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4화 (44/472)

44화. NPO time

“배, 배……아으. 전 못 보겠어요.”

놀랍게도 떨리는 손끝이 가리킨 변기 뒤쪽에는 깨진 술병 조각 사이로 죽은 뱀이 있었다.

“어머! 세상에!”

수간호사로 별별 일을 다 겪어 늘 침착한 임정숙 간호사조차 뱀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아으. 무서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병원에서 뱀을 볼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선해 환자분?”

하지만 태경은 뱀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죽은 뱀,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환자가 피를 쏟았다는 사실이었다.

놀란 감정이 들기도 전에 의사로서 집중력을 발휘해 우선 환자의 몸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네.’

다행이 넘어지면서 부딪힌 곳은 없어 보였다. 분주한 시선이 하체 쪽으로 옮겨졌다.

최선해 환자복 바지가 피로 젖어 있었다. 태경이 바지를 벗기자 항문 주변으로 피가 쪼르륵 흐른다.

‘이런!’

소화기관과 항문에서 나오는 피는 언제나 위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흐르는 피는 당연히 위험하다.

“일단 환자 좀 옮기죠.”

“네, 선생님.”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사 사무실로 옮기고 남아 있는 간호사가 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여기 2층 병동 209호실인데요. 환자분이 화장실에서 블리딩이 있었어요.”

-아, 그래요? 청소 파트에 연락할게요.

“저, 근데 팀장님께서 좀 올라오셔야 할 것 같아요. 이모님들이 치우시긴 좀 힘들 것 같아서요.”

-치우기 힘들 것 같다고요?

“네. 치워야 할 게 하나 더 있거든요. 전 도저히 무서워서…….”

병동 간호사는 힐끔힐끔 죽은 뱀을 쳐다보다 몸서리를 치며 최 팀장에게 말했다.

-화장실에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 제가 올라가죠.

* * *

병동 처치실로 환자를 옮긴 태경은 빠르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환자 모니터(실시간으로 바이탈 사인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 달고 수혈할게요. 전혈 2개요!”

“네, 선생님.”

“환자 lab도 나갈게요. 빨리요!”

“알겠습니다.”

“거즈! 거즈 줘요. 지혈제도 주고요.”

“여기요.”

지혈제로 적신 거즈를 받은 태경이 환자의 항문 주변으로 여러 겹 밀어 넣었다. 그 뒤 처치와 동시에 환자를 베드에 눕혔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내리는 태경의 오더가 하나씩 환자에게 적용되어진다.

“바이탈! 바이탈 어때요?”

“혈압이 88로 저혈압이고요. 박동 수 120으로 100회 이상입니다.”

“lab은요?”

“헤모글로빈(Hemoglobin, 혈액의 산소운반과 관련된 수치)이 6.8입니다.”

너무 낮은 값이다. 정상보다 한참 낮다.

“우선 packed RBC(혈액성분 중 산소운반물질 위주의 수혈제제)와 fluid로 normal saline 1L 80cc/h로 줄게요. 그리고…….”

태경이 다시 분주하게 오더를 쏟아 내던 그때였다.

“으……으…….”

쓰러졌던 최선해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최선해 환자분? 쓰러진 거 기억나세요?”

“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요. 저희가 치료해 드릴 겁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최선해 환자분이 죄송해 하실 필요 없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모두 괜찮다고 달래자 잠시 머뭇하던 최선해가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니요. 저한테 수술한다고 금식하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제가 술과 음식을 좀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설사하고 그랬거든요.”

최선해의 고백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

아까 화장실에서 상황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설마 수술을 앞둔 사람이 술을 먹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처치실로 환자를 옮기는 동안에도 믿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최선해 입으로 직접 들은 태경은 황당해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황당함을 넘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본인 몸을 위한 금식인데 거기다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럼 아까 화장실 바닥에 깨져 있는 그 뱀술을 먹었다고요?”

따지기 위한 질문이 아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네.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가져온 술인데 좋은 술이라고…… 아니 그러니까 실은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

자신에게 닥친 이 모든 상황에 최선해는 횡설수설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실은…… 죽으려고 먹었습니다.”

밀린 대금을 못 받겠다는 생각에 최선해는 눈앞이 캄캄했다. 이대로는 결혼을 앞둔 하나뿐인 딸자식에게 도움조차 못 될 거라는 생각에 속이 뒤집어지고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진짜 죽으면 보험금으로 큰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인터넷을 찾아봤다.

-제가 술 먹는 낙으로 살고 있는 사람인데요. 사고를 당해서 수술을 앞두고 술을 먹으면 안 될까요?

-질문자님 장난하세요? 수술 앞두고는 무조건 금식인데 그러다 잘 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세요.

그렇게 누군가 써 놓은 글을 발견하고 돈을 지급할 생각이 없는 이사의 행실을 보며 술을 마신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걸 왜 먹어요!!”

태경이 무섭게 고함을 쳤다. 하지만 환자에게 화를 내기 위한 고함이 아니었다. 환자의 교육을 위해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리고 죽는다니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살리는 곳이 병원이다. 그런데 그런 병원에서 죽으려 했다니.

“환자분 죽는다는 말……하!”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으려 했다는 최선해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태경은 입을 닫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어찌됐건 지금은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응급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분 잠깐 몸을 옆으로 해 볼게요.”

다시 침착함을 찾은 태경은 아까 항문에 끼워 넣은 거즈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이런!’

조금 전 꽂아 넣은 거즈는 혈액으로 온통 젖어 있었다. 그 상태를 본 태경이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정 선생? 나야.”

-네, 선배.

태경은 의진이 상황을 알 수 있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응급수술 해야 할 거 같아.”

-선배, 응급인 건 알겠지만 이렇게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고 게다가 환자 NPO time(금식이 지속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면 환자 죽을 수도 있어요.

당연한 답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흔쾌히라기는 어려운 상황인 거 같아요.

틀린 말이 아니다. 전신 마취를 하는 동안 기도 삽관을 한다. 그런데 금식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동안 기도로 음식물이 넘어가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헤모글로빈 수치도 너무 낮다.

‘전신이 안 된다면…….’

하지만 응급이다. 수술을 해야만 한다.

“정 선생?”

-네, 선배.

“그러면 스파이널(spinal anesthesia, 척추 마취)은 바로 가능하지?”

-네? 스파이널이요?

태경의 질문에 의진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근데 선배 직장 자르고 밖으로 장루 내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걸 스파이널로 하시는 건…….

“아니, 그건 다음에 하고 우선 항문으로 접근해서 지금 출혈 나는 직장을 봉합하려고. 물론 변이 지나가면 감염이 생길 수 있지만 그것보다 현재 출혈을 잡는 게 먼저라서.”

-아, 출혈이요.

“정 선생, 가능하지?”

태경이 질문하며 물었지만 그 톤은 아니었다. 강력한 지시와도 같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의진이 마취과 의사로서 갖는 걱정을 덜어 주면서 환자를 돌봐 줄 가장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네, 선배. 수술방 준비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

* * *

“세상에 아오! 징그러워.”

“전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보네요.”

“저도에요. 그것도 병원에서 뱀술을 볼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태경이 환자와 함께 수술실로 내려가고 209호에는 소식을 듣고 온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뱀으로 술을 담가 먹을 생각을 하지?”

“그러니까요. 난 1억을 준다고 해도 못 먹겠네.”

“에헤. 그건 아주머니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여자 환자 몇몇이 질색을 하며 말하자 남자들이 반박하며 나섰다.

“저게 얼마나 귀한 건데요?”

“아니 시골 산에 가면 지천에 널린 게 뱀인데 뭐가 귀해요.”

“그것도 우리 어릴 때 얘기지. 요즘은 공기가 안 좋아서 예전 같지 않아요.”

“맞습니다. 그리고 뱀이라고 다 같은 뱀이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는 저거 아주 귀한 뱀이에요.”

“아으, 귀하고 뭐고 그런 거 모르겠고 도대체 저런 걸 왜 먹는 거예요?”

의구심을 품는 질문에 중년 남자 환자가 깔끔한 한 마디로 정리했다.

“정력!”

“정말이에요?”

“아이, 말해 뭐해. 요강을 깨고 집사람이 아침부터 12첩 밥상을 차린다니까요.”

“참나, 저 말 믿지 마요. 저거 다 거짓말이야.”

“그래요?”

“내가 그 말 믿고 10년 전에 우리 남편 해 줬는데…… 어이가 없어서. 아무 일도 안 생겼어.”

“아닌데. 아주머니 혹시 실뱀으로 한 거 아니에요?”

“무슨 곗돈까지 깨서 300만 원짜리 굵은 놈으로 해 줬어요.”

그렇게 환자들이 화장실에 있는 뱀으로 열띤 토론을 하는 사이 최 팀장이 들어왔다.

“자! 환자분들 잠시만 비켜 주세요. 도대체 뭐가 무섭…엄마야!”

젠틀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화장실로 들어오던 최 팀장은 뱀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어머, 팀장님 놀라셨나 보다.”

“팀장님 해병대 나오셨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요. 귀신 잡는 해병대가 뱀을 보고 놀라면 안 되죠.”

등 뒤로 놀리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최 팀장의 놀란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저게 여긴 왜 있는 거야!’

귀신하고 뱀은 엄연히 다르다. 적어도 귀신한테는 물릴 일이 없지 않은가.

“설마 팀장님, 뱀 무서워하시는 건 아니죠?”

“설마 그럴 리가요. 해병대인데.”

설마가 그럴 리가 맞았다. 귀신도 때려잡는 최 팀장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있었으니 뱀이었다.

“정말 무서우신가 보네. 제가 대신 잡아 드려요?”

가만히 서 있는 그를 보며 중년 남자 환자가 말하자 그제야 최 팀장이 발을 움직였다.

“무섭긴요. 환자분들은 위험하니까 뒤로 좀 물러나 계세요.”

“이미 죽은 놈인데 뭐가 무서워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뉴스 보니까 술병에 있는 1년 된 뱀이 물어 갖고 사람 죽었잖아요.”

“이미 죽은 뱀인데요. 전 이런 걸로 겁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뱀에게 향하는 그의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팔각모 얼룩무늬 바다의 사나이……나는 해병대다. 이깟 뱀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무섭지 않다.’

그렇게 최 팀장은 해병대 군가를 부르며 20분 동안 자신과의 싸움 끝에 뱀을 처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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