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레이프 환자
그렇게 모니터 속 결과지를 옮겨가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
의외의 결과 하나가 태경의 시선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이거 hcg가 너무 높잖아.”
임신 여부와 관련이 깊은 소변 검사상 hcg가 너무 높게 나왔다. 태경은 의아스러운 마음에 곧장 환자에게로 향했다.
챠륵-
커튼을 닫고 베드 안으로 들어서자 환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태경을 쳐다봤다.
“환자분 혈액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우선 이렇다 할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그럼 이 배 아픈 건 왜 이러는 거예요? 저 너무 불편해요.”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계속해서 어필했다.
“제가 병원을 진짜 싫어하거든요. 근데 이게 너무 불편해서 응급실까지 온 거라고요. 오죽하면 이렇게 제 발로 왔겠어요.”
“물론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고 환자분이 정상이시고 통증의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이 느끼시는 증상이니까요.”
“그러니까요.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그 점은 저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네, 뭔데요?”
“혹시 임신하셨나요?”
“네?! 임신이요?”
‘임신’이란 말에 베드에 누워 있던 환자가 화들짝 놀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성관계를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임신이에요? 그 질문이 저한테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아세요?”
“조금 전 환자분이 한 검사 중에 임신과 관련된 수치가 높게 나왔습니다.”
“말도 안 돼. 지금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죠?”
환자는 태경의 말을 연신 믿을 수 없다는 듯 강하게 부정했다.
“환자의 검사 결과를 거짓으로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일단 확실히 하기 위해 잠깐 초음파 검사 좀 해 볼게요. 정 선생 콜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아니요!”
임정숙 간호사가 나가려고 하자 환자가 커튼을 붙잡고 제지하며 말했다.
“안 해 봐도 돼요. 저 임신일 리가 없다니까요.”
“저기 환자분…….”
“아니 그렇잖아요. 제가 바보 천치도 아니고 본인이 본인 임신한 거를 모르겠어요? 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그런 사람 본 적 있으세요? 그리고 저 몸에 되게 예민한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어떻게 임신을 모를 수가 있겠어요.”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는 환자의 강한 부정으로 인해 약간 당황을 했다.
“무엇보다 전 성관계를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없다고 하잖아요.”
환자는 강한 부정을 넘어 거의 아니라는 확정을 못 박고 있었다. 그렇지만 의료인으로서 임신 여부를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임신 시 할 수 있는 검사와 해서는 안 되는 검사들 그리고 투여 약물의 선택이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음파를 환자가 거부한다는 것이다.
“환자분 저희가 여자 선생님을 불러 드릴게요. 그러니까…….”
“안 해요. 안 한다고요. 초음판지 뭔지 그거 안 해요.”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진심을 다해 설득을 해 봤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커튼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어떡하죠?”
“환자분이 현재 완강하니까 일단 지켜보고 다시 설득해야죠. 저도 방법을 찾아볼게요.”
“저기……?”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가 대화를 하며 스테이션으로 향하는데 누군가가 태경의 가운을 붙잡았다.
“선생님?”
지금까지 베드 안에서 묵묵히 딸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의 엄마였다.
“네, 보호자분.”
“그게…….”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세요?”
“예. 잠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말을 하라는 태경의 말에 환자의 어머니가 한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조용히 말했다.
“딸에게 들릴까 봐서요.”
정말이지 속삭이다시피 작게 말한 보호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는 고개를 돌려 딸이 있는 베드 쪽을 살피며 다시 한번 속삭였다.
“잠시 다른 곳에서 대화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임 선생님 환자분 좀 잘 봐주세요.”
“네, 선생님.”
보호자의 말을 듣고 뭔가 분위기를 감지한 태경은 자신의 진료실로 안내했다.
“여기서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네, 그러네요. 딸아이에게 들리진 않겠어요.”
“이제 말씀해 보시겠어요?”
“하! 그게……그러니까. 후!”
응급실과 거리가 있는 진료실까지 왔지만 어쩐지 보호자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양손을 주먹을 쥐듯 말아 쥐었다 다시 깍지를 끼고 비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보호자 분 여기, 의자에 잠시 앉아 보시겠어요.”
보호자를 의자에 앉힌 태경은 정수기에서 받아온 물이 담긴 종이컵을 내밀었다.
“따뜻한 물입니다. 한 모금 하시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보호자는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물을 한 번에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가 된 듯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던 속내를 어렵게 꺼냈다.
“선생님. 사실 제 딸아이가 두 달 전 즈음에 안 좋은 일을 겪었어요.”
“안 좋은 일이요?”
“네…….”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성범죄를 당했어요.”
끝끝내 초음파를 거부하며 자신이 임신일 리가 없다며 강한 주장을 펼쳤던 여자는 레이프 환자(rape, 성폭력피해환자)였다.
“아…….”
쉽사리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말에 잠시 생각하던 태경은 한 가지 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보호자분? 아까 환자분께서 분명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그러셨잖아요.”
“그게 딸아이가 그 일이 너무 괴로웠는지 있었던 사실 자체를 기억 못하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기억해서 좋을 것 없으니 굳이 상기시키지는 않았고요.”
이제야 모든 게 납득이 되는 듯 했다.
‘디스소시에이티브 암네시아(dissociative amnesia, 해리성 기억상실증)구나.’
외상이나, 극도의 스트레스, 충격으로 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 해리성 기억 상실증이라고 한다.
‘하! 마음이 많이 안 좋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 번 이렇게 괴로운 부분만 완전히 잊어버린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 환자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받고 그 일만 통째로 기억하지 못했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강하고도 참 약하다.
태경은 예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큰 마음의 상처로 인해 어쩌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보호자분 혹시 따뜻한 물 한 잔 더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현재 저 아이를 낳을지도 아직 미지수군요.”
“네, 사실 임신이라니 상상도 못했어요. 아니, 알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혹시 그 뒤로 병원을 안 가셨나요?”
보호자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지고 힘들까 싶은 태경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곧이어 들려온 보호자의 말에 순간 귀를 의심했다.
“……네. 한 번도요.”
“그럼 경찰서도 안 가셨고요?”
“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왜! 그러셨어요. 왜?”
태경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아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다 가셨어야죠.”
“병원을 가거나 조사하게 되면 아이가 잃어버린 것을 또 상기해야 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소문이 날까 봐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네!?”
“굳이 치부를 외부에 알려야 하나 싶었어요.”
제3자가 볼 때는 지금 보호자의 말이 정말 어이가 없는 말들일 것이다. 그리고 막상 저런 일을 겪으면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길을 가다 심하게 넘어져서 피가 나도 주변 사람이 볼까 봐 화들짝 일어나는 한국인들 정서상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다.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레이프 환자이지 않은가.
‘이럴 순 없어.’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로서 지금 일을 묵과할 순 없었다.
“어머님!”
태경은 보호자에게 어머님으로 호칭을 바꿔 불렀다.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저도 알고……있어요.”
“침해받은 권리는 자기가 보호해야 합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분은 보호받지 못하세요. 저는 의료인으로서 이 사실을 묵인할 수 없습니다.”
“…….”
“어머님과 대화 후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여성 경찰이 오도록 부탁드릴게요. 의사로서 법적으로 묵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아니에요.”
환자의 어머니는 점차 눈시울을 붉혔다.
그 당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본인도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 다만 판도라의 상자가 너무 두려워 열 자신이 없었다.
“저도 사실 신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을 수도 없이 했어요.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 엄마로서 제가 어리석었던 거 같아요. 선생님 뜻대로 해 주세요.”
마치 자신이 죄인이 양 보호자는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런데요. 우리 딸아이가……더 상처 받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딸…….”
환자의 어머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며 그동안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처절했다.
“흐윽!”
범죄를 당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부모의 마음 또한 숱하게 찢어졌을 것이다. 아마 찢어진다는 표현 자체도 부족할 것이다.
그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태경은 조용히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환자 어머니의 손에 화장지를 가져다 줬다.
“그럼 저는 이제 뭘 하면 될까요?”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환자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따님 옆에 있어 주세요. 이제 조금 긴 여정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 단계, 단계마다 상처가 되거나 이거는 좀 아닌 것 같다면 주저 마시고 저희 병원으로 연락하세요. 김태경 원장을 찾으시면 됩니다. 제가 힘닿는 대로 도와드릴게요.”
“이렇게까지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즘 정부에서도 범죄 피해자분들을 위한 해바라기 센터라고 전담 부서가 있어요. 경찰분이 오시면 그쪽으로 함께 이동하시게 될 겁니다.”
* * *
“환자분.”
보호자와 대화를 마침 태경은 환자가 있는 베드로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 아직도 배 아픈 원인을 못 찾았나요?”
안 그래도 태경을 기다리고 있던 환자가 답답한 듯 물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환자의 표정이 태경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저 환자가 마주해야 할 진실의 무게가 너무나도 크기에 분노까지 차올랐다.
차라리 지금 이 순간 치료나 수술처럼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며 망설임 없이 환자를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환자는 이곳이 아닌 해바라기 센터의 도움이 더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계속 배가 아픈 것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자 확인할 수 있는 의료 기관으로 전원을 도와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전원이라면 병원을 옮기는 거죠?”
“네, 전원을 가시면 그쪽에 계신 의료진들이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그래요. 저도 어차피 원인을 알고 싶어서 마음먹고 나온 건데 갈게요. 오히려 잘됐네요.”
혹시라도 거부하면 어떻게 설득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환자는 전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까 제가 언성 높이고 짜증내서 죄송했어요. 배가 계속 찜찜하다 보니 예민해져서요.”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환자와 짧은 대화를 나눈 태경은 경찰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접수처로 향했다.
여성 경찰이 동료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연락 받고 온 oo지구대 이정의 순경입니다.”
“우리병원 책임자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태경은 두 경찰에게 현재 환자의 상태를 의사로서 설명했다.
“이 순경님, 제가 부탁 한 가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말씀하세요.”
“방금 설명드렸듯이 환자분께서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니 조사 과정에서 그 점을 고려하여 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성심껏 피해자분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 * *
“어머님 제가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태경은 병원 주차장에서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몇 달을 짊어지고 있던 고민을 선생님께서 해결해 주셨어요. 이보다 더 큰 도움은 없습니다.”
“근데 환자분이 거부감 없이 경찰차를 타시던데 괜찮은 거죠?”
태경은 조금 전 자연스럽게 경찰차에 오른 환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떻게 경찰차에 태울까 걱정하던 모습이 무색할 만큼 환자는 아무렇지 않게 차에 올랐다.
“제가 잘 둘러댔어요. 선생님께서 병원을 추천해 줘서 옮겨야 하는데 새벽 시간이라 경찰 분들에게 안심 귀가 서비스를 요청했다고요.”
“잘하셨네요. 그리고 힘드시겠지만 환자분을 위해서라고 마음 단단히 붙드세요.”
“그럼요. 제 딸이잖아요. 그리고 딸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보호자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환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모녀를 태운 경찰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태경은 먹먹함에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