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74화 (73/472)

74화. ‘어깨’ 와 ‘봉긋’

“안녕하셨습니까?”

“선생님 남편이랑 같이 왔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고철은 진료실로 들어오며 호탕하게 웃었다. 옆에 있는 푸엉도 반가움에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태경은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처음 맡아 보는 냄새였다.’

조금 전 로비에서 맡은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에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도 진료실 안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냄새가 터질 듯이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진료실 창문이 열려 있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이고철의 냄새는 멈출 기세 없이 태경의 후각을 가차 없이 침범했다.

‘분명 4단계 냄새다.’

다섯 번째 바이탈의 지표는 4단계를 가리켰다. 하지만 4단계 중에서도 상중하로 나뉜다면 분명 상에 해당하는 냄새였다.

지금까지 맡았던 포르말린 냄새 중에 가장 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미세한 유황 냄새는 기분마저 나쁘게 만들었다.

“잘 지내셨죠?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먼저 푸엉 씨는 봤는데 이고철 씨는 오랜만에 보네요.”

“지방 공사장 돌다가 오늘 아까 막 왔습니다. 그런데 와이프가 대뜸 꼭 병원을 가자고 조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끌려왔지 뭡니까.”

“선생님 내가 우리 남편 혼내서 데려왔다.”

“잘하셨네요.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이게 참 별일 아닌데. 푸엉이 워낙 잔소리를 해서요. 불편한 건 없고 여기 어깨에 뭔가 봉긋 올라왔더라고요.”

“맞다. 선생님 여기 어깨 좀 봐주라.”

‘어깨’ 와 ‘봉긋’이란 단어가 들리자마자 태경의 미간이 급격하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이게 근데 아픈 건 전혀 없어요. 정말 와이프가 하도 선생님께 가 보라고 해서 못 이기는 척 왔습니다.”

“혹시 그 위치가 쇄골 위쪽인가요? 그리고 하나가 아니지 않나요?”

“아, 네. 맞습니다. 역시 선생님한테 오길 잘한 것 같네요. 하하!”

여전히 호탕한 이고철과 달리 태경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환자분 제가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목과 머리 CT를 촬영할 거예요. 원래 하루 이틀 기다려야 하지만 제가 CT실에 연락해서 바로 촬영하도록 할게요.”

“아이고 선생님. CT라니요. 정말이지 전 하나도 아픈 데가 없습니다.”

이고철은 아직도 자신의 건강을 자신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이고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태경이 제일 간절할 지도 모른다.

“지방종인지 뭔지 그런 것 같은데 그냥 도려내 주세요.”

“남편아 그냥 찍어라. 선생님 말씀 들어.”

옆에 앉아 있던 푸엉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채근했다.

“선생님 남편 어깨 때문에 나 걱정해요. 하나 옆에 또 하나 있다.”

“여보, 괜찮아. 별거 아니야. 여기 보시면 얼마 크지도 않아요.”

“환자분 금방 찍게 해 드릴게요. 이번에는 꼭 촬영하세요.”

태경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목소리는 단호하며 간절했다. 만약 이번에도 이고철의 고집을 못 꺾는다면, 그렇다면 그 다음 일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건 의사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두 번 다시 환자를 향한 그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반드시 지금 찍으세요.”

“……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태경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이고철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남편아 똥고집 그만 부리고 얼른 찍어라.”

“그렇지만 CT는 비용도 많이 나오고…….”

“혹시 돈 때문이면 걱정 마세요. 아마 비용은 그리 크게 부담하지 않을 겁니다. 원래 비용의 10%정도만 나올 거예요.”

“그래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비용은 크지 않다는 말에 이고철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저기 선생님. 근데 무슨 병이 의심되시나요?”

“우선 촬영하시고 결과 확인 후 정확하게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따 뵐게요.”

“환자분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남편은 의아한 표정으로 푸엉과 함께 임정숙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을 나갔다.

이고철의 몸에 사슬처럼 묶인 냄새는 그를 따라 나갔지만 진료실에 남아 있는 냄새는 여전했다.

“하!”

절로 튀어나온 한숨이 독한 냄새 사이로 퍼지는 것 같았다.

태경의 강경한 태도에 이고철은 당황했을 것이다. 오자마자 아무 진찰도 없이 CT 촬영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진료비의 10%만 부담한다는 말도 처음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경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어깨에 뭔가 봉긋 올라왔더라고요.’

문제는 그 어깨였다. 쇄골 위쪽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은 단순한 지방종일 수도, 염증일 수도 있다.

다만, 그 위치가 림프절(lymph node)이라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스토막 캔서(stomach Cancer, 위암) 혹은 싸이로이드 캔서(thyroid cancer, 갑상선암)가 퍼져 나가는 길 중에 하나인 곳이다.

그래서 진료비의 10%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암으로 진행되면 중증 등록이 되어 그 정도의 액수만 내기 때문이었다.

“아직 속단하지 말자.”

물론 이러한 의심이 모두 기우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고철에게서 다섯 번째 바이탈을 느꼈지만, 그래도 태경은 계속해서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큰 병이 아니기를…….’

태경은 진지했다. 아까도 다짐했지만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었다. 예전처럼 그냥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고철 환자 CT 찍으러 갔나요?”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대기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따 이고철 환자 biopsy(생검, 병소 일부를 떼어 내서 병리학적으로 검사하는 방법) 할 거거든요. 쏘노(sonography, 초음파)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태경은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진료실을 나갔다.

* * *

“자! 아주 닭다리가 실하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맛있다. 진짜 찜닭은 너무 맛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

“남편도 어서 먹어라. 맛있어.”

“내 걱정하지 말고 당신이나 어서 많이 먹어. 깐담이도 많이 먹고.”

병원 근처 식당에 온 이고철과 푸엉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깐담이도 많이 먹을 거야.”

맛있게 찜닭을 먹는 푸엉은 집에서보다 한결 표정이 편해 보였다. 어찌됐든 고집불통인 남편을 병원까지 데려와서 검사까지 받게 했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많이 먹어. 밥 부족하면 말해. 더 시켜 줄게.”

“지금도 충분하다. 근데 남편아 혹시 어깨 안 좋은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니야. 그런 거라면 선생님이 바로 말씀하셨지. 난 진짜 당신이랑 약속 아니었으면 병원 안 왔다니까.”

“그래도 온 게 잘한 거다. 남편 어깨 있는 게 뭔지 확인하는 게 좋아.”

“그래. 당신 말이 맞아. 내 말은 이게 안 좋은 거였으면 진작 아팠을 거라고. 걱정 그만하고 얼른 밥 먹으라고 하는 소리야.”

“알았어. 남편도 얼른 먹어.”

이때까지만 해도 이고철은 자신에게 닥칠 앞일을 알지 못했다.

* * *

“정 선생?”

태경이 응급실에 내려온 의진을 불렀다.

“네, 선생님.”

“아까 푸엉 씨 초음파 봤다는데 별 이상 없지?”

“이상이요?”

“아이 잘 크고 있는 건가 해서.”

이고철에게서 시작된 걱정이 푸엉과 아이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푸엉에게서는 그 어떤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는 걸 태경은 알고 있었다.

다섯 번째 바이탈로 체크하자면 건강한 상태지만 그래도 확인차 의진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럼요. 잘 크고 있어요. 아까 심장 소리 듣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저까지 기분 좋아지더라고요.”

“그래? 다행이네.”

“아까 푸엉 씨한테 대충 이야기 들었어요. 이고철 씨 결과 아직이죠?”

“그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선배는 결과 어떻게 예상해요?’라는 질문을 하려던 의진은 그 말을 생략했다.

태경의 표정을 보니 선뜻 물어보기가 쉽지 않았다.

“영상 올라왔습니다.”

“그래요? 정 선생 나, 가 볼게.”

“네, 선생님.”

의진과 대화를 하던 태경은 CT영상이 올라왔다는 소리에 재빨리 진료실로 향했다.

응급실 모니터로 확인해도 됐지만 오늘은 조용한 진료실에서 집중해서 보고 싶었다.

“선생님?”

태경이 응급실을 나가자 이찬희가 의진에게 슬쩍 다가왔다.

“어. 이 쌤 왜?”

“오늘 김 선생님 좀 다르지 않아요?”

아까 출근할 때도 그렇고 방금 전까지 응급실 진료를 볼 때도 그렇고 태경의 모습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원래라면 오자마자 숙제를 평가하고 잘못된 부분을 몇 번이나 지적하며 바로잡아야 했다. 게다가 인사를 할 때도 말을 걸 때도 그 분위기가 너무 침착하여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뭔가 달라 보여?”

“네, 너무 침착하시고 뭔가 모르게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것 같다니까요.”

“혹시 저한테 뭐 화나신 게 있는 건 아니겠죠?”

이쯤 되니 혹시라도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며 반성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쌤, 선생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그게 딱히 크게 잘못한 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럼 걱정할 거 없네. 아마 환자일 때문에 그러실 거야.”

“환자요? 어떤 일인지 아세요?”

“그건 나중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그때 듣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잘 몰라.”

의진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적당히 모른 척 넘어갔다. 이야기를 들어도 태경에게 직접 듣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건 제 느낌인데 오늘은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인데.”

“이 쌤 신환이요. 7번 베드입니다.”

“예. 바로 갈게요.”

“그리고 정 쌤, 예약 환자 일찍 오셨다고 콜 왔습니다.”

“알겠어요.”

태경이 진료실로 향한 사이 이찬희와 최모나는 응급실에 집중했고 의진은 진료실로 돌아갔다.

* * *

두근두근-

태경은 자신의 심장 박동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울렸다.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심장이 오늘 따라 더 빨리 뛰는 것만 같았다.

“제발……제발.”

영상을 클릭하는 이 짧은 순간 왜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 건지. 여러 생각이 오가는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지 응급 수술을 요하는 환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인즉 어찌되었던 지금 당장은 이고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거였다.

“어! 올라왔네.”

딸칵- 딸칵-

목록이 갱신된 걸 태경이 확인하자 다급한 손가락이 CT영상을 띄웠다.

딸칵-

그리고서 마우스 휠로 환자의 앞에서부터 뒤로 영상을 돌려본다. 이고철이 말했던 오른쪽 쇄골 윗부분이 보일 때 즈음,

끼익- 탁-

마우스가 책상 면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밀착했던 태경이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이런 젠장!”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탄식과 욕설이 함께 흘러 나왔다.

“시x. 암이잖아.”

CT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고철 몸속에 우라질 암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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