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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58화 (58/472)

58화. 미친놈과 미친년의 콜라보레이션

“아니. 화장실 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와?”

태경의 부재가 길어지자 의진은 경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와! 홈, 홈런 홈이다.”

“와! 역전이야.”

심지어 응원하던 팀이 장외 홈런까지 때리며 응원석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심드렁했다.

“설마 진짜 길 잃은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혹시나 태경이 또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니지. 환자들 고칠 때나 완벽하지 평소에는 은근히 허당기가 있어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핸드폰을 꺼낸 의진이 전화를 걸었지만 태경은 받지 않았다.

* * *

“뭐로 입원했는데?”

-야, 태경아?

지금까지 반가움에 대화를 이끌어 가던 동기가 김건형의 병명을 묻자 대번에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내가 우습냐?

“당연히 아니지. 내가 왜 형을 우습게 봐.”

-태경아. 오랜만에 전화 왔어도 나는 어쨌든 너랑 친하다고 생각해. 근데 아무리 그래도 환자 정보를 그렇게 막 말하는 건 아니지.

당연한 반응이었다. 의사의 의무 중 하나는 환자에 대한 비밀 보장도 있었다.

-이건 불법이야. 너도 알면서 그래. 그런 건 묻지 말고 오늘 너 시간 되냐? 이따 찐하게 술 한잔하자. 어때? 내가 살게.

“형! 지금 그 회장님이 좀 이상해서 그래.”

동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경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사람 호흡수가 빨라지면서 입술에 싸이아노시스(cyanosis, 청색증)가 보여.”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병명까지. 이쯤 되니 수화기 너머 동기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말해. 회장님이 어디 계시는데?

“블루문 야구 보러 왔다가 우연히 봤어. 지금 내 근처에 있고.”

전화를 건 상대는 태경이였다. 환자가 있다면 불물 안 가리는 성격이라는 걸 동기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김건형의 야구장 일정을 동기 또한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 지금 태경이의 말이 100%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하! 고집불통 노인네. 내가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

“기술이 형 말해 줘. 불법인 거 알아. 지금 통화 끝나면 핸드폰 버릴게. 그리고 형이 말해 준 거 절대 아무에게도 말 안 해. 환자를 위해서라고 하면 믿을래?”

당연히 믿는다. 다른 놈이 이런 전화를 했다면 어떻게든 기회를 잡는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태경은 절대 아니었다.

종합병원에 있으면 어떻게든 VIP 눈에 들려고 하는 게 이 바닥 생리였다. 하지만 태경은 돈보다는 생명의 우선순위로 환자를 차별 없이 대하던 고지식한 놈이었다.

“저 사람 얼핏 봐도 이상해서 그래. 형!”

-아오! 시x 나도 모르겠다. 너 진짜 나중에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그건 걱정하지 마.”

-실은 얼마 전에 그러니까 열흘 전에 앱도미널 서저리(abdominal surgery, 복부 수술)를 했어. 그때 당시에 워낙 심했거든. 바울 퍼포(bowel perforation, 장천공)도 있었고 이후에 염증 수치가 계속 높아서 항생제 오래 쓰다가 이틀 전에야 식사를 재개했어. 그래서 아직은 안심할 수 없으니 나를 포함한 의료진이 나가지 말라고 했지. 근데 그 똥고집 노인네가 기어기 거기를 가신 거야. 그 양반이 그렇다니까.

“저 회장님 무슨 일 있으면 내가 바로 처치할 테니까 혹시 이 근처에 의료 장비 같은 거 없을까?”

-의료 장비?

“내가 야구장이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래.”

-글쎄. 나도 그런 건 잘 모르는데. 그것보다 회장님 그 뒤로 어떠셔?

“잠깐만 형! 내가 이따 전화할게.”

-갑자기? 이렇게 끊으면…….

수화기 너머 동기의 외침이 있었지만 태경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김건형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순간 몸을 휘청거리더니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랐다.

‘상태가 아까보다 더 이상하다.’

태경도 덩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계단을 내려가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김건형 일행이 걸어가는 뒤를 쫓았다.

물론 김건형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아마 저 옆에 있는 경호원들이 병원으로 이송할 것이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근처 병원이 아닌 새희망병원으로 갈 확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현재 야구장에서부터 새희망병원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는 거였다. 게다가 오늘은 주말이라 아마 더 걸릴지도 모른다.

응급은 결국 골든타임을 얼마냐 사수하느냐가 관건이다.

태경이 이렇게 그들의 뒤를 쫓는 것도 새희망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달이 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환자가 체내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분명 보통일은 아니다.

‘수술문합 부위 문제이거나 출혈이 갑자기 심해졌을 수도 있어.’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나열하던 바로 그때였다.

“……!”

태경의 발걸음이 그들을 향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미친 듯이 뛰며 외치기 시작했다.

“저기요!”

김건형의 다섯 번째 바이탈이 순간적으로 점프하듯 4단계로 격상한 탓이었다.

“잠시만요!”

거의 고성에 가까운 소리에 앞서가던 경호원들과 김건형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당황스…….”

그렇게 태경이 따라온 이유를 밝히려는 찰나,

털썩!

김건형이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처럼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회장님! 회장님! 빨리 옮겨!”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 한 명이 빠르게 달려와 부축을 도왔다.

“네. 팀장님.”

“차로 빨리 옮겨.”

경호원들이 김건형을 업더니 차 뒷좌석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고 하자 태경이 급하게 달려들어 손잡이를 잡았다.

“당신 뭐야!”

안 그래도 촌각을 다루는 긴박한 상황에 경호팀장이 짜증을 내며 받아쳤다.

“저는 외과 의사입니다. 실례지만 제가 잠시 회장님 상태 좀 보게 해 주세요.”

“뭐라고!?”

“잠시면 됩니다.”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 팀장을 비롯한 경호원들의 이마에 내 천 자가 생기고 있었다.

“당신 이분이 누군지 알아!”

태경을 의사로 본 경호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그룹의 총수가 아닌가. 더군다나 지금 회장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달려든 남자라니. 믿을 수도 안심할 수도 없는 그저 정신 나간 미친놈으로밖에 안 보였다.

“당신이 의사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압니다. 하지만 지금 환자를 살리는 게 급선무입니다. 제가 뒷좌석에서 회장님 옆에 있겠습니다.”

“야! 뭐해? 이 새끼 치워.”

“네, 팀장님.”

“이봐, 비켜.”

“제가 환자 좀 보겠습니다. 지금 위급하다고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웬 또라이 같은 새끼가. 시간 없어. 이 새끼야 당장 비켜!”

화가 난 경호원이 격한 욕설과 함께 태경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컥! 지금……이럴 때가 커컥 아닙니다.”

태경은 멱살이 잡힌 상황에서도 시선은 김건형에게 두며 경호원을 설득했다.

“어서, 거지같은 미친 새끼가 방해하고 난리야. 저리 꺼져.”

경호원이 태경을 바닥으로 던지려던 그때 단전을 끌어모은 복식 호흡이 들려왔다.

“야!!!!!!!!!!”

“저건 또 뭐야!”

“이 덩치야 그 손 놓지 못해!!”

복식호흡의 주인공은 의진이었다. 빨간 소화기를 들고 달려든 의진이 태경의 멱살을 잡은 경호원 낭심에 킥을 날렸다.

의진은 오지 않은 태경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다 멀리서 상황을 보고 복도에 있던 소화기를 들고 온 것이었다.

“으악!!”

덩치 큰 경호원이 미친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의진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태경이 뒷좌석에 누워 있는 김건형 옆으로 가서 재빨리 차문을 잠거 버렸다.

“이봐! 당신 미쳤어.”

“미친 건 당신들이라고요.”

“야! 이 미친놈아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빨리 문 열어. 야!”

경호팀장은 의진과 태경에게 화를 냈고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야! 창문 부술 것 찾아와.”

“네. 팀장님.”

그리고 팀장의 지시를 받은 나머지 한 명이 차창을 깰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빨리 찾아와.”

“팀장님. 이거 밖에 없습니다.”

“야, 이 미친놈아 플라스틱으로 저 유리가 깨지겠냐?”

커다란 파란색 쓰레기통을 들고 오자 버럭 소리를 지른 팀장의 눈에 의진이 들고 있는 소화기 통이 보였다.

“이봐요! 아가씨 그거 어서 이리 줘요.”

“안 돼요! 못 줘요.”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내놔.”

“에라잇! 이거나 받아라.”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걸 안 의진이 순간 소화기 핀을 뽑아 경호원들을 향해 발사하기 시작했다.

취이익!!!

“으악! 이 미친년은 또 뭐야!”

“선배, 선배 괜찮아요?”

경호원들이 눈을 비비며 정신없는 사이 의진이 차창에 바짝 달라붙었다.

“의진아. 이 사람 열흘 전 앱도미널 서저리를 했고, 그때 바울 퍼포랑 염증도 높았던 환자야. 현재 상황이 안 좋아.”

“덩치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 사람 눕혀야 하는데 여기 공간이 좁아.”

“선배, 그 차 맞은편 경호석 접으면 공간이 넓어져서 밑으로 눕히기 쉬울 거예요.”

방탄 시설까지 갖춘 김건형의 차는 마이바흐 s600 풀만가드였고 일반 차와 내부가 상당히 달랐다. 어찌된 일인지 차 내부를 잘 알고 있던 의진의 도움으로 김건형을 눕힐 수 있었다.

“야! 저 여자 소화기 뺏어.”

“자꾸 뿌려서 가루 때문에 안 보입니다.”

“이것들 완전히 쌍으로 또라이 아니야!”

“가만있어요. 안 그러면 또 뿌릴 거예요. 선배, 여긴 걱정 말고 환자에게 집중하세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놈과 미친년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에 경호원들은 정신이 없었다.

“너희 둘 다 잡히면 가만 안 둬.”

* * *

시끄러운 바깥 상황은 안중에도 없는 태경이 환자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젠장! 안색이 안 좋다.”

그사이 김건형은 청색증이 심해지고 호흡이 더 빨라졌다.

투두둑-

셔츠를 벗길 시간도 없이 태경이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셔츠를 뜯어 버렸다.

좌우로 벌어진 셔츠 사이로 수술 자국이 드러났다. 아직 실밥도 풀지 않은 그대로였다.

“너무 빵빵한데?”

이상하게 배가 너무 빵빵했다.

“……!”

촉진을 하기 위해 배를 눌러 보니 누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복강내 압력이 올라간 상황이다.

회장의 배를 좌우로 더 살펴보니 복강내에 들어가 있던 hemovac(음압을 걸어서 복강내의 수술 부위 출혈 등을 빼내는 휴대 장치로 손가락 3개 정도 크기의 플라스틱 주머니) 속에 피가 많이 나와 있지는 않았다.

수술 이후 이렇게 복강이 단단해지면서 체내 순환이 억제되는 경우 복강내 압력 상승을 의심할 수 있다.

“hemovac 피의 양이 적다.”

주머니로 나오는 출혈의 양이 적은 것으로 볼 때 내부 출혈에 의한 것은 아니고 다른 문제로 장기의 부종이 심해져서 그런 것으로 추측됐다.

“일단 압력부터 잡자.”

이유가 어찌 됐건 빨리 복강내 압력을 감소시켜 줘야 한다. 만약 내부 압력이 증가한 상태로 지속된다면 복부 대정맥 등의 환류가 불가능해지고 심정지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키트! 분명 있을 텐데…….”

이런 의전 차량이면 응급 키트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의진아?”

고개를 돌려도 보이지 않자 태경이 의진을 불렀다.

“정의진!?”

캉캉!

그런데 의진의 대답 대신 차창에 부딪히는 둔탁한 쇳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캉캉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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