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79화 (78/472)

79화. 돌발행동

지잉-

그렇게 이찬희의 정신을 단단히 고정시킨 태경이 드디어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가운 주세요.”

태경은 자연스럽게 손에서 물기를 닦고 가운을 착장한 후 수술 장갑을 착용했다.

‘으! 냄새.’

오늘따라 익숙한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가 더 독하게 반겼다. 특히 미세하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유황 냄새가 심기를 건드렸다.

‘오늘은 공기청정기 생각이 간절하네.’

냄새 때문에 별생각을 다 한 태경은 수술 기구들이 수없이 나열되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포비돈에 듬뿍 적셔진 솜들과 링포셉(ring forcep)을 들고서 환자의 목 부위로 갔다.

갑상선 수술이므로 환자는 전신 마취 이후 쿠션을 어깨에 넣어서 고개를 뒤로 많이 젖힌 자세를 하고 있었다.

태경이 환자의 턱 선에서부터 가슴 위까지와 양 어깨 끝까지 포비돈을 듬뿍 발랐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말이다.

‘오늘은 더 과하게 바르시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와 의진이 각자 속으로 생각했다.

‘위험한 수술이니까 선배가 포비돈을 엄청 하네.’

태경의 습관이었다. 긴장되고 위험한 수술일수록 포비돈을 많이 발랐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수술방에 함께하는 의료진들은 그 차이가 극명해서 다들 눈치를 채고 있었다.

급기야 태경은 남은 포비돈을 이고철 목에다가 들이부었다.

“자, 드랩(drape, 수술 부위 주변으로 덮는 멸균된 일회용 포)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이 수술포를 덮자 의료진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르륵-

수술 기구들이 나열되어 있는 철제 테이블이 환자의 바로 옆으로 밀려져 왔다. 그리고 바로바로 태경에게 전달될 도구들은 좀 더 큰 테이블로 따로 정리된다.

그 뒤, 퍼스트 어시스턴트(first assistant)인 이찬희가 보비(Bovie, 전기소작기)와 석션(Suction) 줄을 정리한다.

“펜 주세요.”

환자의 목을 뚫어 버릴 듯이 노려보던 태경이 뒤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멸균된 펜을 손에 쥔 태경이 환자의 목 주위를 유심히 만져 본다.

‘이쪽, 그리고 이쪽.’

그러다 목젖과 그 아래 있는 해부학적 중요한 구조물들을 하나씩 그려 나갔다.

슥- 슥-

얼핏 그림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니다.

수술 중에 위치를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표시한 것이다.

“이 선생, 내가 지금 어디를 표시하는 걸까?”

“스터노클레이도마스토이드 머슬(sternocleidomastoid muscle)입니다.”

“맞아. SCM을 표시 하고 있지.”

SCM은 귀 바로 밑에서부터 대각선으로 내려와 목젖 밑에 있는 쇄골 끝까지 뻗어 가는 근육으로, 이 SCM을 기준으로 림프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림프절들이 오늘 상대할 주요한 적진이다. 잘 기억해 둬.”

“알겠습니다.”

“한두 시간짜리 수술이 아니라 좀 걸릴 겁니다. 다들 끝까지 집중해 주시고 최선을 다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한테 익숙한 수술방이지만 환자한테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을 겁니다. 다시 올 일 없도록 자만하지 말고 후회 없이 합시다.”

태경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의료진을 차례로 쳐다보며 각오를 다졌다.

“메스 주세요. 정 선생님 수술 시작합니다.”

“네, 선생님.”

메스를 쥔 태경이 목젖에서부터 3cm정도 아래에다 5cm가량 절개선을 가로로 넣었다.

“보비와 투스(tooth, 끝에 동물 이빨처럼 집을 수 있는 것이 있는 작은 포셉).”

“저도 투스와 디베키 포셉(debakey forcep, 끝이 길고 얇은 포셉) 주세요.”

태경이 절개선 한쪽을 잡자 이찬희가 다른 한쪽을 잡고서 들어 올렸다. 곧이어 보비를 쥔 태경이 피부 밑 조직을 벌여나가고, 이찬희는 아무 말 없이 태워진 조직에서 나는 연기들을 석션으로 빨아들였다.

“앨리슨(Allison, 끝이 넓은 포셉) 주세요.”

앨리슨을 받아 든 태경이 자른 절개선 중 환자 쪽에 가까운 절개선 쪽을 잡는다. 그중에서도 피부 밑 조직들을 한데 뭉쳐서 잡아 뒤로 젖히자 이찬희가 바로 손을 뻗어 환자의 머리 쪽으로 잡아당겼다.

탁-

그사이 태경이 손을 뻗어 조명을 조절했다. 그리고 환자의 피부 및 조직들을 날카롭지 않은 보비 끝으로 누르듯이 벗겨 내고 조직들이 너무 강하게 붙어 있는 부분은 전기로 지져서 젖혔다.

이 과정을 반복하고 환자의 아래쪽 절개선에도 반복한다. 그러자 혈관들이 군데군데 있는 근막과 근육들이 보였다.

“이 선생, 이 혈관 보면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덩굴 같은데요.”

“그렇지.”

이찬희의 대답 그대로였다.

여기서의 혈관들은 마치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처럼 뻗어져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출혈이 생기지 않게 파고들어 간다.

태경은 디베키 포셉으로 턱에서부터 아래로 뻗어 내려가는 플라티스마 머슬(platysma muscle, 목 앞면에 커튼처럼 있는 근육)을 포함하여 보비로 절개해 나갔다. 이 근육들 바로 아래에 갑상선이 있기에 조금씩 조심스럽게 근육을 절개해 나가야 한다.

“아미네이비 리트랙터(army navy retractors, 조직 등을 견인할 때 사용하는 기구로 끝이 기역자로 굽어져 있다) 주세요. 하나 더 주세요.”

기구를 받은 태경이 세로로 잘린 근육 위아래에 각각 기구 끝을 걸고, 이찬희는 시야가 확보되도록 기구 한쪽을 잡아당기면서 요리조리 근육들을 넓혔다.

“이놈이 갑상선이야.”

“…….”

“이 선생?”

태경은 갑상선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고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말했다.

“이찬희!”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버럭 높은 소리가 수술방에 울렸다.

“아, 네. 네. 선생님.”

“너 설마…….”

“아니요, 아닙니다.”

말끝을 흐리며 주어가 생략된 태경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이찬희는 강한 부정을 나타냈다.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확실해?”

수술 중간 중간 태경은 일부러 이찬희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가르침의 목적도 있었지만, 긴장감과 두려움을 풀어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이찬희가 대답이 없자 이 짧은 찰나의 순간 또 쓰러지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소리친 것이다.

“확실합니다. 선생님 술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부르는 걸 듣지 못했습니다.”

사실이었다.

태경의 수술을 보다 보면 저절로 그 술기에 집중하며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저 양 손끝에도 눈이 달린 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선생님 수술을 보면 저도 모르게 집중이 되거든요.”

“너 솔직히 말해. 졸았지?”

“예? 안 졸았어요. 그리고 진짜입니다.”

“우리 이 쌤이 선생님 바라기잖아요.”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건 임 선생님뿐입니다.”

“시끄럽고. 갑상선 수술 시 중요한 게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림프절과 부갑상선의 구분이 힘들어 그것을 잘 구분해서 부갑상선을 살리는 거야.”

“하지만 환자분은 암이 많이 퍼졌는데요.”

“맞아. 이고철 환자는 예외지. 너무 퍼져서 다 들어내야 되니까 그냥 의심되는 건 다 자를 거야.”

여전히 손과 시선은 환자에게 고정된 채 태경은 입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게 뭐지?”

“갑상선 주변에 주행하고 있는 너브(nerve, 신경)를 손상 입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 맞아. 아마도 여기 즈음…… 앨리슨 주세요.”

태경이 앨리슨 포셉으로 갑상선의 윗부분을 잡고 오른쪽 갑상선을 왼쪽으로 당기자 이찬희가 기구를 건네받았다. 그러자 오른쪽 갑상선 그 아랫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 즈음인 것 같아. 우선 하나씩 파고 들어가는데 이 주변을 팔 때는 조심해야 돼. 여기 신경 보이지?”

“네, 선생님.”

“이 신경이 목소리에 영향을 주고 또 목 주변 근육들을 지배하는 줄기도 이 근처니까 조심해야지. 자! 하모(Harmonic scalpel, 초음파를 이용해 짧은 시간 아주 많은 진동을 주어 조직을 절개하는 기구) 주세요.”

이제 갑상선을 분리해 내기 위해 그 주변에 연결돼 있는 많은 혈관과 근육 등의 조직들을 하나하나 절개해 나간다.

“이 조직들은 항상 출혈 조심해야 해.”

“네.”

이러한 조직들은 모두 다 출혈의 원인이 되므로 어떤 식으로든 출혈이 발생하지 않도록 결찰(혈관이나 신경 등의 끝을 막히게 하는 술기)을 해야 한다.

띠-띠-띠-띠-

초음파로 절삭을 시작하자 일정한 기계음 소리가 수술방에 울렸다.

“이 기계 나올 때 나랑 다른 전공의들이 만세를 불렀어.”

“왜요?”

“이게 없을 때는 저 많은 구조물들을 하나하나 타이(Tie, 실로 결찰을 하는 술기) 해야 했으니까.”

“그때는 진짜 수술방에서 타이 하느라 선생님들이 애쓰셨죠.”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힘드셨겠네요.”

“그렇지. 갑상선 수술 한 번이면 100번은 넘게 해야 했으니까.”

과거 이야기를 꺼내던 태경이 하모를 집다 다시 내려놓았다.

“제미니(gemini hemostatic forcep, 가위 형식의 90도로 꺾어져 있는 포셉으로 혈관, 근육 등 결찰하고자 하는 곳에 파고들기 용이함.) 주세요.”

두근두근-

마치 심장처럼 박동을 보이는 혈관 밑으로 태경이 제미니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기구를 조금씩 벌리다 집어넣고를 반복해 혈관 밑으로 제미니가 뚫고 나오도록 한다.

두근두근-

기구 위에 혈관이 아직도 심장 박동에 맞춰 방방 널뛰고 있었다.

“타이.”

그 말에 간호사가 모스키토(mosquito, 작은 가위 형식의 집게로 끝이 약간 굽어져 있음) 끝에 녹는 실을 물은 채로 태경에게 건넸다.

태경이 모스키토 끝을 제미니 기구 끝으로 조심스럽게 갖고 갔다. 그리고 실 끝이 제미니의 끝에 닿게 한 뒤 이찬희가 제미니를 이용해서 실을 잡고, 제미니를 당기면 혈관 아래로 실이 나오게 된다.

이 실로 타이를 하며 혈관이 막히기 때문에 태경은 자연스럽게 써지컬 타이(surgical tie)를 했다.

외과의사의 실력으로 뽑히는 것중 하나가 타이 실력이다.

‘그래, 이 느낌이야.’

손가락에 착 닿는 실의 감촉이 느껴졌다.

누구라도 보는 순간 인정하는 실력이었지만 태경은 아직까지도 중요한 수술 전에 반드시 타이 연습을 잊지 않았다.

감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혈관을 묶을 때는 그 감이 매우 중요했다.

조금만 당기는 힘이 강하면 혈관이 찢어지고 그러면 수술 부위는 순식간에 피로 낭자 된다.

태경은 실을 너무 당기지 않으면서 정확히 힘을 주어야 할 곳에 힘을 주어 혈관을 온전하게 묶어 나갔다. 그리고 이 과정은 같은 의사가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완급 조절이 정말 대단하네.’

의진과 이찬희가 그 과정을 보며 각자 속으로 감탄했다.

‘혈관을 상대로 어떻게 저렇게 타이를 하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혈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정확한 힘의 균형이 태경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제 정확히 두 시간을 연습하셨어요.’

신속하고 정확한 타이에 감탄하던 이찬희는 문득, 아까 임정숙 간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타이 연습이요?’

‘네, 세상에 배달업체에서 이것저것 시키시더니 미동도 없이 타이를 하셨다니까요.’

아직까지 타이 연습을 하는 태경의 이야기를 듣고 눈앞의 저 실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하모.”

태경은 타이를 하고서 그 바로 아래 혈관 부분을 하모로 잘났다.

“제미니.”

다시 주변의 미세하게 연결된 근육을 하나하나씩 제미니를 이용하여 박리하면서 결찰 해 나간다.

‘예상했지만 모양이 많이 망가졌네.’

암으로 일그러져 버린 갑상선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태경은 다시 갑상선을 왼쪽으로 제쳤다.

“이게 아까 말한 리컬런트 라린기얼 너브(recurrent laryngeal nerve, 목소리를 내는 후두개를 지배함)야. 이거를 옆으로 밀고서 다치지 않게 해야 돼.”

“네, 선생님.”

태경은 갑상선의 아랫부분을 모두 박리하고 기도와 접해져 있는 부분을 하모로 박리한 뒤, 기도와 갑상선이 붙어 있는 부위는 타이를 이용해서 결찰 한다.

“기도를 아직 침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네. 반대쪽도 다 나가고 프로즌 바이옵시(frozen biopsy, 동결절편생검, 수술중 절개한 부위에 암이 없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신속하게 동결하여 현미경을 통해 병리과 의사가 확인함) 한꺼번에 나갈게요.”

“네.”

“그리고 방금 나간 기도와 접한 부위도 트라키아 마진(trachea margin, 기도 쪽 경계)으로 프로즌 바이옵시 나가 주세요.”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자! 이제 정상 갑상선인 왼쪽 시작합니다.”

암이 있는 부분이야 주변과 유착도 많아서 힘들지만 정상인 부분은 그 정도가 미약하다. 그렇기에 오른쪽에 비해서 1/3 정도의 시간만으로 빠르게 박리와 절개가 끝났다.

“후!”

갑상선을 모두 절개하고 이찬희는 이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잔뜩 붙들고 있던 긴장감이 살짝 풀리자 마스크 안으로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뱉었다. 하지만 태경은 달랐다.

터벅-

갑자기 수술 위치에서 한 걸음 물러서더니 뒤를 돌아서 환자의 발쪽으로 걸어갔다.

터벅- 터벅-

‘뭐가 잘못됐나?’

‘왜 저러시지?’

‘응? 뭐지?’

태경의 행동에 스텝들이 의아해하던 바로 그때였다.

쫙-

눈앞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쫘아악- 쫙-

별안간 태경이 입고 있는 자신의 일회용 수술 가운을 잡아서 뜯어 버린 것이었다.

“……!”

“어!?”

그 순간, 너무 놀란 스텝들의 동공이 하나둘씩 그라데이션으로 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