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87화 (86/472)

87화. 칼에 찔렸습니다.

“사진 보니까 디스크는 아니에요.”

“정말요? 다행이다.”

태경은 외래와 응급실을 오가며 환자를 보고 있었다.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며칠 드시고 당분간 무거운 거는 들지 마세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환자분 수납하고 가시면 됩니다.”

“다음 외래 환자 없죠?”

“네, 선생님. 어디 가시려고요?”

임정숙 간호사가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태경에게 물었다.

“병동 갔다 응급실 갈게요.”

“선생님 30분 뒤에 면접인 건 알고 계시죠?”

“아! 맞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안 그래도 모르실 거 같았어요.”

금요일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최선해를 시작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외래 환자들이 방문했다. 그렇게 계속 진료를 봤으니 태경이 면접 시간을 깜빡한 것도 당연했다.

“면접 보고 수술방 들어가면 딱 맞겠네요. 간단한 거니까 수 쌤은 오늘 응급실에 힘 좀 보태 주세요.”

“그럴게요. 그나저나 어떤 사람들이 올지 너무 기대되네요. 선생님은 안 그러세요?”

“저도 그렇죠.”

그동안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보안요원의 면접이라 그런지 병원 식구들은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

* * *

“우리병원……우리병원이라. 어, 저기다!”

택시에서 내린 장득칠은 주변을 해매다 병원을 찾았다.

‘엄마 소개해 주신 분이 그냥 동네 작은 병원이라고 하셨어. 그 동네에서는 꽤 오래된 병원이라고 하시더라.’

분명 어제 저녁 먹을 때 들었던 말에 의하며 동네 작은 병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작은 병원은 아니었다.

건물 한 층에 입주해 있는 진짜 동네 병원과 달리 한 건물 전체가 다 병원이었다.

“이 정도면 작은 건 아닌데…….”

혹시라도 본인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 아닌가 싶던 장득칠은 다시 주소를 확인했다.

“맞는데.”

몇 번을 봐도 주소가 확실하자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뭐야, 내가 너무 빨리 왔나 보네. 하, 씨. 뭐하지?”

넉넉하게 나온다는 게 무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장득칠은 잠시 병원 마당에 서 있다 벤치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탁탁- 탁탁-

가만히 앉아 있던 그는 점점 시간이 지나자 다리를 떨며 벤치를 한쪽 손가락으로 탁탁 건드렸다.

“하! 젠장.”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면접 보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면접 시간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쫄리냐.”

참 이상했다. 전국 팔도로 돈을 받으러 다니면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숱하게 있었다.

사채를 쓴 조폭과 칼싸움도 해 보고 노름쟁이 잡으러 바다에도 뛰어들고 빌려 간 돈 받겠다고 버티다 죽을 정도로 맞아 보기도 했었다.

그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가 죽을 뻔했을 때 다음으로 마음이 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실 어머니에게 티는 안 냈지만 장득칠은 면접을 잘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곳에서 일을 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어머니 때문이었다.

‘득칠아, 엄마 소원이야. 나도 내 새끼가 평범한 곳에서 일하는 거 보고 싶어. 너 계속 그런 일하다가 나 또 잘못되면 그땐 진짜 죽어서도 눈 못 감아.’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도 못 들어줄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결과야 어찌됐든 김꽃분의 말대로 열심히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추 시간 다 됐네. 한 대 딱 피우고 들어가면 되겠다.”

시간을 확인한 장득칠은 재킷에서 꺼낸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탓-

불이 붙은 일회용 라이터를 담배 끝에 갖다 댔다.

“후!”

그런데 어디서 짧고 굵게 날아온 바람에 라이터 불이 꺼져 버렸다.

“이봐요!”

고개를 내린 장득칠의 시선 안에 간호사가 서 있었다.

“뭡니까?”

“뭡니까아?”

진료가 끝난 노인 환자를 배웅하던 임정숙 간호사가 담배를 태우려 한 장득칠을 발견한 것이다.

“그쪽이 지금 내 담뱃불을 끈 거 같은데요.”

“맞아요. 내가 껐어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몰라요? 병원이라고요. 병원.”

“아!”

순간 장득칠은 병원 건물 밖이라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병원에서 금연인 거 몰라요? 잘못하다 불나면 어떡하려고 여기서 담배를 태워요.”

“미안합니다.”

“다시는 병원에서 담배 태우지 말아요. 알았어요?”

“예. 알겠습니다.”

“알면 됐어요.”

“저, 저기요? 내 라이터……가져갔는데.”

장득칠은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가져간 임정숙 간호사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천 원짜리인데 아깝네.”

그대로 벤치에 앉다 다시 일어난 장득칠은 뒤를 돌아 병원 건물을 쳐다보다 정문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김 선생도 의사였는데. 잘 지내고 있나? 병원에 오니 김태경이 생각이 다 나네.”

* * *

“이 쌤 오늘따라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제 기분이 좋아 보여요?”

응급실 스테이션에서 모니터를 보던 이찬희가 고개를 들었다.

“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 있죠. 그것도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예요.”

“저한테도요?”

“물론이죠. 자 이거 보세요.”

가운에서 휴대폰을 꺼낸 이찬희는 일기예보를 클릭하며 화면을 돌렸다.

“일기예보잖아요? 이게 왜요?”

“오늘 예보 좀 보세요.”

“오늘은 오후부터 전국에 강한 비가 내릴 예정입니다. 이 비는 주말 내내 계속 내릴 것으로 보이며…….”

일기예보를 읽어 내려가는 간호사의 표정도 덩달아 점점 밝아졌다.

“이 말인즉슨 오늘 비가 내린다는 소리네요. 그것도 강한 비가요.”

“바로 그거죠. 이제 제가 왜 기분이 좋은지 아셨죠? 전 아까 출근할 때부터 좋았다니까요.”

응급실에는 일종의 불문율 같은 말이 있다.

이를테면 베드가 비었네? 또는 환자가 없네? 라는 말은 하면 절대 안 된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마침 마술처럼 환자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환자가 감소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으니 바로 날씨였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평소보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수가 적었다.

특히 비가 세차게 내리면 더 그렇다.

“진짜 저까지 기분 좋아지네요.”

“내가 아까 그랬잖아요. 더 좋은 소식은 이제 곧 하늘에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흐리다는 거죠.”

“제 생각에는 아직 좋아하기는 이른 거 같은데요.”

임정숙 간호사가 잔뜩 신나 있는 이찬희에게 다가왔다.

“이 쌤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어요.”

“한 가지? 그게 뭐죠?”

“뭐긴 뭐예요. 오늘이 바로 금요일이라는 사실이죠. 안 그래요? 최 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막 베드에서 처치를 끝내고 나온 최모나가 고개를 한 번 가로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응급실 근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저러나 모르겠습니다.”

“이 쌤, 우리 모두 금요일의 위력을 알고 있잖아요.”

금요일에는 환자들이 더 많이 오기 때문에 그만큼 의료진들이 바쁜 날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비가 와야죠.”

“이찬희 선생?”

병동에서 내려온 태경이 모니터 앞에서 환자 현황을 체크하며 입만 움직였다.

“네, 선생님.”

“비 온다는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주말 내내 당직 시킨다.”

“네에? 주말 내내 당직이요?”

세상에 숙제 폭탄을 맞는 게 낫지. 주말 내내 당직이라니. 이찬희는 오금이 저릴 뻔했다.

“비가 많이 오면 올수록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그러면 TA(교통사고) 환자도 증가하겠지. 빗길에 미끄러진 운전자나 동승자는 그만큼 더 다친 확률도 올라가고.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말을 하다만 태경이 이찬희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계속 비 오라고 할래?”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지금부터 비가 오지 말라고 빌겠습니다.”

“그렇지? 좋은 자세야. 그리고 지급부터 면접 갔다 올 테니까 두 사람 응급실 잘 보고 있어.”

“네, 다녀오십쇼.”

“다녀오세요.”

태경은 최 팀장의 연락을 받고 보안요원 면접을 보기 위해 응급실을 나갔다.

* * *

“저기요?”

“네, 어서 오세요. 진료 받으……러 오셨나요?”

접수처 직원은 장득칠의 얼굴을 보고 잠시 말을 멈칫하며 이었다.

“그게 아니라 면접을 보러 왔는데요?”

“혹시 보안요원 면접 보러 오셨나요?”

“네, 맞습니다.”

“저기 왼쪽에 의자 보이시죠? 거기 앉아 계시면 담당자분이 안내 해 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대애박! 방금 보셨어요?”

장득칠이 접수처를 벗어나자 직원들은 작은 소리로 수근 거렸다.

“당연히 봤지. 처음 본 사람한테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인상 되게 살벌하다.”

“그러니까요. 얼굴에 흉터 보셨죠?”

“혹시 조폭이나 깡패 그런 거 아니었을까?”

“에이, 설마요. 근데 저는 그냥 첫 번째로 온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미투.”

* * *

“안녕하십니까.”

잠시 후 최 팀장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오늘 면접 보러 오신 분들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건훈이라고 합니다.”

깔끔한 외모와 함께 싹싹하게 인사를 하는 지원자를 보며 최 팀장은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이쪽 분께서 장현수 씨군요.”

“예, 내가 장현수입니다.”

역시나 범상치 않은 비주얼을 보며 최 팀장도 놀랐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실례지만 장현수 씨,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예. 괜찮습니다.”

“그 얼굴에 흉터는 왜 다치신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잠시 고민하던 최 팀장은 평범하지 않은 왼쪽 뺨에 길게 자리한 자상 흔적에 대해 물었다.

“아, 이놈이요? 예전에 칼에 찔렸습니다.”

“카, 칼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최 팀장은 들고 있던 종이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왼쪽 뺨 흉터는 칼에 의한 것으로 조금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됩니다.

“저는 총무팀 팀장 최병근 이라고 합니다. 두 분 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설명을 드린 다음 면접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오시기 전 저희 병원 홈페이지를 보고 오라고 했는데 보셨나요?”

“예, 저는 다 보고 왔습니다. 우리병원이 역사가 꽤 깊은 병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 김건훈 씨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오셨군요. 장현수 씨도 보고 오셨겠죠?”

“대충 살펴보고 왔습니다.”

“대충이라 뭐, 좋습니다. 면접은 저희 원장님께서 진행하시며 두 분이 함께 볼 겁니다. 그럼 잠시만요.”

똑똑-

“원장님?”

설명을 마친 최 팀장이 진료실 문을 노크하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우리 지원자 분들 들어가셔서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주세요.”

드르륵-

김건훈과 장현수가 각각 의자에 앉고 최 팀장이 태경의 옆 자리에 착석했다.

“일단 한 분씩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태경이 지원자들을 향해 말했지만 정작 그들의 얼굴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병동에서 급하게 연락을 받고 환자에 대한 오더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탁- 탁-

두 손은 키보드를 두드리며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기에 지원자들도 태경을 보지 못했다.

“지금 원장님께서 잠시 확인할 게 있으셔서요. 그럼 우리 왼쪽에 앉은 분부터 할까요?”

그 모습을 본 최 팀장이 이어서 면접을 진행시켰다.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김건훈이라고 합니다. 저는 서울 4년제 체육학과를 졸업 후 은행과 병원, 입시 학원 등에서 보안요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지원자는 면접이 익숙한 듯 바른 시선 처리와 함께 막힘없이 자기소개를 끝냈다.

“제, 차례인가요? 장현수라고 합니다. 전 서울oo대학교를 졸업했고, 전공은 유도입니다. 군대 전역 후 보안요원으로 근무한 뒤 다른 일을 하다가 지원했습니다.”

장득칠은 먼저 앞사람이 한 내용을 토대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쳤다.

탁- 탁-

“면접 중에 갑자기 미안합니다. 두 분 자기소개 잘 들었습니다. 전 우리병원 원장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PC에서 시선을 뗀 태경이 모니터를 옆으로 치우며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력서 사진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보네요.”

그리고 고개가 완전히 정면을 향한 그때,

‘김태경 선생……?’

태경과 장득칠의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드르륵-

순간 너무 놀란 장득칠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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