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68화 (68/472)

68화. Tourette 청년

태경이 진료실로 들어간 사이 임정숙 간호사에게 카톡을 받은 의진이 급히 병원으로 복귀했다.

“그러니까 김건형 회장과 김서현 씨는 계속 기다리는 중이예요?”

“예. 다른 병원 가도 된다고 했는데 저기 보이시죠?”

접수처 직원은 소심하게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렇게 비서 앉혀 놓고 차에 가서 대기 중이래요. 그리고 아까 원장님 카리스마 엄청났어요.”

“아, 그래요? 그래도 김서현 그 여자 보통 아닌데 큰일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정 쌤도 아시는구나? 그 여자 종종 구설수도 있고 보면 은근히 트러블 메이커잖아요.”

평소 연예계와 셀럽들 가십에 관심이 많은 직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아마 그 여자 도망갔을 거예요.”

“도망을 왜? 아까 그렇게 당당했다면서요.”

“그러니까 도망을 가죠. 그 성격에 사과하기 얼마나 낯부끄럽겠어요.”

“풋!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맞다!”

한창 대화를 주고받던 접수처 직원이 별안간 박수를 크게 치며 크게 놀랐다.

“아오 놀래라. 정 쌤도 놀랬죠? 영희 씨 왜 그래.”

“죄송해요. 그게 생각났어요.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 사람이라뇨.”

직원의 호들갑에 의진도 다른 직원도 영문을 알 수 없어 의아했다.

“그 왜 병원에 장난 전화한 사람 있었잖아요.”

“아~ 그 전화 받으면 욕하던 남자……어머!”

“고윤기 환자가 그럼?”

“맞아요.”

의진과 또 다른 직원은 직원이 말한 그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새벽마다 비슷한 시간에 전화를 걸어 욕을 하고 끊는 일이 빈번했다. 그 때문에 간호사와 직원들이 불쾌감을 드러냈고 최 팀장도 범인을 잡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그 환자분 Tourette이라고 했죠?”

“네, 김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의진은 이제야 고윤기가 왜 그렇게 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진료실 문을 바라봤다.

‘그동안 병원에 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 * *

“회장님, 계속 기다리시겠습니까?”

운전석에 앉아 있던 경호팀장이 룸미러를 보며 회장에게 물었다.

“기다려야지.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깝잖아.”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몇억짜리 차에 편히 앉아 있는데 무리할 게 뭐 있겠나. 자네는 내가 김태경이를 왜 찾아왔는지 아나?”

“글쎄요. 제가 회장님의 깊은 의중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다만?”

“회장님의 목숨을 살렸다니 직접 보러 오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네도 능구렁이가 다됐군. 아까 저 친구 눈빛이 보통이 아니야.”

“눈빛이 아주 장난이 아니죠? 특히 환자 앞에서는 더 거침이 없더군요.”

“하하하! 아주 재미있는 물건이야.”

“김 선생 말씀입니까?”

“그래. 아까 보지 않았나? 대통령이 와도 안 된다고. 우리 와이프 말고 나를 거절한 사람이 저 친구가 처음일세. 세상에 나를 다 혼내는 사람이 있다니 참나.”

“김 선생이 생각보다 깡다구가 좋습니다.”

“깡다구인지 허세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

“회장님?”

병원장에게 메시지를 받은 경호팀장이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만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나 보군.”

“네, 병원장님이 그만 복귀하시라네요. 다른 건 몰라도 건강 문제이니 오늘은 이만 가시죠.”

“…….”

“이 비서에게 진료 취소하고 오라고 전화하겠습니다.”

* * *

“우읍!”

“죄송합니다. 선생님.”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고윤기와 할아버지는 태경에게 사과부터 전했다.

“두 분이 왜 사과를 하세요.”

“저희 때문에 소란스러워진 것 같아서요.”

“전혀 아니니까 그런 마음 갖지 마세요. 자 우리 윤기 이쪽으로 앉아 볼까? 보호자님도 함께 앉으세요.”

태경은 따뜻한 눈빛으로 고윤기 맞은편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읍! xxx.”

태경은 아까 고윤기를 보자마자 그가 투렛 신드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투렛 신드롬(Tourette Syndrome, 투렛 증후군)은 운동 틱과 음성 틱이 함께 보이며 1,500명당 1명 정도로 발명하는 신경질환이자 희귀질환이다.

고윤기는 음성 틱과 운동 틱을 함께 갖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욕설은 음성 틱이었으며, 리듬을 타듯 살짝 올라가는 어깨는 운동 틱이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태경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오른쪽 어깨를 보며 짐작했다.

“윤기야. 괜찮으니까 입에서 손 내려 볼래? 괜찮아.”

태경의 말에 고윤기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욕을 하는 것도 어깨를 들썩이는 것도 모두 다 자기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의지 밖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튀어나오는 욕설 때문에 아예 입을 막고 말을 길게 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여기서는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있어도 돼. 괜찮아.”

“감사합……악! 시x 죄송 악! 합니다.”

손을 내린 고윤기는 감사와 죄송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제부터 죄송하다는 소리 하면 선생님 진료 안 봐 준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다 해. 알았지?”

“네, 악! 감사해요.”

“자! 그럼 윤기는 오늘 어디 진료를 보러 왔니.”

“선생님, 우리 윤기 두피에 뭐가 생겨서 왔습니다.”

“그래요? 제가 한 번 좀 볼게요. 윤기야, 모자 좀 벗길게.”

“네, 악!”

후드 모자가 벗겨진 고윤기는 고개를 반쯤 돌리더니 뒤통수 부분을 가리켰다.

“선생님…… 악! 그게 처음엔 시xx 작더니만 악! 점점 커졌어요.”

“그것 때문에 윤기가 참 불편해했어요. 병원을 오고 싶어도 마음 편히 올 수가 없으니 계속 참다 저래 됐답니다.”

“제가 좀 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태경이 고윤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세히 보고 만져 보니 탁구공보다 좀 더 큰 크기에 물컹거리는 덩어리가 만져졌다.

‘정말 꽤 크네.’

물컹거리는 것이 이동하지 않았고, 두피에 생긴 혹의 정체는 낭종이었다. 사실 아까 고윤기를 마주했을 때부터 다섯 번째 바이탈이 느껴지지 않아 그리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고 짐작했었다.

투렛을 가진 그가 낭종이 아닌 큰 질병마저 걸렸다면 환자와 보호자 모두 힘들었을 것이다. 태경은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크기가 꽤 크네.’

과거 다른 환자의 등에 생긴 낭종을 몇 번 들어낸 적이 있지만, 두피에 이렇게 크게 생긴 낭종은 처음 봤다.

“윤기야, 혹시 아프진 않았니?”

“악! 네, 아프지 않았어요.”

큰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지금 두피에 생긴 혹은 두피 낭종이야.”

“선생님, 혹시 위험한 건가요?”

“아닙니다, 보호자분. 초음파를 보겠지만 일단 위험한 건 아니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임 선생님 쏘노(Sonography, 초음)준비해 주세요. 시스트(Cyst)좀 자세히 볼게요.”

“네, 선생님.”

* * *

초음파로 주변에 조심해야 할 것과 배출구를 확인한 태경은 고윤기와 함께 진료실과 붙어 있는 처치실로 이동했다.

“윤기야, 이제 낭종을 제거할 거야. 여기 엎드려 누워 봐.”

“네, x발! 선생님.”

처치실 배드에 앉아 있던 고윤기는 태경의 말을 듣고 누우려다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악!”

“왜? 어디 불편하니?”

“아니, 악! 선생님……으악!”

“그래. 천천히 편하게 말해.”

“시xxx! 저 다시 입 막아도 악! 될까요?”

“입을?”

고윤기는 별안간 다시 입을 막으면 안 되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네가 너무 힘들잖아.”

태경은 고윤기가 입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무는 걸 안 했으면 했다. 소리가 나갈까 봐 힘껏 물다 보면 치아는 물론 턱에도 무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전 괜찮……악! 아뇨. 실은 선생님이 불편하실 거 개xx 같아서요.”

“혹시 네 소리 때문에 내가 불편할까 봐 그런 거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고윤기였다. 자신의 상스러운 음성 틱으로 인해 태경이 진료 시 힘들면 어쩌나 싶었다.

물론 입을 막으면 불편했다. 입속 끝까지 수건이나 손을 억지로 밀어 넣는 탓에 가끔 목젖에 걸리기도 했고 때때로 숨을 쉬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소리도 아니고 계속 욕을 듣게 하는 게 고윤기는 미안했다.

“욕하는 소리가 신경 쓰이는구나?”

“악! 네.”

“그래 알았어.”

고윤기는 그 말을 입을 막아도 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간 할아버지가 두고 간 새 수건을 입에 물려하자 태경이 자연스레 수건을 옆으로 치웠다.

“악……!”

그러더니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을 던졌다.

“윤기야, 너 혹시 노래 좋아하니?”

“노래요?”

“응. 노래. 좋아해?”

“악!”

“그럼 제일 좋아하는 두 곡만 알려 줄래?”

갑자기 웬 노래인가 싶었지만 일단 고윤기는 휴대폰에 있는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내밀었다.

“진짜 딱 두 곡만 있네. 이게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네.”

“임 선생님, 진료실과 처치실에 볼륨 좀 높여서 이 노래 틀어 주세요.”

“진료실과 처치실에 노래를요?”

수술실도 아니고 진료실과 처치실에 노래를 튼 적은 없었기에 임정숙 간호사는 의아했다.

“네. 지금 바로 틀어 주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곧이어 진료실에는 영화 위대한 쇼맨의 ost인 This Is Me가 흘러나왔고, 진료실에는 비와이라는 가수의 The Time Goes On이 흘러나왔다.

“노래 듣기 좋은데? 이제 윤기도 나도 우리 둘 다 불편한 거 없는 거다.”

“……!”

고윤기는 태경의 행동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병원을 다니면서 자신의 증상을 생각하며 이토록 신경 쓰는 의사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서 나오는 대로 마음 편하게 소리 쳐도 돼. 알았지?”

태경이 진료실에 노래를 튼 이유는 고윤기의 입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자! 이제 낭종 제거 시작할게. 불편하거나 아프면 손만 살짝 들어.”

“악! 네, 선생님.”

* * *

화장실을 다녀온 고윤기의 할아버지는 이쪽저쪽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접수처로 향했다.

“저기 혹시 병원 안에 돈 뽑는 기계가 있나요?”

“네, 왼편 끝으로 쭉 가셔서 코너 돌아가시면 바로 있어요.”

“감사합니다.”

코너를 돌자 바로 ATM기계가 보였지만 이미 사용 중인 사람들이 있어 옆에 있는 의자에 잠시 앉기로 했다.

‘할멈 오늘 운기 데리고 병원 왔어.’

가죽이 헤진 낡은 지갑 속 죽은 부인과 어린 윤기의 사진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의 귓가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얼마 주면 돼? 7만 5천 맞나?”

“됐어. 그냥 7만 원만 줘. 너 이제 괜찮냐?”

“어. 수액 맞고 나니까 존x 멀쩡. 이틀 동안 위 미치게 아파서 시발 위암 아닌가 하고 개 쫄렸는데 위경련이라니까 안심되더라.”

“야, 무슨 21살이 위암이야.”

“모르는 소리. 요즘은 젊은 사람도 암 걸리는 사람들 있어. 맵고 자극적인 거 자주 먹지 말라고 아까 의사가 그랬잖아.”

“그러니까 맵찔이가 맵부심 좀 그만 부려. 뭔 놈의 사망 단계를 처먹고 지랄이세요.”

“진짜. 사망 단계 먹고 사망할 뻔. 조심해야지.”

“드립 존 노잼. 맞다! 아까 수납하다 너도 봤지?”

“그 계속 욕하던 남자?”

돈을 인출하며 대화를 하던 남자들의 주제가 고윤기로 바뀌었다.

“응. 저게 그거 아니냐? 하! 뭐라고 하더라. 저번에 다큐에서 봤는데.”

“틱 장애.”

“어. 맞어. 아까 그 사람 보는데 좀 안됐더라. 저것도 병이래.”

“구라 아니야? 멀쩡한 사람이 욕만 하는데 병인 게 웃기잖아. 어떻게 욕하는 게 병이야.”

“뭐가 웃겨.”

남자들의 대화에 할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점점 숙였다.

“예를 들어 누가 나한테 개새끼야 라고 했어. 그럼 나도 뭐 이 새끼야? 라고 같이 받아치면서 욕을 하잖아.”

“그렇긴 하지.”

“그만큼 분노가 차오를 때 나오는 게 욕인데 어떻게 시도 때도 없이 욕이 막 튀어나오냐?”

“오! 묘하게 설득력 있네.”

“내 말 맞는다니까. 그게 다 의지 박약이야. 그리고 쇼일 수도 있잖아. 막말로 싫은 사람이 있다 쳐. 내가 말하다. 악! 시발놈아. 제가…틱 악!……시발! 틱 장애가 있습니다.”

“아까 그 남자랑 존똑인데. 큭큭! 개 웃기네.”

“그리고 저런 이상한 사람 조심해야 돼. 괜히 조현병인가 그런 거일 수도 있어.”

“지랄을 해요. 됐고. 애들이 롤 들어오라는데?”

“오랜만에 정글 한번 돌아 줘야겠네. 피방 가자.”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던 남자들은 웃고 떠들며 뒷문으로 나갔다.

퍽- 퍽-

이미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할아버지는 손자를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에 가슴이 매어진 듯 명치를 때리며 혼잣말을 했다.

퍽-

“아닙니다. 우리 윤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할아버지는 터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불쌍한 내 강아지…….”

그렇게 진료비를 찾고 진료실 앞에 다다른 할아버지는 순간 걸음을 멈칫했다.

“……!”

진료실 안에서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순간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를 삼키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손자를 위해 수백 수천 번을 틀어 놓은 노래가 진료실 안에서도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난 용감해! 당당해!

난! 내가 자랑스러워.

THIS I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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