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64화 (64/472)

64화. 창과 방패 그리고 썩은 동아줄

“저기, 수 쌤 오시네.”

“수 쌤?”

접수처에 있는 직원들이 손으로 한쪽 손을 가리며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임정숙 간호사를 불러 댔다.

“무슨 일인데 날 애타게 찾아.”

“저거 보세요. 저거?”

“뭐가 왜?”

“저기요?”

접수처 직원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최모나가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모나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보며 제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최모나 선생님 말이에요.”

“아까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김 선생님 진료실로 직행하더니 1분도 안 돼서 나온 뒤로 저러고 있어요.”

“1분이 뭐야, 정확히 들어가자마자 30초도 안 걸려서 바로 나왔어.”

“최 선생님 표정 보니까 뭔가 심오함이 느껴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일은 무슨 일?”

“응급실에서 치매 할머니 진료보다 스팀 올랐다면서요.”

“맞아요. 그래서 수 쌤한테 누가 그랬냐고 그러면서 막 뭐라 뭐라 했다던데.”

병원이 이런 곳이다. 그 크기가 작든 크든 병원만큼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곳도 드물다. 특히나 소문의 대상자가 직원일 경우 발 없는 말이 천 리가 아니라 날개를 달고 건물 지하까지 순회한다.

‘고새 누가 또 말했나 보네.’

그때 중심을 잡는 게 수 간호사였다. 직원들의 궁금증에 일일이 답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만 키우는 꼴이기에 적당히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거 아니야. 환자 진료 관련해서 의견 주고받은 거야.”

“근데,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최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죠.”

“솔직히 환자 불만 카드도 제일 많이 받잖아요.”

“그건 맞지. 그래서 김 선생님 오기 전에 팀장님도 최 선생님 내보내려고 했잖아.”

“됐어. 그만들 해. 내 일 아니라고 남 얘기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렇죠.”

“궁금할 것도 많다. 303호 환자 보험 서류 해 달라는 거 했어? 202호 환자 건은?”

“거, 거의 다 됐어요.”

“우리 예쁜 직원분들 어서 일이나 하세요.”

임정숙 간호사는 최모나를 향한 직원들의 관심을 적당히 눌렀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 최모나가 태경의 말을 순순히 들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괜히 내가 다 조마조마하네.’

* * *

5분 전-

똑똑

“네, 들어오세요.”

응급실에서 임정숙 간호사에게 정황을 듣고 난 최모나는 곧장 태경의 진료실을 찾았다.

“어, 최 선생. 어쩐 일이야?”

“바쁘십니까?”

“왜?”

“지금 꼭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근데 어떡하지. 나랑 대화하려면 제네바 선언 외워야 하는데…….”

태경이 이찬희와 수술방에서 나온 후 출근한 최모나를 향해 제네바 선언에 대해 물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최 선생. 제네바 선언은 좀 외웠고?”

‘안 외웠습니다.’

지독하게 묻는 태경도 대단했지만 그 못지않게 최모나도 지독하게 외우지 않았었다.

“예?”

“뭘 예야. 나랑 대화하려면 제네바 선언 외워 와.”

“……!”

“뭐해. 얼른 나가.”

* * *

‘외우자. 까짓것 내가 외우고 만다.’

조금 전 일을 생각하던 최모나는 휴대폰을 주시하며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술사처럼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진료실 문을 다시 노크했다.

“선생님. 최모나입니다.”

“들어와.”

철컥-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외워 오기 전까지 대화 안 한다고.”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의 스승에게……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

태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제네바 선언이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거봐. 이렇게 금방 외울 수 있는데 왜 안 외웠어. 잘했어.”

“이제 말해도 되겠습니다.”

“그럼.”

“아까 임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선생님께서 지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아. 내가 지시했어.”

“이러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왜 저에게 노인이랑 애들 환자만 보라고 하신 겁니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노인이랑 어린애들 피해서 진료 봤던 최 선생의 행동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거지?”

“그, 그건…….”

지시에 대한 부당함을 전하려 했던 최모나는 태경의 말에 머뭇거렸다.

“최 선생, 저번 주에 Herpes zoster(헤르페스, 대상포진) 환자에게 했던 말 기억 나?”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프다며 우는 환자에게 내가 의사라서 어떻게 아픈지 잘 아고 있다, 그러니 그만 울어라 라고 답했어.”

“그 말이 뭐가 어떻다고 이러시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최 선생 헤르페스 걸려 본 적 있어?”

“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환자에게 그 통증을 잘 안다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뭐가 잘못됐습니까?”

“좀 더 환자를 이해하면서 진료할 수도 있는 거잖아.”

“선생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하신 건지 알 것 같습니다.”

“내 의도가 어떤 건데?”

두 사람은 팽팽한 대화가 긴 랠리처럼 이어졌다.

“의사가 실력만 있으면 됐지 친절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력! 그래서 실력은 있고?”

“지금 저와 비슷한 년차의 의사들과 비교했을 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자는 환자일 뿐이지 제가 의사라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까지 공감하며 보듬어 줄 필요도 없습니다.”

“최모나! 너 이 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지금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던 태경이 버럭 소리를 높였다. 어찌나 그 소리가 컸던지 진료실 밖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환자를 이해하는 게 의사의 기본이야. 너 그거 몰라? 그리고 뭐 실력? 내 앞에서 실력을 운운해?”

단 한번이라도 태경과 함께 일한 사람이라면 그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태경은 달랐다.

자신은 노력하는 사람일 뿐 실력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최모나의 삐딱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일부러 실력을 들먹였다.

“네가 나보다 실력이 좋아?”

“외람되지만 선생님은 많이 배우셨고 일반 사람들보다 뛰어난 경우이기 때문에 저랑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최모나. 모든 걸 네 기준으로 합리화하려 하지 마.”

“전 의사로 일하면서 환자들의 아픔까지 공감하며 감정노동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감정노동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냥 환자만 잘 치료하면 되지 않습니까? 전 환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면서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언제 환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라고 했어?”

“그건 아닙니다만…….”

“그저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잘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은 안 들어?”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까 제네바 선언 외웠지? 거기에 분명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라고 했어. 내 말 틀려?”

“틀린 건 아니지만 환자에게 친절하고 그들을 이해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

벽창호다. 벽창호도 이런 벽창호가 없다. 게다가 강적이다.

‘돌겠네.’

도대체 이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태경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최모나. 너 왜 의사가 됐어?”

“그건 할아버지께서 군인 집안의 명맥을 이어 국민을 지키는 일을 해야 하므로 군인이 되라고 하셔서 전 그럴 수 없다. 대신 국민들을 아픔으로부터 지키겠다고 해서 의사가 됐습니다.”

“분명 나한테 그랬지?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맞지?”

“맞습니다.”

“그 말에 책임져.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그것 또한 의사가 갖춰야 할 실력 중 하나야.”

“지금 하신 말 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인정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학습해.”

“부당합니다.”

“부당? 그 부당 누가 정하는데? 내가 원장이야.”

태경이 처음으로 자기 입을 통해 ‘원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최모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른 병원의 원장들처럼 권력을 상징하는 게 아니었다.

직원들을 끌어 주고 환자들을 잘 케어하는 진정한 수장이 되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그리고 병능제 후배를 끌어 주는 것 또한 수장의 할 일이었다.

“아픔으로부터 국민들 지키고 싶다고 한 말 지켜. 지금 최 선생은 그 말 못 지키고 있어.”

“그럼 전 내일도 모레도 노인과 애들 환자만 봐야 하는 겁니까?”

“전부는 아니지만 주로 노인과 애들을 많이 보게 될 거야.”

노인과 애들을 최모나에게 전담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노인과 애들은 좀 더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소통하며 진료해야 했기 때문이다.

최모나의 병능제를 허물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었다.

“언제까지입니까?”

“네가 달라질 때까지. 환자를 단순한 일거리가 아닌 네 마음으로 보기 시작해 봐.”

“전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입니다.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럼 억지로라도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어. 마음먹어서 안 되는 건 없어.”

“전 좋은 의사가 아닙니다.”

“나도 좋은 의사는 아니야. 다만 환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지.”

말발로는 태경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불필요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은 건지 최모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 정도 노력은 한번 해 볼 수 있잖아.”

태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최모나를 쳐다봤다.

“나한테 할 말 더 있어?”

“제가 무슨 말을 한다 한들 선생님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거 아닙니까?”

“물론이지.”

“그럼 없습니다.”

“잘 생각했어. 나가 일 봐.”

창과 방패처럼 끝없이 이어지던 두 사람의 설전이 드디어 끝이 났다.

“그리고 일하면서 매일 지금 나랑 나눴던 대화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전 그렇게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최모나?”

“예?”

“환자에게 의사는 동아줄이라고 생각해. 환자가 잡을 수 있는 줄은 오직 의사뿐이거든.”

“…….”

“우리 적어도 썩은 동아줄은 되지 말자.”

별다른 말없이 꾸벅 인사를 하는 최모나를 향해 태경이 문을 열던 그때였다.

철컥-

“어머.”

“깜짝아!”

“아오. 팀장님 밀지 마세요.”

최 팀장과 직원 몇몇이 문 앞에 붙어 있다 넘어질 뻔한 것이다.

“다들 뭐하시는 거예요? 얼른 가서 일들 하세요!”

멀찍이서 상황을 주시하던 임정숙 간호사가 빠르게 다가와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팀장님까지 왜 그러세요?”

“그게 궁금해서…… 최 선생님,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저도요. 저희는 그만 일하러 가 볼게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최모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민망한 직원들도 재빨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괜찮으세요? 아까 큰 소리 엄청 나던데. 다들 선생님 그렇게 화난 목소리 처음이라고 놀랐어요.”

“나는 괜찮은데 거북이 2호는 안 괜찮겠죠.”

“1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2호도 달라지겠죠?”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최모나가 달라질지 아닐지 태경은 장담할 수 없었다.

계속 시도는 하겠지만 결국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최모나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뭔가 느끼는 점이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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