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89화 (88/472)

89화. 금요일에 칼부림

“야, 야! 아까 그거 봤냐? 119에 실려 온 사람 광어처럼 팔딱팔딱 뛰는 거.”

“존x 신기하더라. 무슨 의사 드라마에서 나온 연기자 같던데. 왠지 아까 그 사람 뒈졌을 듯.”

“미친 새끼 말하는 것 좀 봐라. 근데 나 그거 동영상 찍었다.”

“병신아 요새 그런 거 함부로 올리면 잡혀가요.”

“얼굴 자르고 올리면 돼. 좋아요 꽤 받을 듯. 그나저나 현욱이 너무 오래 기다리는 거 아니야?”

“우리 기다린 지 얼마나 됐냐?”

“벌써 40분 넘게 기다린 거 같은데?”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양아치 삼인방인 구현욱과 친구들은 기다림에 짜증이 슬슬 화로 바뀌고 있었다.

“어이, 간호사!”

“네. 환자분.”

구현욱이 마침 다급하게 응급실 대기석을 지나던 간호사를 기분 나쁜 말투로 불러 세웠다.

“아픈 사람보고 자꾸 기다리라는 개소리 말고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죠?”

“환자분 지금 온 순서대로 보고 있거든요.”

기다림에 지친 환자들이 짜증내는 상황은 응급실 의료진들에게는 익숙한 일상과도 같았다.

“정말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간호사는 정중하게 말한 뒤 다음 환자를 안내하려는 데 갑자기 등 뒤에서 상스러운 욕이 날아왔다.

“이, 시발x아!”

환자를 안내하다 놀란 간호사가 뒤를 돌아보자 이번에 노골적으로 육두문자가 들려왔다.

“뭐, 이런 xx.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너 내가 우습냐?”

“…….”

너무 어이가 없던 간호사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내가 훨씬 먼저 왔는데 왜 저 노인네를 먼저 보는데? 어! 뭐, 사람 차별해.”

“우와, 여기 병원이 사람 차별한다.”

구현욱과 무리는 자신보다 훨씬 늦게 온 환자가 진료 안내를 받자 미친개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환자분 뭐가 오해가 있나 본데요. 이 환자분께서는 지금 처치가 급한 경우라서 먼저 진료를 보려는 겁니다.”

“아! 그런 나는 급하지 않고 저 늙은이만 급하다?”

“이여, 현욱이 열 받았네.”

“간호사 언니 이제 큰일 났다. 이 새끼 화나면 뭔 짓 할지 몰라요.”

의료진도 사람이다. 익숙한 상황이라 해도 이런 진상 환자를 만나면 진이 다 빠진다.

“환자분은 저희가 순서대로…….”

속으로는 짜증이 나려 했지만 간호사는 다시 한번 침착하게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둔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카캉!! 탁-

이동 테이블에 있던 수액과 의료 용품들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현욱이 나이스샷!”

“어! 간호사 언니 쫄았나 보다.”

구현욱이 화를 참지 못하며 손바닥으로 물건을 내려친 것이다.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도 하나둘씩 무리의 거친 언행에 불안한 표정들을 보였다.

“이보세요! 환자분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김 선생, 내가 말씀드릴게.”

그때 응급실 안쪽에서 나온 임정숙 간호사가 나섰다.

“환자분 모시고 들어가. 괜찮아.”

그녀는 떨어진 물품을 정리하고 베테랑답게 후배 간호사와 환자를 안심시키며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건 또 뭐야.”

“안녕하세요. 우리병원 수간호사입니다.”

“아줌마가 간호사 언니들 대빵인가 보네?”

“그렇긴, 한데 간호사 언니들이 아닌 간호사 선생님들입니다.”

“시끄럽고 여기 내 엄지 보이지? 아파 죽겠는데 시발 40분 넘게 기다리고 있거든. 어떻게 생각해?”

“죄송합니다, 환자분. 응급실은 급한 환자가 우선이고 나머지 분들은 순서대로 진료를 보고 있어요.”

“지x. 개소리 그만하고 빨리 의사나 불러와.”

“의사 선생님들께서 현재 다들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최대한 빠른 치료를 볼 수 있도록 할게요.”

임정숙 간호사는 다시 한번 웃는 얼굴로 침착하게 대응했다.

‘참자! 나는 나무다. 나는 지성인이다. 앞에서는 개가 짖는다.’

A부터 Z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겪었기에 이런 도그 베이비는 적당히 들어 주고 넘어가는 게 답이었다.

진상 환자를 누구보다 잘 다뤘지만 이런 종류의 환자를 상대하는 건 현재로서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뜩이나 바쁜데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환자분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희도 최대한 빠르게 조치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가긴 어딜 가?”

임정숙 간호사는 끝까지 웃는 얼굴로 응대한 뒤 인사를 했다. 그런데 구현욱이 돌아서는 임정숙 간호사의 어깨를 강제로 돌려세웠다.

“누구 맘대로 가.”

* * *

“아니! 저, 저런 몹쓸 사람을 봤나!”

최 팀장은 응급실 입구 복도에서 생긴 소란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막무가내 환자가 의료진에게 막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좀 놀라셨을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두 분께서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저희가요?”

딴 생각을 하고 있던 김건훈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실 저 일이 보안요원이 하는 일이기도 하고, 두 분께서 운동하셨다고 했잖아요. 김건훈 씨 아까 복싱했다면서요.”

“뭐, 그렇긴 한데…….”

“아니, 저 사람 저거 안 되겠네.”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 최 팀장은 갈수록 도를 넘는 환자를 말리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아저씨?”

최 팀장이 저만치 걸어가자 김건훈이 장득칠을 다급히 불렀다.

“가지 마세요.”

“뭐요?”

“도와주지 말라고요. 딱 보니까 저것들 완전 양아친데 저런 애들 잘못 건들면 요새 괜히 칼 맞을 수도 있어요. 또라이 많은 세상이잖아요.”

“너 보안요원 면접 본 거 아니었냐?”

두 얼굴의 사나이도 아니고 확연히 달라진 김건훈의 태도에 장득칠은 어이가 없었다.

“아까는 가족 같은 마음으로 돌보겠다며.”

“아저씨 면접 처음 봐요? 가족은 무슨 얼어 죽을 가족이에요. 붙으려고 한 말이지.”

본인도 누구를 평가할 만큼 떳떳하게 산 인생은 아니었지만, 이놈도 어지간한 놈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난 갈 거니까 아저씨는 마음대로 하세요.”

“뭐! 간다고? 너 여기서 일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어제 뉴스 못 봤어요? 어느 또라이가 길 가던 사람 칼로 찔러서 중태 만들었잖아요. 그럼 전 갑니다.”

쫄아 버린 김건훈은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정문으로 나가 버렸다.

“어이가 없네.”

조용히 듣고 있던 장득칠은 짧게 한 마디를 한 뒤 응급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 선생한테 진 빚을 갚아 볼까.”

* * *

“어이! 아줌마. 간호사 주제에 뭘 안다고 떠들어. 가서 의사나 데려와. 도대체 시발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환자분 욕하지 말고 말하세요.”

“현욱아 간호사 아줌마 울겠다. 살살해라.”

“환자분 여기 병원입니다. 목소리 낮추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목소리를 낮추길 부탁했다. 그러자 구현욱은 더 악착같이 소리를 질러 댔다.

“사람이 아프다잖아. 시xx아.”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안하무인으로 나오는 구현욱 때문에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낀 임정숙 간호사는 경찰을 운운했다. 일종의 마지막 경고였다.

“불러! 불러! 불러 보라고. 너 지금 간호사 주제에 환자한테 협박하는 거야? 그래?”

“이보세요. 환자분 지금 의료진한테 무슨 짓입니까?”

“이건 또 뭐야!”

탁-

최 팀장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지만, 옆에 있던 무리들이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임 선생. 나는 괜찮아요.”

“야! 너희들 정말 혼나 볼래?”

참을성이 폭발한 임정숙 간호사가 맞는 말만 골라서 팩폭을 날렸다.

“어디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 옆에 사람들 안 보여?”

“뭐야?”

“당신보다 더 아픈 환자들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잖아. 여기가 당신 안방이야? 치료받고 싶으면 조용히 기다려. 알았어?”

“이 아줌마가 진짜 미쳤나. 이걸 확!”

눈이 돌아간 구현욱은 급기야 임정숙 간호사의 앞섶을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뺨을 때리려고 나머지 손을 높이 든 그때,

턱-

살갗이 맞닿은 소리와 함께 올라간 손이 허공에서 강제로 멈췄다.

“젊은 친구 그만하지.”

굵고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득칠이었다. 그가 구현욱의 손목을 붙들고 임정숙 간호사의 앞섶을 쥐고 있는 팔도 비틀어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임 선생, 괜찮아요?”

그사이 무리들에게 막혀 있던 최 팀장이 임정숙 간호사를 챙겼다.

“네, 팀장님. 전 괜찮아요.”

“뭐냐! 이 꼰대는.”

느닷없는 간섭에 자존심이 상한 구현욱이 장득칠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봐, 아저씨 뭐하는 짓이야?”

“병원에서 소란 피우면 혼난다.”

“꼰대 씨, 정의로운 건 좋은데 사람 봐 가면서 끼어들어야지. 아저씨 그러다 골로 가. 웃어?”

“우리 꽃분 씨가 오늘 웃으라고 했거든. 이쯤에서 그만하고 조용히 치료받고 가.”

이 순간 최 팀장과 임정숙 간호사 그리고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까지 모두 속으로 장득칠을 응원했다.

“어디, 이래도 웃을 수 있을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구현욱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이거 보이지?”

구현욱이 꺼낸 건 바로 칼이었다.

“팀장님, 여기서 상황 좀 보고 있으세요.”

눈앞에 칼이 보이자 임정숙 간호사는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접수처로 향했다.

* * *

긴장감이 가득한 수술방에 평소와 달리 밝은 분위기가 가득했다.

“아. 좋아, 좋아. 당신이 최고 좋아. 우리 여보가 제일이야.”

치질 수술을 받고 있는 남자 환자는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애창곡을 따라 불렀다.

모든 수술이 중요했지만, 그래도 치질 수술은 다른 수술에 비해 크게 힘든 수술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수술방 의료진의 표정도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환자분이 수술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걱정하시더니 노래까지 따라 부르시네요.”

“원래 치질 수술이 그래요. 하기 전에는 무서워서 참는데 막상 수술하고 나면 이걸 왜 이제 했을까 하죠.”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저희 엄마도 5년 참다 하셨는데 진작 할 걸 하시더라고요.”

지잉-

“선생님, 갑자기 죄송합니다.”

태경과 간호사가 대화를 하고 있던 도중 수술방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지금 밖에 큰일이 났어요.”

수술 복장을 갖추고 급하게 들어온 간호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큰일이라니……. 무슨 일이예요?”

“그래서 팀장님은 넘어지고 수 쌤은 멱살 잡혔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환자가 흥분하더니 칼을 꺼내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임정숙 간호사가 보낸 간호사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했다.

“환자나 의료진 중에 다친 사람은요?”

“아직은 아무도 없어요.”

“일단 경찰에 빨리 연락하고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 조심해서 응급실 안쪽으로 옮기세요.”

“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입원 환자들 1층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각 병동에 연락해요. 수술 10분 안으로 마무리되니까 바로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지잉-

오더를 들은 간호사가 수술방을 나가고 모처럼 즐겁게 수술을 하던 태경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칼이라니…….’

주변에 칼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장소를 불문하고 위험하지만, 그게 병원이라면 위험 요소가 더 올라간다.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가득한 병원에서 그것도 흥분한 사람이 칼을 들고 설치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래전 본과 실습 때 술에 취한 사람이 칼을 들고 설치는 바람에 의료진 한 명이 부상을 입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다.

‘하필 환자도 많은 금요일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하지만 놀란 간호사가 전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현재 장득칠이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태경의 머릿속에는 걱정만 쌓여 갔다.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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