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사망 보험금
“선생님 영상 방금 촬영했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임정숙 간호사가 급하게 들어오던 태경을 보면서 설명했다.
“선생님?”
태연하게 자신을 지나치는 태경을 임정숙이 다시 한번 불렀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태경은 순간 저도 모르게 냄새에 이끌려 곧장 환자에게 직행할 뻔한 것이다.
“제가 마음이 급한지 환자부터 보려고 했네요.”
“영상 보고 가셔야죠.”
“다 올라왔죠?”
“네.”
태경이 PC앞에서 영상을 로딩한다. 그리고 조영증강이 되어 촬영한 CT를 유심히 본다.
마우스 휠을 돌려 가면서 아래 가슴에서부터 상복부 그다음 하복부로 천천히 영상을 확인한다.
‘앞 벽이랑 뒷벽의 손상.’
영상의 소견으로 우선 방광 앞 벽의 손상과 뒷벽의 손상이 보였다.
‘진짜 제대로 관통이네.’
영락없이 쇠꼬챙이가 방광을 관통한 것이다.
모니터를 마주한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없다.
‘한 번만 더 보자.’
방광 주변은 좁은 공간에 장기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유심히 봐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네.”
반복해서 하복부의 영상을 유심히 본 태경이 말했다.
“직장 근처에 관통상 말고는 없네요.”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니까요. 큰 동맥이나 다른 손상은 없어요. 불행 중 다행이죠. 자! 그럼 이제 환자 보러 가죠.”
“네, 환자분은 17번 베드에 있어요.”
“수 쌤, 전원 환자 15번 베드에 있어요.”
임정숙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환자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아! 맞다. 내가 좀 전에 환자랑 헷갈렸네. 선생님, 15번이래요.”
임정숙 간호사가 정정하기 전 태경은 15번 베드를 향해 걷고 있었다.
다섯 번째 바이탈이 그를 15번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가 열이 좀 나요.”
“얼마나 되죠?”
“38도요.”
아마도 균에 의한 감염으로 열이 올랐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저런 외상을 당했는데 소변과 대변의 균들이 감염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외상으로 인한 감염 시에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환자에게 cefotaxime 2g(항생제) 주세요.”
“네. 그런데 평소 수술 전에 주시던 것과 다른데 이걸 나갈까요?”
“그걸로 주세요.”
배양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태경은 이미 감염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수술 전 쓰던 항생제보다 강한 것을 쓴 것이다.
촥-
“최선해 님 안녕하세요?”
태경이 베드 주변에 쳐진 커튼을 치우면서 환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네. 안녕하세요.”
무기력한 표정의 최선해가 건조하게 인사했다.
“환자분, 제가 좀 보겠습니다.”
“……예.”
태경은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살폈다.
혈액검사와는 별개로 보이는 환자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 그리고 활력 정도는 다양한 정보를 준다.
외부에서 쇠꼬챙이로 배에 외상을 당한 환자로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특히나 그랬다.
“환자분 지금 열감이나 기운이 쳐지는 듯한 감은 없으세요?”
“네… 아까 다쳐서 놀랐지만 열감이나 그런 거는 딱히 없습니다.”
지금 환자의 겉모습과 말하는 것만 보면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블리딩도 그렇고 바이탈에 기본 검사, 거기에 의식 수준까지 이 정도면 다행이다.’
태경은 이러한 환자의 상태를 보고 그때서야 약간의 안심을 했다.
“현재 환자분은 CT를 찍은 상태고요. 상처 부위로 들어갔던 것이 방광 지나서 직장까지 손상을 줬어요.”
“아, 예…….”
“이럴 때는 거기 안에 균들로 인한 감염이 걱정되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환자분의 상태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저 수술 안 해도 되나요?”
“아니요. 여기 복부에 관통한 상처는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지금 이 외상으로 인한 감염이 아직 심하지 않다는 설명을 드린 거예요.”
태경의 적극적인 설명에도 환자는 잘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보통 아무리 아픈 환자일지라도 의사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면 귀를 기울이는 게 통상적이었다.
그런데 최선해는 좀 달랐다.
마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는 것처럼 큰 부상을 입은 자신에게 통 집중하지 못했다.
“큰 수술을 해야 되겠죠?”
“아무래도 배를 열어야 해요. 방광은 비뇨기관 선생님이 해 주실 거고 전 직장을 수술할 겁니다. 다만 구멍 난 곳을 그냥 봉합만 하면 변이 계속 지나가기 때문에 아물지를 않아요.”
“그럼 어떡하나요?”
“그래서 아물 때까지 변이 지나가지 않게 할 거예요. 장을 배 옆으로 내서 장루라고 하는데 아마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그게 배변 주머니 그런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걸 일정 기간 동안 하시고 아래 상처가 아물면 그때 다시 연결하는 걸로 할게요.”
“선생님께서 알아서 잘해 주시겠죠. 그보다 저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는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지금 좀 무서워서 그러는데 혹시 가능하면 좀 있다 수술하면 안 될까요?”
“수술은 지금 당장 하지는 않을 겁니다.”
태경의 말에 최선해는 살짝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우선 환자분 감염을 좀 진정시키고 내일이나 모레 필요한 검사도 하고 그 후에 진행할 겁니다.”
염증이 심하면 장기가 붓고 유착도 심해 항생제로 감염을 진정시키고 염증을 가라앉게 한 다음 수술에 들어간다.
현재 최선해 환자는 염증이 심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추이를 지켜보며 감염된 부분을 잡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 지금 당장 하는 건 아니군요?”
“네, 물론 지금 할 수도 있지만 안전하게 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리고 환자분이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막 위급한 상황은 아닙니다.”
“선생님 하나만 더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럼요.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더 말하셔도 됩니다.”
“혹시 그러니까 만약…… 만약 말입니다. 수술을 안 하게 되면…….”
최선해는 약간의 뜸을 들이며 말을 끌었다.
계속 베드 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멈춰 있던 그의 동공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태경을 쳐다보지 않던 최선해가 고개를 올리며 태경에게 물었다.
“저…… 죽을 수도 있나요?”
“환자분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냥 응급이 아니라고 하셔서 궁금해서요.”
“환자분 지금 당장 촉각을 다툴 만한 위급 상황이 아닐 뿐이지 현재 환자분의 외상이 가벼운 건 아닙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나 보네요.”
“그리고 이 상태로 수술을 안 하게 된다면 당연히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 씨?”
최선해와의 대화가 끝나 갈 즈음 공사장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어? 아이고 최 씨 괜찮아?”
“실례지만 누구시죠?”
임정숙 간호사가 환자의 정보 보호를 위해 확인차 물었다.
“아, 예. 저는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동료고 최 씨랑 아주 친한 사이입니다. 보호자로 왔습니다.”
놀란 표정을 지은 남자는 몇 시간 전 최선해가 1인 시위를 하다 만난 운전수 이 기사였다.
“선생님. 제 지인 맞습니다.”
“아이고!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선생님 우리 최 씨 괜찮은가요?”
“저희가 최선을 다할 겁니다. 혹시 환자분 가족분은 안 오시나요?”
“아니 글쎄 그 쌍놈의 이사 새끼 때문에 이 사달이 났지 뭡니까. 우리 착한 최 씨 사정도 있는데…….”
이 기사는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묻지도 않는 사정을 쏟아 내려 했다.
“이 기사 나 괜찮아. 심각한 건 아니래.”
“아니 괜찮긴. 배때기가 뚫어졌는데 내가 이 이사 놈을 그냥…….”
“보호자분, 말씀해 주시는 건 감사한데 가족분들은 안 오시나요?”
‘가족’이란 말에 최선해가 이 기사를 빤히 쳐다봤다.
“아니, 우리 최 씨가 사정이 있어서 그 지금 가족이 없어요.”
가족이 없다는 말에 태경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 원수 같은 가족도 병원에 입원하면 간병을 하고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순간 더 필요한 게 가족일 텐데. 태경은 애써 더 밝은 표정으로 환자에게 말했다.
“그럼 환자분.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진행할게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 * *
“안녕하세요.”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던 최선해에게 같은 병실 보호자가 다가왔다.
“전, 저기 벽 쪽에 입원한 할아버지 부인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병실이 좀 휑하죠?”
6인실 병실에 최선해를 포함한 입원 환자는 3명이었다.
“어제 오늘 연달아 퇴원해서 그래요. 아고 내 정신 좀 봐. 이거 받아요.”
노인 여자는 작은 반찬통을 최선해 베드 옆 선반에 올려놓았다.
“매실 장아찌예요. 우리 할아버지가 이게 없으면 밥을 안 드셔서.”
“그런데 이걸 왜…….”
“아, 그게 우리 할아버지가 티비를 하루 종일 끼고 살거든요. 아픈 사람들 있는 병실에서 미안해서.”
“아닙니다, 어르신. 괜찮아요.”
“보니까 수술 앞두고 있는 거 같던데 수술 끝나고 들어요. 병원 밥이 잘 나오는데 그래도 집 반찬 있으면 좋잖아요.”
노인은 한사코 괜찮다는 최선해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럼 쉬어요.”
노인이 커튼을 치고 자리로 돌아가자 최선해는 내려놓은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사망ㅂ
“최 씨?”
휴대폰으로 단어를 치던 그에게 조금 전 다녀갔던 운전수 이 기사가 다시 찾아왔다.
“아니, 자네 왜 또 왔어?”
“왜 또 오긴. 최 씨 혼자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안 와.”
“일은?”
“내 일은 걱정 말고 최 씨 몸이나 걱정하슈. 그리고 내가 몇 가지 좀 사 왔어.”
이 기사는 혼자 입원한 최선해를 위해 입원에 필요한 물건을 사 왔다.
봉투에는 치약과 칫솔, 수건, 종이컵, 티슈 등이 들어 있었다.
“안 그래도 어떡하나 싶었는데 고마워. 이 기사.”
“그나저나 아내한테는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안 돼. 집사람도 돈 문제로 속 끓였어.”
최선해는 어릴 적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가 성치 않았다.
함바집 대금 문제로 벌이가 막히자 아내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식당 알바까지 하는 중이었다.
밀린 대금은 하나뿐인 딸의 결혼 자금이었다.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연락에 아내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데 다시 돈을 못 받는다는 소리와 본인의 사고 소식까지 차마 전할 수 없었다.
“최 씨, 내가 돈 좀 빌려줄까? 주변에 말하면 다들 도와줄 거야.”
딸의 결혼 자금을 위해 최 씨 부부가 자는 시간도 아껴 가며 함바집에 매달렸다는 걸 공사장 인부들은 거의 알고 있었다.
“내가 얘기 좀 해 볼까 하는데.”
“됐어. 다들 여유가 어디 있다고. 내가 알아서 할게.”
“근데 그 쌍놈의 이사 새끼 안 왔어?”
“비서한테 연락 왔어. 죄송하다고 병원비 전액 다 지불해 드린다고.”
“지랄하네. 병원비가 문제야? 대금 해결하고 일단 지 때문에 사람이 다쳤는데 와서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니야.”
이 기사는 노발대발하며 최 씨를 대신해 이사 놈을 욕했다.
“됐어. 와 봤자 속만 끓지 뭐. 자네도 이만 가 봐. 오늘 오후 바쁜 날이잖아.”
“이것만 주고.”
“또 줄게 있어?”
“최 씨도 알지? 우리 집사람 유별 난 거. 나 사고 나고 집사람이 용한 곳에서 받아온 술인데 이거 마시면 좋은 기운을 받는대.”
이 기사는 작은 술병이 담긴 봉투를 선반 안쪽에 깊이 넣으며 말을 이었다.
술병 안에는 뱀이 똬리를 틀고 죽어 있었다.
“별 그지 같은 소린가 했는데 나도 저거 마시고 지금까지 사고 안 나고 있잖아.”
“됐어!”
“진짜야. 잘 갖고 있다 수술 끝나고 마셔 봐. 그럼 내일 또 올게.”
“조심히 들어가.”
이 기사가 병실을 나가고 최선해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검색했다.
몇 시간을 커튼 안 베드에 누워 핸드폰을 검색한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 상태로 수술을 안 하게 된다면 당연히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태경이 했던 말을 떠올린 최선해의 동공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휴대폰과 술병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루 종일 쥐고 있던 그의 휴대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검색되어 있었다.
-자x해도 사망 보험금 지급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