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52화 (52/472)

52화. 다섯 번째 바이탈이 없다

“선배 오늘 의자 앉는 거 처음 보네요.”

“나 여섯 시간 만에 의자에 앉는 거다.”

지금까지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닌 태경은 이제 막 엉덩이를 붙이고 의진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없으니까 만만치 않죠?”

“어우, 장난 아니야.”

“그래도 두 사람 학회 보낸 건 진짜 잘하셨어요. 맞다. 근데 이 쌤이 가면서 그러는데 진짜 카드를 줬어요? 그것도 선배 신용카드를?”

“매일 병원에서 일만 하는데 안쓰럽잖아.”

전날 퇴근하던 이찬희는 의진에게 태경이 카드를 줬다며 엄청 자랑했다.

“거기 가격이 꽤 나갈 텐데……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이야! 역시 잘 버는 자의 여유인가.”

“그런 게 아니라 그 두 사람 아마 소고기 안 먹을 거야.”

“그걸 선배가 어떻게 알아요?”

“아까도 카드 안 받으려 했거든. 나한테 심하게 감동한 눈치더라고.”

“그러니까 선배 생각은 두 사람이 미안해서 안 사 먹을 거다?”

“그렇지.”

“그러다 진짜 사 먹으면요?”

“어차피 그러라고 준 카든데 상관없어. 둘이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어.”

Rrrrrrrrrrrr

“네. 바로 갈게요.”

의진과 대화하던 태경은 응급실 콜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R 콜이에요?”

“응. 간다.”

“선배! 주말 알죠?”

OK 사인과 함께 가운을 휘날리며 뛰어가는 태경의 뒷모습을 본 의진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하긴. 학회도 보내 줬는데 나 같아도 소고기는 미안해서 못 먹지. 나도 참! 벌써 선배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하고 있네.”

* * *

“응급이에요?”

“119 구급대원인데요. 아파트 화단에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환자 발견하고 도착까지 15분 정도 소요된대요.”

“아파트 화단이라……. 환자 나이는 혹시 들었나요?”

“20대 남자라고 했습니다.”

“…….”

환자의 나이를 들은 순간 태경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Suicide!’

아마 자살일 것이다. 젊은 남자가 화단에 있는 사고는 자살 말고는 흔하지 않다. 어린 나이도 아니기에 실족사일 경우도, 타인의 의한 경우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속단할 수 없지만 젊은 남자가 자살할 경우 훨씬 사망률이 높다.

“자! CPR 준비하고요. 오자마자 ABGA해 주시고 승압제로는…….”

“CPR 환자 왔습니다.”

태경의 오더가 끝나기도 전에 들것에 실린 환자가 구급대원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왔다.

“벌써? 15분 정도 걸린다면서요.”

“죄송합니다. 새벽이다 보니 길이 막히지 않아 빨리 왔습니다.”

“환자부터 옮기죠.”

“네. 선생님. 여기 머리부터 들어갈게요.”

“발견 시간과 가슴 압박은 몇 사이클 했는지? 투여된 약물과 시간 알려 주세요.”

말하는 와중에도 응급실 근무자들이 평소대로 자신이 할 일을 분주하게 찾아서 시행한다. 태경은 전체적인 지휘를 하기 위해 환자 머리에 서서 오더를 내린다.

“5사이클 했으며 에피네프린(epinephrine, 교감신경을 항진하여 부종을 억제하고 혈압을 상승시키는 약물) 5분 전, 10분 전에 투여됐습니다. 여기 오는 동안 EKG(electrocardiogram, 심전도)입니다.”

“한 번도 회복되지 않았네요.”

“네. 발견 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여기 오는 20분 동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아무리 빠르게 심폐 소생을 해도 회복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실낱같은 생명이 움직이는 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목숨조차 걸 수 있지만, 이미 꺼진 불씨 앞에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럴 땐 의사라는 직업이 무색해진다.

아마 심정지부터 발견 시간의 간격이 오래 됐던 것으로 보인다.

태경은 많은 경험으로 이미 가망이 없음을 직감했다.

“여기 ABGA(동맥혈 가스 분석) 결과입니다.”

역시나 수치들은 이미 소생이 불가능한 수치로 악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다섯 번째 바이탈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흔한 암모니아 냄새부터 미치도록 살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포르말린 냄새까지. 숨을 크게 들이마셔 봐도 환자의 곁으로 고개를 숙여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진짜 안 나는 구나…….’

그렇게 맡기 싫던 포르말린 냄새가 그립기는 처음이었다.

사망한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새로운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무색무취한 느낌이 강했다.

‘마음이 먹먹하다.’

머리 쪽에 서 있던 태경이 환자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한 그때였다.

‘저게 뭐지? 종이?’

주먹을 쥐고 있는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서 흰 종이가 살짝 보였다. 태경이 힘을 주어 손을 펴자 빗물에 흠뻑 젖은 작게 접힌 종이가 보였다.

태경은 종이를 말리기 위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응급 처리로 벗겨진 셔츠와 재킷을 정리한 뒤 말했다.

“외상의 흔적은 없네요.”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긴 장발의 머리카락과 깨끗한 양복을 입은 남자는 마치 물에 빠진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있었다. 맨발과 손에는 군데군데 흙과 잔풀이 들러붙어 있었다.

“보호자, 가족은 오고 있나요?”

우리병원에서 마주한 첫 번째 사망 환자였다. 마음이 안 좋았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선생님, 보호자분 도착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셨어요.”

보호자가 왔어도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처치실에는 들어올 수 없다.

“처치실 문 닫지 말아요.”

“네, 선생님.”

태경은 심폐 소생술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호자들이 듣도록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그래야 이제부터 전할 말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서 그랬을까?’

보호자를 만나기 위해 처치실을 나가면서 태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외과의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환자분과는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버지입니다. 석호……우리 석호는 괜찮나요?”

아버지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모든 눈물이 말라 버린 그 눈빛에는 오직 간절함과 당혹감만이 남아 있었다.

“환자분은 발견 당시에도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응급실까지 오는 시간, 그리고 응급실에서 모두 30분 이상 소생술을 하고 있으나 박동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그, 그게 지금…….”

조금은 냉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우선이다. 보호자가 겪을 슬픔을 알고 있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이런 순간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아, 아니…….”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조금 더 하겠지만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철푸덕-

“여보! 여보!”

뒤에서 태경의 말을 듣고 있던 환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다.

“여기, 도와주세요.”

정신없는 이 상황에서도 태경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 자식의 부고를 들은 부모가 졸도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열에 아홉은 어머니들이 쓰러진다.

정신의학과적으로 아무리 큰 슬픔도 단 한 경우를 제외하곤 2년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 한 경우가 바로 자식을 잃은 슬픔이다. 그 감정을 맨 정신으로 감당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10달. 꼬박 10달을 못 먹고 못 자고 모든 불편함을 오롯이 사랑으로 품은 엄마와 자식. 그 감정과 경험과 교감은 오직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2번 베드로.”

“머리 조심해서 들어요.”

분주한 상황 속에서 의료진들이 보호자를 베드 위에 눕혔다.

“25세 남자…….”

“안 돼! 안 돼!”

태경의 입 끝에서 사망 선고가 나오려 하자 아버지는 다급해졌다.

의사로서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사망 선고다. 한 사람의 생명을 떠나보내는 시간.

그 짧은 찰나의 시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순식간에 휘몰아친다.

“25세 남자 황석호 님 2021년 xx월 x일 오전 6시 3분 사망 선고합니다.”

처치실 시계를 확인한 태경의 눈빛이 다시 보호자에게로 향했다.

“야! 인마!”

아버지가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석호야! 이 녀석아~!”

태경은 가족이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주기 위해 반쯤 열린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놈아 이건 아니잖아. 흑!”

오열을 하던 아버지는 이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본인의 흉부를 주먹으로 세차게 내리치며 밀려오는 울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석호야…… 어서 일어나. 어서!”

고인이 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이 상황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맨살로 얼마나 아팠을까…… 네가 왜 죽어. 네가…….”

자식을 잃은 부모는 가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그 구멍은 평생을 가도 절대 메꾸어지지 않을 슬픔의 구멍이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석호야 아니지? 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제발…… 일어나 제발…….”

아버지는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손으로 미동 없는 아들의 싸늘한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마치 아기를 다루듯 극도로 조심스러운 손길로 연신 손과 발을 어루만졌다. 그 행동을 한참을 반복했다.

“네 엄마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석호야 흐윽! 불쌍한 우리 아들. 흑흑!”

아들을 향한 사무치는 보호자의 절규가 응급실에 울려 퍼졌다.

“장례식장 직원들한테 연락해 주세요.”

문 밖에 서 있던 태경이 업무를 지시했다.

“선생님, 응급실 환자 왔는데 어떡할까요?”

“진료 봐야죠.”

태경은 숙연했던 표정을 정리하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상황이 슬프긴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감정을 이어 갈 수는 없었다.

의사로서 또다시 환자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몇 번이죠?”

“5번 베드입니다.”

* * *

“선생님. 황석호 보호자분 깨어나셨어요.”

한 시간 후, 실신했던 고인의 어머니가 베드에서 눈을 떴다.

“보호자분 정신 좀 드세요?”

“…….”

“한 시간 전 즈음 쓰러지셨어요. 기억나세요?”

“네, 저희 남편은……?”

“자택에 급히 다녀오신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슬픔을 토해 내던 고인의 아버지는 장례 절차를 위해 집에 다녀온다며 아내를 부탁했다.

“우리 석, 석호…….”

반듯하게 모로 누운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목이 메었다.

“선생님? 우리 아들 어디 있나요?”

“현재 안치실에 있습니다.”

“볼 수 있나요?”

“네, 보호자분.”

“선생님, 죄송하지만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입술을 꽉 깨문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겁이…… 너무 겁이 나서 그런데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 보고 싶은데…… 도저히 혼자 못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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