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0화 (40/472)

40화. 쇠꼬챙이

“꽃분 씨!”

김꽃분은 아들이 도착했단 소식에 일부러 세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꽃분 씨 나 오랜만에 봤는데 왜 대답을 안 해.”

“…….”

“몸도 안 좋은데 왜 밖에는 나와……. 근데 웬 여행 가방이야? 어디 가?”

“긴말하지 말고 앞장서.”

반가움을 표하는 아들의 말에도 김꽃분의 정색은 계속됐다.

“앞장을 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나 죽은 네 아버지나 무식하게는 살아도 남들 등골은 안 빼먹고 살았어.”

“아니, 우리 어머니 갑자기 뭔 심각한 소리셔.”

“너 다니는 회사가 사채 하는 회사라며.”

“그걸 어떻게……아. 또 누나들이 말했구나.”

“누나들! 누나들!”

퍽- 퍽-

김꽃분은 누나에게 전화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는 아들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아! 아파!”

“아프라고 때리지. 아프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쁜 짓 하는 거 아니야.”

“이놈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여러 말 할 거 없고 너 그거 당장 그만둬.”

“이거 그만두면 이제 와서 뭐 하고 살라고.”

“왜 할 게 없어. 하다못해 고깃집 가서 불판이라도 닦아.”

“아! 됐어. 존심이 있지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런 일? 네놈이 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야.”

아들은 김꽃분의 말을 쉽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럼 그지 같은 일을 계속하겠다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사실 아들도 일 문제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처음부터 함께 일한 동생이 죽을 뻔한 뒤로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새로 온 팀원과는 도무지 손발이 안 맞고 팀장이란 놈이 자꾸만 긁는 탓에 짜증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런 거 아니면 빨리 그만두지 뭘 생각해.”

“막말로 깡패 같은 일 한 놈을 누가 좋다고 일자리를 주겠어.”

“보안요원 해.”

““보안요원? 누가 날 써 주기라도 한 대?”

“엄마 아시는 분이 면접 보게 해 주신대. 두말하지 말고 가서 보고 와.”

“아! 됐수다. 애새끼도 아니고 무슨 엄마 부탁은……우리 꽃분 씨는 몸이나 잘 추슬러.”

“아들! 너 이거 보이지?”

아들의 반응을 예상한 김꽃분은 여행 가방에서 갈색 병을 꺼내 들었다.

“네 엄마는 이제 두려울 게 없어. 머리 갈라서 수술하고 살아난 내가 뭐가 두려워. 근데 아들놈이 이렇게 사는 건 두려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이렇게 사는 꼴 보느니 차라리 내가 죽을게. 득칠 아부지 나도 곧 가요.”

“지금 무슨 소리를……어머니!”

김꽃분이 갈색 병을 마시려고 하자 장득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렸다.

말없이 순하셨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반대였다.

시장통을 휘어잡던 여장부 스타일의 어머니는 한다면 반드시 하는 성격이었다.

장득칠은 덜컥 겁이 났다.

“치료고 나발이고 나 죽을라니까 깡패같이 살든 개짓거리를 하든 네 마음대로 해.”

갈색 병에서 찰랑이는 노란 물이 김꽃분의 입속에 떨어지려 하자 장득칠이 날렵하게 손을 뻗었다.

“알았어! 안 해! 안 할게.”

간신히 뺏은 병을 바닥에 던진 장득칠이 말을 이었다.

“그만둔다고.”

“면접은? 면접은!”

“알았어. 볼게. 봅니다. 봐요.”

“득칠이 너 약속한 거다.”

“알았다고. 그나저나 도대체 요양원에 있으면서 저런 약은 어디서 구한 거야.”

“넌 몰라도 돼.”

김꽃분은 갈색 병에 든 노란 물이 자양강장제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

“꽃분 아주머니?”

김철기와 자리를 비웠던 이옥빈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민기 엄마 산책 잘 갔다 왔어?”

“네, 민기가 아주 신났어요. 참! 민기 아빠가 아드님 면접 보게 해 드린다고 전해 달래요.”

“어머! 세상에 정말이야? 그래도 보고 정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이미 봤대요. 저한테 전해 달라고 했어요.”

“봤다고? 아무튼 내 은인이시네. 감사해라.”

“아! 이분이 꽃분 아주머니 아드님이세요?”

“맞아. 얘가 내가 말한 우리 막둥이 득칠이.”

“반가워요. 득칠 군. 민기야 안녕하세요. 해야지.”

장득칠은 이옥빈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뭐지? 이 신박한 컨셉은. 광년이?’

겉모습과 목소리는 노인인데 말투는 젊은 여자고 제일 황당한 건 인형을 애처럼 대하는 거였다.

“이 할머니 왜 이러는 거야?”

“할머니라니!”

“그리고 웬 인혀……아! 아파.”

장득칠이 ‘인형’이란 단어를 하려는 순간 김꽃분이 아들의 귀를 세차게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너 그 단어 꺼내는 순간 입에 오버로크 쳐 버릴라니까 입 싸물어.”

장득칠은 레이저를 쏘며 노려보는 김꽃분을 보며 재빨리 입을 닫았다.

“뭘 그리 빤히 봐. 얼른 인사 드려!”

“안녕하세요. 장득칠입니다.”

* * *

“수술한 지 며칠 째지?”

“4일째입니다.”

태경이 이찬희와 함께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pc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염증 수치가 높잖아. 이건 수술 이후의 상황으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환자에게 다른 이상이 있는 것일 수도 있어.”

“네.”

“이렇게 수치상으로 가능성이 있을 때는 환자를 더 주의해서 봐야 돼.”

“네.”

이찬희의 대답이 시원찮다. 예전 같으면 틈틈이 의국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요즘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 남은 시간 동안 오늘 숙제나 좀 하려고 했는데 또 질문하시겠지?’

갑작스럽게 동행한 회진에 살짝 긴장이 됐다. 태경과 회진을 돌 때면 별안간 질문을 쏟아 내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이찬희는 진지하게 모니터를 보고 있는 태경을 흘깃 보며 생각했다.

‘근데 선생님은 언제 퇴근하시는 거지?’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생각해 보니 태경이 퇴근하는 모습을 첫날 빼고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뭐야! 설마 계속 병원에 계신 건가? 아니지.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야.’

이찬희가 혼자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태경의 기습 질문이 이어졌다.

“이 선생, 특히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할까?”

이찬희가 김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환자 차트를 볼 때도 회진을 돌 때도 그렇고 이 질문 타임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수술 부위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수술 부위 소독이야 매일 해 주고 있잖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게 뭘까?”

“혹시…… 렁(lung, 폐) 아닌가요?”

“맞았어. 바로 폐야. 교과서랑 약간의 시기는 다르지만 수술 이후, 특히나 전신 마취한 환자들은 이후에 폐 관리가 매우 중요해. 이 환자도 그래서…….”

Rrrrrrrrrrr

갑작스럽게 울리는 태경의 벨소리가 환자에 대한 열띤 대화를 중단시켰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수덤병원인데요. 전원 문의 드리려고요.

수덤병원이라면 우리병원에서 그나마 가까운 병원이다.

이 병원도 응급실은 있지만 사실 상 수술을 할 정도의 여력은 없는 규모였다.

“전원이요?”

-네, 57세 남자고요. 공사장에서 사고가 났는데 쇠꼬챙이로 업도맨 페네트레이팅 인져리(abdomen penetrating injury, 복부관통상)을 입었어요.

“쇠꼬챙이요?”

‘쇠꼬챙이’란 단어에 태경은 물론이요 옆에 있던 이찬희까지 움찔하며 귀를 쫑긋했다.

-네. 이 환자분 근데 블리딩(Bleeding, 출혈)도 별로 없습니다. 사고 장소에서 뽑고서 저희 응급실에 왔어요.

“아니, 잠시 만요.”

태경은 듣고 있으면서도 제 귀를 의심하며 들은 그대로 되물었다.

“사고 현장에서 쇠꼬챙이가 뽑혀서 왔다고요?”

-네, 맞습니다. 구조대원분들에게 듣기로는 철근 더미에 넘어져 관통됐는데 출동 당시에는 환자분이 모르고 일어나 있던 상태였다고 하네요.

정말 믿기 힘든 말의 연속이었다.

-환자 상태 현재 vital은 stable하고요. 아직 저희가 CT가 없어서 정확히 파악은 못 한 상태입니다. 하복부에서 시작되어서 아마 블래더 (Bladder, 방광)가 손상된 것 같아요.

“환자 기저질환은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전원을 요청하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태경은 머릿속으로 환자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방광이라.’

방광이라면 비뇨기과에서 우선 일차적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 이럴 때는 관련과에 문의를 하는 게 빠르다. 마침 오늘은 비뇨기과 담당의가 출근하는 요일이었다.

“이 선생 지금 바로…….”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도 있었네.”

이찬희에게 오더를 지시하려던 찰나 때마침 비뇨기과 전문의 나고한이 지나가고 있었다.

강남이랑 강북에서 시원하게 개인 병원을 말아먹은 그는 몇 군데 병원을 돌며 일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방금 선생님한테 콜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래요? 환자 때문에요?”

“네. 쇠꼬챙이에 방광이 뚫렸다네요.”

“쇠꼬챙이요? 아이쿠야. 저런.”

“바이탈은 괜찮고 전원 문의가 왔는데 괜찮으세요?”

“네, 원장님! 안 그래도 어제 케어하던 환자들이 동시에 다 퇴원해서 여유 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친구 셋이서 나란히 확대 수술은 받고 퇴원했는데 다들 만족하셨거든요. 환자분들이 만족할 때 저도 의사로서 자부심을 느낀달까요.”

수술이 정말 만족스러웠는지 나고한은 묻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였다.

“제가 경영에는 소질이 없지만 이쪽 분야에서는 한때 아트라는 소리까지 듣던 사람입니다. 하하하!”

역시 호탕하다. 이상하게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대게 성격이 호탕하고 쾌할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나고한은 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비뇨기과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이름이 운명이라 다른 과는 생각조차 안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보세요. 저희 전원 받을게요.”

태경은 들고 있던 전화기에 대고 수담병원 담당자에게 환자 전원을 수락했다.

-네, 한 시간 내로 도착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수고하세요.”

“선생님 그럼 저도 이따 뵙겠습니다.”

나고한이 자리를 뜨고 전원 환자의 상태를 들은 태경은 좀처럼 환자 차트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쇠꼬챙이가 관통한 건 정말 큰일인데요.”

그건 이찬희 말이 맞다. 사람 몸에 쇠꼬챙이가 관통을 했다. 그것도 중요 장기가 있는 복부 쪽으로. 확실한 큰일이다.

“선생님, 환자 괜찮을까요?”

“정확히 봐야 알겠지.”

환자를 직접 봐야 그 상태를 알 수 있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태경은 벌써부터 환자가 걱정됐다.

쇠꼬챙이가 관통했다면 큰 혈관이 손상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장을 관통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CT의 부재로 환자 상태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큰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

이후에도 태경은 회진을 도는 동안 계속해서 그 환자를 생각했다.

‘그래도 바이탈은 다행이네.’

바이탈이 괜찮다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다소 덜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임은 변함이 없었다.

* * *

40분 뒤.

외래를 보던 태경에게 임정숙 간호사로부터 응급실 콜이 왔다.

-선생님 그 전원 환자 도착해서 바이탈 확인하고 기본 피 검사 나갔습니다.

“환자 기저질환 없다고 하지만 eGFR(Estimated Glomerular Filtration Rate, 사구체여과율, 신장 기능을 반영하는 지표) 확인하고 조영제 투여해 주세요. 바로 CT먼저 촬영할게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응급실 전화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오더를 쏟아 낸다.

다섯 번째 바이탈이 몇 단계인가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외상을 당한 환자들에게 영상의 중요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바이탈이 괜찮으니 우선은 영상이다.

외래 진료를 끝낸 태경은 서둘러 진료실 나왔다.

철컥-

‘……!’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온 그때 다섯 번째 바이탈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 냄새는 3단계다.’

복도에서 미약한 분뇨 냄새가 퍼져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큰 보폭으로 응급실을 향할 때마다 냄새는 점점 더 뚜렷하고 선명해졌다.

응급실이 가까울수록 응집되고 농축된 분뇨 냄새가 태경의 후각에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그래도 아직 안심할 순 없어.’

3단계라 내심 안심은 됐지만 그래도 아직 마음을 다 놓을 순 없었다.

다섯 번째 바이탈의 단계는 환자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는 순간 바뀐다는 걸 태경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빨리 CT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