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7년 이하의 징역
“혹시 김 선생님 안 오셨어?”
“아니요. 아직 안 오셨어요.”
“그래.”
병동 스테이션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접수처로 향했다.
“선생님 봤어? 응급실 들어가셨나?”
“아니요. 수 쌤. 김 선생님 외래 환자 보고 계세요.”
“외래 마감했잖아.”
“그게 그 사람이 다시 왔어요.”
“다시 오다니 누가?”
“김건형 회장이요.”
“뭐! 아까 비서가 취소하고 갔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죠. 그런데 조금 아까 정문 앞 찻길에 차가 멈추더니 다시 내리던데요?”
“그럼 지금 진료실에 그 회장님이 있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어허!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접수처 안쪽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최 팀장이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에 합류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요?”
“그럼요. 잘하면 우리병원이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보통 일이 아니죠.”
“병원이 없어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별로 귀담아 듣지 않고 모니터를 응시하던 임정숙 간호사는 병원이 없어진다는 소리에 바로 반응했다.
“내가 조금 전에 김건형 회장에 대해 조사를 좀 해 봤어요. 근데 이 양반이 그냥 재벌이 아니란 소립니다.”
“아이고, 우리 팀장님 또 사족 시작하셨네.”
“아 좀 들어 보라니까. 아주 불도저 같은 성격에 자신이 마음먹으면 황무지에 백화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고 본인이 원하는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꼭 한답니다.”
“그거야 돈이 많은 재벌이니까 그렇겠죠.”
“무슨 재벌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의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거야. 다들 아까 기억하죠?”
도대체 최 팀장이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캡틴이 김 회장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잖아요.”
“거절이 아니라 원칙대로 하겠다는 말을 한 거죠.”
“에이. 임 선생 그게 아니죠. 세상 어느 사람이 김 회장이 하자는 말에 안 된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팀장님 말은 김 선생님께서 진료를 먼저 안 봐 줘서 저 회장님이 기분이 언짢아 병원을 없애게 한다는 뭐 그런 소리네요.”
“바로 그거지. 그러지 않고서야 시간이 금인 양반이 이 새벽에 왜 굳이 차를 돌려서까지 다시 왔겠어.”
“우리 팀장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니에요? 소설 쓰시네.”
“그러게. 나 3층 병동에 좀 다녀올게.”
“네, 수 쌤. 다녀오세요.”
최 팀장의 열과 성을 다한 이야기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니까. 다들 왜 그래요? 임 선생?”
* * *
‘회장님, 김태경 선생이 근무하는 곳을 알아봤습니다.’
‘그래. 어디에서 일하고 있나? 일단 우리 병원은 제외하고 신화대인가? 아니면 태선대?’
‘둘 다 아닙니다.’
‘그러면 주선대겠군.’
‘그것도 아닙니다. 메이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디지?’
‘서울 끝자락에 있는 오래된 우리병원이란 곳에서 근무 중입니다.’
비서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김건형은 경호팀장과 비서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와 자연스레 의자에 앉았다.
“아까 보니까 날 보고 꽤 놀랐나 보더군.”
“시간이 금인 분이라 계속 기다리실 거라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기다리지 않았네. 돌아갔다 다시 차를 돌렸지. 가만 생각해 보니 진료는 봐야겠다 싶어서 말이야.”
“정말 저한테 진료를 보러 오신 겁니까?”
김건형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메이저 병원인 새희망병원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에게 진료를 본다는 말을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오히려 주말에 있던 소동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온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그러지 않나. 수술한 사람이 다른 의사를 찾아가면 수술한 의사를 찾아가라고. 나도 날 응급 처치한 의사를 찾아왔다고 하면 대답이 될 거 같은데.”
김건형이 하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 선생이 응급 처치를 했으니 그 후 처치는 잘됐나 그에 따른 진료를 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네만.”
“알겠습니다. 이쪽 베드에 누워 보시죠.”
베드에 누운 김건형을 꼼꼼히 진료한 뒤 두 사람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어떤가? 지금 내 상태는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아직 입원 중에 외출하신 것 같은데 기력 회복하신 뒤 업무 복귀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으샤!”
태경의 대답이 끝나자 김건형이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진료실을 둘러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병원 나만큼이나 나이가 든 거 같은데 꽤 오래된 건물이군. 김 선생은 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나?”
“그보다 이제 절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해 주시죠.”
“하하하! 이거 김 선생 눈치가 보통이 아니군. 사실 진료는 핑계였네.”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똑똑-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 가는 사이 진료실 노크 소리와 함께 의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저 부르셨다고…….”
“나 안 불렀는데?”
“내가 불렀네. 정의진 선생도 같이 앉지.”
김건형은 진료 접수를 하면서 의진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었다.
“내 두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말씀하세요.”
“요즘은 괜히 도와줬다가 곤경에 처할까 싶어 선뜻 도와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CCTV를 보니 경호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다 날 살리려고 아주 적극적이었네. 도대체 왜 그런 건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저나 정 선생이나 그 당시 회장님 상태가 좋지 않아 살리기 위해 그랬습니다.”
김건형이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태경의 대답은 간결했다. 의사이기에 그저 살리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달려들었을 뿐이다.
“그렇군. 내가 자네를 찾아온 이유는 내 딸인 김 사장에게 듣자 하니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면서? 맞나?”
“맞습니다.”
“하긴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책임을 져야지.”
핏줄이 아니랄까 봐 김건형은 김서현과 똑같은 말을 했다.
여전히 사람을 살린 일에는 후회가 없었지만 막상 책임을 운운하자 태경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더니. 이래서 재벌이 무섭구나. 아무래도 이따 언니한테 다시 가야겠어.’
의진 역시 올 것이 왔구나 느끼며 퇴근하자마자 언니인 정해진에게 달려갈 생각이었다.
“법무팀에서 청구서를 보냈다고 하는데 내가 내용을 잘 못 봐서 확인을 좀 했으면 하는데. 괜찮지?”
“이겁니다.”
태경이 누가그룹에서 보낸 청구서를 내밀자 김건형이 돋보기까지 꺼내 착용하며 꼼꼼히 읽어 내려 갔다.
“내용이 이리 부족해서야. 이래서 내가 보고서를 잘 써야 한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건만. 청구서가 택도 없어.”
“…….”
“김 선생, 정 선생. 이거 어떡하지? 두 사람이 허락 없이 내 몸에 손댄 책임과 대가치고는 청구서가 너무 적은데 말이야.”
“너무하…….”
보다 못한 의진이 한 마디를 하려했지만 태경이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지금 김건형에게 한 소리 했다가 괜히 의진이 곤란한 상황에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으흠!”
“회장님 저희는 지금 근무시간입니다. 책임을 물으실 거면 빨리 말 해 주셨으면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태경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뜸을 들이는 김건형을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자네도 급한 면이 다 있군. 좋아. 빨리 말하지. 내가 고집불통에 남의 말은 죽어도 안 듣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말씀은 꼭 들었어. 그중에서도 아버지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게 있었지.”
“회장님, 사설이 너무 기십니다.”
곁에 있던 경호팀장이 태경과 의진을 생각해 한마디 거들었지만 소용없었다.
“빚을 지면 갚아라. 특히 목숨 빚은 반드시 꼭 갚아라. 살면서 네 목숨을 살려 준 이가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은인 대접을 하라고 하셨지.”
찌익-
그러더니 태경에게 전달된 청구서를 가로로 들고 쫙 찢어 버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김 선생 자네를 만나러 온 것도 내 목숨 빚을 갚기 위함이네.”
“…….”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김건형의 행동에 태경과 의진뿐만 아니라 경호팀장과 비서까지 그라데이션으로 놀랐다.
“내가 두 사람이 원하는 걸 들어줄 테니 각각 세 가지씩 말해 봐.”
램프의 요정 지니도 아니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에 두 사람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리 말하지만 무엇을 말하든 다 들어주겠네. 약속하지.”
“…….”
“어허! 똑똑한 사람들이 왜 가만히들 있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줄도 알아야지. 이거 안 되겠군. 정 선생부터 먼저 말해 봐.”
“…….”
“계속 그렇게 입을 닫고 있을 거야? 어서 말해 보래도.”
“무언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에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정말이야?”
“네, 정말입니다. 그런데 사과는 받았으면 합니다.”
“사과?”
“네. 김서현 씨의 사과요.”
의진은 원하는 게 없었다. 다만 김서현의 폭행과 막말에 대해서는 꼭 사과를 받고 싶었다.
“CCTV를 보셨다니 회장님 사건의 내막을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김서현 씨가 김 선생님의 뺨을 때린 것과 우리 두 사람에게 한 언행은 의료법에 위반됩니다.”
“의료법 위반? 김 비서, 저 말이 사실인가?”
“네, 회장님. 의료법상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칠천이면 푼돈이네.”
“회장님이 돈이 많은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하하! 정 선생이 아주 똑 부러지는 사람이군 그래. 농담이네. 농담.”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인 회장이란 사람이 저런 농담을 하니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약속하지, 김 사장이 사과를 하도록 하겠네. 돈에 대해 한도 없이 크다 보니 내 자식놈들이 하나같이 싸가지가 조금씩 없어. 김 선생, 서현이가 손찌검을 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아닙니다. 사과는 김서현 씨가 하면 그때 받겠습니다. 회장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니니까요.”
“그러지. 그럼 정 선생은 정말 이게 다야?”
“네, 답니다.”
“자! 그럼 이제 김 선생 차례인데. 한 번 말해 보게. 자네도 없나?”
‘당연히 없지.’
태경에게 묻는 김건형의 질문에 의진이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선배가 어떤 사람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태경이지 않은가. 의진은 괜스레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런데 반대로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요. 전 있습니다.”
“선배, 있다고요?”
“어. 난 있어.”
김건형이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한 시점부터 태경의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가 원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말해 보게.”
“첫째, 뒤에 있는 경호팀장님과 그 팀원들을 해고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김 선생?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우직하게 서 있던 경호팀장이 문신처럼 쓰고 있는 선글라스까지 벗으며 태경을 말렸다.
“이게 지금 어떤 기횐데 그딴 걸 말해. 그건 김 선생이 신경 쓸 일이…….”
“고 팀장, 자네는 가만있어. 좋아. 경호팀 건은 없던 일로 할 테니 걱정 마. 나머지 하나는?”
“나머지 하나는 메디컬 수송기입니다.”
“메디컬 수송기?”
지금까지 동요 없던 김건형의 동공이 크게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