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81화 (80/472)

81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마이크로 포셉하고 니들 홀더(needle holder) 주세요. 그리고 저 루페도 주세요.”

“루페요!?”

정확하게 포셉을 건네주던 간호사 멈칫하며 되물었다.

“저기 기구함 열면 그 안에 제 이름 쓰여 있는 상자가 있거든요. 그거 열어 보세요.”

태경의 말대로 상자를 열어 보니 렌즈에 현미경 같은 돋보기가 달려 있는 안경이 나왔다.

확대경이라고 불리는 루페(Loupe)는 외과의들이 자주 사용하는 고마운 기구였다.

루페를 사용하면 수술할 부위가 크고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섬세하게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각자 개인에게 맞춤으로 제작되기에 금액이 상당히 나간다.

빚을 갚으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태경이 유일하게 투자한 게 바로 이 루페였다. 그만큼 외과의에게는 필수와도 같았다.

“그거 얼른 씌워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이 안경을 착용하고 작디작은 바늘을 마이크로 포셉으로 집은 채 신속하게 리페어(repair, 복구)한다. 그 간격은 채 2mm를 넘지 않는다. 간격은 일정하며 강도 또한 일정해야 한다.

그 이유는 많은 양의 혈류가 지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정하지 않으면 출혈은 기본이고 와류로 인해 혈전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심장이나 폐를 막을 수 있고, 환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지금 태경이 하고 있는 리페어는 잘 들어가지 않는 바늘에 실을 꿰는 것보다 정교하고 순두부를 무너짐 없이 뜨는 것보다 조심스러우며 날아오는 야구공을 잡는 것보다 신속해야 했다.

말 그대로 신속, 정확, 일정. 이 삼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엄청난 중압감은 언제나 덤이다.

한 땀 한 땀 혈관 벽에 역학을 고려하면서 봉합을 해 나가고 있다.

태경이 루페어를 하는 동안 수술방의 모든 스텝들이 숨소리조차 죽였다.

‘저럴 수 있는 건가…….’

태경의 미친 듯한 집중력을 보며 이찬희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귀에다 확성기를 대고 떠들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을 집중력이었다.

수술실의 지휘자라는 말이 달리 생긴 게 아니었다.

그렇게 모두가 문제의 혈관에 집중하던 그때 태경이 고개를 들더니 혈류를 차단했던 불독을 풀었다.

“어! 출혈이…….”

“출혈이 없습니다.”

“환자 출혈이 잡혔어요.”

진짜였다.

무섭도록 빠르게 피를 내뿜던 혈관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완벽한 타이밍에 손상된 혈관을 완전히 복구한 것이다.

“선생님. 출혈이 없습니다.”

“그러게. 다행이네.”

제 일처럼 기뻐하는 스텝들과 달리 태경의 답변은 무덤덤했다. 사실 태경도 속으로 기뻤다. 하지만 아직 수술이 끝난 게 아니기에 그 기쁨 마음을 잠시 접어 두기로 한 것이다.

“자! 나머지 림프절도 다 떼자.”

“네, 선생님.”

다행이 나머지 림프절을 박리할 때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 식염수 등으로 세척하는 행위) 할게요. 10cc씩 다섯 개만 준비해 주세요.”

태경은 가벼운 마음으로 식염수를 뿌렸다.

“여기 근막 닫을 거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자! 거의 다 왔습니다. 마무리합시다.”

이후에 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근막을 봉합하고 그 위의 피부 밑 조직을 닫고서 마지막으로 피부를 닫는다.

약간의 다른 점은 다른 수술 부위와 다르게 목이라서 봉합 실을 녹는 것으로 하면서 피부 밑에 매듭이 파묻히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료용 본드로 봉합을 한 뒤 수술이 마무리됐다.

‘전부 빠졌다.’

태경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유황도 포르말린도 다 사라졌네.’

모든 수술이 잘 마무리됨과 동시에 모든 냄새가 마치 마술처럼 사라지는 이때가 기분이 좋았다.

‘그래, 바로 이 냄새가 나야지.’

온전하게 느껴지는 수술실 그 특유의 냄새가 이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하!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이 선생도 고생했어.”

“전 아까 롤러코스터 타는 심정이었습니다. 정말 하나의 묘기를 본 것 같았습니다.”

“이찬희 너 아부가 많이 늘었다.”

“진짜예요.”

“그건 이 쌤 말이 맞아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와 의진이 차례대로 심정을 털어놨다.

“저도 아까 혈관 때문에 어찌나 마음 졸였는지……. 수고하셨어요.”

“정 선생도 수고 많았고 임 선생님도 다들 수고 많았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스텝들과 인사를 나눈 태경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3층 병동입니다.

“전데요. 이고철 환자분, 오늘 내일은 출혈 위험 있으니까 무조건 금식해 주시고요. 아침하고 저녁에 칼슘 농도 체크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리고 통상적인 갑상선 전절제 환자들에게 복용시키는 칼슘제제는 내일 아침부터 주시고요. 아침 식이는 죽으로 할게요.”

-식당에 전달하겠습니다.

“중간에 환자 통증 심하면 제가 낸 처방에서 PRN(필요시 언제든 사용가능한 약물 처방) 처방한 것 주시고요. 물론 환자 수술 부위가 부어오르거나 목소리가 이상하거나 하면 언제든 콜 주세요. 이따 병동 가서 한번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경은 수술방 시계를 쳐다봤다.

수술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가 6을 나타냈다.

“언제 시간이 저리 갔냐.”

무려 6시간이나 걸린 수술이었다.

간 수술 시에는 27시간의 수술도 해 봤지만, 지금은 긴장을 해서 그런가 그때와 비슷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긴장이 풀리자 순식간에 피로가 밀려왔다.

지잉-

태경은 지친 몸을 이끌고 수술방을 나섰다.

“긴장이 풀리니까 슬슬 배고프네.”

기분 좋은 공복감이었다. 얼른 식당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 전에 먼저 들릴 곳이 있었다.

환자의 수술이 끝나길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 바로 보호자 대기실이었다.

* * *

‘우리 남편 살려 주세요. 지금까지 열심히 산 사람이에요. 부디 우리 남편이 저와 우리 아이와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살려 주세요. 수술하시는 선생님에게도 힘을 주시고, 지치지 않고 수술이 잘 끝나도록 모든 분들을 붙잡아주세요.’

“……분?”

“보호자분?”

태경이 부르는 소리에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하던 푸엉이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우리, 우리 남편은 어떻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하!”

그 소리에 안도의 숨을 내쉰 푸엉은 다리가 풀리며 의자에 털썩 앉아 버렸다.

보호자 대기실 모니터와 핸드폰으로 수술이 끝났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있었지만 푸엉은 한 시간 넘게 기도하느라 알지 못했다.

“우리 깐담이 아빠 괜찮은 거죠?”

“네, 괜찮아요.”

태경은 푸엉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중간에 혈관 쪽 출혈이 있었는데 잘 잡았어요.”

“역시 선생님이 최고다. 너무 감사해. 감사합니다.”

“지금 회복실에 있으니까 아마 조금 있으면 병실로 이동할 거예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푸엉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이고 태경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고철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행여 잘못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태경이라면 남편을 살려 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에 보답해 준 태경이 너무 감사했다.

“선생님이 우리 남편 살렸어요. 우리 가족 은인이다.”

“보호자분도 애쓰셨어요. 얼른 병실로 가 보세요.”

“선생님 정말 좋은 의사다. 이 은혜 잊지 않을 거다.”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푸엉은 몇 번이나 해도 부족한 인사를 마무리하며 병실로 향했다.

* * *

“……그래서 있잖아. 최 쌤, 내 말 듣고 있어?”

의국실에 온 이찬희는 응급실 환자를 모두 체크하고 잠깐 쉬러 온 최모나에게 경험담을 쏟아 내고 있었다.

“동맥혈관이 얼마나 얇아. 응? 근데 거기서 피가 팍! 나 순간 이건 백퍼 테이블 데스구나 싶었다니까.”

“…….”

“와 근데 미친 선생님이 루페 딱 착용하고……와!”

이찬희는 개떡 같은 그림 솜씨로 화이트보드에 혈관까지 그려 가며 벅찬 감동을 강제 전달 중이었다.

“그때 그 침착함과 집중력 그리고 그 실력은 진짜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정도였다니까.”

“…….”

“최모나 너 내 말 듣고 있어?”

심드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최모나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 듣고 있냐고?”

“아니.”

“들으면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라고.”

“글쎄. 그 뼈와 살 너나 많이 해.”

“이거 돈 주고도 못 듣는 귀한 얘기야. 관심 있게 들어.”

“별로.”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짧게 답했지만 사실 최모나의 마음은 정 반대였다.

지금까지 아닌 척하며 이찬희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고, 관심도 지대하게 많았다.

너무 집중해서 들으면 민망할 것 같아 일부러 모니터를 보고 있던 것이다.

“나 정말 우리 선생님 너무 존경스러워.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 기분, 친구야 너는 아니?”

“이찬희, 그만 좀 하라고!”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래.”

“지금 환자 자료 보느라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여?”

“환자 자료 보는 중이었어? 미안. 난 몰랐지. 미안해.”

이찬희의 말을 무시하던 최모나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높이더니 있지도 않은 환자 자료 탓을 하고 있었다.

뭔가 급작스럽기 했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약 올라.’

바로 약이 오르고 분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수술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찬희만 참여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분했다.

전날, 태경으로부터 이고철의 케이스를 전해 듣고 집에서까지 자료를 찾아보며 나름 만만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번 수술을 꼭 참여하고 싶었기에 짜증이 났다.

‘어떻게 이찬희가 들어간 거지?’

최모나는 자신이 어시를 할 줄 알았다. 이찬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은 수술실에도 떨거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태경이 이찬희를 은근히 편애하는 것만 같았다.

‘왜, 내가 아닌 거야? 왜, 이찬희인 건데?’

최모나는 아직까지 자신이 수술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쾅!

“아, 깜짝아.”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에 이찬희가 고개를 들고 맞은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 왜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뭐래. 뭐가 아닌데. 최 쌤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억울함과 분한 감정이 뒤섞인 최모나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 직접 물어보자.’

그렇게 태경에게 찾아가 그 이유를 묻기로 결심했다. 안 그러면 도저히 이 찜찜한 기분을 덜어낼 방법이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드륵-

“최 쌤, 어디가?”

목적지를 묻는 이찬희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채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저벅-

‘진료실에 계시겠지? 아니면 식당. 그것도 아니면 응급실에…….’

그렇게 태경이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하며 문 앞에 다다른 순간,

탁-

“……!”

문이 확 열리는 소리와 함께 태경이 들어왔다.

“서, 선생님.”

태경이 올 거라 생각 못한 최모나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췄다.

“어, 최 선생. 어디 가?”

“선생님께 가려던 중이었습니다.”

“나한테 왜? 뭐, 할 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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