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60화 (60/472)

60화. 의료용 헬기

“참나.”

“아직도 언짢으신가 봐요?”

자꾸만 볼멘소리를 내는 경호팀장에게 의진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요? 내가 회장님 경호만 10년 째올시다. 근데 이런 일은 처음 겪어 봐서 어이가 없어요. 어이가.”

그동안 김건형을 경호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은 팀장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뭐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절차고 나발이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회장의 배를 가른 것도 모자라 이송을 맡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참, 아까 후추 스프레이 뿌린 건 죄송했어요. 눈 괜찮으세요?”

“됐어요. 지금 내 모가지가 떨어질 판에 그깟 후추가 뭐가 대수겠습니까.”

“모가지가 떨어지다니요?”

“혹시 두 사람 어디 외국 살다 왔습니까?”

“아니요.”

“그럼 어디 섬에서 놀러 왔어요?”

“그것도 아닌데요. 선배랑 저 둘 다 서울 사람이에요.”

“그럼 설마 이분이 누군지 모릅니까?”

“왜 몰라요. 외국에서도 다 아는 누가그룹 총수잖아요.”

“아니요. 여자분 말고 거기, 김태경 선생님이란 분이요.”

“아, 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건형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태경이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다.

“예. 그쪽이요.”

“알죠. 한국사람 중에 김건형 회장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근데 뉴스에서만 봤지 실제로 본 건 처음입니다.”

“뭐 하나 물어봅시다.”

“예.”

“도대체 아까 두 사람 왜 그런 겁니까? 왜 그렇게 회장님 살리려고 기를 쓴 건지 궁금합니다.”

한 명은 차 안으로 뛰어들어 문을 잠그지 않나, 또 한 명은 소화기랑 후추 가루까지 뿌리지 않나.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육탄전을 벌인 건지 궁금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위급 상황이라 그냥 지나치기 뭐 했습니다.”

“저도 이하동문입니다.”

“솔직히 나는 의사가 아니라 두 분이 회장님을 살린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겠네요.”

“뭐를요?”

“두 분 때문에 저를 비롯한 경호팀 전체가 잘리겠다는 걸요.”

“아.”

“…….”

전혀 예상 못 한 답변에 태경과 의진은 당황했다. 일단은 김건형을 살려야겠다고 달려들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곤란하게 됐다니 상당히 미안했다.

“하하하! 아니 아까 그 패기 좋던 사람들 맞습니까?”

죄인처럼 미안해하는 두 사람 표정에 팀장은 웃음이 빵 터졌다.

“이미 벌어진 일 뭘 어쩌겠습니까. 사실 회장님 성격이 좀 지랄……이 아니고 이건 못 들은 걸로 합시다.”

“그럼요. 지랄이란 단어 못 들었어요. 선배도 못 들었죠?”

“당연하지. 난 아예 귀를 닫고 있었어.”

“은근히 웃긴 사람들이네. 아무튼 사실 회장님보다 그 딸…….”

“예?”

“아닙니다. 엘리베이터 열리네요. 갑시다.”

팀장은 말을 하다 말고 얼른 입을 닫았다. 그리고 열리는 엘리베이터와 함께 헬기 이착륙장으로 향했다.

두두두두두-

마침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굉장한 바람을 내뿜는 헬리콥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딱 맞게 도착했네요. 결과야 어쨌든 그래도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저 때문에 괜히 곤란해진 것 같아 미안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연락 주세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쇼. 김 선생님 그리고 우리 후추 선생님도 잘 들어가세요.”

“네, 회장님의 쾌차를 빌겠습니다.”

“저도요. 그리고 경호 팀원 분들에게 죄송했다고 꼭 전해 주세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고 착륙한 헬리콥터의 문이 열렸다.

철컥-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헬기 안 풍경에 세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흐흑!”

대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놀란 토끼눈을 하며 울고 있었다.

* * *

이태리 대리석과 최고급 원목으로 도배된 명품관을 방불케 하는 새희망병원 VIP병동이 분주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이곳에 각과를 대표한 의사들이 다급하게 들어오는 중이다.

주말이라 집에 있던 의사들까지 급하게 불려 오느라 가운을 걸치지 못한 의사도 있었다.

“마녀 떴다면서요?”

“말도 마세요. 지금 완전 고기압에 대기권 뚫리기 일보 직전이랍니다.”

“또 칼춤 추겠네요.”

“아니 따지고 보면 회장님이 고집 부린 거지. 우린 다 말렸잖아요.”

“맞습니다. 그 양반이 어디 남의 말을 듣는 사람입니까?”

“그건 맞아요. 의사 말도 개똥으로 아는 사람인데 말해서 되냐고요.”

“그만들 하세요.”

앞장서서 걷던 병원장이 발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았다.

“우리끼리 이래 봐야 뭔 소용입니까? 어쨌든 더 강력하게 말리지 못한 우리 탓도 있으니 다들 조금만 참으세요.”

병원장은 교수들을 다독이며 제일 안쪽 방에 노크를 했다.

똑똑-

“사장님. 원장님과 선생님들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철컥-

“심려…….”

퍽-

문이 열리자마자 묵직한 휴대폰이 의사들을 향해 날아왔다. 병원장을 비롯한 교수들은 익숙한 듯 허리를 숙이며 요령껏 휴대폰을 피했다.

“어이구야. 또 시작이네.”

뒷줄에 있던 교수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하! 이게 말이 돼?”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심려! 심려!”

원장이 말이 가볍게 무시한 여자는 김건형의 큰딸이자 누가그룹의 호텔 사업을 맡고 있는 김서현이었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손꼽히는 능력자이자 외적으로 우아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게 심려로 될 일이야. 어?”

능력이 좋은 건 맞지만 우아함은 돈으로 만든 외적인 이미지였다. 뼛속까지 재벌 마인드에 성질은 얼마나 고약한지 가끔씩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애초에 죄송할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지.”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 아~ 듣기 싫으니까 입 다물어.”

아버지인 김건형 일이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난리를 치곤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효녀로 소문이 났지만 내부적으로 서열 1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당신들한테 얼마나 많은 돈을 주는데 우리 아버지 목숨 하나 못 지킨다는 게 말이 되냐고.”

“저희도 강력히 말렸지만 예전부터 잡힌 주요 일정이라 회장님께서 간곡히 부탁을 하셔서…….”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아버지가 당신들 말을 개무시하고 야구장을 가서 죽을 뻔했다고 하는 거네.”

“아, 아니……저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아니, 맞는데. 원장님 너님께서 지금 그러셨잖아요. 우리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사셨는데 내가 그래서 당신들한테 건강 하나만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몇 번이나 했냐고! 어?”

“송구합니다. 저희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이미 죽을 뻔했는데 뭘 더 신경 써. 그리고 뭐? 어디 병신 같은 놈이 감히 우리 아빠 몸에 손을 대게 했더라.”

김서현의 말에 원장을 비롯한 교수들 전원이 움찔했다.

김서현은 뭐든지 자기가 인정한 게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물건도 다 최고이자 자신의 수준에 맞아야 했다. 그렇기에 주치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김건형을 처치했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겼다. 알면 난리를 칠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게 된 것이다.

“어디서 굴러먹는지도 모르는 놈이 아빠 몸에 손을 대게 하냐고!?”

“그건 저희도 예상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처치를 한 사람이 의사고 팀 덕터 말로는 그 사람이…….”

“닥쳐!!!”

김서현은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그놈이 의사인지 아닌지 당신이 봤어? 그 사람 의사 확실해? 면허 확인했냐고!”

“그건 아닙니다만.”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야?”

“…….”

“하여간. 당신들 각오해.”

도끼눈을 뜨고 난리를 치는 김서현의 말에 의사들 사이에 있던 태경의 동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말한 건 모르겠지? 하긴 태경이 이름도 모르는데 나만 입 닫으면 끝까지 모를 거야.’

태경이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이 생길까 싶은 동기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 * *

“흐흑! 저도, 저도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의료용이라던 헬기는 일반 헬기였고 젊은 여자는 흐느끼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의료용 헬기가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송을 보고 가려던 태경이 상황을 알기 위해 경호팀장에게 물었다.

“분명 본사에서 의료용 헬기라고 했는데 왜 이게 온 건지…….”

모르기는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태경과 의진이 여자를 진정시켰다.

“저기요. 울지 말고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누가그룹에서 온 분 맞죠?”

“아, 네.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의진이 주머니에서 휴지를 건네며 묻자 젊은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려 했다.

“누가그룹 본사에서 온 사람 맞아요.”

태경의 눈동자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여자가 입고 있는 복장과 신발, 바닥에 보이는 커다란 키트 상자 까지.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수진 씨, 간호사죠?”

확신한 태경이 이름표를 보며 물었다.

“네, 맞아요. 본사 의무실 간호사예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의무실 팀장님은 오늘 전무님 외부 일정에 동행하셨고, 전 당직이라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는데 갑자기 회장님 쓰러지셨다고 해서 응급 키트 챙겨서 얼른 옥상으로 가라고 해서 오게 됐어요.”

이수진은 하소연하듯 자신의 상황을 쏟아 냈다.

“원래 회장님 쓰러지시면 의료용 헬기가 가는 건데 왜 이렇게 된 건지, 저도 올해 입사해서 아직 베우는 단계고 신입이라 잘 몰라요.”

그제야 왜 아까 헬기 문이 열릴 때 이수진이 울고 있었는지 이해됐다.

갓 취업한 신입 간호사를 회장인 김건형에게 가라고 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것도 멀쩡한 상태도 아닌 쓰러진 상태라니 말이다.

직업군을 망라하고 뭐든 신입은 떨리기 마련이다. 놀라고 떨리는 마음은 당연했다. 인턴에게 쓰러진 병원장을 맡긴 것과 같은 이치였다.

“참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날이 아닌가 보네.”

전화를 끊은 경호팀장이 한껏 짜증을 내며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된 거래요?”

“회장님이 개인 헬기가 총 다섯 대가 있는데 그중 한 대가 의료용 헬기에요. 그런데 그동안 대기 탔던 심장이식 환자가 심장을 기증 받게 돼서 의료용 헬기가 심장 가리러 갔고 보시다시피 일반 헬기가 온 거랍니다.”

병원에 있어야 할 헬기가 없으니 본사 헬기가 오게 됐고 의사도 없이 신입이 오게 된 것이었다.

“이거 의사도 없이 회장님 이송하게 생겼네. 젠장!”

팀장이 답답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태경이 의진과 함께 자연스럽게 헬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팀장을 향해 말했다.

“의사가 없긴 왜 없습니까? 여기 두 명이나 있는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긴요. 헬기에 탑승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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