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양아치 VS 깡패
태경의 오더를 들은 임정숙 간호사는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환자분들 보호자분들 아무 소리 내지 마시고 한 명씩 천천히 그대로 응급실로 들어오실게요.
응급실 안쪽에 있는 간호사는 달력을 찢어 뒷면에 쓴 메시지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들었다.
임정숙 간호사는 그 현장에서 차례대로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최 팀장이 옆에서 거들었다.
고작 칼 하나 든 사람 갖고 뭐 이렇게 과한 행동인가 하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응급실에서 칼부림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의료진들은 경험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말하지 마시고 조용히 이동해 주세요.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의료진의 안내를 따랐다.
정말 다행스러운 건 지금 대기하는 사람들 중에 술에 취한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만약 술에 취한 사람이 있었다면 안 좋은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술기운이 오른 사람은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아지고 용기가 샘솟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꼭 실수가 나고 그 실수는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휴! 다 들어온 거지?”
모든 사람이 응급실 안쪽으로 무사히 들어왔다.
“네, 수 쌤. 환자, 보호자 다 들어왔어요.”
“병동에 연락했고?”
“네, 경찰에도 연락했어요.”
“잘했어. 나는 나가 볼 테니까 여기 문 잠그고 있어.”
“네!? 수 쌤, 위험해요. 그냥 여기 계세요.”
“저 사람 혼자 두면 안 되잖아.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그건 그런데 혹시라도…….”
“그래요. 임 선생은 여기 있어요. 해병대인 내가 나가 있을게요.”
“팀장님이랑 같이 나가요. 문 앞에 바짝 서 있으면 될 거 같아요.”
“임 선생 너무 긴장하지 말고 나만 믿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나가고 24시간 365일 개방되어 있던 병원과 이어진 응급실 문이 굳게 닫혔다.
* * *
“어디, 이래도 웃을 수 있을까?”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구현욱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이거 보이지?”
구현욱이 꺼낸 건 바로 칼이었다.
“야, 현욱아 이 아저씨 쫄았나 보다.”
“그러게 입에 꿀을 발랐나 왜 이렇게 조용해.”
“어이 꼰대? 웃긴 게 뭔 줄 알아? 아무리 덩치가 크고 아무리 배짱이 좋은 사람도 이 칼만 꺼내면 그냥 아가리를 쳐 닫아요.”
장득칠이 가만히 있자 구현욱과 무리들은 그를 비아냥거리며 설쳤다.
“왜? 잘못하면 어디 배때기에 구멍이라도 날까 봐 무서운 거지. 우리 꼰대 씨 쫄았나 봐?”
“구현욱이라고 했지?”
사실 장득칠은 일부러 입을 다문 채 말을 아끼고 있었다.
임정숙 간호사가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걸 봤기 때문에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괜히 입을 열어 양아치들을 자극했다 칼을 휘두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영화를 많이 봤나 봐. 버터플라이 함부로 갖고 다니면 다쳐. 그리고 도검소지허가 없이 나이프 가지고 다니는 거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야.”
장득칠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말을 내뱉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자신이 누군가를 훈계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저들처럼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르지는 않았다.
“오호! 꼰대 얼굴 상처 폼이 아니었나 봐. 발리송을 다 아네.”
“그러니까 좀 치나?”
양아치 무리들은 장득칠을 툭툭 치며 열심히 깐족거렸다.
구현욱이 손에 쥔 발리송은 접이식 주머니칼로, 일명 버터플라이 나이프(Butterfly knife)로 불리는 화려한 손동작이 특징이었다.
휙- 휙-
“어이, 쫄았어?”
“야, 현욱아 꼰대 진짜 졸았나. 큭큭!”
“이쯤 하면 허세도 충분히 부렸으니깐 얼른 칼 내려놔. 우리 서로 좋게 집에 가자.”
“칼 내려놔? 빙x. 놀고 자빠졌네. 내 기분은 지금 x같거든?”
마치 온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양아치 무리의 위험한 행동을 장득칠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팀장님. 경찰은 왜 안 오죠? 이러다 정말 일 날까 봐 걱정이에요.”
“임 선생. 아직 신고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곧 올 겁니다.”
임정숙 간호사와 최 팀장은 조용히 속삭이며 경찰이 오길 바랐지만, 응급실 못지않게 금요일이 바쁜 경찰도 빨리 오긴 힘들었다.
“칼 이리 줘.”
“싫은데? 어이 꼰대. 자신 있으면 직접 뺏어 봐.”
“너 그러다 정말 다친다.”
“지랄을 하세요.”
구현욱이 칼끝을 장득칠에게 향하고 조금씩 다가오며 팔을 휘두르던 순간,
탁-
“아!”
눈 깜짝할 새 날아든 발차기에 두서없이 흔들리던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 x발. 존x 아파. 너 죽여 버린다.”
발차기에 부어오른 엄지를 맞은 구현욱은 고통과 함께 잔뜩 화를 내며 칼이 떨어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장득칠이 떨어진 칼을 빠르게 집어 들고 양아치 무리들을 똑바로 직시했다.
“야, 너 칼 내놔라.”
“뺏어 보라며. 뭐, 이런 거 하려던 거 아니었어?”
슈욱- 휙-
그리고 방금 전 구현욱이 어설프게 선보였던 발리송 손기술을 기가 막히게 선보였다.
흭-
마치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리드미컬하게 펼쳐진 기술은 화려하고 정확했으며 프로의 포스가 가득했다.
“……!”
생각지도 못한 현란한 기술에 양아치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을 잃고, 그 뒤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와 최 팀장의 눈은 휘둥그레 졌다.
“어떻게 더 보여 줄까? 봐서 알겠지만 난 장난으로 안 해.”
“야! 꼰대 내 칼 내놓으라고!”
상황 파악을 못한 구현욱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병원 복도에 내리꽂혔다.
유도의 한판승 기술로 단 한 방에 상대를 제압한 것이다.
“아, 등!”
“현욱아! 괜찮아? 이 새끼가 진짜?”
그 뒤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한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개똥같은 의리로 달려든 그들의 목덜미를 잡은 장득칠은 그대로 서로의 마빡을 충돌시켰다.
빡-
“아!”
“아. 대가리 열라 아파.”
“야, 이놈들아. 처맞기 전에 이쪽에 일렬로 앉아. 빨리!”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양아치들은 더 이상 깝죽대지 않았다.
“무릎 끓고 앉아. 아니, 근데 이 자식이. 손 치워라.”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칼을 본 구현욱이 슬쩍 잡으려 하자 장득칠이 발로 칼을 찼다. 그리고 접수처 쪽으로 휙 날아간 칼은 때마침 현장으로 오고 있던 태경이 정확히 발로 받아 멈췄다.
탁-
“발리송 나이프?”
“원장니임?”
태경이 다가오자 최 팀장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갔다.
“이게 그 문제의 칼인가요?”
“네, 그 칼입니다.”
“다친 사람은 없죠?”
“그럼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기 계신 우리 장현수 씨가 깔끔히 상황을 정리한 덕분이죠.”
보안요원으로 김건훈을 생각하던 최 팀장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장득칠이 자리 잡았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수고하셨어요.”
“예? 아, 아닙니다.”
“이 사람들 안 되겠네.”
장득칠을 한번 쳐다본 태경이 양아치들에게 말했다.
“병원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제 정신들 아니네. 젊은 사람들이 이 정도 상식도 없습니까? 그러다 사람들 다치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야!”
“…….”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대답 안 하냐?”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장득칠이 살벌한 눈빛으로 말하자 세 명이 사과를 전했다.
“경찰에 연락했죠?”
“그럼요. 원장님.”
“칼로 난동 부렸다는 얘기도 하셨나요?”
“물론이죠.”
“일단 응급실 환자부터 볼게요. 장현수 씨라고 했죠?”
“네. 네?”
방금 전까지 살벌한 눈빛으로 양아치들을 제압한 장득칠은 태경의 부름에 적잖이 놀라며 반응했다.
“부탁 하나만 합시다.”
“부탁이요?”
“이 사람들 좀 잠시 봐줄 수 있나 해서요.”
“아, 예. 그럼요.”
“부탁할게요. 근데 김건훈 씨는 안 보이네요.”
“아! 식구 같은 마음으로 돌보겠다고 했던 그 사람이라면 도망갔습니다, 원장님.”
최 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답했다.
“도망이요?”
“네. 도와 달라는 말에 바로 꽁무니를 뺀 거죠.”
“그렇게 적극적이더니 가식이었네요. 경찰 오면 알려 주시고 일단 전 환자 보러 갈게요.”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와 함께 응급실로 향하며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 덕분에 잘 해결됐네요.”
“그러게요.”
* * *
한 시간 뒤-
한바탕 응급 환자를 보고 온 태경은 접수처에서 기본 검사와 엑스레이를 찍은 구현욱을 진료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또 난동을 부릴까 봐 다른 환자들과 분리해서 치료하기로 한 것이다.
“아, 아! 아파요.”
태경이 부어오른 엄지손가락을 살피자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칼 들고 난리 치던 사람이 애도 아니고 손톱 물어뜯고 다니나 보죠?”
“오, 어떻게 하셨어요? 그게, 어릴 때부터 습관이라서요.”
“칼 들고 다니는 것도 습관인가요?”
“…….”
“대답! 선생님 말씀하시면 재깍 대답해야지. 앞으로 공손하게 답해라.”
구현욱이 아무 말도 안 하자 그 옆에서 나머지 두 양아치들을 붙잡고 있는 장득칠이 으름장을 놓았다.
“구현욱 씨? 엄지 언제부터 이랬어요?”
“그게 어느 순간부터 엄지손가락이 붓더니 누르면 아프더라고요.”
“아! 아.”
태경이 다시 엄지를 눌러보니 구현욱은 역시나 매우 아파했다.
아마도 손톱을 뜯다가 입을 통해 균이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지금 몸에 열이 좀 있죠?”
“네, 살짝 열 기운이 좀 있습니다.”
구현욱은 온몸에 열감이 느껴지고 엄지손가락에도 열감이 있었다.
“선생님, 이거 왜 이런 거예요?”
“조갑주위염이예요.”
패로니키아(Paronychia, 조갑주위염)는 손톱 발톱 주변 조직에 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염증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엄지에 균이 들어가서 현재 농양이 찼어요. 이럴 경우 자칫 뼈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어서 빨리 농을 빼 줘야 해요.”
“뼈요? 그럼 얼른 빼 주세요.”
“마취하게 리도카인(lidocaine, 국소마취약) 준비해 주세요.”
“네, 선생님.”
“저, 저기……잠시만요. 잠시만!”
태경이 주사기를 손에 들자 동공이 커진 구현욱이 버럭 소리를 높였다.
“어허! 어디 선생님한테 소리를 질러!”
“소리 지른 거 아니에요. 목소리가 원래 커요. 선생님 방금 전에 여기 농인지 뭔지 그거 뺀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요.”
“근데 왜 마취를 해요. 전 마취하기 싫은데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칼을 들고 설쳤던 구현욱은 마취 주사를 맞는 게 두려웠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플 텐데 주사기로 찌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그냥 농만 빼 주세요.”
“혹시 주사 맞기 무서워서 그래요?”
“……예. 주사 맞기 싫어요.”
“근데 어차피 농을 빼는 것도 주사기로 해야 해요.”
“그러면 마취 말고 그냥 주사기로 빼면 안 될까요?”
“마취 없이 하면 아파서 못 견딜 텐데.”
“예? 그 정도예요?”
“균 감염이 있어서 농이 차지 않게 열어 놔야 하고, 살을 벌리느니 엄지손톱을 빼서 농이 계속 나오게 해야 하거든요.”
“손톱을 어떻게 빼요? 싫어요. 싫어. 그거 완전 고문이잖아요.”
손톱을 뺀다는 소리에 구현욱은 기겁을 하며 질색했다.
물론 손에 세균이 감염되어 농이 찼다 해서 반드시 손톱을 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구현욱의 상태는 심했기에 손톱을 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보니까 손톱 치료할 때 엄청 아프다고 하는데 손톱을 빼기까지 하면 더 아플 거 아니에요.”
이럴 때 보면 그놈의 인터넷이 문제다.
요즘은 환자들이 병원을 오기 전에 검색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아픈 것도 사실이다. 또한 그 답답한 심정은 잘 안다. 하지만 검색을 하고 나면 환자들이 지레 겁을 먹기 때문에 지금처럼 치료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전 손톱 안 뺍니다.”
“구현욱 씨, 치료 안 할 거예요?”
“해야 하는데 무서우니까 그렇죠. 아, 손톱 빼는 건 하기 싫은데…….”
“이거 이대로 뒀다가 잘못하면 절단할 수도 있어요.”
“예!? 저, 절단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