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50%
“최모나?”
“네.”
그런데 당연하게 한 소리 들을 준비를 하며 서 있던 최모나에게 태경은 전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밥 먹었어? 안 먹었어?”
“예?”
“밥 먹었냐고. 밥!”
“괜……찮습니다.”
느닷없는 밥 소리에 최모나는 살짝 멈칫하며 답했다.
“밥 먹고 왔냐고 물었더니 뭐가 괜찮습니다야.”
“아직 안 먹었습니다.”
“안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은 거지. 가서 밥부터 먹고 와.”
“…….”
“뭐해, 내 말 안 들려? 가서 밥부터 먹고 오라니까.”
“배가 안 고픕니다.”
“그래도 일부러라도 먹어. 내 철칙이 의사는 밥심으로 일한다야.”
밥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 심각한 상황에 밥 타령을 하는 건지 최모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태경은 항상 자신의 모든 예측을 빗나가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사수이자 우리 병원에 수장이었지만 지금까지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너 그렇게 열심히 일해 봤자 누가 알아줄 거 같지?”
“누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거 아닙니다.”
“그러면 더더욱 밥도 잘 먹으면서 일해야지. 안 그래? 네 몸 네가 돌보는 거야.”
“그건 선생님 말씀이 백 번 맞네요. 최 쌤 그만하고 얼른 식사하고 오세요.”
환자를 보고 온 임정숙 간호사가 옆에서 태경을 거들었다.
“지금 안 가면 또 늦게 왔다고 여사님께 혼나요. 어서요.”
“뭐해, 안 가?”
“그럼 밥 먹고 오겠습니다.”
“네, 맛있게 먹고 오세요.”
최모나가 응급실을 완전히 나가자 임정숙 간호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혼내시려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러려고 했죠. 근데 이찬희가 그러더라고요. 최모나가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고.”
“그 소리에 마음이 약해지셨어요?”
“밥도 못 먹고 환자에게 시달리다 넘어진 모습을 보니 안됐더라고요.”
개인 병원, 흔히들 로컬이 아닌 그 이상의 규모에서 일을 하는 의사들. 특히나 응급실 업무까지 보는 의사들은 밥을 거르는 일이 부지기수다.
환자들은 의사들의 밥 먹는 시간을 기다려 주며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라는 이름의 가운을 입는 순간 나 자신보다 환자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게 의사의 본능이고 태경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병원에서 일하는 병원 식구들만큼은 어쨌든 밥은 잘 챙겨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시는 분이 환자한테 집중하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드시고 병원이 집인지, 집이 병원인지 구분도 없이 일하세요?”
“그걸 또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어지는데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좀 챙기시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전, 그래서 밥 먹었습니다. 내일 수술인데 머리 잘 돌아가려면 먹어야죠.”
“잘하셨네요. 이고철 환자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시죠?”
“환자 보호자 사정도 있고 하니까 그렇죠.”
“선생님, 최성필 환자 영상 나왔습니다.”
“전 13번, 14번 환자 치료하러 갔다 올게요.”
스테이션 간호사에 말에 모니터를 확인한 태경은 소란을 피웠던 남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베드로 향했다.
* * *
“짜증난다.”
응급실을 빠져나온 최모나의 입에서는 절로 짜증 소리가 나왔다.
의사로 일을 하면서 요즘처럼 이유 없이 짜증이 난 것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였던 걸까?’
선생님 말에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 그것도 아니면 특정 환자를 가려 받은 것? 아니면 이 병원에 남기로 결정한 것?
“하!”
번번이 혼나겠다 싶은 타이밍에 태경은 늘 그 반대로 말했다. 차라리 욕을 한 대접 먹었으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최모나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무리 속에 섞여 조화롭게 사는 게 가장 싫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에 그렇게 자라 왔기 때문이었다.
‘최모나 선생 말이야? 완전 개 쌍마이웨이네.’
‘지금까지 병원에서 번호 교환한 동료들도 없대요.’
‘저렇게 지내라고 해도 못 지내겠다. 사람이 왜 그렇게 딱딱할까?’
‘근데 저런 사람은 그냥 저렇게 아싸로 지내는 게 주변 사람도 편해요.’
‘그건 그래. 근데 의사로 성장하려면 배우면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저 성격에 어느 선생님이 가르쳐 주려고 하겠어?’
‘아, 고 선생님 모르셨구나. 나도 얼마 전에 들은 건데 최 선생 보드 따고 3개월을 넘긴 병원이 없대요.’
‘거봐. 내 말 맞지. 아마 앞으로도 정착하긴 글렀어.’
새로 가는 병원마다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험담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더 신경 쓰지 않겠구나 싶어서 속이 편했다.
근데 우리병원 사람들이 뭔가 좀 이상하다. 여전히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울타리 밖에 있는 자신을 가만두려 하지 않았다.
특히 태경이 오고 난 뒤로 더해진 기분이다.
‘내가 쓸데없이 이 병원에서 버티고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향하던 최모나는 방향을 바꿔 의국실로 향했다. 입에 단 거를 넣어야 머리가 좀 진정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 아파. 모르……!’
“선생님!”
그렇게 복도에서 코너를 막 도는데 우진이가 튀어나왔다. 그 바람에 아이를 피하려다 발인 꼬인 최모나가 넘어지고 말았다.
“아!”
“선생님 괜찮아요?”
“너 왜 여기 있니?”
안 그래도 기분이 별로인 최모나는 넘어지면서 다시 짜증이 훗 올라왔다.
“여기서 기다리면 선생님 만날 수 있다고 해서요.”
“얘? 이우진 어린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어제 화장실 같이 가 준 걸로 나랑 친해진 거라 생각하지 마. 나는 의사지 너희 엄마도 너랑 놀아 주는 사람도 아니야. 내가 너 보고도 못 본 척했으면 그만해야지. 왜 그렇게 나를 쫓아다녀서 불편하게 만드니? 심심하면 널 간병해 주시는 분이나 네 부모님에게 말해. 알았어?”
아이에게 매몰차게 한 바탕 쏟아 낸 최모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진이를 지나쳤다. 그런데 몇 발자국 채 가지 못한 다리가 제자리에 멈췄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야?’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을 아이한테 괜한 화풀이를 했다 싶어 아차 했다.
‘오늘 일진 진짜 사납네.’
당연히 아이가 울먹이고 있을 거라 생각한 최모나는 적당히 달래자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이거요.”
그런데 우진이는 전혀 기죽지 않은 표정으로 최모나를 향해 방긋 웃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이거 주려고 기다렸어요.”
우진이는 메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뽀로롱 음료수를 꺼내 건넸다.
“선생님이 저한테 양보해 줬잖아요. 그래서 우진이도 양보해 주려고요.”
“이우진 어린이, 이것 때문에 날 기다린 거니?”
“네, 의사 선생님들은 바쁘니까 방해 하면 안 된다고 해서요.”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최모나의 손에 우진이가 음료수를 억지로 끼워 넣었다.
“우진아? 이우진?”
그사이 아이가 없어진 걸 안 엄마가 1층까지 내려왔다.
“그럼 선생님 저 갈게요. 안녕!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 전화하는 사이에 어딜 갔었어?”
우진이는 걱정하는 엄마의 말과 함께 병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음료를 쳐다보던 최모나도 의국실로 들어갔다.
철컥-
최모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병능제인 자신이 가랑비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 * *
다음 날, 이고철은 덤덤한 눈빛으로 베드에 누워 있었다.
“이고철 환자분 이제 수술실로 이동하실 게요.”
드르륵- 드르륵-
베드에 누운 채 수술실로 향하는 이고철의 표정은 조금 상기돼 보였다.
한 손으로는 푸엉의 손을 꼭 잡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천장 불빛을 멍하니 직시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조금 더 가자 움직이던 베드가 멈췄다. 수술방 앞에 다다른 것이다.
“이 앞은 수술실이라 보호자분께서는 더 이상 동행하실 수 없어요.”
“아, 네. 여보, 깐담이 아빠. 잘될 거다. 나 여기 있을게. 걱정 말고 수술 잘 받고 와.”
“당신이야말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 깐담이랑 편히 쉬고 있어. 나 이고철이야. 갔다 올게.”
“슈퍼맨 파이팅!”
“보호자분 대기실 안내해 드릴게요.”
직원의 안내를 받은 푸엉이 손을 흔들고 이고철이 누워 있는 베드는 수술방 안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태경이 수술방에 들어온 이고철에게 인사를 건넸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이상하게 잠은 잘 오더라고요. 잠이 안 오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민망할 정도로 푹 잤습니다.”
“잘하셨네요. 우선 오늘 오전 검사에서는 다행히도 오른쪽 어깨 외에 전이된 곳은 보이지 않아요.”
“다행이네요.”
이고철의 눈가가 천천히 붉어져 왔다. 아내가 곁에 있을 때는 강한 척을 했지만, 암 선고를 당한 당사자가 가장 연약해지는 법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수술이 끝날 때까지 이고철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가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환자로 있을 수 있는 태경의 앞에 있자 참아 왔던 감정들이 올라온 것이다.
“이고철 환자분?”
수술을 앞둔 환자의 눈빛만 봐도 그 심정을 알고 있는 태경의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베드에 놓여 있는 환자에게 곧 집도할 의사로서 말을 전했다.
“마음고생 많으셨죠?”
“많이는 아니고 조금 했습니다. 선생님. 막상 수술을 앞두니 마음이 떨리더라고요.”
“그럼요.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감사합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경의 언행이 걱정스런 마음을 잔잔히 만들었다. 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고철은 환자로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학은 어디까지나 과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태경을 비롯한 많은 외과의들은 알게 된다.
어느 정도 과학의 영역이 아닌 곳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사의 말 한마디에 의한 환자들의 변화였다. 진심이 담긴 의사의 말 한마디는 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저희 의료진이 잘 도와드릴게요.’
힘이 되는 말, 혹은 힘을 꺾는 말이 의사에게서 나가고 환자의 마음 밭에 뿌려지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물론 대부분 나쁜 효과일 때 극명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기대하면서 태경은 꾸준히 힘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 위로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건 환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뭔가 요란한 말이 아니라도 힘이 되는 작은 말 한마디는 환자의 마음에 ‘용기’라는 싹을 틔워 병을 이겨 내는 좋은 밑거름이 된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마취과 정의진입니다.”
의진은 이고철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차 물었다.
“우리 환자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고철입니다.”
“이고철 환자분 오늘 어떤 수술 받으시나요?”
“갑상선암 수술입니다.”
“자! 마취 시작할게요. 이거는 산소예요. 숨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렇죠.”
의진이 전신마취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경이 밖으로 나가 손을 씻으며 수술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태경은 어젯밤부터 이 수술만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할 때도 계속 생각했다.
“거기만 침범 안 해도 해볼 만한데…….”
그것도 특정 부위만 생각했다.
“꼼꼼히. 꼼꼼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중 옆에 있던 이찬희의 소리에 고개를 획 돌렸다.
“무슨 스크럽을 입으로 해.”
“죄송합니다.”
“왜? 또 떨려?”
“아닙니다. 저 안 떨려요.”
오늘 어시는 이찬희였다.
어제 이고철의 수술이 확정되고 태경은 이찬희와 최모나 두 사람 모두에게 환자의 정보를 주며 각자 수술 준비를 시켰다.
‘선생님, 저희 둘 다 어시로 들어갑니까?’
‘아니, 둘 중 한 사람 들어간다. 아침까지 각자 정리한 것 메일로 보내 놔.’
굳이 두 사람에게 준비를 시킨 이유는 두 명이 수술에 임하는 자세를 보기 위함이었다.
환자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력은 좋지만, 아직은 수술에 대한 떨림이 있는 이찬희. 그리고 특별히 모난 곳은 없었지만, 환자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력이 부족한 최모나.
아침에 메일은 보낸 정리 파일은 둘 다 비슷했다.
오늘 수술에 대한 주의점이나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들 그리고 현재 이고철의 상태와 수술적 특징 등. 이찬희와 최모나 것 중 누가 더 뛰어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찬희를 선택한 것은 태도였다.
‘이 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환자분 상태도 체크하고 자료 좀 더 찾아보려고요.’
‘근데 아직 수술방 들어가는 거 확정 난 거 아니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냥 일찍 오고 싶더라고요.’
수술을 앞둔 오늘 최모나는 평소와 같은 출근 시간을 준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소보다 딱 3분 늦게 왔다.
그에 반해 이찬희는 한 시간을 일찍 와 환자의 컨디션을 살폈다.
그동안 태경을 보고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늘 어시는 이찬희가 된 것이다.
“이찬희?”
“네, 선생님.”
“정말 안 떨려?”
“50% 정도 떨립니다.”
말은 50%였지만 사실 이찬희는 그보다 좀 더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최근 훈련했던 수술이 마침 갑상선이었고 태경의 수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공포와 같던 그 떨림이 이제는 수술방으로 들어간다는 기분 좋은 떨림으로 바뀌어 가는 듯했다.
“내가 안 떨리는 법 알려 줄까?”
“뭔데요?”
“환자의 목숨이 네 손에 달렸다고 생각해. 어때 정신 바짝 나지?”
“선생님. 그건 떨리다 못해 무서운데요?”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최 선생이랑 체인지 해.”
“그건 안 되죠. 오늘 어시 꼭 할 겁니다.”
“첫째, 환자에게 집중할 것. 둘째, 내 말에 귀 기울일 것. 셋째. 얼타지 말고 멍 때리지 말 것. 무슨 말인지 알았어?”
“네,”
“실수하면 죽인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인다뇨. 저 순간 진짜인 줄 알았습니다.”
“진짜야? 이 수술에 세 사람의 삶이 달렸어.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
“알겠습니다.”
지잉-
그렇게 이찬희의 정신을 단단히 고정시킨 태경이 드디어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가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