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7화 (37/472)

37화. 의사의 자질

“으아앙! 안 해!”

진료 시작부터 터진 아이의 울음은 15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으아, 으아앙!”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저기, 간호사 선생님?”

“네, 아직도 바늘 들어간 곳 아프세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이가 너무 서럽게 우는데 어디 크게 다쳤나 보죠?”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딱해라. 다 큰 어른인 나도 주삿바늘 무서워서 이러는데 얘는 얼마나 힘들까.”

“네, 환자분 불편한 거 있으시면 부르세요.”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응급실 내 다른 환자들은 아이가 크게 아픈 줄 알고 의료진에게 묻기도 했다.

“으아앙! 흑흑!”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대는 아이의 눈을 벌겋게 충혈되고 양쪽 코에서는 콧물이 주르륵 흐르고 입술에선 침이 흘러 나왔다.

“하……아, 안 해.”

“아이 잘 잡아 주십쇼. 움직이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솔아. 조금만 참아.”

응급실에 오는 수많은 환자 중에 의료진이 가장 애를 먹는 환자를 꼽으라면 그중에 하나는 단연 아이 환자다.

아이들은 겁이 많고 눈물도 많다. 게다가 진료를 거부하며 발버둥치는 아이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그러다 보니 콧속 이물질을 확인하려 하면 아이가 떼를 쓰고 움직이는 탓에 진료가 제자리걸음이었다.

“으아앙!”

“아이 머리가 움직입니다.”

“이봐요!!”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대는 탓에 아이도 보호자도 예민해져 가던 그때였다.

“이봐요!!”

아이 콧물에서 미량의 피가 나오자 결국 애 아빠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탁-

애 아빠가 아이 코에 있는 기구를 쳐 내자 최모나의 손에 들려 있던 스페귤럼이 바닥에 떨어졌다.

“당신 의사 맞아!!”

“예, 의사 맞습니다.”

“애 코에서 피가 나오잖아.”

“실례지만 보호자분 그건 아이 콧속 점막이 헐어서 붙어 있던…….”

“아, 됐고. 의사라는 사람이 그거 하나 못 빼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듭니까?”

피가 난 건 최모나의 탓이 아니었지만 흥분한 애 아빠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보호자분 심정은 이해하지만 말씀이 조금 지나치십니다.”

“뭐!? 지나쳐? 내가 아까 그쪽한테 한 소리 했다고 진료 늦게 본 건 지나친 게 아닙니까?”

“자꾸 오해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응급실은 사전 접수 때 급한 순서를 매깁니다. 가장 위급한 환자를 먼저 보고 그 다음은 기본적으로 온 순서입니다.”

예민한 보호자와 달리 최모나는 그 어떤 표정 변화 없이 건조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어 나갔다.

“아이 콧속 이물질이 보호자분들에게는 큰일이지만 현재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의료진 입장에서는 위급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서 순서대로 진료를 본 것뿐입니다.”

“말을 그렇게밖에 못 합니까?”

애 아빠는 최모나가 무슨 말을 하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보, 당신도 그만해.”

우는 아이를 달래며 보다 못한 아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선생님 애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혹시 수면 마취 같은 거 하고 빼내면 안 될까요?”

“수면 마취를 할 정도는 아닙니다. 보호자 두 분이 더 잘 잡으셔야 합니다.”

“뭐요!? 당신 필요 없으니까 여기 다른 선생님 불러 줘요. 난 당신 같은 의사한테 내 딸 진료 못 보겠어.”

“저기, 보호자분 조금만 진정하세요.”

“옆에서 이 선생님의 퉁명한 태도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함께 있던 간호사가 애 아빠를 말려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시종일관 무표정에 말투는 딱딱하고 그냥 여기 대표 의사 불러 달라고요.”

“그럼 기다리셔야 하는데…….”

난감한 주변인들과 달리 최모나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던 순간,

촤르륵-

“최 선생, 여긴 내가 볼 테니까 다른 환자 봐요.”

병동에서 급히 내려온 태경이 커튼을 열며 말했다.

“수고했어.”

“알겠습니다.”

최모나는 별다른 말없이 인사를 하며 베드를 벗어났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여기 대표세요?”

“네, 맞습니다.”

태경은 아이에게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은 걸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원장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김태경이라면 그 너튜브 사고 영상에 나온 선생님 맞으시죠?”

“대표가 젊네…….”

아이를 보고 있던 엄마는 태경의 이름을 듣자 얼굴을 들며 물었고, 아빠는 생각보다 젊은 대표에 살짝 의아했다.

“아, 예. 맞습니다. 솔아 안녕.”

“흐으 흐으!”

울음은 약간 잦아는 아이는 숨을 헐떡이며 인사하는 태경을 쳐다봤다.

“우리 솔이 힘들었구나. 여기 거즈 좀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은 거즈로 아이의 손에 흥건하게 고인 침을 닦아 주며 계속 말을 붙였다.

“솔이 몇 살이야?”

“흐으……네짤.”

“우와. 솔이 네 살이구나. 솔아 선생님이 신기한 거 보여 줄까?”

“흐으!”

가운에서 휴대폰을 꺼낸 태경은 너트뷰에서 짧은 영상을 하나 클릭했다.

“어! 뽀로롱이랑 크룡이다.”

119 구급대원들도 가끔 이용한다는 뽀로롱은 그 명성대로 우는 아이의 눈물도 그칠 정도였다.

“솔이 뽀로롱 아는구나?”

“알아. 뽀롱이랑 크룡이 병원 갔어.”

“맞아. 우리 뽀로롱 친구가 아파서 솔이처럼 병원에 왔어요.”

“진짜네. 뽀롱이 병원 왔네.”

응급실이 떠나갈 듯 울던 아이는 휴대폰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아버님, 어머님?”

아이가 뽀로롱에 정신이 팔린 사이 태경이 보호자들에게 설명했다.

“두 분이 절 좀 도와주셔야 합니다. 먼저 아버님이 베드에 앉아서 솔이를 품에 완전히 안아 주세요.”

“이렇게요?”

능숙하게 아이를 다루는 솜씨에 아이 아빠는 얌전히 말을 따랐다.

“네, 좋아요. 그리고 어머님은 베드에 올라가서 아버님 뒤에서 솔이 머리를 잡을 준비를 하시고요.”

“어! 끝났어? 뽀롱이 뽀롱이.”

영상이 끝나자 아이는 아쉬운 듯 캐릭터 이름을 외쳤다.

“뽀롱이 보여 주떼요.”

“솔아 뽀롱이가 주사 맞는 거 잘 봤지?”

“네. 뽀롱이가 크룡 의사 선생님한테 주사 쿡 맞아떠요. 더 보고 싶어요.”

“근데 솔이 코에 장난감 들어간 거 빼면 엄마가 보여 주신대.”

“그럼. 엄마가 계속 보여 줄게.”

“봤지? 솔이 코에 있는 장난감이 잘못하면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거든. 그러면 진짜 안 좋아요. 큰 주사 맞아야 해.”

“으응. 시러. 솔이 주사 시러요.”

“그치? 그래서 선생님이 솔이 주사 맞지 않게 장난감 쏙 빼 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시른데…….”

“그럼 보기만 하는 건 괜찮아?”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아 이거 봐 봐. 이거 하나도 아픈 거 아니다.”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스페귤럼(Nasal Speculum, 비경)을 자신의 코 속에 넣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봐. 선생님도 하나도 안 울지?”

“네.”

“그럼 선생님이 이걸로 솔이 코 한 번만 볼게.”

“빨리 보고 빼 주떼요.”

“그래, 알았어. 어머님 머리 잡을 준비하시고 아버님도 잘 잡으세요.”

“네, 잘 잡을게요.”

“아이는 당연히 울 거예요. 최대한 안 움직이게 해서 빨리 빼는 게 좋습니다. 랜턴 비춰 주시고요.”

“네, 선생님.”

“스페귤럼 바꿔 주시고 머리 잘 잡으세요.”

태경이 신호를 보내자 임정숙 간호사가 랜턴을 비추고 보호자들도 아이를 잡았다.

“으앙!”

역시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태경은 아이 콧속에 집중했다.

“솔이 잘한다. 어! 찾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장난감 조각을 금세 찾았다. 코 안 살짝 위쪽에 분홍색 조각이 걸려 있는 게 육안으로 보인 것이다.

‘최 선생이 했구나.’

조금 전까지 아이와 고군분투하던 최모나가 장난감 조각을 움직인 덕분이었다.

“으아앙! 안 할래요.”

“다 했다.”

태경은 아이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재빨리 포셉으로 조각을 빼냈다.

“나왔다. 잘 참네. 이거 보이지?”

“세상에. 진짜 나왔네.”

“솔아 선생님이 솔이 코에서 장난감 빼 주셨어.”

“솔이 코 괜찮니? 아파?”

“아니요. 안 아파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대단한 선생님이시라고 하더니 진짜 쉽게 빼시네요. 감사합니다.”

불만 가득했던 아이 아빠는 태경을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고마워했다.

“아닙니다. 먼저 진료 보던 선생님이 밑에까지 다 빼 놓은 상태였어요.”

“아, 그래요.”

“아이가 코감기 걸렸었나요?”

“네, 맞아요. 요번에 코감기를 좀 오래 앓았어요.”

“보니까 콧속이 좀 헐었더라고요.”

“우리 솔이가 코감기만 걸리면 코가 잘 헐어요.”

“아까 피가 났던 건 기구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 피딱지가 벗겨지면서 나온 거예요.”

태경은 장난감 조각에 붙어 나온 피딱지를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당신은 왜 알지도 못하면서 아까 선생님한테 그랬어.”

“내가 일부러 그랬나. 나도 몰랐지.”

“코 헐은 곳에 연고 발랐습니다. 거의 다 아문 상태라 괜찮을 거예요.”

“진료 다 끝났고요, 보호자분 수납하시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솔아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선생님 안녕계세요.”

“그래, 솔이 아프지 말고. 잘 가.”

엄마 품에 안겨 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며 태경은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선생님 혹시 숨겨 둔 애라도 있으신 거 아니죠?”

능숙하게 아이를 다루는 태경에게 임정숙 간호사가 장난을 쳤다.

“무슨 그럼 말씀을. 저 엄연한 법적 총각입니다.”

“농담 한 번 해 봤어요. 뽀로롱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이게 다 경험에서 나온 짬이죠.”

병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 진료하다 조폭에게 맞은 적도 있던 태경에게 아이를 다루는 일은 쉬운 편이었다.

“근데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세요?”

“조금 전에 저쪽에 있었는데.”

“누구요?”

“최 선생이요.”

태경은 건너편 베드에서 환자를 보던 최모나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최 선생님이라면 조금 전에 화장실에 가셨습니다.”

마침 볼일이 있어 응급실을 방문한 총무부 최 팀장이 대신 답변했다.

“그리고 말씀하신 약품은 내일까지 온다고 연락 왔고요. 이거…….”

최 팀장은 엽서만한 종이 몇 장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 보고 드릴 건인데 진료실에 갖다 놓을까요?”

“아니요. 지금 주세요. 이게 뭔가요?”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고객 불만 카드?”

“혹시 최 쌤에 관한 내용인가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최 선생 내용이네요.”

불만 카드 전부가 최모나에 관한 내용이었다.

-응급실 이용한 환자입니다. 최모나라는 의사가 너무 불친절해요. 공짜 진료 받은 것도 아닌데 기분이 찝찝합니다.

-아니, 의사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이라고 아픈 환자한테 그렇게 무안하게 구나요?

특히 마지막 문구가 계속해서 태경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모난지 개모난지 그 사람 의사의 자질이 부족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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