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어차피 불합격
“수 쌤, 203호 김치현 환자분 부탁한 서류 이거 맞아요?”
“진료 기록지, 세부내역서……다 맞네. 면접 시작했지?”
“네, 근데 수 쌤이 아까 봤어야 하는데.”
“뭐를?”
“면접 보러 온 사람 중에 아주 살벌한 사람이 있잖아요.”
“살벌한 사람?”
“네. 얼굴에 이만한 흉터가 있는데 첫인상이 아주 보통이 아니에요.”
“혹시 뺨 밑에 흉터 있고 키는 이만한 남자 말하는 거 아니야?”
임정숙 간호사는 흉터 이야기를 듣자마자 담배를 피우려던 남자가 떠올랐다.
“어, 맞아요. 목소리 좀 걸걸하고. 수 쌤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병원 마당에서 담배 피우려 해서 한 소리 했거든.”
“그 남자한테요? 역시 우리 수 쌤 배짱은 남다르셔.”
“병원에서 금연인데 당연히 뭐라고 해야지.”
“그건 맞죠. 그 남자 제발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왜?”
“병원에서 금연인 기본도 모르고 얼굴도 험악하고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서요.”
“담배 피우려고 한 건 잘못인데 그래도 사람 겉모습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원장님이 잘 보고 채용하시겠지.”
* * *
그리고 고개가 완전히 정면을 향한 그때,
‘김태경 선생……?’
태경과 장득칠의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드르륵-
순간 너무 놀란 장득칠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씨?”
“장현수 씨?”
장득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최 팀장이 그를 불렀다.
“예……?”
“무슨 일이세요? 뭐 따로 할 말이 있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갑자기 다리가 살짝 저려서요.”
당황한 장득칠이 대충 얼버무리며 자리에 앉았고, 덩달아 당황한 태경도 그를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장득칠!’
혹시라도 닮은 사람을 착각한 건가 싶어 눈을 깜빡이고 다시 한번 제대로 쳐다봤지만 확실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장득칠 또한 모르고 온 거 같았다.
‘정말 그 장득칠이잖아?’
그동안 우리병원에서 일을 시작하며 잊고 살던 얼굴을 여기서 마주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왜지?’
병원 보안요원을 뽑는 자리에 왜 저 사람이 지원자로 앉아 있는 건지. 이름은 왜 장현수로 되어 있는 건지 의아함투성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이 소개한 사람은 절대 아니겠네.’
김철기가 소개한 사람이 장득칠은 아니라는 거였다.
“원장님? 질문하셔야죠?”
가만히 있는 태경에게 최 팀장이 조용히 속삭였다.
“제가 두 분 인상이 좋아서 너무 오래 쳐다봤네요.”
태경은 일단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집중하기로 했다.
어쨌든 병원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중요한 자리인데 장득칠 때문에 면접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저 사람한테도 저런 면이 있었네.’
한 가지 놀라운 건 불도저 같은 사람이 저렇게 얌전히 앉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보니까 김건훈 씨는 보안요원 경력이 꽤 되시는데, 그중 병원이 가장 짧은데 왜 다시 병원 일을 하시려는지 궁금하네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보안요원이란 직종은 저랑 잘 맞는데 병원에서 일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쪽 보안요원으로 이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리를 다쳐서 입원을 하게 됐는데 그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고 다시 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근무 시간도 많고 여러모로 힘든 점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세요?”
“물론입니다. 개인적으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제가 일하게 되면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왜 아름다운 청춘을 갖고 아프대. 그지 같은 소릴 하고 있네.’
옆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장득칠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 의견에 반대했다.
“장현수 씨는 병원에서 일해 본 경험은 없으신데 병원 보안요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병원을 지키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포괄적인 답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나요?”
“환자와 의료진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께 공통 질문 드리겠습니다. 불의를 보면 어떻게 대처하는 스타일인지 김건훈 씨부터 말해 주세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면 참지 않고 나서고 제가 도움이 안 되면 그 상황을 도울 수 있도록 문제 해결을 찾는 스타일입니다.”
“전 불의를 보면 못 참습니다.”
그 뒤 태경과 최 팀장은 여러 질문을 하며 지원자들의 답변과 자세를 꼼꼼히 체크했다.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때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술에 취한 환자가 침을 뱉기도 하고 막말과 욕설은 기본이요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두 분이 이런 환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른 환자와 의료진이 다치지 않도록 그 환자를 안정시켜서 더 큰 사고로 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힘들다 느끼면 경창에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김건훈은 이번에도 막힘없이 술술 차분하게 말했다.
마치 준비된 듯 딱딱 떨어지는 완벽한 답변에 최 팀장은 이미 마음이 기운 듯 보였다.
“장현수 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대처하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김건훈 씨부터 하시죠.”
“제가 만약 우리병원 식구가 된다면 환자와 의료진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돌보겠습니다.”
“…….”
“장현수 씨는 할 말 없나요?”
가만히 앉아 있는 장득칠에게 최 팀장이 말했다.
“뽑아 주신다면 우직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두 분 답변 잘 들었습니다. 면접 보러 오시느라 고생하셨고 나머지는 여기 최 팀장님께서 마무리해 주실 겁니다.”
태경은 지원자들과 인사를 하며 치질 수술을 위해 수술방을 향했다.
“긴장들 많이 하셨죠?”
“아니요. 원장님과 팀장님께서 편하게 대해 주셔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김건훈 씨 젊은 사람이 참 싹싹하고 시원시원하네요. 하하!”
“별말씀을요.”
“합격자는 3일 안에 개별 연락으로 통보가 될 거예요. 그리고 지금부터 제가 잠시 두 분이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현장을 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자! 나가시죠?”
장득칠과 김건훈은 최 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병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 * *
“일 십 백 천 만 십만……. 미친. 야! 우리 오늘 일당으로만 200만 원씩 받은 거네.”
“그걸 인제 알았냐? 이게 완전 꿀이라니까.”
한눈에 봐도 불량하게 보이는 남자 셋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대화중이었다.
“그냥 사람들 만나서 형님들이 하던 대로 쌍욕 박고 물건 한두 개 부수면서 이자만 받아 오면 개꿀이라니까.”
“대학 나와도 취업도 못해서 난리인데 그렇게 따지면 고졸에 취업 성공한 우리가 용자네.”
“등신이 27살에 백수 탈출해 놓고 좋단다.”
“누나x이 맨날 식충이라고 잔소리 했는데 좋지. 뭐냐, 그럼 우리 깡패 된 거냐? 크큭.”
“깡패는 새꺄, 업자지 업자.”
“업자? 무슨 업자.”
“좋은 말 있잖아. 사채업자라고.”
“지랄하네. 구현욱? 현욱아 너 괜찮아?”
나쁜 일을 하는 게 자랑인 양 떠들던 두 양아치는 옆에 있던 친구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딱 봐도 구현욱이란 사람이 셋 중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아니, 이거 원래 이렇게 존x 아프냐? 조금만 닿아도 미칠 것 같네.”
“사내자식이 엄살은.”
“야, 새끼야 내가 장난으로 보이냐?”
무리 중 한 명이 장난삼아 부어 있는 엄지를 살짝 쳤다. 그 순간 구현욱이 죽일 듯이 노려보자 친구들이 꼬리를 내렸다.
“넌 왜 현욱이 아픈데 까불고 그래. 현욱아, 그러지 말고 저기 병원 가서 치료받고 가자.”
다른 한 명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우리병원’을 가리켰다.
“너 그거 벌써 꽤 됐잖아. 우리 내일 부천도 가야 하는데 너 더 안 좋아지면 어쩌려고.”
“그래, 저기 응급실도 있고 동네 병원이라 가면 빨리 해 줄 거야.”
“그럴까? 근데 저런 동네 병원에서도 이런 거 고칠 수 있나? 저기 예전에 가 보니까 웬 노인네가 진료하던데.”
“맞아. 저기 할아버지가 진료해.”
“근데 너튜브 보니까 응급실은 금요일 날 사람 개떼라는데 괜히 오래 기다리는 거 아냐.”
“현욱아, 걱정하지 마. 우리 문신 보고 그러기 쉽지 않아.”
“무식한 소리 하지 말고. 응급실에서는 무조건 아픈 사람이 장땡이야. 그냥 x나 죽겠다고 지랄하면 돼.”
허세로 머리를 채운 양아치 삼인방은 자신들에게 닥칠 일을 알지 못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 * *
태경이 면접을 끝내고 수술방으로 간 사이, 응급실은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으아앙! 배 아파.”
“순이야 조금만 참자. 선생님 금 새 오실 거야. 저기요, 우리 애 좀 빨리 봐 주세요.”
“네, 보호자분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리가 아파요. 다리.”
“환자분 다리가 어떻게 아프시죠?”
“저릿하고 찌릿한 느낌이에요. 친구들이랑 축구했는데 공에 맞았어요.”
“이 환자분 엑스레이 촬영부터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4번 다이아레아(diarrhea, 설사)로 인한 디하이드레이션(dehydration, 탈수)이니까 파세타랑 몸무게 계산해서 항생제 주십쇼. 그리고 8번 환자 드레싱 있습니다.”
“네. 최 선생님.”
금요일답게 환자가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다 이 쌤 덕분이네요.”
오더의 맞춰 바쁘게 움직이던 간호사가 이찬희에게 말했다.
“환자 많은 게 왜 제 탓이에요.”
“그거야 이 쌤이 아까 환자가 없을 거라는 그 말도 안 되는 응급실 주문을 외운 덕분 아니겠어요?”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던 임정숙 간호사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시 환자에게 향했다.
“아니. 그건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런 건데…….”
비가 오면 환자 수가 감소하는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밖에 비가 올 듯 말 듯 아주 소심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금요일이라 환자는 넘쳐나지, 아주 애매하게 오는 비 때문에 응급실 바닥은 미끄럽지.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비가 멈췄으면 했다.
“제발 비도 환자도 그만 오게 해 주세요.”
이찬희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자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119 구급 대원들과 함께였다.
“73세 남자 (*낙상) 환자인데 술 드시고 자전거 타고 가다가 계단으로 굴렀다고 합니다.”
“바이탈은요?”
“현재 바이탈은 괜찮은데 약하게 흉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할매 불러 줘. 여보, 마누라야.”
할아버지 환자는 약주를 거하게 하셨는지 코와 광대에 벌겋게 열이 올라온 상태였다. 근데 아프다는 사람이 취해서 그런지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이 영감이 평소 심장이 약한데 술만 마시면 정신 나간 놈처럼 처웃고 다녀요.”
함께 온 할머니가 남편의 상태를 설명했다.
“일단 3번 베드로 옮기시고, 여기 심전도랑 에코(echocardiography, 심초음파)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그리고 보호자분 저기서 잠시 대기 부탁드릴게요.”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모든 의료진이 화장실 갈 새도 없이 뛰어다녔다.
이찬희와 최모나는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본인들을 오프 보내고 혼자 당직을 자처하는 태경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하! 선생님 보고 싶다.’
수술 시간이 비교적 짧은 치질 수술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경이 빨리 왔으면 싶었다.
* * *
병원 안내를 받다 잠시 자리에 앉은 장득칠은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어떻게 김태경이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신화대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왜 느닷없이 변두리 동네 병원에 와 있는지 의아했다.
‘젠장!’
무엇보다 아까 자신을 보자마자 놀란 태경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태경을 마주한 순간부터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취직이고 나발이고 다 날아갔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 이 병원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보나마나 어차피 불합격일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이자를 받아 가던 사채업자를 합격시키겠는가.
이래서 사람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거다.
‘담배 마렵네.’
“장현수 씨?”
빨리 나가서 줄담배를 태우고 싶은 장득칠에게 옆에 앉아 있던 최 팀장이 불렀다.
“예.”
“면접 때도 별로 말이 없으시던데 뭐 궁금하신 거 없으신가요?”
“아까 보니까 원장님이 젊으시던데 여기서 일하신 지 오래되셨나요?”
“우리 원장님이요? 새로 부임하신 지 좀 됐습니다. 우리 원장님이 젊으시지만 참 훌륭하신 분이랍니다. 늘 환자 생각만 하시고 직원들도 존경하고 있는 멋진 분이죠.”
“아, 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김건훈 씨는 큰일을 보나, 오래 걸리네요.”
* * *
-오빠, 면접 잘 봤어?
“당연히 면접 잘 봤지.”
-정말? 붙을 거 같아?
“당연하지 말해 뭐해. 여기 원장이랑 팀장이란 사람이 나한테 이미 넘어갔어. 오빠가 또 인상이 좋잖아.”
-같이 면접 본 사람은 어때?
“웬 덩치 아저씨가 왔는데 말도 잘 못하고 얼굴에 흉터도 있어. 근데 이 남자 인상이 더러워서 누가 봐도 안 뽑고 싶게 생겼어.”
병원 화장실에서 입을 막고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장득칠과 함께 면접을 보던 김건훈이었다.
그는 조금 전, 면접을 보던 친절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 면접 끝난 거야?
“아니, 뭐 병원 투어 같은 거 하고 있는데 낡은 병원 뭐 보여 줄 게 있다고 투어까지 하는지 모르겠네.”
-근데 오빠 합격하면 그 병원 다닐 거 아니야?
“다니긴 다닐 거지. 딱 2달만. 두 달 뒤에 쇼핑센터 공고 나니까 거기 면접 봐야지.”
-어휴, 못됐다.
“병원은 진짜 또라이도 많고 힘들어서 다닐 곳이 못 돼. 카드값 벌고 바로 이직해야지.”
-이력서도 가짜로 쓰고 벌써부터 그만둘 생각하고 있네. 아무튼 끝나고 연락해.
“그래, 이따 연락할게.”
여친과 통화를 마친 김건훈은 화장실 밖으로 나가며 표정에 가식 미소를 장착했다.
“좀 오래 걸리던데 어디 아픈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는 늘 배앓이를 해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걸요. 그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응급실을 보러 갈게요.”
최 팀장은 두 사람과 함께 응급실 쪽으로 걸었다.
“두 분 중 합격하시는 분은 아마도 응급실에 자주 오게 될 겁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라서…….”
접수처를 지나 응급실로 이어진 복도를 지나던 그때 최 팀장의 설명이 뚝 끊겼다.
“어이! 아줌마. 간호사 주제에 뭘 안다고 떠들어. 가서 의사나 데려와. 도대체 시발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별안간 남자의 상스러운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프다잖아. 시xx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