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8화 (38/472)

38화. 병능제 최모나

“최 쌤 말이야.”

변기 물을 내리고 나가려던 최모나는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자 멈칫했다.

“출근하자마자 한 건 했다면서?”

“네. 아까 응급실에 서류 때문에 갔는데 보호자랑 실랑이가 좀 있더라고요.”

“직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일하면 안 되거든.”

“최 쌤이요?”

“응. 의사도 서비스직이잖아. 막말로 여기가 지 병원이면 몰라도 페이닥터가 월급 받으면서 저렇게 일하면 곤란하지.”

“하긴 최 쌤이 좀 사무적이긴 하죠.”

화장실 칸 안에 있던 최모나는 나가려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갈까? 아니다. 그냥 있자.’

직원들이 뒷말을 하든 말든 관심 밖이었다. 다만 여기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밖으로 나갔다만 더 피곤한 상황이 생길 게 뻔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최모나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무슨 소리야. 맨날 뚱한 표정에 말투는 또 얼마나 딱딱한지. 불만 사항도 제일 많이 접수되잖아.”

“저도 사실 말 걸기 어려웠어요.”

“월급 받아먹으면서 남의 병원 문 닫게 할 일 있어? 왜 저러나 몰라.”

한 번 시작된 뒷말은 쉽게 끝날 줄 몰랐다.

“맞다! 저번에 내 인사도 씹었어.”

“근데 최 쌤이 우리 병원 오기 전에 병원 자주 옮겼던 거 아세요?”

“그래? 어쩐지. 가만 우리 병원 온지 얼마나 됐지?”

“3개월 쯤 됐을 걸요.”

“이제 슬슬 건수 하나 잡히면 또 옮겨야겠네.”

“에이, 설마요?”

“모르는 소리.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 따위로 일하면 어디서도 환영 못 받아.”

철컥-

직원들이 화장실을 나가자 최모나가 밖으로 나와 손을 씻었다.

-우리병원 의사 최모나

거울 속 가운에 있는 병원 마크와 자신의 이름을 유심히 보던 최모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 잘리는 건가? 병원 미리 알아봐야 하나?”

* * *

수술실과 응급실. 진료실 병동을 돌던 태경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책상에 앉았다.

-2021년 x월 x일

-병동 쪽은 어제와 동일.

-냄새 변화 없음.

-헤모로이드, 2단계.

-압뻬, 임산부 3단계 냄새.

-염증 심해 냄새가 강했음.

-모든 병의 진행 속도에 따라 단계별로 냄새의 차등이 있음.

-같은 단계라 해도 냄새가 환자 가까이에서 나기도 하고 공기 중에 퍼져 거리가 떨어져도 나기도 함.

여전히 4단계인 포르말린보다 강한 냄새는 없었음.

“하긴 심정지도 4단계였네. 골든타임까지는 4단계라는 건데…….”

태경은 언제나 그렇듯 오늘 진료한 환자부터 응급실을 방문한 모든 환자의 다섯 번째 바이탈에 관한 기록을 자세히 파일로 남겼다.

“휴, 이제 끝났다.”

한참 동안 울리던 키보드 소리가 멈췄다. 마지막으로 김철기에게 병원 소식을 메일로 보낸 뒤 모니터를 향한 시선이 불만 카드로 옮겨졌다.

-환자는 의사 한 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최모나 선생님이란 분은 의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듯 보입니다.

환자가 쓴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하며 불만 카드에 이름 한 번 적힐 수 있다. 하지만 최모나는 한 번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꼭 한두 통은 최모나 선생님 의견이 있었어요. 이런 말 좀 그렇지만 불만 카드 단골이었죠.’

아까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불만 카드에 단골이 최모나라고 전했다.

태경은 현재 우리병원의 수장이다.

환자를 잘 케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병원 직원들을 잘 이끄는 것도 수장의 할 일이다.

더군다나 직접적으로 합을 맞춰야 하는 후배 일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했다.

“이찬희 녀석 기초공사 좀 해 놨더니만 이번에는 최모나가 말썽인가.”

오늘 하루 진료를 하는 동안 태경은 최모나를 꼼꼼히 살펴봤다.

“술기는 괜찮단 말이지.”

기술적인 거야 앞으로 배우고 경험하며 좋은 의사로 성장하겠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공감 제로. 소통 제로.”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환자가 느끼는 아픔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딱딱한 말투가 더 부각되고 환자나 보호자와 충돌이 잦은 것이다.

“맞다! 그게 있었지?”

곰곰이 생각하던 태경은 김철기가 남긴 직원들 정보가 생각나 외장 하드를 급히 꺼냈다.

-이찬희는 수복치. 최모나는 병능제.

“수복치는 이제 알겠는데 병능제가 뭔 소리야.”

똑똑-

“선생님? 여기 계세요?”

“네, 들어오세요.”

곰곰이 생각하던 사이 임정숙 간호사가 진료실을 찾았다.

“205호 이순학 환자요?”

“PCA(patient controlled analgesia, 정맥으로 미량의 진통제가 지속적으로 투입되며 통증시 버튼으로 추가용량이 투입되는 장치)찾죠?”

“네, 아까 수술 전에는 돈 나간다고 필요 없다고 하시더니 마취 풀리니까 힘드신가 봐요.”

“힘들죠. 헤모로이드(hemorrhoid, 치핵)를 10년 동안 참다 수술했는데 아플 거예요. 정 선생한테 콜 해 놓을게요.”

“선생님 안 피곤하세요?”

“예?”

보통 의료진들은 틈나는 대로 짬짬이 눈도 붙이고 요령껏 쉬기도 한다. 하지만 태경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게 지금까지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거의 병원 붙박이 수준이다.

“틈날 때 눈도 붙이고 하세요. 그러다 몸 상해요.”

마치 누나가 동생한테 하듯 임정숙 간호사가 걱정하며 말했다.

“저 건강합니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게 아니라 퀴즈 풀고 있었습니다.”

“퀴즈요?”

“병능제라고 김철기 원장님이 내신 퀴즈 풀이 중인데 감이 잘 안 잡히네요.”

“병능제? 그거 혹시 최 쌤 말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 별명 제가 지었으니까요.”

“선생님이요?”

“네. 최 쌤 진료하는 거 보고 김철기 원장님이 걱정이 많이 하셨거든요.”

임정숙 간호사는 김철기 원장이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최모나를 걱정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본인이 요즘은 그런 사람을 공능제(공감 능력 제로)라고 하는데) 우리는 병원이니 병능제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건데 그렇게 적어 놓으실 줄 몰랐네요.”

“병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병능제. 진짜 딱 맞는 별명이네요.”

“최 쌤 우리병원 오기 전에 여러 병원을 전전했어요.”

태경 역시 조금 전 인사기록을 봐서 알고 있었다. 최모나는 거의 3개월 단위로 병원을 이직했다.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사실 선생님 병원 오시기 직전에 최 쌤 내보내자는 말이 좀 있었어요.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안 그래도 저녁 먹으면서 팀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최 선생 계속 데려갈 거냐고요.”

현재 병원은 이제 막 환자가 늘어 가는 추세였다.

최 팀장은 이런 상황에서 계속 불만이 접수되는 직원을 데려가는 건 아니라고 전했다.

그 의견이 잘못된 건 아니다.

병원은 의사로 인해 이익을 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민되시죠?”

“상당히요.”

“사실 저는 원장님이 해 주실 것만 같아요.”

“뭘요?”

“이 쌤 때처럼 이번에도 뭔가 방법이 있으실 것만 같아서요.”

“글쎄요…….”

최모나의 경우는 이찬희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다.

그동안의 인사기록이나 계속되는 불만 접수 건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오늘 하루 최모나를 지켜본 결과 문제점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고를 하자니 마음이 영 내키지도 않았다.

그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병원 책임자인 태경은 생각이 많았다.

“근데 좀 전에 왜 갑자기 원장님이라고 하신 거예요?”

“선생님 부담스러우시라고요.”

“와, 순간 부담감이 팍 오네요.”

“어떻게 뭔가 좋은 방도가 떠오세요?”

“일단 좀 보려고요.”

“어떤 걸요.”

“바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요.”

“만약, 의지가 안 보이면요.”

“의사 자격이 없으니 내보내야죠.”

태경은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처음 보는 단호한 표정의 임정숙 간호사가 움찔했다.

“맞다. 팀장님한테 보안요원 모집 공고 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좋은 소식이긴 한데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우리병원은 야간 진료와 응급실 위주로 돌아간다.

이런 특성상 보안요원은 필수 인력이다. 하지만 아무리 채용 공고를 내도 월급을 타 간 사람은 없었다.

“주야가 바뀌고 다른 병원보다 힘들어서 다들 한 달도 안 돼서 도망가요.”

“일단 한 번 기다려 보죠.”

보안요원이 빨리 구해졌으면 했지만 지금 태경의 머릿속엔 병능제 생각뿐이었다.

* * *

철컥-

“콜라콜라. 크 시원하다.”

의국실에 들어온 이찬희는 최모나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냉장고에서 제로콜라를 꺼내 들이켰다.

“괜찮냐?”

“뭐가?”

“아까 응급실에서 큰 소리 나던데…….”

“어. 괜찮은데.”

시니컬하게 답한 최모나는 지렁이 젤리 먹는 데 집중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도 모르게 젤리를 먹는 습관이 있는 그녀의 최애 젤리는 지렁이였다.

“역시 강철 멘탈. 야, 최 쌤?”

“왜?”

“젤리랑 싸우냐? 무슨 젤리를 그렇게 전투적으로 먹어.”

최모나는 지렁이 젤리의 대가리를 앞니로 뚝 끊고 꼬리 부분부터 잘근잘근 씹어 대고 있었다.

“너 먹을 때 항상 전투적인 거 모르지?”

“모르는데.”

“군인 집안이라 그런가? 집에서 밥 먹을 때 막 식판에다 밥 먹고 그러는 건 아니지?”

“맞아. 우리 집 아직도 식판에 배식해.”

웃자고 던진 농담에 진지한 답변이 나오자 이찬희는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 그래? 그나저나 너 그거 그렇게 먹다가는 DM(당뇨, Diabetes mellitus) 온다. 단 것 좀 그만 먹어라.”

“단 거 먹으면 DM 온다니. 의사 맞아?”

“하나뿐인 친구가 조언해 줄 때 새겨들어라.”

“수술실 무서워하는 GS에게 듣기는 싫은데.”

“야, 이씨. 최모나 넌 말을 해도 꼭……아주 예뻐 죽겠어.”

팩트로 후려치는 최모나의 말에 이찬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 말이 틀려?”

“그래. 틀리다. 더 이상 예전에 찌질한 이찬희가 아니다 이 말씀이야.”

“찌질이라고 한 적 없는데?”

“내가 요즘 특훈을 하고 있다고.”

“특훈? 그게 뭔데?”

“비밀이다.”

똑똑-

“여기들 계셨네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임정숙 간호사가 의국실을 찾았다.

“환자 왔어요?”

“그게 아니라 별나라 깐따삐아에서 야식 시키려는데 드실래요?”

“오, 깐따삐아 맛집인데. 전 콜입니다.”

“최 쌤은요?”

“혹시 핫도그 시켜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되죠. 최 쌤은 핫도그 한 개.”

“한 개 말고 두 개 부탁드립니다.”

“알았어요. 두 개. 맞다! 김 선생님께서 찾으시던데…….”

“저요! 날 왜 찾으시지?”

태경이 찾는 다는 말에 이찬희는 남은 콜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니요. 이 쌤 말고 최 쌤이요.”

“저 말입니까?”

“네, 가 보세요.”

“알겠습니다.”

최모나를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의국실을 나갔다.

“김 선생님이 최 쌤 왜 찾으신데요?”

최모나가 나가자 이찬희가 궁금함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물었다.

“저야 모르죠.”

“에이, 우리병원에서 수 쌤이 모르는 일이 어디 있어요.”

“제가 김 선생님의 깊은 뜻까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별나라 깐따삐아에 전화하러 가 볼게요.”

* * *

갑작스러운 호출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 사실 최모나는 태경이 자신을 왜 부른지 알고 있었다.

“이번 달 아직 꽤 남았는데…… 다음 주, 아니 이번 주까지만 인가.”

해고 통지에 관한 내용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주의를 받을 것이다.

‘선생님. 외람되지만 원장님께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지 마시래요.’

‘저희 병원이랑 안 맞네요.’

‘진료를 그렇게밖에 못합니까?’

‘페이닥터가 월급 받으면서 그따위로 일하면 어디를 가든 욕먹어요.’

‘이봐요! 최모나 선생, 내 병원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한 걸음씩 뗄 때마다 그동안 일했던 병원에서 들은 말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그래도 여긴 월급이 알찬데……. 구직 사이트 또 들어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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