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91화 (90/472)

91화. 1번 2번 3번 4번 5번

“이거 이대로 뒀다가 잘못하면 절단할 수도 있어요.”

“예!? 저, 절단이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단어에 구현욱은 펄쩍 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절단이요.”

겁을 주기 위해 일부러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조갑주위염은 생각보다 간단히 볼 게 아니었다.

몇 년 전, 신화대에서 응급실을 볼 때 일이다.

50대 남성이 새벽에 극심한 통증으로 내원한 적이 있었다.

발톱 주변에 조갑주위염이 생겼는데 염증에 주구장창 연고만 바르고 버틴 것이다. 그 상태가 너무 심했기에 결국 발가락을 절단까지 한 경우가 있었다.

그때 그 남성은 자칫 더 늦었으면 패혈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처럼 치료를 상당히 방치한 채 염증이 더 심해지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기에 초기에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

“현욱아. 선생님 말이 맞아. 인터넷에 실제 절단했다는 사람이 쓴 글도 있어.”

“진짜네. 끔찍하다. 그래도 손가락 절단보다 손톱이 낫지 않겠냐?”

절단이란 말에 호기심을 느낀 무리들이 휴대폰으로 찾은 정보를 떠들었다.

“내 말이. 현욱아 너 생각…….”

“쉿! 일동 아가리 묵념.”

또다시 입을 여는 무리에게 장득칠이 검지로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한마디 하자 두 명이 동시에 합죽이가 됐다.

“절단이라니 말도 안 되지. 선생님 저 할게요. 차라리 손톱 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그럼 마취합시다.”

태경이 10L 주사기를 들고 마취를 시작하려 하자 구현욱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칼을 들고 설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선생님! 잠깐! 잠시만요.”

“왜요? 또 무서워요?”

“그게 많이 아플까요?”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칼은 어떻게 들고 다닌 겁니까?”

지금까지 침착했던 태경은 순간 구현욱을 다그쳤다.

주사기 하나에 벌벌 떨면서 진짜 무서운 칼로 사람을 위협했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어이가 없었다.

“그쪽이 선량한 사람들한테 칼을 휘둘렀을 때 사람들은 지금 그쪽보다 더 큰 공포와 무서움을 느꼈을 겁니다. 이제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좀 아플 거예요.”

의사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참을 만해요.

살짝 아픔을 느끼지만 그래도 말 그대로 참을 만한 통증이라는 뜻이다.

-따끔해요.

참을 만한 상태보다 좀 더 아픔이 뒤따르는 단계로 살짝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좀 아플 거예요.

마지막으로 의사의 입에서 직접 아플 거라는 경고성 멘트가 나왔다. 이 말은 지금부터 엄청난 통증이 있을 예정이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뜻이다.

이 말인 즉, 지금부터 구현욱은 엄청나게 고통을 느낄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아프다고요?”

“조금.”

사실 태경은 이게 얼마나 아픈지 잘 안다.

다른 심각한 질환의 처치보다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손톱 주변이라 매우 민감하고 정말 아프다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 마취 시작합니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기의 뾰족한 바늘이 잔뜩 부어 있는 엄지손가락 주변으로 푸욱 들어간 순간,

“으아아아아아!!!”

병원이 떠나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면 안 돼요. 여기 환자분 좀 잡아 줘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장득칠이 자처해서 구현욱을 잡았다.

“자, 잘 참고 있어요.”

“아파요. 그만! 그만요.”

“조금만 더 참아요.”

“그마아아아아안!!”

장득칠에게 몸이 붙들린 구현욱은 전기의자에 앉은 사람처럼 고통에 몸부림쳤다.

“으악! 제발! 제가 잘못했어요.”

고막이 나갈 정도의 소리였지만 태경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정중 신경의 엄지손가락 분지를 마취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이 시작하는 부위에 마지막으로 두 번을 찔러 넣었다.

“마취 끝났어요.”

“후우! 후우! 좀 아픈 게 아니라 죽을 만큼 아프잖아요.”

거의 고문 받은 사람처럼 진이 빠진 구현욱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아픈 고통에 괜히 병원에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좀 아프긴 하죠? 그래도 잘 참았어요.”

그 뒤 마취가 된 것을 확인한 태경은 포비돈으로 소독을 하고 구멍포로 엄지손가락만 보이게 주변을 덮었다.

“환자분 고개 돌려요.”

“보면 안 돼요?”

“안 될 건 없는데 지금 손톱 뺄 건데 볼 수 있겠어요?”

“예? 아니요. 안 봐요.”

손톱을 뽑는다는 소리에 구현욱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모스키토 포셉(mosquito forcep, 주둥이가 구부러져 있는 포셉)을 잡은 태경이 힘을 주어 엄지손톱을 빼면서 위로 들어 올렸다.

“미쳤다. 진짜 의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데.”

“저걸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하지. 난 막 몸에 소름이 돋는 거 같아.”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던 무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조용히 속닥거렸다.

태경은 힘을 주어 들어 올린 손톱 끝부분이 살에 붙어 잘 안 뜯어지자 가위로 살점을 잘라 가며 손톱을 뽑고 있었다.

“으악!! 징그러.”

궁금함에 고개를 살짝 돌리던 구현욱이 그 모습을 보고 질겁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고개 돌리지 마요.”

“네, 네. 죄송합니다.”

손톱을 뽑자마자 고여 있던 농이 순식간에 주르륵 흘러내리고, 농 때문에 손톱의 근위부는 그냥 뜯어져 버렸다.

“이거 배양 검사 좀 맡겨 주세요.”

“네, 선생님.”

태경은 농을 배양 검사를 맡기고 피부상재균을 커버할 수 있는 항생제를 사용한 뒤 농 드레싱을 하며 처치를 마무리했다.

“수고했어요.”

“다 끝났어요?”

“네, 끝났어요. 당분간 물 닿으면 안 되니까 조심해요.”

“실례합니다. 신고 받고 나왔습니다.”

처치가 마무리되자 기다리던 경찰이 도착했다.

“야! 또 너희들이냐?”

도착한 경찰은 양아치 무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 소리를 했다.

* * *

“이 녀석들 저쪽 전통 시장에서 활개치고 다니는 놈들인데 여기까지 와서 난리를 쳤네요.”

CCTV를 전부 확인한 경찰이 태경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전통 시장이요?”

“네, 힘없고 절박한 상인들을 상대로 사채를 하고 있어요. 이자 받으려고 물건도 부수고 상인들이 무서워서 신고를 못 하고 있었는데 잘 걸렸네요.”

“야! 니들 이번에 아주 제대로 걸렸어.”

옆에 있던 동료 경찰이 양아치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으름장을 놨다.

“이것들아 어디 병원에서 난동을 부려? 너희들 의료진한테 폭행 협박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칠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죠.”

“현직에 계셔서 그런지 잘 아시네요. 여기 의사 선생님 말씀 들었지?”

“7년 이하의 징역이에요?”

“그게 정말이에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양아치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일을 저질렀는지 이제야 실감했다.

“그래, 이놈들아. 하여간 경찰서 가서 보자. 최 순경 이것들 얼른 차에 태워.”

“네, 선배님.”

동료 경찰이 양아치 무리들 손에 수갑을 채우고 경찰차에 태웠다.

“이건 구현욱 씨 약이에요.”

태경은 구현욱이 먹어야 할 약과 안내 사항을 경찰에게 전했다.

“그리고 내일도 상처 부위를 소독해야 해서 병원을 데려가셔야 할 겁니다.”

“이런 거 보면 의료진분들이 참 대단하네요. 저런 놈이 뭐가 예쁘다고.”

“의사니까요. 저 사람들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도록 가서 따끔하게 혼내 주세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아주 이번에 제대로 처벌할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저쪽 선생님 때문에 더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찰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 있던 장득칠에서 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오늘 충돌이 많아서 늦게 온 점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쪽 주변 순찰을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태경은 경찰과 인사를 나눈 뒤 장득칠에게 걸어갔다.

“잠깐 얘기 좀 하죠.”

* * *

“커피랑 음료수 있는데 뭐 마실래요?”

“아무거나 줘. 물 한 잔 줘도 상관없고.”

탁-

태경은 들은 그대로 물 한 잔이 담긴 컵을 장득칠 앞에 내려놓았다.

“잘 지냈어요?”

“뭐, 나야 그럭저럭 똑같지.”

“여기서 장득칠 씨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여기서 김 선생을 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 아까 면접 볼 때 어찌나 놀랐던지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니까.”

“사채일 그만둔 겁니까?”

“어.”

“왜요?”

“나이도 들고 평범하게 살고 싶기도 하고……. 뭐 그런 거지.”

“평범하게 사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

장득칠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뭐 이 자식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뇌를 거치지 않고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던 본인이었다. 그런데 태경을 마주한 지금 이상하게 말을 하는 게 예전 같지 않았다.

덕수가 쓰러졌을 때도 그랬지만, 태경은 참 희한한 사람이다.

보통은 똑같기 마련인데 빚쟁이 김태경과 의사 김태경의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특히 환자를 대할 때면 미친놈처럼 눈깔 돌아가는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그런데 병원 안이라 그런가 그때보다 분위기가 더 강해진 기분이었다.

‘하! 씨, 괜히 쫒아 들어와 가지고 자리 한 번 더럽게 불편하네.’

장득칠은 어차피 떨어진 거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고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아까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덕분에 다친 사람도 없고 잘 해결됐네요.”

“고맙긴 뭘.”

“근데 왜 도와준 겁니까?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인간 장득칠은 그렇게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맞아.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데 정의감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요?”

“김 선생한테 진 빚 갚으려고.”

“나한테 빚을 졌다고요?”

“덕수 새끼. 내 동생 김덕수. 그때 김 선생이 살려 줬잖아.”

김덕수는 장득칠의 후배로 예전에 아나필락시스로 쓰러졌을 당시 태경이 응급 처치를 해 줬었다.

“내가 그때 그랬잖아. 언제가 빚 갚겠다고. 김 선생도 나 봐서 유쾌하지 않다는 거 잘 알아. 솔직히 김 선생이 원장인 거 알았다면 나도 오지 않았을 거야.”

진짜 그랬다. 형 빚을 갚으라고 지랄을 한 세월이 얼마인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태경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어머니 부탁이고 뭐고 쪽팔려서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김 선생한테 진 빚 갚았으니까 이만 가 볼게. 그리고 김 선생은 그 의사 옷 입고 있을 때가 제일 뽀대 나. 반가웠고 잘 지내.”

드르륵-

“가긴 어딜 갑니까?”

돌아서는 장득칠을 태경이 불러 세웠다.

“우리병원에서 일 안 할 거예요?”

“일! 나보고 여기서 일하라고?”

쿨하게 인사하고 문 앞으로 걸어가던 장득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장득칠 씨에게 기회를 줘 볼까 해서요.”

“기회?”

“네.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요.”

솔직히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면접을 볼 당시에만 해도 태경의 마음속에 장득칠은 없었다. 그런데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CCTV를 본 결과 장득칠에게 보안요원을 맡겨 보면 어떨까 싶었다.

여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았다.

적어도 장득칠은 누구처럼 중간에 도망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정말이야?”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태경은 재빨리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종이 한 장을 출력해 장득칠에게 내밀었다.

“읽어 봐요.”

“1번.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의료진을 존중한다.

2번. 장득칠은 김태경의 허락 없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3번.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4번. 칼, 담배, 라이터 등 흉기가 될 만한 건 소지하지 않는다.

5번. 앞으로 깡패 장득칠이 아닌 우리병원의 보안요원 장득칠로 살아간다.”

“별로 어려운 거 없죠?”

“그렇긴 한데……. 4번은 금연을 하라는 건 아니지?”

“왜요, 못 하겠어요?”

“까짓것 인생 뭐 있냐. 할게. 어디 여기다 사인하면 돼?”

잠시 고민하나 싶던 장득칠은 A4종이 마지막에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방금 사인했으니 이제 낙장불입입니다.”

“인간 장득칠이 한 입 갖고 두말하지 않아.”

“대충 눈치채서 알겠지만 병원일이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우리 병원은 근무시간도 길고 병원에서 상주하다시피 있을 때도 있고 그래요.”

“그 정도는 문제없어. 숙식은 해결되나?”

“그럼요. 근데 이름은 왜 장현수로 한 겁니까?”

“우리 어머니가 얼굴도 도망가게 생겼는데 이름까지 득칠로 쓰면 진짜 깡패 같다고 해서.”

“어머님이 유쾌하시네요. 오늘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 잘해 봐요.”

의자에서 일어난 태경이 장득칠을 향해 악수를 내밀었다.

드르륵-

덩달아 일어난 장득칠이 덥석 태경의 손을 잡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김태경 원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뒤 장득칠이 돌아간 후 태경은 김철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메일로 전했다.

-보안요원은 새로 뽑혔습니다. 선생님께서 소개해 준 사람도 충분히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병원에 더 적합한 사람을 뽑게 됐습니다.

신경 써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장득칠 씨가 저희 병원의 보안요원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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