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69화 (69/472)

69화. 용기

“임 선생님?”

“네.”

태경이 사인을 보내자 임정숙 간호사가 고윤기 주변에 베개를 대 줬다.

‘꽤 오랫동안 커졌을 텐데…….’

태경은 낭종을 자세히 살폈다. 이러한 낭종의 경우 낭종의 벽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재발하므로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국소마취를 하고 낭종의 벽을 따라 절개를 한다.

‘어쩔 수 없이 잘라야겠는데.’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낭종 주변을 따라서 머리카락을 잘라야 했다.

“저기, 윤기야?”

태경이 조심스럽게 고윤기를 불렀다. 20살. 외모를 신경 쓸 나이인 젊은 환자에게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는 말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낭종에 국소마취를 해야 하는데, 그 전에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야 하는데 어쩌지?”

“선생님 악! 제가 인물이 좋아서……미x! 괜찮아요.”

마음이 한결 편해진 고윤기는 농담을 던지며 도리어 태경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대신 너무 많이 자르진……악! 마세요.”

“그래 최대한 노력해 볼게.”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면도칼을 이용해 낭종 주변으로 너무 넓지 않게 환자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제 마취할 거야.”

“선생님 안……아프게 악! 놔 주세요.”

“좀 따끔할 거야.”

이어 태경이 낭종 주변에 국소마취를 하기 시작했다. 낭종의 경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으므로 우선 그 주변만 마취하기로 한다.

리도카인(lidocaine, 국소마취제로 주로 쓰이나 항부정맥제로도 쓰이는 약물)을 주사 하고 다시 한번 당겨 봐서 혈액이 주사기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다.

혈액이 빨려 들어오지 않으므로 혈관을 찌른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국소마취제를 넣는다.

“으악!”

씩씩한 마음과 달리 은근히 겁이 났던 고윤기는 마취 주사에 베갯잇을 꽉 쥐며 외마디를 내뱉었다.

“잘 참았어.”

“제가 참을성이 악! 좋아요.”

“그러게 진짜 잘 참네.”

태경은 고윤기를 칭찬하며 마취가 된 것을 확인하고 멸균 장갑을 착용했다.

“선생님, 구멍포 덮을까요?”

사인을 받은 인정숙 간호사가 낭종이 있는 곳만 보이도록 구멍포로 덮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부분까지 포비돈으로 충분히 소독을 해 준다.

“선생님? 이제……악! 아픈 건 xx! 없는 거죠?”

“그게 마취가 좀 더 있을 수 있어.”

“악! 마취 또 맞기 싫은데…….”

투덜거리는 고윤기를 보며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포셉 주세요.”

“네, 선생님.”

우선 낭종과 두피가 붙어 있는 경계 부분을 작은 모스키로 포셉(mosquito forcep, 가위 모양의 겸자)으로 살을 잡아서 들어 올린다. 그리고 낭종이 터지지 않게 가위로 피부를 절개한다.

그러자 낭종의 벽이 보이고 그 벽을 따라 살을 당기다가도 낭종을 당기면서 그 벽을 두피와 분리해 나간다.

‘예상이 맞았네.’

역시나 겉으로는 작게 보이지만 꽤 커서 두피 근육까지 들어가 있었다.

태경은 계속해서 날렵한 손길을 움직이며 터지지 않게 안으로 절개해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악! 선생님……아파요. 진짜 아파요.”

고윤기가 머리를 움찔하며 아픔을 호소했다. 안다. 지금 그가 아프다는 걸 태경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윤기야 좀 아프지?”

“네, 악!”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환자가 엄살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데 지금 아픔은 진짜였다. 감기로 인해 주사를 맞을 때도 따끔하고 아픈데 하물며 절개된 살에다가 주삿바늘이 찌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낭종의 경계를 겉에서는 알 수가 없으니 부분적으로 절개해 나간다. 그러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그때마다 좀 더 마취를 하고 낭종의 벽을 모두 들어낼 때까지 이렇게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환자분 진짜 잘하고 계세요. 정말 남자답고 씩씩하네요.”

노련한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이 마취 주사를 놓자 칭찬을 섞어 가며 고윤기를 달랬다.

“거즈 충분하죠?”

“그럼요.”

두피에 혈관이 많은 편이라 절개를 해 나갈 때마다 혈액이 흥건하게 나온다. 그때마다 정 간호사가 멸균된 거즈로 닦아 주며 계속 진행해 나갔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거의 바닥의 벽을 들어내고 이제 낭종의 몸체가 모두 밖으로 나왔다.

“악! 개xx!”

이제 반대쪽을 하려고 하는데 고윤기가 음성 틱과 함께 손을 들며 아파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다.

“윤기야, 거의 다 했거든. 조금만? 금방 끝나.”

“못 일어나게 잡아 주세요.”

“우리 환자분 일어나시면 안 돼요. 거의 다 됐어요.”

임정숙 간호사가 상체를 잡은 사이 태경이 반대 쪽 낭종을 모두 절제했다. 생각보다 낭종이 커서 환자의 두피 근육도 일부 절개됐다.

“진짜 마무리할게.”

낭종을 깨끗이 떼어 낸 태경은 마무리에 들어갔다. 항생제를 처방하겠지만 혹시 몰라 떼어 낸 자리를 다시 소독했다. 그리고 3땀 정도 수쳐(suture, 봉합)를 하며 모든 처치가 끝났다.

“다 끝났다. 고생했어.”

“아닙……악! 니다. 이, 이게……시x! 이게 뭐예요?”

베드에서 일어나던 고윤기는 떼어 낸 낭종을 보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순간 고개를 돌리다 천천히 다시 쳐다봤다.

“설마 이 큰 덩어리가 악! 제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맞아. 정확히는 윤기 두피에서 나온 거지.”

“아니, 뭐가 이렇게 악! 생겼어요?”

고윤기의 반응은 당연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피를 가득 머금은 비곗덩어리 같기도 했고, 영화에 나오는 에일리언 살점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징그럽지?”

“네.”

의료인이야 아무렇지 않아도 일반인이 실제로 본다면 충분히 놀랍고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중간에 아팠을 텐데 잘 참았어.”

“아니에요. 악! 시x!”

“윤기야, 잠깐만!”

“네?”

태경은 습관적으로 뒤집어 쓴 고윤기의 모자를 천천히 벗겼다.

“잘생긴 얼굴 왜 자꾸 가려. 가리지 마.”

“그게……악!”

“오늘 네가 병원에 오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알고 있어.”

태경은 고윤기에게 위로가 아닌 응원을 전했다. 힘든 이에게 단 한 번의 말뿐인 응원이 크게 소용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네가 당당했으면 좋겠어. 오늘 용기를 냈던 것처럼 말이야. 너는 남들과 다른 게 아니라 더 특별한 사람이야.”

어린 고윤기가 더 이상 스스로 고립되기보다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랐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났던 비슷한 또래 CPRS 환자가 떠올라 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사람은 때론 자신을 믿어 주는 단 한 명의 마음만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얻기 때문이다.

“선생님감사합니다!”

고윤기는 숨도 쉬지 않고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아주 빠르게 말을 붙여 인사를 전했다.

“악!”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증상 없이 온전히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고맙다.”

“간호사 선생님도 악! 감사합니다.”

“치료받느라 애썼어요.”

“네……악!”

그 뒤 짧게 답한 고윤기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수첩을 꺼내 급하게 무언가를 써 내려 갔다.

“이거……악!”

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 태경에게 적은 종이를 찢어 건넸다.

“나중에 xx! 꼭 읽어 보세요. 악!”

“그래. 꼭 읽어 볼게.”

* * *

“보호자분 오래 기다리……보호자분?”

처치실에서 진료실로 나온 임정숙 간호사는 의자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할아버지를 마주했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 휴지요. 손자분 걱정 때문이시라면 이제 염려 놓으세요. 처치 잘 끝났어요.”

“그래요.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할, 할아버지 악!”

“우리 윤기 애썼다.”

할아버지는 처치실에서 나온 고윤기를 토닥이며 태경에게 시선을 옮겼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얼마 안 됐는데요.”

“낭종을 제거하느라 주변 머리카락을 조금 잘랐어요. 낭종은 깨끗이 잘 제거됐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할아버지는 태경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수납하시고 처방전 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은 고윤기의 손을 잡고 임정숙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진료실을 나갔다.

“맞다! 쪽지 읽어 보랬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태경은 가운 주머니에 넣어 놨던 고윤기의 쪽지를 꺼냈다.

-선생님, 저는 이방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시작된 틱으로 이 세상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거든요.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길을 지나가는 처음 본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전 고윤기가 아닌 정신 나간 놈, 병신, 장애자 새끼, 욕쟁이 정신병자라고 불렸어요. 오직 저희 할아버지만 절 고윤기로 봐주시며 사랑을 주셨어요. 내가 원해서 걸린 병도 아닌데 억울하고 화가 났어요.

그렇게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았어요. 할아버지 외에는 나를 이해해 줄 사람도 알아줄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머리에 혹이 점점 커지고 자는 게 힘들어져 참다 참다 용기를 내서 병원에 오게 됐죠.

어느 병원이 괜찮은지 골라서 온 게 아니라 늦게까지 하는 병원이라서 선택 여지가 없었어요. 사람들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병원에 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요.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고 평범한 사람처럼 편견 없이 대해 준 게 처음이었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열심히 살게요. 할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요. 하고 싶던 공부도 다시 도전해 보려고요.

김태경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급하게 써 내려 간 글자는 정갈함이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그 어떤 종이 위에 쓰인 편지보다 진심이었다.

“작사가가 꿈이라더니 글을 잘 쓰네.”

태경은 오늘 고윤기의 낭종을 치료했지만 진짜 치료한 곳은 상처받았던 그의 마음이었다.

“어디가 좋을까. 여기가 딱이네!”

태경은 뿌듯한 마음으로 모니터 아래쪽에 쪽지를 붙인 뒤 책상 위 전화기를 들었다. 임정숙 간호사에게 외래환자의 여부를 묻기 위함이었다.

“외래 끝인가요?”

-네, 선생님. 외래 환자 없어요.

“그럼 전 회진 갔다 응급실 넘어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철컥-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온 태경이 순간 움찔하며 제자리에 멈췄다.

“……!”

“이제야 진료가 끝났나 보군.”

당연히 갔을 거라 생각했던 김건형이 문 앞에 딱 버티고 서서 태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내 차례 맞겠지? 설마 더 기다리라는 말은 하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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