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72화 (72/472)

72화. 꼬마 아니고. 이우진

“엄마…….”

갑자기 들려온 엄마 소리가 뽀로롱을 잡은 손에 제동이 걸었다.

멈칫한 손과 함께 음료를 보고 있던 최모나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311호?’

환자복을 입은 아이는 311호에 입원한 6살 남자애였다.

‘보호자랑 나왔나 보네.’

이 시간에 6살짜리 애가 혼자 나왔을 리 없다고 생각한 최모나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하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엄마, 엄마?”

그런데 또다시 엄마라고 불렀다. 그것도 최모나를 향해 두 번이나 정확히 엄마 소리를 반복하며 다가왔다.

지금 무슨 소린가 싶어 뽀로롱 음료를 내려놓는데 6살 아이가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보고 싶었어.”

“컥!”

순간 너무 놀라 지렁이 대가리가 목구멍에 걸린 최모나는 작게 사레가 들렸다.

“얘!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누가 들으면 괜히 오해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최모나는 재빨리 아이에게 분명하게 단호박을 시전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야. 어린이는 거짓말 하면 안 돼요. 알았지?”

“흐흑!”

그저 잘못된 것을 정정하여 말한 것뿐인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얘? 아이야? 갑자기 왜 울어?”

최모나는 본인이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무표정에 시니컬한 모습이 마치 화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울지 마. 얘야, 울지 마. 응?”

조카들조차 무서워하는 최모나의 아이 보기 스킬은 거의 젬병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오죽하겠나.

“울지 마. 뚜, 뚝!”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말투였지만 이상하게 311호 아이는 울지 않으려 힘을 주고 있었다.

“이거…….”

“이거 먹고 싶니? 이거 내 건데. 내 뽀로롱이야.”

“흐윽! 뽀로롱.”

“알았어. 울지 마. 줄게.”

최모나는 최애 음료인 뽀로롱 음료를 줄 마음이 없었지만, 이 새벽에 아이가 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이거 줄 테니까 울면 안 돼. 알았지?”

“네. 우진이 안 울게요.”

“그래. 자! 힘껏 마셔.”

“맛있다. 헤헤.”

한 번에 벌컥벌컥 음료를 들이켠 우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얘? 꼬마야?”

“꼬마 아닌데. 우진이. 이우진 내 이름이에요.”

“너 혼자 나왔어?”

최모나는 사실 우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병동에 갈 때마다 이 아이가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정이 없었기에 딱히 왜 쳐다보는지 궁금하지도 신경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생각해 보니 조금 전 회진을 돌 때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 아닌데? 아빠 엄마 일하러 가셔서 나 돌봐 주는 할머니에요.”

“간병인이시구나. 너 근데 새벽에 왜 나온 거야? 이 시간에 나오면 안 돼.”

“엄마 보고 싶어서요.”

우진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으로 최모나를 가리키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보였다.

“엄마 보고 싶다면서 왜 날 가리켜.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엄마랑 닮았어요.”

“내가 너희 엄마랑 닮았다고?”

“네.”

우진이는 주머니에 있는 꼬깃한 가족사진을 보여 줬다.

“아, 이래서…….”

사진을 본 최모나는 이제야 아이가 왜 자신을 보며 엄마라고 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사진 속에는 자신과 머리 스타일이 거의 똑같은 엄마의 웃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우진이는 최모나의 머리를 보며 엄마와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나이 때 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우진이 선생님 기다렸어요.”

“날 기다렸다고? 왜?”

“네, 선생님 보면 엄마 보는 거 같아요. 좋아요.”

우진이는 병동 간호사에게 최모나가 언제 오는지 시간까지 물어보려 기다렸다.

새벽 장사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엄마를 잘 볼 수 없었기에 최모나를 보며 그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미안한데 꼬마야.”

“우진이. 꼬마 아니고. 이우진이에요.”

“그, 그래. 아무튼 나는 네 엄마가 아니고 넌 이 시간에 자야 해. 그래야 병원에서 빨리 퇴원할 수 있단다. 무슨 말인지 알았지?”

“네.”

“그래, 어서 들어가자.”

“근데요. 똥 마려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같이 가 주세요.”

“……!”

최모나는 이 짧은 순간에 정확히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이 새벽에 뽀로롱을 먹겠다고 설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둘째: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부탁을 해 볼까?

셋째: 그것도 아니면 간병인 할머님을 깨울까?

‘하! 됐다.’

하지만 다 관두기로 했다.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도 바쁠 것이고 곤히 자고 있는 노인을 깨우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아니, 왜 콜이 안 울리지? 전화기가 꺼졌나?’

게다가 오늘따라 콜은 왜 이렇게 잠잠한지. 최모나는 애먼 핸드폰을 확인하며 한숨을 삼켰다.

“선생님 똥마려워요.”

“그래. 가자.”

“선생님 같이 들어가면 안 돼요?”

“꼬마, 아니 이우진 어린이는 남자고 선생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같이 들어갈 수는 없어.”

“엄마는 같이 가 주는데.”

“난 의사지 너희 엄마가 아니란다. 어린이 변기는 제일 앞쪽에 있으니까 거기 들어가면 돼.”

“…….”

“똥마렵다며? 안 들어갈 거니?”

“도깨비.”

“뭐? 도깨비?”

“우리 형아가. 우형이 형아가 화장실 밤에 혼자 가면 도깨비가 잡아간다고 했어요.”

도깨비의 존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우진이는 다리까지 꼬며 대변을 참고 있었다. 그만큼 혼자 들어가기 무서웠던 것이다.

“이우진 어린이? 도깨비 그딴 거 없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야. 빨리 들어가서 대변봐.”

“정말이에요?”

“정말이지. 그러니까 얼른 들어 가.”

“그럼 대신 뽀로롱 노래 불러 주세요.”

“뭐? 뭘 불러 줘?”

최모나는 황당함에 다시 되물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아무래도 오늘 일진이 사나운 게 분명했다.

“뽀로롱 노래요. 엄마가 저녁에 화장실 갈 때마다 불러 줬어요. 그러면 안 무서워요.”

“내가 노래는 못 불러. 목이 아프거든.”

“우진이 무서워요. 뽀로롱 노래 있어야 하는데…….”

“알았어. 대신 뽀로롱인지 뭔지 노래 틀어 줄게. 됐지?”

“정말요? 이제 들어갈 수 있어요.”

행여 아이가 대변이라도 지릴까 봐 최모나는 차선책으로 빨리 휴대폰을 꺼내 뽀로롱 노래를 틀었다.

뽀롱뽀롱 뽀로롱 우리들의 친구~♬

“선생님? 안 갔죠?”

“어린이 나 안 갔어.”

“가면 안 돼요?”

“그래.”

“선생님도 뽀로롱 좋아해요?”

“그럴 리가. 얼른 똥이나 내보내.”

“저는 뽀로롱이 제일 좋아요.”

그렇게 대변보는 내내 최모나에게 말을 건 우진이는 손까지 야무지게 씻고 화장실을 나와 병실에 도착했다.

“이제 됐지? 얼른 들어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일도 오실 거예요?”

“아니. 이우진 어린이. 내일 안 올 거야.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

“선생님 잠깐만요.”

“어린이,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이것만 하고 들어갈게요.”

“뭔데?”

빨리 응급실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인 최모나는 우진이의 손짓에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그런데 아이가 최모나를 살포시 끌어안고 고마움을 표한 뒤 병실로 들어갔다.

“선생님도 잘 자요.”

드르륵-

“하! 힘들다. 역시 애들은 힘들어.”

* * *

“수고하셨습니다.”

태경은 접수처에서 퇴근하는 거북이 1호와 2호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그래, 수고했어.”

“저기 선생님? 저 병동 회진 말고 다른 걸로 바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한테 무슨 대답이 나올 거 같아?”

“이따 뵙겠습니다.”

“최 선생님 저렇게 기운 없는 거 처음 보네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는 피곤함이 느껴지는 최모나의 모습이 새로웠다. 군인 집안이라 그런지 몰라도 웬만한 남자보다 체력이 좋은 최모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피곤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 선생 아까 회진 돌고 오더니 다크서클이 발목까지 내려왔던데요?”

“그래요? 새벽 회진 때 별일 없던 거 같던데…….”

“제 생각에는 몸이 피곤한 게 아니라 정신이 피곤한 걸 거예요.”

“오! 그래도 친구라고 우리 이 쌤이 최 쌤의 마음을 잘 아시나 보네요.”

“저야 우리 병원 식구들 마음을 다 한결같이 헤아리고 있죠.”

“그래? 그럼 지금 내 마음도 헤아리겠네?”

퇴근으로 마음이 한껏 부푼 이찬희를 보며 태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아직 그런 내공까지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 퇴근할게요.”

“야! 이찬희 너 거기 안 서?”

뭔가 찔리는 게 있던 이찬희는 태경의 부름에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을 뛰쳐나갔다.

“기분 탓인가? 이상하게 이 쌤이 도망가는 거 같네요.”

“도망가는 거 맞아요. 오늘 숙제를 제대로 안 했거든요.”

“근데 그냥 보내시는 거예요?”

“일부러 안 잡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퇴근도 못 하게 하시면서 오늘은 왜 보내셨어요.”

“가끔은 이렇게 나사 풀어 주는 날도 있어야 숨 좀 돌리죠.”

“가만 보면 선생님이 조련을 참 잘하시는 거 같아요.”

“제가요?”

“네에. 채찍과 당근을 주면서 완전히 조련하고 있잖아요. 제가 보기엔 거의 조련사 수준이라니까요.”

“우리 거북이들 조련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참, 오늘 외래 일찍 볼 거니까 환자 오면 바로 알려 주세요.”

어느새 태경이 당직인 날은 정식 진료 시간 전에도 외래를 보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대신 한두 시간이라도 눈 좀 붙이세요.”

“근데 지금 잠이 안 오는데 어쩌죠?”

“양이라도 세면서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 보세요.”

“양은 무슨 양이고?”

때마침 아침 식사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주방장 오계순이 지나고 있었다.

“고마 아침밥 먹으면 속이 풀어져가 식곤증으로 잠이 솔솔 올 끼다.”

“그건 여사님 말이 맞네요. 아침하고 자면 되겠어요.”

“그럼 그래야지. 의사가 자기 몸 건강도 잘 챙겨야 한다 아니가. 김 원장은 다 좋은데 내 이래 보니까 책임감이 고마 부족하다.”

“아니, 여사님. 우리 선생님만큼 책임감 강한 의사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늘 맞는 말만 하는 오계순의 말이 임정숙 간호사는 처음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명색이 병원 원장인데 자기 몸 관리에 너무 무심해서 하는 소리 아니겠나. 내는 의사가 자기 몸 관리 잘하는 것도 환자들에 대한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역시 우리 여사님.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네요.”

“그런 책임감이라면 저도 앞으로 더 건강관리를 해야겠네요.”

“하무. 그래야지. 내 김 원장 줄라고 낙지 넣고 연포탕 시원하게 끓였다. 어서 가서 쳐무라.”

“알겠습니다.”

태경은 오계순의 정성으로 끓인 연포탕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 * *

주택가 골목-

제법 큰 화물 트럭에서 내린 건강한 중년 남자가 근처 과일 집으로 향했다.

“안녕하셨어요?”

“아니, 이게 누구야.”

과일 집 여주인은 남자를 오랜만에 본 듯 상당히 반가워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차 안 보이던데 언제 올라온 거야?”

“방금 왔습니다. 별일 없으시죠?”

“별일이야 집안일밖에 더 있겠어. 우리 둘째네 가게가 망하네 마네 해서 지금 내가 머리가 다 지끈하다니까.”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렇지 뭐. 아고 내 정신 좀 봐. 애 아빠 됐다며. 축하해.”

“감사합니다.”

“기분 좋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왜 아니겠어. 50대 아이 아빠 되기가 어디 쉽나? 태명이 깐담이라며?”

“예. 장인어른이 지어 주셨어요.”

“안 그래도 깐담이 엄마한테 들었어. 그러고 보면 푸엉이 아주 복덩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장님 저 과일 좀 담아 주세요.”

“그래. 뭘로 줄까?”

“그냥 임산부한테 좋은 과일로 알아서 주세요.”

알아서 달라고 했던 이고철은 푸엉을 생각하며 꽤 많은 과일을 골라 담았다.

“이 포도는 내가 주는 임신 축하 선물. 깐담이 엄마가 샤인머스캣 좋아하니까 가서 먹여.”

“감사합니다. 사장님.”

“깐담이 생각해서 건강관리도 잘하고 자식이랑 마누라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

“그럼요. 가 보겠습니다.”

묵직한 과일 봉투를 든 이고철은 집으로 이어진 골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질 즈음 저만치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아!”

고새를 못 참고 오매불망 남편이 오길 기다린 푸엉이 골목에서 마중을 나와 있던 것이다.

“아! 오지 마. 거기 스탑!”

무슨 위험 물질이라도 있는 것처럼 푸엉의 걸음을 멈춘 이고철은 재빨리 아내를 향해 뛰었다.

탁-

그러더니 과일 봉투를 땅에 떨군 채 두 팔을 벌려 푸엉을 안아 주며 초보 아빠 티를 냈다.

“넘어지며 어떡하려고 밖에 나와 있어?”

“괜찮다. 안 위험하다. 남편아 보고 싶었다.”

“나도 푸엉이랑 이랑 우리 깐담이 보고 싶었지.”

푸엉을 바라보는 이고철의 표정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남편을 바라보는 푸엉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내가 과일 잔뜩 사 왔어. 당신 과일 좋아하지?”

“좋아해. 고마워.”

“참! 당신 오늘 나랑 꼭 가고 싶다는 곳이 어디야? 말만 해.”

“먼저 약속해라. 꼭 가겠다고 약속해.”

그사이 한국말이 많이 능숙해진 푸엉은 새로 배운 말까지 써 가며 약속을 강조했다.

“한 입 갖고 두말하면 안 돼. 꼭 가야 한다.”

“당신이 가고 싶다는데 당연히 가야지. 어딘데?”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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