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입술과 식은땀
다섯 번째 바이탈의 흐름을 쫓던 그 순간,
“손님!”
스텝이라고 쓰인 점퍼를 입은 안전요원이 다가왔다.
“여기 올라가시면 안 돼요.”
“아, 네.”
“위험하니까 얼른 내려오세요.”
생긴 건 멀끔한 사람이 이상행동을 하자 안전요원이 태경을 위아래로 훑었다.
“손님 술 취하신 건 아니죠?”
“아닙니다.”
“술 냄새 안 나는 거 보니 맞네요. 근데 여긴 왜 올라가신 거예요?”
“그게 사람을 좀 찾느라고요.”
“혹시 아이 잃어버리신 거면…….”
“아니요. 같이 온 일행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 아무튼 위험하니까 올라가지 마세요.”
“네, 죄송합니다.”
안전요원이 주의를 주고 간 뒤에도 태경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조금 전 느낀 다섯 번째 바이탈의 흐름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분명 왼쪽 방향이었는데…….”
하지만 그 대상자가 이동을 했는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맴돌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래 2단계니까 괜찮겠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좌우를 오가던 태경은 결국 좌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조금 전 느낀 단계가 2단계 냄새였기 때문이다.
사실 2단계는 그리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냄새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2단계 중에서도 냄새의 강도가 강하지 않았기에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배, 여기요!”
미어캣처럼 고개를 쑥 빼고 통로만 보고 있던 의진이 태경을 향해 외쳤다.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그게 내가 구역을 착각해서 좀 헤맸어.”
“어쩐지. 안 그래도 못 찾을 거 같아서 계속 입구만 보고 있었어요.”
“근데 여긴 좌석이 특이하네.”
의자로 쭉 나열된 주변과 달리 두 사람이 앉은 구역은 테이블이 있는 좋은 좌석이었다.
“편하게 보려고 신경 좀 썼어요.”
“이야. 이거 진짜 상석이 따로 없네. 고맙다.”
“뭘 이 정도 갖고 그러세요.”
의진은 오늘 누구보다 방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따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먹을 때 태경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혼자서 이렇게 좋아할 바에야 뭔가 확실히 하고 싶었다. 짝사랑이 아깝지 않은 어린 10대도 아니고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겠다 싶었다.
“맞다! 선배 야구 룰은 아세요?”
“그 정도는 나도 알지. 타자가 공 딱 때려서 1루 2루 3루 이렇게 나가서 들어오면 점수 나잖아.”
“그럼 홈런일 때는 몇 점인지 아세요?”
“홈런도 1점 아닌가?”
“에이. 아니죠. 솔로 홈런일 땐 1점, 주자가 한 명일 때 2점, 두 명일 땐 3점, 만루일 땐 4점이라고요.”
“의진이 너 야구 진짜 좋아하는 구나?”
“그럼요. 이 정도야 껌이죠.”
태경의 감탄을 불러낸 대답과 달리 의진은 어제 야구 이론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를 해 온 상태였다.
“이제 시작하나 봐요.”
그 뒤 시작된 경기에 두 사람은 생각보다 푹 빠져들었다.
“오~ 안타. 좋았어.”
응원팀이 안타를 치면 기뻐하고 아웃을 당하면 덩달아 시무룩해졌다.
“아, 안 돼!”
“아웃이네. 저걸 잡히네.”
“그러니까요. 아쉽다.”
“그래도 아직 초반이니까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그 요기 베라 선수의 유명한 명언도 있잖아.”
“뭐요?”
“It ain't over till it's over.”
“저도 그 말 알아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렇지. 야구는 9회 말까지 모르는 법이야.”
“그럼 이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홈런?”
“아니죠. 응원이죠. 그리고 응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치느님이 필요하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주변에 치킨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치킨 좋지. 여기서 먹는 치킨은 더 꿀맛이겠다.”
“당연하죠.”
“치킨은 내가 살게.”
“제가 아까 어플로 미리 주문하고 결제했어요.”
“그럼 내가 갔다 올까?”
“또 길 잃으려고요? 제가 갔다 올게요. 음료 뭐 하실래요? 콜라, 맥주?”
“이따 술 마실 거면 콜라로 하자.”
“당연히 이따 한잔해야죠. 그럼 콜라로 할게요.”
미리 주문한 탓에 의진은 빠르게 치느님과 함께 돌아왔다.
“자! 치킨이 왔어요.”
의진이 따끈따끈한 상자를 열자 노릇한 자태를 뽐내는 치킨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진짜 이 바삭하게 튀긴 치킨 냄새 너무 좋아요.”
“그러게 진짜 냄새 장난!”
통통한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던 태경이 순간 하던 말을 멈췄다.
“배? 선배?”
“……어. 왜?”
“왜라니요. 말을 하다 말고 인상을 찌푸리니까 그렇죠.”
“그게 아니라 냄새가 나서.”
“냄새요? 치킨에서 무슨 냄새나요?”
의진이 치킨 상자에 코를 가까이 댄 사이 태경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분명해.’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히 아까 느꼈던 그 냄새였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치킨 냄새 속에 희미하게 풍겨 오는 암모니아 냄새였다.
벌써 두 번째 같은 냄새를 느끼다 보니 혹시라도 처치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액션을 취하기에 마땅치 않았다.
‘하! 애매하네.’
문제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탐지견처럼 하나하나 냄새를 맡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 냄새 안 나는데. 선배 아무 냄새 안 나요.”
“그러게. 내가 잘못 맡았나 보…….”
그렇게 이번에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리에 앉으려는 바로 그때였다.
“……!”
찰나의 순간 냄새가 확 느껴졌다.
그 순간을 감지한 태경의 고개가 N극에 이끌린 S극처럼 냄새를 쫓아 돌아갔다.
“괜찮아. 자꾸 시선 모이게 이러지들 말라고.”
냄새의 방향을 따라간 시선 끝에 정장을 입은 남자 둘과 함께 있는 나이든 남자가 보였다. 냄새를 느낀 걸로 보아 아마도 지금 자리에 착석한 것 같았다.
‘저 사람에게서 나는 것 같은데.’
태경은 여전히 한 손에 닭다리를 들고 고개는 반쯤 돌아갔으며 앉을까 말까 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선배, 왜 그러고 서 있어요.”
“어, 아니. 맥주 파는 사람이 신기해서.”
“하긴. 저건 야구장에만 있으니까 신기하긴 하죠. 닭다리 안 드세요?”
“먹어. 먹어야지.”
옆에서 의진이 신명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였지만 태경은 집중하기 힘들었다.
한 번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자꾸만 뇌가 의식하듯이 냄새가 이끄는 대상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키스 타임을 뜨겁게 달궈 준 관객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며 잠시 특별한 시간을 가져 볼까 합니다.
공수 교대가 이뤄지는 시간 이벤트로 키스 타임이 끝나고 장내 아나운서가 누군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특별히 개막전을 맞아 블루문 구단주인 누가그룹 김형건 회장님께서 야구장을 찾아 주셨습니다.
“선배 저기 스크린 좀 봐요.”
사람들의 열띤 함성 소리와 의진이 부르는 소리에 남자를 향했던 태경의 시선이 잠시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저 유명한 재벌을 여기서 다 보네.”
“어! 저 사람…….”
스크린을 마주한 태경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시선을 고정하던 남자가 스크린에 나왔기 때문이다.
“선배도 저 사람 알죠? 새희망병원 이사장에 거인제약까지, 누가그룹이 다 저 사람 소유잖아요. 자수성가했다는데 하여간 대단한 사람인 거 같아요.”
“정말 대단하네.”
대단이고 나발이고 지금 태경은 저 사람이 재벌인지 알거지인지 그런 것조차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사람 좀 피곤해 보이네. 나 좀 봐. 무슨 재벌 걱정을 다 하고 있어.”
의진이 혼잣말을 하며 넘어갔지만 태경은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특히 입술이 너무 창백했다.
게다가 스크린 속 손을 흔드는 모습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사실 태경은 냄새를 감지한 순간부터 김형건 회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냄새를 풍길 정도의 질환은 대게 노인들에게 많다. 하지만 근처를 돌아보아도 대부분 이삼십 대거나 아무리 많아도 사십 대 정도의 사람들만 보였다.
이중 노인은 저 재벌뿐이었다.
“의진아?”
잠시 고민하던 태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장의 근처를 지나가 보기로 했다.
“예, 선배.”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이번엔 길 잘 찾아오세요. 저쪽 통로니까 헷갈리지 마시고요.”
“그래. 경기 보고 있어.”
손에 들고 있던 닭다리를 내려놓은 태경은 뒤를 돌아 김형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수록 다섯 번째 바이탈이 점점 더 감지됐다. 그리고 그의 옆을 지나가자 확신했다.
‘역시…….’
예상대로 냄새의 주범인 김형건이 맞았다. 태경은 이제부터는 뒤쪽에 조금 떨어진 채 그를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한데?’
입술이 점점 더 파래지고 그렇게 덥지도 않은 날씨에 식은땀이 흐르는지 자꾸 이마를 닦았다. 또한 냄새의 농도가 서서히 진해짐을 느꼈다.
태경은 이 신기한 능력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전에는 무시했던 자신의 감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러한 직감이 환자를 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직감이 능력이 생긴 뒤로 더 발달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저 회장이 태경에게 강한 직감을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섯 번째 바이탈이 틀린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과 의사로서 직감을 믿기로 했다.
‘입술과 식은땀이라.’
태경은 지금까지 김형건인 보인 양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입술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은땀은 전신적으로 무리가 가는 상황이라는 것일 수도 있다.
‘호흡이 고르지 않아.’
또한 숨을 간헐적으로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을 보아 숨쉬기가 어려워 보였다.
지금의 정황상으로 볼 때 김형건은 순환과 호흡이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바이탈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태경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아까 의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희망병원 이사장에…….’
잠시 고민하던 태경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진 뒤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 역시 오버였나. 전화를 받는 게 이상하지.”
아싸라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태경과 곧잘 지내던 동기에게 건 전화였다. 하지만 휴대폰 너머 통화 연결음만 계속 들려왔다.
‘하긴 10년 넘게 연락도 없었는데…….’
길어진 통화 연결음에 체념하며 끊으려던 그때였다.
-김태경!?
휴대폰 너머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나 태경이야.”
-뭐야! 진짜 태경이 너야?
아마도 화면 위로 떠오른 태경의 이름을 보고 호기심에 받은 듯했다.
“맞아.”
-야, 너 신화대 잘렸다는 얘기는 들었어. 세상에 나 같은 놈도 교수하는데 어떻게 네가 잘려. 이게 말이 되냐? 동기들 사이에서 네 소식 완전 핫했잖아. 내가 진짜 너 나가리 됐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기가 차던지…….
동기는 태경의 근황이 궁금한 듯 폭풍 같이 말을 쏟아 냈지만 지금은 그걸 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형,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미안하긴. 내가 했어야 하는데 먼저 연락 준 게 고맙지. 태경아 우리 그러지 말고 좀 보자.
“어, 그래. 근데 형 지금 수술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지?”
-그래도 교수라고 응급 콜만 없으면 주말은 괜찮아.
“다름이 아니라 급하게 뭐 하나 물어보려고.”
-뭔데. 말해.
“형, 김건형 씨 알지?”
-당연하지. 우리 병원 이사장이잖아.
“혹시 그 사람 최근에 형네 병원에 입원한 적 있어?”
-어!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순전히 지레짐작이었다. 전화를 받은 상대는 새희망병원 외과 교수였다.
태경이 과거 있었던 신화대병원과 라이벌인 관계였지만, 굳이 따지자면 새희망병원이 더 탑급이었다.
“뭐로 입원했는데?”
-야, 태경아?
지금까지 반가움에 대화를 이끌어 가던 동기가 김건형의 병명을 묻자 대번에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내가 우습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