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80화 (79/472)

80화. 24시간 물에 젖은 한지

보호자 대기실-

안절부절.

현재 푸엉의 상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안절부절 그 자체였다.

환 자 명: 이ㅇ철 성별: 남

진행상황: 수술중

수술시간: 17:05~

모니터를 쳐다본 푸엉이 자리에 앉았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이고철이 수술실에 들어간 직후에는 대기실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남편은 생과 사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앉아 있는 것조차 왠지 모르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대기실을 왔다 갔다 하던 푸엉을 지나가던 간호사가 보며 의자에 앉혔다.

“보호자님 홑몸도 아니신데 의자에 앉아 계세요. 다리 아파요.”

그제야 뱃속에 있는 깐담이 생각에 의사에 앉았다.

“남편아 당신 슈퍼맨이다.”

휴대폰 속 활짝 웃고 있는 이고철의 사진을 보며 푸엉은 계속 속삭였다.

“슈퍼맨은 무조건 이긴다. 당신 암 이긴다. 나랑 깐담이가 응원하고 있어.”

살짝 올라온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뱃속 아기가 들을 수 있도록 응원하고 또 응원했다.

“선생님 우리 깐담이 아빠 살려 주세요. 수술 잘되게 해 주세요.”

푸엉은 태경의 응원도 잊지 않으며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도했다.

* * *

‘응? 뭐지?’

태경의 행동에 스텝들이 의아해하던 바로 그때였다.

쫙-

눈앞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쫘아악- 쫙-

별안간 태경이 입고 있는 자신의 일회용 수술 가운을 잡아서 뜯어 버린 것이었다.

“……!”

“어!?”

그 순간, 너무 놀란 스텝들의 동공이 하나둘씩 그라데이션으로 커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찰나 태경의 2차 돌발 행동이 이어졌다.

지잉-

수술 잘하던 중간에 수술 가운을 찢더니 이번에는 아예 수술방을 나가 버린 것이다.

“…….”

“뭐예요? 임 쌤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나도 몰라요.”

“아니, 수술 순조롭게 잘하고 계시다가 왜 갑자기…….”

“손 닦고 계신데요.”

수술방의 한 간호사가 까치발을 들어 밖을 보며 말했다.

“스크럽을요?”

“네.”

모두가 태경의 돌발 행동에 어안이 벙벙한 사이 수술방을 나갔던 태경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금 수술 가운을 입고 자세를 잡았다.

“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임정숙 간호사가 대표로 묻자 의진과 이찬희를 비롯한 모든 시선이 태경을 향했다.

“중요해서.”

“네?”

“지금부터가 진짜 너무 중요해서요.”

싱거울 정도로 간결한 대답에 스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요하다고?’

다만, 이찬희는 조금 의아했다. 암이 있는 갑상선을 모두 떼어 냈는데 무엇이 더 남았고 무엇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공의 수련을 할 때도 이 정도로 심각한 갑상선암 환자를 처음 봤기에 이찬희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세를 잡은 태경은 투스(tooth forcep)를 잡더니 오른쪽의 갑상선 옆을 잡아당겼다.

“아니 앨리슨 포셉 주세요.”

다시 피부 밑 세포들을 드르륵 집더니 잡아당기고 오른쪽 갑상선보다 더 오른쪽의 피부들을 계속해서 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이된 놈들 차례인데…….’

이제는 갑상선이 전이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른쪽 림프절들을 모두 박리할 단계다. 하지만 이것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이 림프절들은 모두 두 개의 혈관들 사이에 나란히 아래로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개의 혈관은 각각 머리에 공급되고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관인 인터널 주굴라 베인(Internal jugular vein)과 머리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인 코몬 캐로티드 아테리(Common carotid artery)였다.

‘머리’ 와 ‘심장’이란 단어만 들어도 두 혈관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험한 요소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혈관들은 각각 정맥과 동맥으로 직경이 1cm정도에 다다른다.

꼴깍-

이찬희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무시무시한 혈관들을 보며 침을 삼켰다.

‘왜 보는 내가 더 긴장이 되냐고.’

안도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혈관 중 하나라도 정말 일말이라도 손상을 입게 되면 그로 인해 5분 내로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림프절에 전이된 암이 이 혈관 벽에 침범해서 유착이 심하면 박리하는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상처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지…….’

이찬희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긴장한 자신과 달리 혈관을 마주한 태경의 눈빛은 차분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하지만 태경 역시 생각이 많았다. 사실 어젯밤부터, 아니 초음파를 볼 때부터 박리하는 과정 중 생기는 상처에 대해 걱정이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수술방은 곧바로 재앙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아무리 조심한다 하여도 막는 것에 한계가 있는 재앙이 이제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시작하려는 술기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짧게 생각을 정리한 태경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메스.”

태경의 눈에 긴장이 서려 있으나 떨림은 없다. 중요한 순간이고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대범함이 그것을 대처한다.

그동안의 경험과 본인의 지식을 믿고서 지금 환자의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수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침착하자.’

스터노클레이도마스토이드 머슬(SCM muscle)을 바깥쪽으로 밀고서 고정시켰다.

방- 방-

그러자 위엄 있게 널뛰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혈관이 보였다. 바로 림프절 밑에 있는 문제의 혈관이었다.

이것들은 작은 손상도 안 되기 때문에 전기소작기로 해서도 안 된다.

“거즈를 돌돌 말아서 앨리슨에 물어서 주세요.”

“네, 선생님.”

그 말에 간호사가 거즈를 2cm 조금 안 되는 크기로 단단하면서 뭉툭하게 만들어서 건넸다.

태경이 그걸로 두 개의 혈관을 지그시 누르고서 메스로 그 위의 막들을 살살살 쳐낸다.

‘……!’

신중하지만 거침없는 손길이었다.

‘미쳤다. 진짜 미쳤어.’

그걸 보고 있던 이찬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저 두 개의 혈관들 위에서 메스질은 누구라도 소름이 돋는 행위였다.

만약 햇병아리 인턴들이 이 자리에 참관했다면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과장이 아니었다.

정맥과 동맥혈관은 정말 어려운 영역이었다.

‘저런 술기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몇이나 있을까? 나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

이찬희의 긴장감이 감격으로 바뀌던 그때 태경은 이제 막을 벗겨 내고서 그 위의 있는 림프절들을 줄줄이 박리해 냈다.

‘좋아. 이 페이스로 유지하자.’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중간 즈음에서 박리를 하던 그때였다.

솨아악- 솩-

환정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였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솨아악-

림프절을 박리해 내기 위해서 펼쳐진 가로 5cm 세로 15cm 정도 되는 공간이 5초도 안 돼서 피로 강을 이뤘다.

수술방은 순식간에 재앙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최루가스를 터트린 듯 냄새의 강도가 미친 듯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순간 이찬희는 생각했다.

‘Table death.’

영락없이 이고철 환자가 테이블 데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저 어마어마한 혈관들을 이만큼 했다는 것도 태경이기에 가능했다.

갑상선암. 이미 초기를 훌쩍 지나 림프절로 전이가 시작된 암.

게다가 그 림프절을 박리하기 위해서 저 혈관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는 경우였다.

만약 이고철이 태경이 아닌 다른 의사를 만났다면 수술을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할 케이스였다.

‘출혈이……출혈이 많다.’

엄청난 출혈량에 이찬희의 긴장감이 다시 널뛰기 시작했다. 기구를 잡고 있는 손끝이 의지와 상관없이 살짝 떨려 왔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선생님은…….’

이찬희는 빠르게 태경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시발!’

‘아! 쌍.’

‘젠장! 닫자.’

대게 이 상황이라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집도의들 입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말들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입이 험해서도 성격이 괴팍해서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인군자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경의 표정과 눈빛이 이상했다.

‘뭐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요하지 않고 계셔.’

수술 전 아무리 철저하게 검사를 해도 예외가 생겨나는 곳이 바로 수술실이었다.

그렇기에 태경은 전날 타이 연습과 함께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생각하며 숱하게 연구했다.

이고철을 수술하며 나올 수 있는 응급 상황을 미리미리 계산해 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이 재앙 같은 상황도 그 경우의 수에 포함되어 있었다.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는 순간 자만하게 되며 그 자만에 도취된 순간 환자를 잃게 된다.

이것이 아직도 태경이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유였다.

‘출혈 속도가 빠르다.’

태경은 빠른 속도로 나오는 출혈을 마주했다.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그 속도가 빠른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종이 중에 유난히 두께가 얇은 한지라는 것이 있다. 몇 장을 겹쳐도 일반 종이보다 얇았다.

일반 종이는 물속에 넣은 다음 한 동안은 그 모양을 유지한 채 빼낼 수가 있다. 하지만 한지는 물속에 넣으면 그 상태를 유지한 채 꺼내 들기가 어렵다.

그만큼 얇기 때문에 금세 풀어진다.

이 두 혈관 놈들이 그랬다.

마치 몇 장으로 겹쳐진 얇은 한지들이 24시간 물에 젖어 있는 상태. 그 상태가 평상시 두 혈관의 상태였다.

그러니 술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었다.

“살린다!”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듯 태경이 말했다. 그 눈빛의 결연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뿜어져 나오는 출혈만큼이나 다섯 번째 바이탈의 냄새 또한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었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반드시 살린다.”

이 혈관의 상처를 복원해서 환자를 죽음에서 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이찬희!”

“네, 네. 선생님.”

“뭐해! 지금 네가 할 일 안 할 거야?”

“아니요, 합니다. 석션!”

쩌렁하게 울리는 태경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이찬희가 들고 있던 석션으로 피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슉- 슉-

그 많은 피들이 순식간에 기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술방 석션의 힘은 꽤 강한 편이다. 500cc 물도 20초가 안 돼서 모두 빨아들인다. 하지만 이 출혈이 여간 빠른 것이 아니었다.

석션 끝이 약간만 상처 부위를 어긋나도 온 시야가 혈액으로 가려질 판이었다.

슉- 슉-

“불독(Bulldog, 큰 혈관들을 잠시 완전히 차단할 때 쓰는 기구로 끝이 길고 굽어져 있다. 빨래집게와 작동 원리는 유사하다) 주세요.”

“……!”

불독이라고?

석션을 하며 귀로 오더를 듣고 있던 이찬희가 의아했다.

불독으로 혈관을 집으면 그 순간 모든 출혈이 멈추게 된다. 당연히 시야 확보나 이후에 처리가 간단해진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타임아웃이 걸릴 텐데…….’

이 수술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 혈류가 완전히 차단되고 시간제한이 걸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큰 혈관은 손상된 부위만큼 정확한 복구가 필요하고 그만큼 시간이 많지도 않다.

수술방 스텝들이 태경에게 주목한 사이 다음 오더가 쏟아졌다.

“마이크로 포셉(micro forcep, 일반적인 포셉보다 크지만 훨씬 작은 니들과 구조물을 잡을 수 있도록 설계된 포셉)하고 니들 홀더(needle holder) 주세요. 그리고 제 루페도 주세요.”

“루페요!?”

정확하게 포셉을 건네주던 간호사 멈칫하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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