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마장동 포대 자루
수술방에는 의진과 연락받고 어시로 들어온 최모나, 그리고 간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경이 손을 위로 든 채 들어오자 간호사들이 수술 가운을 입혀 주고 멸균 장갑을 착용한다.
“환자분!”
“네…….”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인지 최선해는 미안한 표정으로 힘없이 답했다.
“아까 설명 드렸지만 출혈 잡으려고 항문으로 접근해서 봉합할 거예요.”
“아, 예…….”
“이후에도 다시 장루 하는 수술을 할 거지만 응급이라 지금은 출혈만 먼저 잡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저희 말씀 어기시고 음식물 드시거나 하면 전 그땐 수술 안 해 드릴 거예요. 아시겠죠?”
“예.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태경이 엄중한 톤으로 겁을 주듯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겁을 줘서 말을 듣는다면 환자를 위한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 선생, 시작하지?”
“네, 선생님.”
심전도, 혈압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등을 장착하고 누워 있는 최선해 옆으로 의진이 다가갔다.
“환자분 이제 마취를 할 거예요. 잠시 옆으로 돌아누워 보실게요.”
최선해가 옆으로 눕자 간호사가 등이 살짝 굽도록 마취 자세를 잡아 줬다.
“이제 척추 마취를 할 거예요.”
“선생님 많이 아플까요? 제가 태어나서 수술을 처음 받아 봐서요.”
“아니요. 따끔한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놔 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손으로 마취 주사를 놓을 곳을 촉진한 의진이 마취 부위를 꼼꼼히 소독했다.
“니들(needle, 바늘) 주세요.”
그 뒤 척수를 싸고 있는 지주막 사이로 길고 가느다란 바늘을 능숙하게 찔러 넣었다.
“자! 환자분 따끔합니다. 괜찮으세요?”
“예, 하나도 안 아프네요.”
“이제 발끝에서부터 따뜻한 느낌이 올라올 거예요. 마취가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놀라지 마세요.”
의진이 알콜솜을 들고서 환자에게 다가가 복부를 문질렀다.
“환자분, 차가운 느낌이 드세요?”
“아니요.”
그 다음 배꼽 근처에서 알콜솜을 문지르다가 흉부 근처를 문지르면서 계속 물어본다.
“그럼 여기는요?”
“차가워요.”
“선생님, 마취됐습니다.”
최선해의 다리가 확실하게 마취가 됐음을 확인한 의진이 태경에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수술 시작할게요.”
“저기…… 선생님?”
마취가 끝나고 수술이 막 시작하려던 그때였다. 최선해가 다급한 말투로 태경을 불렀다.
“예, 환자분 말씀하세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마취가 하반신만 된 거면 전 수술할 동안 깨어 있는 건가요?”
“예, 전신 마취가 아니기 때문에 의식은 다 있는 상태로 수술이 진행됩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 좀 재워 주시면 안 될까요?”
마취까지 덤덤하게 받던 최선해는 막상 수술을 하려니 머릿속이 복잡해 견딜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 받는 수술에 무섭기도 하고 딸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냥 지금은 마음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수술을 잘 받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환자분 혹시 수술 소리 때문이라면 귀에 음악이 들리도록 해 드릴 수 있어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환자를 안심시키며 물었다.
“아니요. 수면 마취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척추 마취를 하면 의식은 완전히 깨어 있게 되다 보니 환자 입장에서는 원치 않게 수술하는 소리를 전부 듣게 된다. 그럴 때 환자의 상태를 잘 확인한 후 수술로 인한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소량의 수면 마취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가 사실 많이 무섭습니다. 수술을 편하게 받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드릴게요.”
태경은 최선해 환자의 의견을 고려해 안전하게 수면 마취를 투여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 시작하죠.”
제일 먼저 환자의 양다리를 위로 벌려 양쪽 발걸이에 고정시키는 리소토미 포지션(Lithotomy Position, 절석위.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것 같은 모습) 자세를 잡는다.
그 뒤 태경은 환자의 다리 사이에서 항문을 보도록 낮은 높이의 둥근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환자의 주변을 멸균된 수술포들로 덮고 항문 주변도 멸균된 수술포로 덮어 수술 중 오염을 예방한다.
“에이날 딜레이터!”
투명하고 긴 원형의 플라스틱 기구를 건네받은 태경이 다른 손으로 환자의 항문에 끼워 넣은 거즈에 손을 댔다. 그리고 거즈를 빼는 순간,
푸숙-
울컥하고 고여 있던 피들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피가 수술 가운과 얼굴에 튀자 임정숙 간호사가 얼굴에 튄 피를 빠르게 닦아 냈다.
“석션.”
“네, 선생님.”
얼굴에 피가 튀는 동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태경이 침착한 톤으로 지시를 내렸다.
“네, 선생님.”
나란히 항문을 보고 앉은 최모나가 지시에 따라 빠르게 석션을 했다.
“한 번 더.”
“예.”
석션이 끝내자 태경이 에이날 딜레이터로 항문을 넓혔다. 그러자 넓어진 통로로 뿜어져 나오는 혈액으로 인해 환부의 시야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석션 이리 줘.”
태경이 재빠르게 최모나 손에 있던 석션을 뺏어 들었다. 대신 최모나는 태경의 손에 있던 딜레이터를 잡아 들었다.
“위로!”
“네, 선생님.”
“최 선생, 그게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위로 들어서 잘 보이게 좀 해 봐!”
“예, 알겠습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연달아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저럴 때 보면 완전 딴사람 같다니까.’
의진이 한껏 예민해진 태경의 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최 선생, 선배랑 첫 수술일 텐데 긴장 좀 되겠다.’
인성 좋은 평소 모습과 달리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용암처럼 샘솟을 때가 있었으니 바로 지금처럼 환자가 위급한 상왕이었다.
“최 선생, 손 내리면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수술방에 차오른 긴장감을 가르며 다시 한번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물론 태경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은 환자의 출혈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집도의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좁다. 좁아.’
더군다나 항문은 아무리 넓혀도 좁디좁다. 게다가 지금은 환부에 정확하게 봉합을 해야 하는 응급 상황으로 그만큼 봉합 하나하나가 어려운 케이스였다.
“바늘 주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나일론 큰 거 주세요. 배 닫을 때 쓰는 바늘에 물어서 주세요.”
“네.”
드르륵-
임정숙 간호사가 봉합실을 잡아 주는 니들 홀더(eedle holder, 가위처럼 생긴 모양에 끝이 바늘을 잡기 위해 뭉툭하고 긴 기구)에 물러서 건네주던 그때였다.
“아! 죄송합니다.”
시야를 위해 최모나가 급하게 석션을 하다 기구 끝이 바닥에 닿고 만 것이다.
“최모나! 조심 안 할래?”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겠습니다.”
사실 지금 하는 수술은 항문으로 접근하는 수술이라 다른 수술처럼 완전히 멸균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수술 부위가 변과 직장의 균에 의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오염을 시킬 필요는 없었다.
또한 수술 중에 기구를 떨어뜨린 다는 것은 언제나 큰 실수이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여기만 잘 뜨면…….”
태경이 직장 안으로 힘겹게 바늘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봉합을 하나 하고서 수천 번도 더한 타이(봉합한 실이 풀어지지 않기 위해 하는 외과적으로 묶는 방법)를 했다.
“석션 한 번 더.”
최대한 풀어지지 않게 봉합을 한 뒤 석션을 하자 출혈량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좋아. 몇 번 더 하면 출혈은 잡힐 거야.’
태경은 스스로에게 말하며 손끝의 감각을 믿고 봉합에 집중했다. 어려운 봉합에 의진도 임정숙도 최모나도 모두 침묵하며 바늘을 주도하는 손끝에 다 같이 집중했다.
그렇게 힘겹고 힘겨운 봉합이 계속되었다. 겨우 다섯 번의 봉합이었지만 한 시간이나 걸렸다.
“마무리합니다.”
평소라면 5분도 걸리지 않겠지만 적재적소의 적당한 깊이를 조절하며 좁은 곳을 봉합하는 거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 됐네!”
“오늘처럼 봉합이 박진감 넘치기도 쉽지 않겠어요.”
이제야 집중의 미간을 푼 태경을 보며 임정숙 간호사가 기분 좋게 한마디를 건넸다.
“그러게요. 이제 포비돈으로 소독하고 지혈 거즈로 압박할게요.”
“네, 선생님.”
“그리고 우선 지혈됐으니 피 교정하고 다음을 생각해 보죠. 정 선생, 환자 수술 후 검사 나왔나?”
“네, 정상은 아니지만 아까보다 많이 올랐습니다. 점차 돌아올 것 같아요.”
“한시름 놓았네요.”
수술방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벌써 새벽이네.’
태경은 괜스레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이 냄새가 반갑다니. 참나.’
최선해에게서 진동하던 포르말린 냄새가 바뀐 걸 알 수 있었다. 얕은 분뇨 냄새가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오늘은 좀 고되네.’
태경은 그제야 긴장감이 풀어지며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환자가 응급 상황을 잘 넘겨서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환자 수술 때문에 디하이드레이션(탈수, dehydration)되서 plasma solution 500ml bolus(속도 조절 없이 투여)로 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태경이 환자에 대한 오더를 쏟아 냈다.
“그리고 최선해 환자 몸무게가 어떻게 되죠?”
“65kg입니다.”
“나머지는 NaK1 10DW(10% 포도당과 소듐, 포타슘이 mix된 수액)를 90cc/hr로 주는데요. 중간에 소변 양 보고 속도 조절할게요.”
“네, 선생님.”
“항생제는 piperacillin tazobactam으로 제가 처방 낼 테니까 시간과 용량 지켜서 주세요.”
“네.”
“마지막으로 내일부터 환자 폐운동 좀 시켜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함께 수고한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 태경이 수면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 얼굴 쪽으로 다가갔다.
“환자분?”
“……에?”
“최선해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아, 예. 선생님 수술이 끝났나요?”
“네, 수술 끝났습니다. 출혈은 잡았고요. 환자분 회복실에서 조금 보시고 갈 건데 척추 마취라서 고개 들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환자분도 고생하셨어요.”
수술 전에 호통을 치던 모습은 오간데 없이 태경은 따뜻한 모습으로 환자를 격려하며 수술방을 나갔다.
* * *
“……잘 끝났어?”
의국실로 들어온 이찬희가 최모나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최 쌤? 최모나! 어딜 보면서 멍을 때리는 거야?”
“귀 안 먹었다. 그리고 내려놔.”
“방금 뭐야?”
불러도 대답 없던 최모나는 이찬희가 대왕 젤리를 집어 가자 바로 반응했다.
“이깟 젤리 하나 먹었다고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냐. 친구끼리 섭섭하게.”
“왕은 한 마리밖에 없어. 새끼들 먹어. 하나만.”
“됐고, 수술 잘 끝났어?”
“어. 일단 급한 출혈 잡고 나머지는 추후 보면서 진행하신댔어.”
“어땠어?”
이찬희가 지렁이를 씹으며 물었다. 사실 아무렇지 않게 물었지만 속내는 좀 부러웠다. 복부관통상 환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케이스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뉘앙스를 보니까 들어가고 싶었나 봐.”
“당연한 거 아냐? 콜 왔을 때 응급실에서 환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들어갔지.”
“그건 아니지. 이 선생이 환자를 보고 있지 않았어도 과연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야!”
예고 없는 팩폭에 이찬희가 입을 다물었다. 얄밉지만 사실이다. 앞전에 임산부 수술은 어시를 했지만, 이번 건은 무턱대고 들어갔다 어시를 잘할 수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최모나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뭘.’
태경의 훈련으로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이찬희도 알고 있었다.
“맞다. 최 쌤. 너 김 선생님이랑 첫 수술이었네. 뭔가 좀 느끼는 게 있지 않아?”
“글쎄.”
“아니 왜. 막 심장이 바운스거리면서 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의사로서 확실한 동기부여와 함께 간절한 생각이 안 들어?”
태경 바라기인 이찬희가 입에 모터를 단 듯 쉴 새 없이 쏟아 냈다.
“양손을 괴물처럼 쓰는데 손놀림이 다르잖아. 난 처음에 봉합하는 거 보는데 솜털이 돋더라.”
별 반응 없이 듣고 있었지만 최모나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아까 수술실에서 실수를 했던 것도 조금 전 멍을 때린 이유도 전부 태경의 수술 실력 때문이었다. 수술 중 매듭짓는 타이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한 것도 처음이었다.
‘어떻게 양손을 그렇게 현란하게 다루지?’
특히 오늘 같은 경우 봉합 자체가 힘든 수술이었다. 그런데 양손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정하게 하는 봉합이 가히 예술이었다.
‘수술을 잘하는 의사는 어떤 의사 인가요?’
그러다 문득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의대 첫 수업 때 질문을 받은 교수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교수님. 진짜 수술을 잘하는 의사의 수술은 다른가요?’
‘진짜 수술을 잘하는 의사는 일반인을 수술실로 데려와서 봐도 그 태가 나. 일단 보는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 당시에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소리인 줄 알았다. 지금껏 그런 인물을 본 적이 없으니 더욱 그랬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던 사람이 진짜 있었구나.’
그런 사람이 바로 태경이라는 걸 최모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고난 건가? 하긴 보드도 하나가 아니니까…….’
여전히 이찬희의 말을 사뿐히 무시하며 혼자 생각하던 최모나 귓가에 또렷이 들리는 질문이 있었다.
“궁금하지?”
“…….”
“나 선생님이 어떻게 저렇게 하는지 알고 있다.”
“알고 있다니. 무슨 비법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비법 맞아. 예전에 내가 직접 물어봤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찬희가 태경과 같은 병원에 있었다고 떠들던 게 기억났다.
“비법이 뭔데?”
“아닌 척하더니 궁금했나 봐?”
“됐어. 장난하는 거면 관둬.”
최모나가 장난이라고 생각한 그때 전혀 예상 밖의 답변이 들려왔다.
“마장동 포대 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