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의료인 구직 사이트
“환자 갔습니까?”
격한 커튼 소리와 함께 인기척을 낸 사람은 태경이었다.
컷-
“네, 방금 가셨어요.”
바로 옆 베드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던 태경이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을 전부 듣고 있던 것이었다.
잠시 결과를 보러 스테이션에 들렀다 온 사이 환자가 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가 말렸는데도 계속 수액 빼 달라고 하셔서요.”
“알겠어요.”
간호사의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어쩐지 태경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화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박. 김 선생님이 하필 옆 베드에 계셨네. 그럼 다 들으셨다는 건가?”
태경이 커튼 밖으로 나가자 간호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 * *
응급실 이곳저곳을 누비는 태경의 시선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차례대로 베드를 확인하고 집중 처치실까지 확인해도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스테이션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찾고 있던 최모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벅저벅-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최모나를 향해 걸어가던 그때였다.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가 응급실로 급히 들어오며 태경을 불렀다.
“진료실로 좀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외래인가요?”
“그게 아니라 최선해 씨 보호자분이 오셨는데 선생님을 뵙기 원하세요.”
“그래요. 바로 가죠. 그리고 최 선생 환자 보고 나거든 내 방으로 좀 오라고 하세요.”
“네, 선생님.”
태경은 최모나에게 향하던 발길을 진료실로 돌렸다.
* * *
철컥-
“안녕하세요. 최선해 환자 담당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긴장한 표정의 보호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 최선해 씨 아내고 이쪽은 저희 딸이에요.”
“네, 반갑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따님께서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최선해 동료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아내와 딸은 열일을 제쳐 두고 병원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 소식에 놀란 딸은 계속 울었는지 눈이 부어 있었다.
“저희 아빠 괜찮으신가요?”
“애 아빠 동료에게 듣기로는 수술을 했다고 들었어요. 배에 구멍이 났다고…….”
“네, 환자분은 처음에 쇠꼬챙이에 의해 대장과 방광 상부와 뒤쪽으로 해서 손상을 받은 상태였어요. 당연히 안쪽으로 이물질이 지나가서 감염이 발생했고, 조금 강한 항생제로 감염을 조절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환자분의 출혈이 워낙 심해서 척추 마취 후에 항문을 통해 대장의 관통된 부위를 봉합했어요.”
태경은 최선해가 죽으려 했던 그 일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충분히 힘들어 보이는 보호자들에게 마음의 짐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혈이 많이 심했었나요?”
“네, 그 당시에는 위급할 수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세상에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남편 지금 상태는 괜찮아진 건가요?”
“출혈 잡은 뒤에 수혈하고 바로 복강경으로 비뇨기과 선생님이 방광 수술하셨어요.”
“방광은 수술이 잘된 건가요?”
“네, 그리고 제가 다시 들어가서 대장을 봉합하려 했는데 정말 다행히도 출혈 잡은 항문 외에 대장은 더 손상 받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오. 감사해라.”
누구보다 궁금했을 아내와 딸에게 자세한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태경은 보호자에게 수술이 잘 끝났다는 간단한 말로 설명을 마무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환자 못지않게 보호자들 또한 충분한 설명을 들어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매일 피검사 하면서 염증 수치 등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고요. 오늘 아침 확인해 보니 정상 수치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식사를 시작했으니 대변 이후에도 이상이 없을 경우 확인해 보고 퇴원 고려할게요.”
드르륵-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내와 딸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아닙니다. 최선해 환자분이 빨리 나으려는 의지가 강해서 회복이 빨랐던 것 같아요.”
“저기 선생님. 저희가 아직 애 아빠를 보지 못했어요. 워낙 놀래서 선생님 먼저 뵙느라고……. 지금 면회해도 될까요?”
“그럼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 * *
“여보!”
“아빠!”
“아니, 당신이 어떻게…… 미리까지.”
갑작스러운 가족의 등장에 최선해는 당황했고 아내와 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이 기사 아저씨가 알려 줬어요. 아빠 괜찮아?”
“이 기사 내가 그렇게 입단속 시켰건만. 하여간 사람 참.”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당신이 이 지경이었는데 나랑 미리는 그것도 모르고 결혼 준비한다고 신나서는…….”
“여보, 미리야. 아빠 괜찮아. 그리고 우리 딸내미 결혼식도 아빠가 제대로 도와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아빠 내 결혼식 때문에 시위하다 다치셨다면서요.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해. 너 그런 소리 하지 마.”
누가 보호자고 누가 환자인지 모를 풍경이 펼쳐졌다. 아내와 딸은 울상인 것에 반해 최선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아빠 이제 아무렇지 않아. 그러니까 그만 울어.”
그동안 가족이 보고 싶었던 최선해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가족들을 위로하며 병실 문에 서 있던 태경에게 웃는 얼굴로 짧은 목례를 했다.
“선생님?”
목례에 화답한 태경이 복도로 나오자 최선해 아내가 황급히 따라 나왔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까 드린다는 게 깜빡했어요. 이거요.”
“이게 뭔가요?”
“약식이에요. 우리 가족이 워낙 약식을 좋아해서 자주 해 먹거든요. 딸이 그러는데 요즘에는 의료진분들에게 감사 선물 드려도 안 된다고 해서요.”
최선해 아내가 살짝 뚜껑을 열어 보여 준 약식에는 그 흔한 건포도조차 없었다. 그 어떤 고명도 들어 있지 않았지만 가장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예쁜 그릇이 없어서 집에 있는 반찬통에 급하게 해 왔어요. 그래도 제가 식당을 해서 음식 솜씨는 좋아요.”
최선해 아내는 민망한 듯 설명을 더했지만 적갈색 뚜껑이 돋보이는 죽통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어릴 적 가난했던 태경은 생일이면 어머니가 늘 해 주던 음식이 약식이었다. 작은 케이크와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불고기 그리고 죽통에 만든 어머니의 약식이 빠지지 않고 올라왔었다.
‘오랜만에 약식을 보네.’
아무리 심한 부상을 입은 환자를 봐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태경이었다. 그런데 죽통에 담긴 약식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찡했다.
“저희 남편 살려 주셔서 감사해서요. 약소하지만 받아 주세요.”
“전혀 약소하지 않습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예전에 수술을 잘해 줬다면 골드바를 선물하려던 사람이 있었다. 목숨 값에 비하면 이깟 금덩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권했지만 태경은 당연히 거절했다.
동료 의사들이 몰래 받지 그랬냐며 장난으로 말했지만 아까운 생각도 후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약식을 거절하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선생님 지금…… 이게 무슨 냄새예요? 어디 참기름 집 갔다 오셨어요?”
병동에서 내려오는 태경에게 다가오던 임정숙 간호사가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네, 참기름 진하게 좀 짰습니다. 이거 나눠서 좀 드세요.”
쇼핑백에서 약식 한 통을 꺼낸 태경이 건넸다.
“고소한 냄새 끝내준다. 이게 뭐예요?”
“약식이요.”
“약식 맛있죠. 근데 웬 거예요.”
“최선해 보호자가 만들어 왔대요.”
“정성이 따로 없네요. 참! 최 쌤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얼른 가 보세요.”
* * *
진료실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최모나는 조금 아까 간호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기 선생님. 아까 환자분 수액 다 안 맞고 그냥 가셨어요.’
‘그렇습니까?’
‘네. 그런데 김 선생님이 옆 베드에 계셨던 거 같아요. 표정이 되게 안 좋으셨어요. 제 생각인데 다 들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베드와 베드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해도 그 거리가 넓지 않다. 옆 베드에 있었다면 당연히 다 들렸을 거다.
“표정이 안 좋았다면…… 나 찍힌 건가?”
-의료인 구직 사이트
혼잣말을 내뱉던 최모나는 휴대폰을 꺼내 자연스럽게 의료인 전문 사이트를 클릭했다.
먼저 불만 카드 건도 그렇고 조금 전 일도 그렇고 아마도 오늘이 확실한 디데이라고 생각했다. 퇴사 권고 디데이.
‘지방이 좀 편하려나……. 아니지. 이참에 여행이나 좀 다녀올까?’
그동안 최 팀장이 은근히 퇴사 권고 눈치를 주기도 했고 어차피 시간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이미 잘리는 거에 면역이 강한 최모나는 언제나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수술하는 거 좀 더 보고 싶었는데.’
다만, 딱 한 가지. 아니. 두 가지가 살짝 아쉬운 느낌이었다. 하나는 태경의 수술을 더 보고 싶다는 것과 왜 그렇게 제네바 선언을 물어봤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거의 수십 번은 넘게 물어본 것 같았다.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어?”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사이 태경이 다가왔다.
“안에 안 계셔서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왔으니까 들어가자.”
“네.”
철컥-
“앉아. 최 선생 뭐 좀 마실래? 커피, 초코, 딸기, 누룽지, 현미, 솔잎 눈, 결명자 있는데 뭐 줄까?”
“아무거나 주셔도 됩니다.”
“그래. 마침 최 선생이랑 닮은 게 여기 딱 있네.”
태경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인 뚱한 표정의 선인장 캐릭터가 인쇄된 딸기 우유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가 나 있던 태경은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는 서랍에서 고객 불만 카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최 선생 앞으로 접수된 불만 카드야.”
“알고 있습니다.”
“최 선생. 내가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십쇼.”
“최 선생의 의견이 좀 듣고 싶어서 말이지. 최모나 선생이 우리병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지 말이야.”
“저 그만두라는 말씀 하시려는 거 아니었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닌데.”
상당히 의외였다. 며칠 전 진료실로 불렀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분명 아까 간호사 말로는 태경이 옆 베드에서 다 들었고 표정도 안 좋다 했다. 그런데 또 예상이 빗나갔다.
“왜 대답을 안 해.”
“제 의견이 선생님께서 결정하시는 데 반영이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물론이야. 그러려고 묻는 거니까.”
“우리병원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확실해?”
“예.”
“알았어. 하나만 더 물어볼게. 제네바 선언 생각 안 나?”
“왜 그렇게 제네바 선언에 대해 물어보십니까?”
그놈의 제네바 선언은 눈만 마주치면 물어보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던 최모나는 이유를 물었다.
“중요하니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묻고 싶습니다.”
“중요한지 안 중요한지는 내가 판단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궁금하면 기억해 내 봐.”
“외람되지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선택은 최 선생의 몫이니까. 지금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선택을 한 것처럼 말이지. 알았어. 나가 일 봐.”
꾸벅 인사를 한 최모나는 진료실을 나갔다.
“선생님, 진료실로 좀 와 주세요.”
“부르셨어요?”
임정숙 간호사가 콜을 받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네,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근데 방금 최 쌤 표정이 심각하던데요. 나 최 쌤 저런 표정 처음 봐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겁니다. 응급실 진료 일정 내일부터 이대로 진행해 주세요.”
태경은 미리 준비해 둔 일정표를 임정숙 간호사에게 건넸다.
“최 선생님 것밖에 없는데요?”
“최모나 전용 일정표니까요.”
“이거! 정말 이대로 진행해요?”
일정표를 자세히 들여다본 임정숙 간호사는 꽤 놀라며 물었다.
“네. 그대로요.”
“아……. 우리 최 쌤 어떡하나.”
“내가 그랬죠? 앞으로 더 심각해질 거라고.”
태경의 ‘최모나 병능제’ 고치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