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6화 (36/472)

36화. 당신 의사 맞아!?

“별일 없었지?”

임정숙 간호사가 모니터를 확인하며 응급실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네. 수술은 잘 끝났어요?”

“잘 끝났지. 베드가 아직 널널하네.”

“아직 퇴근 시간 전이잖아요.”

“그러네. 나 순간 시간을 잘못 본 거 있지?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긴장이 풀어졌나 봐.”

“수 쌤도 긴장이란 걸 하세요?”

후배 간호사 눈에 20년이 넘은 선배의 긴장이라는 말이 신기했다.

“그럼. 하지.”

“항상 보면 늘 여유로우셔서 전 수 쌤은 안 하는 줄 알았어요.”

“산모 수술이 오랜만이라 더 긴장된 건 있지만, 나도 늘 긴장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긴장 안 하는 사람 없을 걸요?”

이찬희가 스테이션에 다가오며 덧붙였다.

“그건 이 쌤 말이 맞지.”

“특히 수술실은 100가지를 다 계산하고 들어가도 예상 못 한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 더 긴장되죠.”

“이야. 우리 이 쌤 아까 수술실에서도 한 건 하시더니 말씀도 멋지게 하시네.”

“훗! 제가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수 쌤, 이 쌤?”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 후배 간호사가 점점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불렀다.

“어떡하죠?”

“왜?”

“아무래도 별일이 생길 것 같은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

후배 간호사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 별안간 높아진 목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최모나와 환자 보호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제가 가 볼…….”

“아니요. 제가 갈게요. 이 쌤은 환자 보세요.”

* * *

지금 막 2도 화상환자 치료를 끝낸 최모나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답했다.

“응급실 처음 오십니까?”

“예? 아닌데요.”

“그럼, 조금 더 기다리십쇼.”

“뭐, 뭐라고요?”

최모나의 말을 들은 남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애가 아파서 왔다는데 더 기다리라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보호자분께서 조금 전에 많이 기다렸다고 하셨죠?”

“그래요.”

“실례지만 많이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뭐요?”

“보호자분이 응급실에 들어온 시간이 30분으로 정확히 15분을 기다리셨습니다. 15분은 오래 기다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무슨 의사가…….”

“응급실은 원래 기다림이 있는 곳입니다. 그럼.”

간결한 말과 함께 최모나가 다른 환자를 향해 걸어가자 남자의 미간이 급격히 찌그러졌다.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내가 그러니까 앉아 있으라고 했잖아. 그렇게 많이 기다리지도 않았어.”

“아니, 지가 의사면 다야? 저게 환자한테 할 태도야? 친절하면 죽는 병이라고 걸렸어?”

“여보, 됐어. 그만하고 얼른 와서 앉아.”

“하여간 의사놈들은 지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안다니까.”

남자는 아내의 만류에 분을 삭이며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우리병원 수간호예요.”

“저 의사 원래 저래요? 말하는 본새가 왜 저따위입니까?”

“여보, 그만해. 얼마 안 기다린 거 맞잖아.”

“그래도 그렇지. 당신도 봤잖아. 나한테 화내면서 말하는 거.”

“아고. 아니에요. 보호자님. 화내신 게 아니라 워낙 필요한 말만 하시는 분이라 살짝 오해가 있었나 봐요.”

“오해는 무슨 오해.”

“아이고. 예뻐라. 우리 공주님 이름이 뭐예요?”

임정숙 간호사는 일부러 아이의 이름을 물으며 대화 주제를 바꿨다.

“예소리.”

“예솔이야. 이름도 예쁘다. 어머님 아이 코에 이물질이 들어갔다고요?”

“네, 장간감 가지고 놀다가 그랬데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진료 봐 드릴게요.”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한 임정숙 간호사가 보호자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 * *

“오늘은 좀 어떠세요?”

진료를 마친 태경은 병동으로 올라가 회진을 돌고 있었다.

“속이 더부룩하지 않아요.”

며칠 전 콜레시스타이티스(cholecystitis, 담낭염)를 수술한 환자는 환한 얼굴로 태경을 반겼다.

처음 당남염을 수술했던 조말례 환자 가족이 너튜브에 댓글을 단 이후 담낭염 수술 환자들이 꾸준했다.

“그동안은 밥만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답답했는데 수술 이후로 그런 적이 없어요.”

“잘됐네요.”

“큰 병원 의사들이 자꾸 로봇 수술이라나 뭐라나 그런 것만 권해서 내가 버티고 안 했거든요.”

나이가 좀 있는 남자 환자는 혼자 살고 있어서인지 의료진만 보면 말이 끊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손이 더 잘하지 로봇이 잘하겠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너튜브에서 선생님 관련 영상을 보고 뭔가…….”

“저기 환자분 특별히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경험치 만렙이 임정숙 간호사가 적당히 환자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전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쉬시고 내일 퇴원 잘하세요.”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드르륵-

“선생님?”

문을 닫자마자 임정숙 간호사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태경을 불렀다.

“제가 회진할 때 환자들 말 적당히 들어 주라고 했죠?”

“저 때문에 또 회진 시간 길어 졌나요?”

“아마 다른 선생님보다 배는 걸리실 걸요.”

태경은 회진을 볼 때마다 환자들의 TMI까지 들어 주느라 늘 회진 시간이 길어졌다.

“사실 예전 근무지에서도 회진 좀 적당히 보라고 한 소리 듣기도 했거든요.”

권위적인 의사의 모습보다 환자와의 거리감을 줄이고 소통하는 태경에게는 쉽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겠어요. 선생님께서 그저 머릿속에도 환자 생각뿐인 천상 의사라 그런걸.”

“저랑 일하기 힘드시죠?”

“전혀요. 그 반대인데요.”

대수롭지 않은 임정숙 간호사의 반응에 태경은 살짝 의아했다.

신화대에서는 태경과 합을 맞춘 의료진들이 다들 뒤에서 볼멘소리를 하기 바빴다.

-김 선생님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에요?

-아니, 왜 저래? 의사가 권위적인 맛이 있어야지.

-환자 일에 너무 꼼꼼해서 같이 일하기 피곤해요.

-환자가 아니라 교수님들을 빨아야지. 그저 환자만 돌보니까 저 실력에 아직도 교수를 못 하고 있지.

“환자들이 선생님 볼 때 눈빛이 어떤지 아세요?”

잠시 예전 일을 생각하던 태경에게 임정숙 간호사가 물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무한신뢰요. 아, 내가 이 의사한테 오길 잘했구나. 하는 눈빛이요.”

“하하! 그럴 리가요.”

“웃지 마세요. 진짜예요. 선생님이 환자들에게 늘 진심으로 대하니까 옆에 있는 직원들도 열심히 하게 된다니까요.”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병원 분위기가 태경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김철기 원장이 왜 그렇게 기를 쓰며 데려오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정도의 실력을 갖고도 아직까지도 열정적으로 환자 일에 매달리는 의사는 많지 않다.

병원 생활 20년 차에 무료함이 들던 임정숙 간호사 역시 느낀 점이 많았다.

“그리고 환자들도 의료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니 덩달아 일에 능률도 오르고 이게 바로 순기능이죠.”

“이거 비행기 너무 태우시는데요.”

“아직 이륙도 안 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임산부가 있는 1인 병실로 향했다.

* * *

“상처에 약 바르고 붕대 감았으니까 내일까지 물 닿지 않게 주의하십쇼.”

“감사합니다. 저기 선생님?”

진료가 끝난 환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모나를 불렀다.

“예.”

“제가 응급실은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진료비는 얼마나 더 나올까요?”

“모릅니다. 전 환자를 보는 의사입니다. 그런 건 수납처 직원에게 물어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

환자는 예상 못 한 답변에 민망한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하! 의사면 다야?”

기분이 상한 환자는 최모나의 뒷모습을 보며 불만 섞인 혼잣말을 쏟아 냈다.

“아니, 의사여도 그렇지 사람 민망하게 뭐 저리 말을 하고 그래.”

최모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불만 소리에 아무렇지 않은 듯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38개월. 여아. 오른쪽 코에 이물질.

“이찬희 선생 어디 있습니까?”

EMR(전자차트)로 다음 환자를 체크하던 최모나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환자 보고 있습니까?”

“네, 이 선생님 지금 처치실에서 낙상 환자 수처(Suture, 봉합)하고 계세요.”

“낙상 환자 수처면 좀 걸리겠네.”

“선생님 다음 환자 바로 보실 거죠?”

“그래야죠.”

“저기 선생님 아까 그 보호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썩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다. 사실 최모나는 아이와 노인이 별로였다.

정확히는 아이와 노인이 환자로 온 경우가 별로였다. 그래서 이찬희와 체인지를 하려고 그의 행방을 물은 것이다.

‘아이면 꽤 오래 걸릴 텐데…….’

간호사가 걱정하는 조금 전 언성을 높였던 남자 보호자는 문제될 게 없었다. 진짜 문제는 환자가 아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인보다 아이들이 더 힘들다. 응급실에 오면 원만하게 진료를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보호자들까지 예민해져 진료가 더 힘들어진다.

“안녕하십니까? 진료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솔아,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선탱님.”

최모나에게 언성을 높이던 아빠는 보이지 않고 아이는 엄마와 둘이 있었다.

“아이 코에 이물질이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오른쪽 코에 들어갔어요. 아이가 놀다가…….”

“여보?”

설명을 이어 가던 아내는 다급하게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진료하는 거야?”

“응. 선생님 오셨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남편이 걸음을 재촉하며 아내와 아이 곁으로 다가왔다.

“어!”

가까이 다가온 남편은 진료 의사가 최모나인 것을 확인하자 표정이 굳었다.

“솔이가 놀다가 장난감을 집어넣었어요.”

“혹시 어떤 장난감인지 아십니까?”

“그게 알갱이 같이 작은 플라스틱이에요. 원래 팔찌였는데 끊어진 거 같아요.”

“잠깐만!”

아내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남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실례지만 다른 선생님에게 진료 받을 수 있을까요?”

“여보?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선생님한테 진료를 받고 싶은데요.”

“아니, 진짜 왜 그래. 죄송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만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시려면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니에요. 선생님께 진료 받을게요. 여보, 빨리 빼고 집에 가자.”

“알았어. 더 기다려야 한다니 별수 없지. 그냥 진료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분께서 아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잘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네, 그럴게요.”

“스페귤럼하고 포셋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간호사가 최모나에게 콧속을 살피기 위한 기구인 나살 스페귤럼(Nasal Speculum, 비경)과 포셋을 건넸다.

“으으응!”

최모나가 스페귤럼을 콧속에 천천히 집어넣자 역시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시러!”

* * *

“자! 그럼 축복이 어머님. 축복이를 위해서라도 진통제 꼬박꼬박 잘 드셔야 합니다.”

“흐흑!”

설명을 잘 듣던 산모는 태경의 말을 듣고 별안간 폭풍 눈물을 쏟았다.

“여보, 왜 또 울어? 아파?”

“그게 아니라 당신 빼놓고 다른 사람한테 축복이 엄마라는 말을 처음 들어서 너무……너무 기뻐서.”

태경도 임정숙 간호사도 산모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산모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왔다.

“정말 선생님께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산모의 남편은 회진을 마친 태경을 병실 밖까지 따라 나왔다.

“아닙니다. 산모님이 제일 고생하셨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복인데 우리 축복이가 복덩인가 보네요.”

“축복이가 효녀네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지만 환자분 꼭 진통제 잘 복용하도록 옆에서 신경 써 주세요.”

“선생님께서 아까 신신당부하셔서 잘 먹을 겁니다. 저도 잘 체크할게요.”

“그래요. 환자분 혼자 계실 텐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아,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도 감사합니다.”

남편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전하며 병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산모님이 진통제 잘 복용한다고 해서 다행이네요.”

“그러니까요. 회진 다 끝났죠?”

“네, 드디어 끝났습니다.”

“음료수 드실래요?”

“좋죠. 선생님이 쏘시는 거예요?”

“저 때문에 회진 오래 걸렸는데 제가 쏴야죠.”

두 사람은 자판기가 있는 병동 휴게실로 향했다.

“원하시는 걸로 고르세요.”

“어머, 정말요? 저 그러면 제일 비싼 거 고르는데.”

“상관없습니다. 마음껏 고르세……네.”

태경은 말을 하다 말고 급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응급실인데요. 회진 중이세요?

“회진 다 끝났어요. 응급 환자 왔나요?”

-아니, 그건 아닌데요. 여기 문제가 좀 생겼어요.

“문제라니?”

‘문제’라는 말에 음료수를 고르던 임정숙 간호사가 멈칫하며 태경에게 주시했다.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최모ㄴ…….

-이봐!!

설명을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간호사 목소리 뒤로 들려온 남자의 거친 음성이 상황을 짐작케 했다.

-당신 의사 맞아!?

그 소리를 듣자마자 태경은 휴게실을 뛰어나갔고 임정숙 간호사가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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