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슈퍼맨의 착한 암
“하! 시x. 암이잖아.”
CT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고철 몸속에 우라질 암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하!”
누가 봐도 암이었다.
모니터를 뒤집어 보고 우스갯소리로 물구나무를 서서 본다 해도 그만큼 확실히 암이었다.
림프절에 주인이라도 된다는 듯 큼직하게 자리 잡은 암 덩어리가 떡하니 보였다.
경계는 불규칙한 것이 태경의 눈에는 잔인하고 험상궂게만 보였다.
사실 의사인 태경은 어느 정도, 아니 좀 더 분명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환자와 보호자를 생각하니 인정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기분 x같네.’
모니터 CT 속에 보이는 암은 마치 태경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 모습이 의기양양했다.
머릿속에 상주한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새끼를 치는 듯했다. 그럼에도 가장 크게 자리한 생각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좀 더 강력하게, 더 세게 말할걸.’
그때, 처음 푸엉이 변비로 진료를 보러 왔을 때 이고철을 붙잡을 걸 그랬다.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라도 검사를 무리하게 할 걸 그랬다.
지금까지 여러 환자들을 진료하고 수술했지만 오늘처럼 태경이 스스로를 타박하는 건 그날 느꼈던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었다.
그날 붙잡지 못했다는 생각이 후회로 밀려와 스스로를 괴롭혔다.
‘와이프가 임신 중인데…….’
게다가 푸엉이 현재 임신 초기인데 결과를 듣고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후! 이럴 때가 아니지.”
태경은 심란한 기분을 최대한 내려놓으며 다시 차분히 CT로 시선을 돌렸다.
“너였구나.”
화면 속 갑상선의 변형된 모습을 마주한 태경이 혼잣말을 뱉었다. 가로로 더 퍼져 있으며 이미 주변 근육까지 침범해 있는 암의 존재가 CT에서도 확연히 보였다.
그동안 많은 암들을 봤지만 매번 똑같이 느끼는 것은, 이놈들은 정말 못되게 생겼다는 사실이다.
“이고철 환자 거기 있나요?”
암 덩어리를 원수처럼 째려보던 태경이 전화기를 들었다.
-아니요. 촬영하고 아내분과 근처에서 식사하고 오신다고 했어요.
“그럼 오자마자 바로 초음파실로 안내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리고 결과는 제가 설명할 테니 혹시 물어봐도 대답하지 마세요.”
-그럼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태경은 마음이 급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식당을 뒤져 이고철을 수술방으로 밀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에 생각하는 나쁜 경우라면 한시가 급했기 때문이다.
탁-
결국 급한 마음에 전화를 기다리지 않고 진료실을 나섰다. 그리고 복도를 나와 성큼성큼 계단을 지나 초음파실로 걸음을 옮겼다.
차분해졌던 마음이 다시금 날뛰기 시작한다.
‘어디까지 침범했을까?’
영상으로는 주변 림프절에 침범한 것이 보였다.
그 다음은? 기도는 괜찮을까? 기도가 압박되면 기도를 열어 줘야 할 텐데? 혈관은 괜찮을까?
이제 막혀 가는 단계면? 수술 범위는 어느 정도로 할까? 무엇보다 환자가 견딜 수 있을까?
걷잡을 수 없는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파생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태경이 이토록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생각하는 건 당연할지 몰랐다.
‘열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텐데…….’
사실 이러한 의문점들이 수술방에 들어가는 직전까지도 확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상은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현재 수술방에서의 결과는 써전(surgeon)의 감각에 많이 의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외과의가 얼마나 숙달되었는지가 상당히 중요했다.
철컥-
초음파실에 도착한 태경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얼마나 급한지 도와주는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개의치 않고 준비를 서둘렀다.
탁- 탁-
초음파 기계에 전원을 켜는데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이고철 환자분 오셨어요.”
“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영상 찍고 와이프랑 밥 먹고 왔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먹었는데 맛있네요.”
“주변에 맛집이 많더라고요. 식사는 잘하셨고요?”
“우리는 맛있게 찜닭 먹었다.”
“이 사람을 원래도 닭을 좋아하는데 임신한 뒤로 더 닭요리만 찾아서 오늘도 닭을 먹었습니다.”
태경은 이고철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맛있는 찜닭을 먹었다며 활짝 웃는 그의 표정과 모든 걸 알고 있는 태경의 진지한 표정이 흑백처럼 대조됐다.
“선생님, 그나저나 저 별거 없는 거죠?”
“우선 아까 촬영한 CT를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이고철의 질문에 태경이 모니터에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오른쪽 쇄골 위 혹이 보이는 CT 화면을 볼펜 끝으로 가리켰다.
“화면에 이 부분 보이시죠?”
“저게 지금…….”
이고철은 자신의 어깨 위 혹을 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에 만져지는 혹인가요?”
“네. 맞습니다. 보시면 혹 경계가 많이 불규칙해 보이죠?”
“아, 네. 매끄럽지 못하고 뭔가 기분 나쁘게 생겼네요.”
“그리고 여기 이 부분을 보시면 여긴, 심장이구요. 이건 폐입니다. 이렇게 폐에서 나오는 길이 숨길이고, 이쪽은 식도예요.”
태경은 화면상에 보이는 장기를 설명해 나갔다.
“근데 이 기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비 모양의 기관이 나오는데 그게 갑상선입니다.”
“갑상선 알죠. 근데 여기에도 지저분한 게 있네요.”
“네, 환자분의 갑상선 오른쪽인데 아마 지금 만져 보셔도 단단한 게 느껴질 거예요.”
이고철은 태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부위를 만지며 살짝 눌러 봤다.
“맞아요. 사실 그런지는 좀 됐습니다.”
“혹시 보실 때 추측되는 병이 있으세요?”
“전 그냥 혹이라고 생각했는데, 저, 병인가요?”
“지금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건데요. 현재 의심되는 질환이 있습니다.”
“어떤 병인가요?”
“아내분하고 같이 들으시겠어요?”
“여보? 당신 잠깐 나가 있을래?”
태경의 그 차분한 분위기를 느낀 이고철이 푸엉에게 나가 있을 것을 권유했다.
“아니다. 싫다. 내가 당신 부인이고 가족인데 왜 나가 있냐. 선생님 같이 들을래요.”
“그럼 그냥 말씀드릴게요. 지금 이고철 씨는 갑상선암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난 또…….”
방금 전 긴장했던 이고철은 병명을 듣고 난 뒤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암이라는 단어 앞에도 그는 태연했다.
“갑성선암 그거 TV에서 봤는데 다 치유되는 암이라고 하던데요. 그렇죠? 왜 그러잖아요. 착한 암이라고 하던데.”
이고철의 말이 맞다. 그리고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알려진 말이 그가 태연한 이유이기도 했다.
갑상선암을 착한 암이라고 부른 건 그만큼 예후가 좋고 잘 회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기에 발견될 때 이야기였다.
지금같이 암이 상당 부분 진행된 경우 ‘착암 암’이라는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에요. 대부분의 갑상선암은 진행이 매우 느리긴 하거든요. 두고 보는 경우도 간혹 있어요. 그런데 이고철 씨의 경우는 아닙니다.”
“네?!”
“보시다시피 지금 쇄골 위에 림프절까지 암이 퍼져 있습니다. 영상으로는 확실하진 않지만 여기 이거 보이시죠?”
태경은 가운 포켓에 넣었던 볼펜을 다시 꺼내 화면 한 곳을 가리켰다.
“네, 그게 뭔가요?”
“환자분 목 오른쪽에 엄지손가락을 가져다가 대면 둥 둥 뛰는 것이 있어요. 그게 이것입니다. 머리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과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관이에요. 여기도 침범한 것 같습니다.”
“그, 그게……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제가 분명하고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지금부터 환자 본인도 보호자도 가장 듣긴 힘든 이야기를 꺼내야 할 순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셔야만 합니다.”
“……!”
환자도 보호자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다. 특히나 자신의 건강을 늘 자신했던 이고철은 더욱 그럴 것이다.
수도 없이 겪고 또 겪었지만, 경험 많은 태경조차 이 순간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갑자기 마주한 절망에 짓눌린 이고철의 표정은 혼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기분이 어떤지는 태경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수술 안 하시면 1년을 넘기기 힘들어요.”
하지만 의사이기에 환자에게 명확하게 전달을 해야만 했다.
“또한 수술이 성공적일지라도 5년 후에 완치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수술 준비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하셔야 해요.”
“……갑상선암이잖아요!”
이고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청을 높이며 되물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마치 자신에게 달라붙은 절망에게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네, 환자분 갑상선암이 맞아요. 근데 많이 퍼져 있습니다. 갑상선암이 종류가 네 가지 정도 있는데 그 종류마다 경과가 다르고 같은 종류라도 전이된 정도에 따라 경과가 다릅니다.”
“…….”
“놀라셨겠지만 지금은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때에요.”
“…….”
“한시가 급해요.”
“선생님?”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고철이 꽉 다문 입을 열었다.
“저 죽나요?”
“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수술을 하시면 가능성이 커져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꼭 해야 합니다.”
“선생님 저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이고철은 눈앞에 닥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멧돼지도 때려잡을 것 같은 사람이 ‘암’으로 인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는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선생님 이건 아니잖아요. 네? 저,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후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베트남에 있던 사촌 동생의 권유로 현지로 넘어가 다시 일에 열중했다.
‘형님, 힘드시죠?’
‘말도 잘 안 통하고 생각보다 쉽지 않네.’
내 나라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건 얼마나 힘들겠는가. 적지 않은 나이에 괜한 객기로 왔나 보다 싶었다.
‘고철 씨, 이거 틀렸다. 아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돌리게 만든 건 푸엉이었다.
‘베트남말이 좀 어렵다. 내가 도와줄게.’
같은 사무실 경리로 일하는 푸엉이 어설픈 한국말로 많이 도와줬다. 밝고 씩씩한 모습이 예뻤다.
그렇게 적응할 때 즈음 사촌 동생과 함께 하던 베트남 회사에도 문제가 생겼다.
재수 없으면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베트남 사업도 망해 버린 것이다.
정말 콱 죽어 버릴까 싶은 마음을 푸엉 때문에 견뎠다.
‘죽긴 왜 죽어? 몸 건강해. 어떤 일도 다시 할 수 있다.’
매일 찾아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그녀를 점점 좋아하게 됐지만, 마음을 감췄다.
그런데 어느 날 푸엉이 먼저 고백을 해 왔다.
‘나 이고철 씨 좋아하는데, 우리 사귀자.’
‘푸엉? 고마운데 나는 나이가 푸엉보다 많아.’
‘그게 뭐? 고철 씨 나. 둘 다 성인이다. 우리 다 솔로다. 서로 좋아하면 나이 중요하지 않다. 나만 믿어라.’
그렇게 부부가 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열심히 일하며 기반을 다졌다.
이제 더 이상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암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억울합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침묵하던 이고철이 참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 진짜 고생 많이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자신 또한 똑같은 일을 겪었기에 지금 이고철의 심정을 태경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위로를 하지 않았다.
어설픈 위로보다 그의 말을 들어 주는 게 차라리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내랑 깐담이……우리 아이랑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이건 아니죠. 시발 세상이 뭐 이럽니까!”
이고철은 울분 섞인 욕을 내뱉었다. 입으로는 욕을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한없이 약해진 마음이 느껴졌다.
“하!”
이고철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당당했던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울기 직전의 눈빛으로 변해 갔다. 이대로 절망과 좌절의 늪지대로 점점 더 자신을 던지려던 그때였다.
“슈퍼맨!!”
절망적인 그의 마음에 손을 뻗는 씩씩한 목소리가 이고철의 숙인 고개를 일으켰다.
“이고철은 슈퍼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