬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오늘 힘들었지?”

“아니요. 힘들긴요. 제가 체력이 얼마나 좋은데요.”

“그래? 난 또 아까 이 선생 눈에 이슬이 맺히길래 힘들어서 우는 줄 알았지.”

“아! 그거는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튼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 게 뭔지 내가 맞춰 볼까?”

“네?”

“이 선생 아까 감격해서 운거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예전에 감격했으니까. 이게 뭔가 인턴 때 산부인과에서 아기 출산을 볼 때랑은 또 다른 감격이 밀려오거든.”

“그럼 선생님도 저처럼 감격해서 우셨다는…….”

“아니.”

같은 공감대를 형성한 이찬희와 달리 태경이 정색을 하며 답했다.

“난 안 울었는데. 그래도 명색이 써전이 수술실에서 울 수는 없지 않겠어?”

“아니, 선생님 너무하십니다. 그만 놀리세요.”

“그건 그렇고 오늘 이 선생 어시로 들어왔는데 유테루스만 들고 있어서 서운했지?”

“제가요? 전혀요. 오히려 그것 때문에 긴장감도 잊고 집중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마운데. 실은 오늘 이 선생 실신하면 어떡하나 했었는데 정말 잘해 줬어. 이렇게만 하자고 한 단계씩 디벨롭하는 거야.”

태경에게 이토록 따뜻한 칭찬을 처음 들은 이찬희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물론 더 발전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악착같이 한 훈련들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생각에 뿌듯함도 들었다.

“이제 가 봐.”

“네?”

“왜? 더 할 말 있어?”

“아니요. 없는데요.”

“그니까 감격 그만하고 가서 진료 보라고. 그리고 숙제 말인데.”

“알고 있습니다. 오늘 얍뻬 수술 복기하라는 말씀하시려던 참이죠?”

“오호. 제법이네.”

“제가 이제 선생님께서 척하면 착하고 바로 눈치채거든요.”

“근데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있다고요?”

“그래. 나머지 하나는 오늘 이 선생 관점으로 본 수술로 써와.”

“선생님 그건 좀 많은데요. 외람되지만 수술 복기 두 가지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모처럼 칭찬을 들은 이찬희는 용기가 샘솟았는지 강하게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손으로 직접 쓰느라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요.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하! 거참. 말 많네.”

“이건 압니다.”

“이찬희?”

태경은 계속 따라오면서 쫑알거리는 이찬희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정색했다.

“너 내가 정말 숙제를 줄여 줄 거라고 생각해?”

“안…… 되겠죠?”

“되겠냐?”

“그럴 리가요.”

“그러니까 그만 시끄럽게 하고 빨리 꺼져.”

“네, 정성스럽게 꺼지겠습니다.”

“참, 그리고 장기들 그릴 때 컬러풀하게 색깔도 좀 넣고 그래.”

태경의 으름장에 이찬희는 혼잣말로 속삭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색을 칠하라니. 독하다 독해.”

* * *

똑똑-

“네.”

“선배 저예요.”

“어, 정 선생 들어와.”

의진이 태경의 진료실을 찾았다.

“바쁘신 거 아니에요?”

“잠깐 괜찮아. 뭐 좀 마실래? 커피 줄까?”

“아니요. 카페인 과다 섭취해서 오늘은 좀 줄이려고요.”

“좋은 생각이야. 마침 맛있는 음료수가 있는데 그거 줄까?”

“맛있는 음료수가 따로 있어요?”

“그럼. 있지. 자! 받아.”

“하!”

의진은 태경이 꺼낸 작은 음료를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초코 퐁당 리얼 초코우유. 어때? 맛있어 보이지?”

“일전에 저 초코 알레르기 있다고 말씀 드렸……선배 지금 저 놀리시는 거예요?”

“오!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네.”

“재미있으세요?”

“정 선생 표정 보니까 재미가 없네. 미안.”

“말로만요?”

“알았어. 다음에 커피 한 잔 쏠게.”

“커피 말고 술 한잔 사 주세요.”

“술? 그래. 그럼. 나 안 그래도 정 선생 진료실에 가려고 했는데.”

“왜요?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뭐 좀 물어보려고. 정 선생은 왜 왔는데?”

“아, 이선이 환자 회복실에서 나왔다고 해서 병실 갔다 왔거든요.”

이선이 환자는 조금 전 충수염으로 수술한 임산부였다.

“쏘노(초음파, sonography) 보러 갔구나?”

“네. 갔더니 산모분이 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태아는 괜찮지?”

“그럼요. 아무 이상 없고 잘 있어요. 다른 게 아니라요. 선배 이따 병실 갈 거죠?”

“회진 때 가야지.”

“그럼 이따 꼭 파세타 먹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 좀 해 주세요.”

임산부 환자가 수술을 하고 난 뒤 다른 환자들이 사용하는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뱃속에 있는 태아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환자가 임산부인 경우 부작용이 적은 프로파세타몰(해열진통제, propacetamol)를 사용한다.

파세타라고 부르는 이 진통제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타이레x이다.

환자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해열진통제만으로 통증을 견디는 것이다.

“마취 다 풀리면 파세타를 투여해도 통증이 있을 텐데 환자가 거부해?”

“그런 건 아닌데. 워낙 아이를 위하는 환자다 보니까 선배가 한 번 더 짚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하긴, 이선이 환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알았어. 내가 잘 얘기할게.”

“선배 저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된 거야?”

“뭐가요?”

“OBGY(산부인과)말이야.”

태경은 마취과인 의진이 산부인과 담당이라는 사실이 꽤나 놀라웠다.

“사실은 OBGY 보드를 먼저 땄어요.”

“그럼 원래 목표였던 과가 OBGY였던 거야?”

“네,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때부터 쭉이요.”

“내가 기억하기론 정 선생 성적이 좋았던 걸로 아는데.”

“성적은 괜찮았죠.”

괜찮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의진은 3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난 사실 네가 Derma(피부과) PS(성형외과)갈 줄 알았어.”

“성적 때문에요?”

“그렇지.”

보통 인턴을 돌고 각 과를 정할 때 성적이 높은 사람들이 인기과인 Derma이나 PS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선배도 인기과는 다 피해 갔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좀 의외네. GS(일반외과)도 그렇지만 OBGY도 기피과잖아.”

“기피과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외과도 산부인과도 갈수록 지원자가 줄고 있다. 외과 같은 경우는 일은 곱절로 힘든 반면 그만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부인과는 체인식의 대형 병원 사이에서 로컬이 살아남기 힘들다. 예전만큼 출산률이 높지 않은 이유로 환자 수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수술의 위험도에 비해 보상이 안 된다는 것도 한몫한다.

“중학교 때 막내 이모가 첫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때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때 출산 장면을 직접 본 거야?”

“출산 장면은 못 봤지만 아이로 인한 막내 이모의 모습이 뭐랄까 신기했어요.”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의진의 막내 이모는 평소 터프하고 여장부 스타일이었다.

결혼 후 갑자기 생긴 첫 아이로 극심한 입덧과 임신 당뇨 등으로 고생을 한 것이다.

“분만실에서 이모부 머리카락 잡으면서 험한 말 쏟아 내면서 너무 아파서 애도 밉다는 거예요.”

“난 사실 산모들의 그런 말 이해 가. 오죽하면 기차가 배 위를 지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라고 표현했겠어.”

“맞아요. 결혼하라고 강요만 하지 사실은 중요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요.”

목숨을 걸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출산은 숭고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또한 산모가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도 상당하다.

“아무튼 사촌동생이 태어났는데 저는 어려서 그런지 아기가 이모한테 미움 받을 것 같아서 조마조마한 거예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당연하지. 엄마가 된 거잖아.”

“맞아요. 엄마가 된 이모는 달랐어요.”

죽을 것만 같은 통증을 이겨 내고 아이를 마주한 의진의 이모는 감격함에 몇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실제로 출산하는 산모들이 아이와 마주한 그 순간에 느껴지는 감격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저는 그때 이모 담당의가 했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뭐라고 했는데?”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마주할 때 우주를 품에 안은 것 같은 감동이 밀려온다.”

아이를 직접 받아 본 적은 없지만 옆에서 지켜봤던 태경은 그 말뜻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산모와 산과의사만이 느끼는 특별한 경험일 거라고 그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 담당 선생님이 멋지게 말씀하셨네.”

“맞아요. 그 당시 한참 감수성이 높았던 저는 뭔가 그 표현이 멋지면서 그 감동을 느껴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상과 현실은 같았어?”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을 하는데 저는 진짜 참 좋았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있고 힘든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의진은 OBGY를 선택한 걸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었다.

지금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받았던 아이들의 순간을 전부 다 기억할 정도였다.

“그 정도면 천직 아니야? 왜 Anesth(마취과)로 전향한 거야?”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뭐랄까 제 그릇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었니?”

“레이프 환자들을 본 일이 있었어요.”

“아…….”

레이프는 성폭행 피해 환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MSF(국경없는의사회) 때 일인데…….”

똑똑-

“선생님?”

의진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간호사가 환자의 방문을 알렸다.

“선생님? 환자분 오셨는데요?”

“그래요. 들어오시라고 해요.”

“그리고 의진 쌤 진료 받은 환자분이 처방약 때문에 전화 왔었어요.”

“알았어요. 저 가 볼게요. 다음에 얘기해요.”

“그래. 정 선생 수고해.”

“수고하세요.”

* * *

“엄마아?”

“응. 왜? 우리 솔이 코 아파?”

“아니이, 솔이 배고파.”

“솔아? 우리 조금만 이따가 집에 가서 먹자.”

“솔아 아빠 말 들었지? 의사 선생님이 솔이 코 한 번만 보고 집에 가서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줄게.”

“돈까쭈 해 줘.”

“알았어. 엄마가 이따 돈가스 해 줄게.”

38개월 된 아이는 엄마가 틀어 준 뽀로롱 영상에 다시 시선을 빼앗겼다.

아이의 엄마는 응급실 방문이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하게 아이의 긴장을 풀어 주고 있었다.

“아니, 근데 애 봐주는 사람은 애를 어떻게 봤길래 애가 코에 뭘 집어넣는 것도 모른 거야.”

“이모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사람 바꿔야 하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그만한 사람 찾기도 힘들어. 그리고 저번에 어머님 댁 갔을 때 의사 선생님 말씀 기억 안 나?”

“그 뭐냐 애들이 종종 그런다고?”

“그래, 솔이도 벌써 두 번째잖아.”

“먼저는 코 아니라 손에 가시 박힌 거잖아.”

“아니 응급실이 두 번째라고. 특히나 호기심이 많은 애들이 더 그래.”

“우리 솔이는 누구 닮아 호기심이 이렇게 많은 거야.”

“누구긴 누구야 당신이지.”

“아! 몰라. 난 내 새끼 머리카락 하나 다치는 것도 싫어.”

딸 바보를 넘어 아이의 일이라면 유난스럽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편이었다.

“근데 여기 의사들 괜찮나? 요즘은 병원도 잘 다녀야 돼.”

“예솔이 엄마가 그러는데 여기 선생님이 너튜브에도 나오고 상당한 실력파래. 김태 뭐라고 했는데.”

“하여간 당신 보면 은근히 순진하다니까. 그거 다 광고야.”

“아니야. 사고 현장 찍은 거라는데? 그리고 여기는 선생님들이랑 직원들까지 다 친절하대.”

“당연한 거 아냐. 환자로 먹고사는데 친절해야지.”

“무슨 소리야. 요즘 그런 데 흔치 않아.”

“그나저나 애가 아파서 저러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아내와 대화를 하던 남자는 기다림에 답답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오겠지.”

“아니, 그러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어떡해. 빨리 빼내야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좀 앉아요.”

“가만있어 봐. 저기요?”

남자는 환자를 진료하며 응급실을 지나다니는 최모나를 불러 세웠다.

“의사 선생님이시죠?”

“예, 맞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딸아이 진료 보러 왔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보호자분?”

지금 막 2도 화상 환자 치료를 끝낸 최모나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답했다.

“응급실 처음 오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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