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8화 (48/472)

48화. 쇠지레와 오함마

끼익-

활기찬 출근 풍경이 한창인 그때 12인승 봉고차 한 대가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병원 앞에 급정거를 했다.

“여기 맞는겨?”

“잠깐! 우리병원! 어, 여기가 맞네.”

“자자! 싸게 싸게 내리자고.”

급정거한 12인승 봉고차에서는 열댓 명의 인부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피켓이 하나씩 들려 있었고 몇 명은 쇠지레와 오함마를 들고 있는 이들도 보였다.

“막내야 여기 맞나?”

“네, 이 기사님이 보내 주신 주소 확실해요.”

“여가, 우리 최 형이 입원한 병원이라는 거지?”

이들은 모두 공사장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로 이 기사에게 소식을 듣고 모인 것이다.

“돈 못 받은 것도 서러운데 사고까지 당하고…….”

이들에게 하루 일을 쉰다는 게 큰 리스크였지만 잘 챙겨 줬던 최선해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사의 뒤를 쫓아갔다가 골프장 주차장에서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어이, 이사놈……아니, 이사님. 안 내리고 뭐합니까요?”

“아! 빨랑빨랑 내리라고.”

오함마를 들고 있던 남자가 바닥을 내리치며 다그쳤다. 그 소리에 제일 뒷좌석에 찌그러져 있던 이사가 재빨리 움직였다.

“내립니다. 내려요.”

“왜요? 막상 오니까 x같은 거 괜히 왔다 싶어요?”

“아니요.”

“그럼 억지로 와서 사과하려니 짜증이 나신 건가?”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오해입니다.”

거들먹거리며 최선해를 무시하던 이사는 인부들 사이에서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저도 여러분들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분이 왜 여태 문병도 안 했대.”

제일 체격이 건장한 인부가 고급 정장을 입은 이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내일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거 입에서 똥물 튀는 소리 좀 그만하세요.”

“지, 진짜입니다.”

“이름값처럼 입벌구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 사과하슈.”

“예, 그래야죠.”

“아! 맞다. 이사님. 병원비는 물론이고 밀린 대금도 바로 해결한다는 말 잊지 않았죠?”

“그럼요. 제가 온전히 쾌차하실 때까지…….”

“어디, 응급실에 있다고 했나?”

인부들은 남자의 말을 묵살한 채 병원으로 들어갔다.

* * *

“할머니, 오늘 4,500원이고요, 처방전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세…….”

환자의 병원비를 수납하던 접수처 직원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닫았다.

“저 사람들 뭐야……. 손에 망치?”

마치 병원을 떼려 부술 것만 같은 포스를 풍기며 들어서는 인부들을 본 것이다.

“정희 씨, 왜 그래……어머! 어머! 저게 다 뭐야? 팀장님?”

옆에 있던 직원도 그들을 보며 어쩔 줄 몰랐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팀장님! 빨리 좀 나와 보세요. 팀장님?”

접수처 직원들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다급히 외치자 사무실에서 최 팀장이 뛰어 나왔다.

“무슨 일이야?”

“저기요. 저 사람들 좀 보세요.”

“아니, 웬 인부들이…….”

“어어! 팀장님 저 사람들 응급실 가잖아요. 얼른 말려 보세요.”

“하! 이래서 보안요원이 있어야 해.”

최 팀장은 속으로 벌벌 떨며 응급실로 직행하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 저짝이 응급실이구만.”

“저기…… 실례합니다만 어떻게 오셨는지요?”

“면회 왔는데요?”

누구 하나 아작을 내러 온 모습으로 면회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면회라고요?”

“예, 최선해라고 우리 동료인데 배에 구멍이 나서 여기 입원했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최선해 씨라면 우리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분이 맞습니다.”

그사이 직원에게 연락을 받은 태경이 응급실에서 나와 대신 답변했다.

“이쪽은 저희 병원 원장님이신 김태경 선생님입니다. 현재 최선해 환자분을 치료해 주시고 계십니다.”

“아고, 감사합니다.”

“우리 최 형 좀 잘 부탁드려요.”

열댓 명의 인부들이 태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마치 조직 보스에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원장님. 면회 좀 할 수 있을까요?”

“최선해 환자분이 오늘 새벽 수술을 해서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요.”

“원장님. 그 친구 생계 문제 해결 때문에 그런데 죄송하지만 면회를 허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혹시나 소란을 피우러 온 건 아닌가 생각하던 태경은 ‘생계 문제’라는 말을 듣고 면회를 허락했다.

* * *

“선생님? 아무래도 저 사람들 포스가 뭔가 일 낼 것 같은데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같이 지켜보죠.”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2층 휴게실에서 태경과 최 팀장이 동석한 채 면회가 시작됐다.

“다들 바쁜데 뭐 하러 왔어?”

“최 형이 그렇게 됐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모른 척해.”

“그런데 이사님이 여긴 어쩐 일로…….”

거의 멱살이 잡히다시피 끌려온 오벌구를 반장이 앞으로 밀었다.

“그, 그게 사과를 드리려고요.”

“당연히 사과를 해야지. 사람을 밀어서 배를 뚫어 놨는데 안 하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밀어서 사고가 났다고?’

태경은 지금까지 궁금했던 사고 경위를 이제야 알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넘어졌길래 복부 관통상을 당했을까 생각했더니 자의가 아닌 타의로 넘어져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저 사람이 사고 낸 사람이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모른 척한 이사라는 작자가 사람인가 싶었다.

“최선해 씨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뒤편에 서서 가만히 있던 태경이 이사가 듣도록 일부러 말했다.

“정말이에요? 우리 최 형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네.”

사실이었다. 복부 관통상은 외과적으로도 상당히 큰 부상이다. 복부에는 많은 장기들이 있고 중요 신경들도 있다. 쇠꼬챙이가 조금만 옆으로 들어왔으면 장기를 관통해 과다 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

“최선해 환자분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합니다.”

넙죽넙죽 사과를 잘도 하고 있었지만 이사는 진심이 아니었다. 끌려온 김에 마지못해 하고 있었다. 그걸 느낀 최선해도 더 이상 참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제가 돈을 달라고 애원하는 과정에서 이사님의 비싼 옷을 더럽게 잡았다고 절 밀었던 건 분명히 기억합니다.”

“아니, 그건 저도 갑자기 당황해…….”

“됐고! 이제 실질적인 대화를 하자구요. 이사 양반 이거 보이죠?”

인부 중 한 명이 목에 걸린 피켓을 들어 올렸다.

“밀린 대금 안 주면 우리 방송국 앞에서 시위하려고 피켓도 준비해 왔어요.”

“말씀 중 실례지만 경찰에 신고하면 될 텐데요.”

태경의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최 팀장이 거들었다.

“말도 마세요. 경찰에 알려 봐야 돈 있는 사람이 비싼 변호사 쓰면 끝입니다. 우리 아들놈이 그러는데 방송국에 제보를 하는 게 빠르대요.”

“맞아. 앞에 가서 피켓 들고 서 있으면 누구라도 나오지 않을까?”

“근데 방송국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 줄까? 그것도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제보를 하지.”

워낙 급하게 모였기에 인부들의 계획이 구체적이진 못했다.

“제가 만나게 해 드릴게요.”

그들이 방송국 문제로 고민하는 사이 듣고 있던 태경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예? 원장 선생님이요?”

“네. 그쪽으로 잘나가는 피디를 알고 있어요.”

종합병원에는 주기적으로 피디나 작가들이 자주 출입한다. 주로 드라마 쪽과 시사 고발 쪽으로 소재를 찾기 위함이었다. 신화대 노예 시절 시사 고발 피디가 출근하다시피 오가며 태경과 안면을 튼 사람이 있었다.

너튜브에서 응급 처치 영상이 화제가 됐을 때도 취재차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 당연히 거절하긴 했지만 예전에 적잖이 도와줬기에 연락을 취하면 확실히 도와줄 사람이었다.

‘그래, 이런 일은 차라리 언론을 타면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도 최선해의 딱한 사정을 계속 신경 쓰던 태경도 차라리 잘된 일이다 싶었다.

“선생님이야 말로 최 형 은인이시네. 몸도 고쳐 주시고 방송국에 제보도 도와주시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인부들은 물론이고 최선해도 태경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사만은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최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제가 밀린 대금 바로 갚겠습니다. 반드시 해결하겠습니다.”

공사장 인부 놈들이 무슨 방송국에 제보냐 속으로 비웃던 그는 태경이 나서자 빠른 태세 전환을 보였다.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하던 사람 말을 어찌 믿으라고 그러실까.”

“정말입니다. 다음 주까지…….”

“다음 주? 아니 우리 이사님이 아직 사태 파악이 덜 되셨나 보네.”

“실례합니다. 여기 최선해 선생님께서 계시다고 해서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사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그의 비서가 노신사와 함께 등장했다.

“김 비서가 여길 어떻게…… 아, 아버지!”

“안녕하세요. 저는 나락건설 사장 오벌수라고 합니다.”

사장은 곧장 최선해 앞으로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이사의 앞으로 똑바로 걸어가,

쫘악-

그대로 귀싸대기를 갈겼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던지 오벌구의 고개가 꺾일 것처럼 돌아갔었다.

“아, 아버지?”

쫘악-

또다시 울린 손바닥 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며 놀랐다.

“쓰레기 같은 놈.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

사장은 아들인 이사를 매섭게 다그치더니 다시 최선해에게 바짝 다가갔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내가 병중에 있어 아들놈에게 회사를 맡겼더니 또 사고를 쳤더군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사의 비서에게서 모든 소식을 들은 그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다치신 마음 그 어떤 걸로도 보상받기 힘드시겠지만 자식 가진 아버지로서 한 번만 선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선해는 사장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을 본인 또한 잘 알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밀린 대금과 병원비 그리고 피해 보상 금액 일체는 오늘 안으로 전부 지금 드리겠습니다.”

“전 피해 보상 금액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피해 보상 금액은 당연히 지급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사양하지 마세요. 그럼 조만간 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사장은 마지막까지 정중하게 행동한 뒤 아들 죽일 듯이 노려보며 끌고 나갔다.

“따라 나와.”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인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기뻐했다.

“아들놈은 영 별로인데 아버지가 진국이네.”

“그나저나 우리 최 형 밀린 대금이 잘 해결되서 다행이야.”

“다 자네들 덕분이야.”

“우리 덕이 아니라 자네가 다 착하게 살아서 그런 거지.”

먹구름 가득 찼던 최선해의 얼굴은 어느새 맑게 개어 있었다.

“아니야, 신경써 줘서 고마워. 선생님도 감사해요.”

딩동-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던 그는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메시지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최 형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나락건설이야?”

“맞아. 사장이 문자를 보냈는데…….”

“근데 설마 돈 오늘 안 준대?”

“아니 그게 아니라…… 억이야. 죄송하다면서 피해 보상 금액으로 2억을 보냈어.”

‘억’ 소리 나는 금액에 모두들 입을 벌렸다.

“이거 돈 잘못 들어온 거 아닐까? 선생님 제가 잘 이해가 안 돼서요. 이게 맞는 건가요?”

“제대로 보낸 거 같은데요.”

최선해가 내미는 휴대폰 화면 속 문구를 확인한 태경이 답했다.

“정확히 액수를 밝힌 거 보니 최선해 씨에게 보낸 금액이 맞아요.”

병원에서 목숨까지 끊으려 했던 최선해의 일이 잘 해결되자 태경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몸 회복하는 것만 신경 쓰세요.”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모로 감사드려요.”

* * *

“하! 억이라니…….”

병동을 지나는 최 팀장은 혼잣말을 하며 계속 억억거렸다.

“억이라니. 근데 선생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세상이 각박하긴 해도 아직 살 만하구나 싶어서요.”

“너무 좋게 생각하신 거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는 지 아들놈 언론에 나가면 회사 이미지도 실추되고 그럴까 봐 돈으로 무마한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확실한 보상이 됐잖아요.”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참!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최 팀장은 가던 길을 멈추며 태경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사람들 중에서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뭘요?”

“보안요원이요. 아까 저 인부들이 했던 말 기억나세요?”

인부들은 휴게실을 나가면서 태경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병원에 힘쓸 일이 있으면 언제나 연락을 달라고 했었다.

“힘쓰는 일이야 말로 보안요원이 딱 아닌가 싶습니다. 구직 사이트에 올렸는데 아직 메일 한 통 없으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아! 보안요원이라면 한 사람 면접 올 거예요.”

“예? 면접이요?”

“네, 아는 분이 소개해 주신다고 하셔서요. 하던 일 정리되면 면접 오겠다고 했어요.”

“병원에 사람이 잘 들어와야 하는데…….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네요.”

“저도 그런데 면접 때 보면 알겠죠.”

보안요원이 궁금하긴 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 보는 눈이 확실하시니까.’

더군다나 김철기가 소개한 사람이니 보나마나 좋은 사람일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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