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93화 (92/472)

93화. 우리 같은 의사잖아요.

“우리 세리 공주 시원해?”

“응. 엄마 너무 시원해.”

“어휴, 예쁜 내 강아지 누굴 닮아 이렇게 예쁠까?”

“엄마 닮아 예쁘지.”

“저기……실례합니다.”

접수처 직원이 정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는 젊은 엄마와 아이한테 다가갔다.

“아, 네.”

“혹시 세리세라 맞으시죠?”

“네, 맞아요.”

야구 모자를 쓰고 있던 젊은 엄마는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어머, 웬일이야? 아이가 모자 쓰고 있어서 긴가민가했거든요. 저 구독자예요.”

직원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아이는 요즘 너튜브에서 핫한 키즈 채널의 주인공 중 한 명이였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세리야, 여기 선생님이 우리 채널 구독자시래.”

“정말? 안녕하세요. 세리예요.”

엄마와 같이 커플 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상냥하게 인사를 하자 접수처 직원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네가 세리구나? 진짜 귀엽네요. 어쩜 이렇게 귀여워요.”

“감사합니다.”

“병원 진료 보러 오신 거예요?”

“아니요. 아이 때문에 잠깐 화장실 좀 들렀어요.”

“그러시구나. 근데 이 동네 사시나 봐요?”

“한 달 전에 이사 왔어요.”

“정말요? 앞으로 자주. 어머, 죄송해요. 병원에서 자주 보면 안 되죠. 근데 세라는 같이 안 왔어요?”

“아, 세라는 집에서 미술 레슨 받고 있어요.”

“그렇구나. 세라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저 이만 가 볼게요.”

“그러세요. 제가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봤네요. 세리야 잘 가.”

“네, 안녕히 계세요.”

접수처 직원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데스크 안으로 들어왔다.

“영이 씨. 누구야? 무슨 연예인이야?”

“아니요. 제가 저번에 보여드린 그 키즈 너튜브 있잖아요. 거기 나오는 아이예요.”

“아, 요즘 난리라는 그 키즈 채널?”

“네, 인기가 아주 연예인 저리 가라예요. 구독자가 50만 명이 넘는다니까요.”

“어쩐지 애 엄마가 온몸을 다 명품으로 휘감았더라. 부럽다. 근데 저번에 보여 줬을 때 엄청 예쁜 애로 기억하는데…….”

“맞아요. 세라라고 원래 그 채널이 걔 때문에 유명해진 거거든요. 여기요!”

접수처 직원은 세라라는 아이의 사진을 찾아 보여 줬다.

“그래. 이 애 맞아. 포샵 아니겠지?”

“애들한테 무슨 포샵이에요. 세라는 영상이랑 똑같아요.”

“애들이 다 예쁘고 귀여운데 얜 진짜 너무 예쁘긴 하다.”

“그러니까요. 벌써부터 완성형 얼굴이라도 난리도 아니에요.”

“저 수납하려는데요.”

잠시 너튜브 대화에 빠져 있던 직원들은 환자가 다가오자 얼른 대화를 멈추고 응대를 시작했다.

“네, 환자분 응급실 진료 보셨죠?”

“네, 맞아요.”

* * *

“수술 준비는요? 정 선생한테 연락했죠?”

태경은 응급 수술을 위해 응급실에서 수술방으로 이동 중이었다.

“환자분 검사 끝나고 이동 중이고 정 쌤도 바로 수술방 들어가셨어요. 선생님만 들어가시면 돼요.”

“오늘 역대 급 금요일이네요.”

“그러니까요. 환자 쏟아져, 칼부림에 예약 수술에 응급 수술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우리 거북이 1호가 열심히 비 오라고 한 덕분인가 봅니다.”

이찬희의 바람대로 결국 비는 왔지만, 환자가 줄기는커녕 태경의 말대로 사고 환자까지 더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다.

“그럼 거북이 1호 당직 확정인가요?”

“일단 일하는 거 봐서 정……!”

복도를 걸어가던 태경은 별안간 말을 끊고 정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선생님! 거길 왜?”

배달한 자장면을 받으러 가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에 임정숙 간호사는 왜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태경은 정문을 지나 그 밖으로까지 나가 버렸다.

‘냄새!’

다섯 번째 바이탈이 감지된 것이다. 마치 몸에 남은 미열처럼 흩어지는 안개처럼 옅은 냄새였지만 확실했다.

‘분뇨 냄새다.’

그런데 냄새가 좀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의 냄새가 아니었다. 보통 다른 냄새가 섞여 있다면 각 단계별로 섞여 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환자가 위급해짐에 따라 다음 단계 냄새가 이어지는 형태였다. 그런데 다른 냄새가 섞여 있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좀 달랐다.

갑상선암 전이로 수술했던 이고철 역시 4단계인 포르말린 냄새 뒤에 유황 냄새가 따라 붙었다.

지금까지 환자에게서 맡지 못했던 냄새라 의아했지만, 결국 유황 냄새의 원인은 그가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 한 번의 케이스로 단정 짓긴 어렵다. 하지만 경험상 아마도 유황이 포르말린 냄새의 다음 단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태경은 그날 환자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유황 냄새가 풍긴다는 새로운 가설을 내렸다.

결국 환자에게 나는 다섯 번째 바이탈은 크게 보면 단계별로 이어지는 각각 연결성을 띄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완전히 연관성이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게 무슨 조합이지?’

3단계인 분뇨 냄새와 어울리지 않은 마치 놀이동산 사탕의 집이나 어릴 적 학교 앞 슈퍼에서 팔던 풍선껌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향이 따라붙었다.

달콤하고 따뜻하기도 했으며 뭔가 깨끗하고 때 묻지 않은 청아한 맑은 느낌 같기도 했다.

‘뭐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정문 마당 쪽과 벤치를 확인했지만 사람 한 명 없었다.

‘아니야. 저 사람도……저 사람 역시 아니야.’

이제 막 택시를 잡는 사람도 병원 근처에서 전화를 하는 사람도 냄새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선생님!”

임정숙 간호사가 목에 힘을 주어 불렀다.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이라도 보신 거예요?”

“그러게요. 신발 끈 묶는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갑작스런 행동에 뭐라고 변명하나 싶던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빌려 둘러대며 발길을 돌렸다.

‘병원에 들어온 사람인가?’

태경은 아쉬운 듯 생각했다.

‘아니면 나간 사람?’

병원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수백 번을 넘게 냄새를 맡게 된다. 대부분 의료진에 의한 적절한 처치와 함께 냄새가 없어지지만, 지금처럼 예고 없이 별안간 느껴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게다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냄새는 아무리 정도가 약하다고 해도 지금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다.

특히 푸엉의 남편인 이고철을 경험한 뒤로 태경은 전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렇기에 다시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느껴지는 환자를 마주했을 때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선생님, 괜찮으신 거죠?”

진지하다 못해 심각해진 태경의 표정을 보며 임정숙 간호사가 물었다.

“그럼요. 괜찮습니다. 잠시 생각……! 임 선생님? 잠깐 화장실 좀 확인해 주시겠어요?”

다시 수술방으로 향하던 태경은 또다시 느껴지는 냄새에 또 한 번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당당하게 그 장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화장실이요?”

“네, 방금 여자 화장실에서 소리가 난 거 같아서요. 어서요!”

여자 화장실에서 냄새가 났기에 말도 안 되는 말로 임정숙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예, 알았어요.”

뜬금없긴 했지만 간혹 화장실에서 쓰러지는 환자들이 더러 있기에 임정숙은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똑똑-

똑똑-

잠겨 있는 두 칸을 두드리자 한 쪽은 노크로 화답했고 나머지 한 쪽은 육성으로 답했다.

“사람 있어요.”

“실례합니다. 병원 간호사인데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려와서요. 혹시 아프신 분 계신가 확인차 노크했어요.”

“전 아닌데요.”

“어머, 난가 보다. 죄송해요. 고리에 걸어 둔 제 물건이 떨어졌는데 그게 소리가 좀 크게 났거든요.”

“아니에요. 실례했습니다.”

빠르게 확인을 마친 임정숙 간호사는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귀도 진짜 밝으시네요. 아픈 사람은 없고요 물건 떨어지는 소리였답니다.”

“아, 그래요?”

역시나 이번에도 냄새 제공자를 찾지 못했다.

“우리 선생님 오늘 좀 뭔가 이상하시네요.”

“오늘 환자를 많이 봤더니 민감해져서 그런가 보네요. 근데 혹시 좋은 냄새 안 나요?”

“좋은 냄새요?”

“과일향이나 사탕 같은 뭐 그런 냄새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냄새들이긴 한데 전 병원 냄새만 나네요.”

혹시나 다섯 번째 바이탈이 아닌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도 나는 건가 싶어 물어봤지만 아니었다.

‘무슨 연관일까?’

태경은 찜찜한 기분을 뒤로한 채 서둘러 수술방으로 향했다.

‘그 사탕 같은 냄새는 뭐였을까?’

* * *

-너, 변호사 선임은 한 거야?

“몰라. 환자는 밤새 아프다고 보호자 대동하고 와서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병원 와서 으름장 넣는데 내가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어.”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소리가 뒤엉킨 응급실 한쪽 구석에 한 여자가 입을 가리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병원은?

“야간 근무하는 날인데 간호사한테 뒷정리시키고 문 닫았지.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이러다 문 닫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환자 데리고 병원 갔지?

“그래, 네가 말한 병원으로 왔어. 근데 대학병원으로 안 가도 될까?”

-얘가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이 시간에 가면 교수들이 나오니? 어차피 당직의잖아. 거기 원장이 아주 실력자야. 그쪽 동네에서 아주 유명해.

“그래? 이름이 다시 한 번 얘기해 줘.”

-김태경이라고 생각보다 젊어. 아무튼 잘 좀 봐 달라고 말해 봐. 그래도 같은 의사인데 뭐라고 하진 않을 거야.

“알았어. 저기 오나 보다. 내가 또 연락할게.”

전화를 끊은 여자는 이찬희를 보며 급하게 뒤를 따라가 그를 불렀다.

“저기요, 원장님?”

“네!?”

돌아선 여자는 이찬희를 보며 그가 원장이 아님을 직감하고 다시 물었다.

“원장님 어디 계세요?”

“누구시죠?”

“저는 oo동에 있는 xx내과 원장인데요.”

oo이면 여기서 30분 정도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많은 동네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디 불편하셔서 오셨나요?”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여자는 고개를 살피며 누군가를 찾는 행동과 함께 말을 이었다.

“원장님은 응급실에 안 오시나요?”

“원장님이요? 지금 수술 중이신데. 지인이신가요?”

“아니요. 지인 아니에요. 사실 저기 누워 있는 환자 때문에 그런 건데…….”

소심한 손가락을 따라 옮긴 이찬희의 시선에 12번 베드가 들어왔다.

“12번 베드 말씀이신가요?”

“맞아요. 80세 여자분이요.”

“보호자로 오신 건가요?”

안 그래도 12번 베드 환자를 볼 차례였던 이찬희는 질문을 했다.

“아니요. 제가 어제 저 환자에게 위내시경을 했는데요. 그 뒤로 증상이 심해져서요.”

여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작게 말했다.

어제 내시경을 받은 환자가 아픔을 호소하며 보호자와 함께 다시 병원을 찾았었다.

로컬 원장인 여자는 진료를 본 뒤 환자 보호자와 함께 우리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아, 그러시군요. 우선 환자분 좀 볼게요.”

그런데 환자에게 가려는 이찬희의 소매를 내과의사가 덥석 잡았다.

“……!”

“저기요, 선생님?”

불안, 초조. 내과의에게 느껴지는 단어가 딱 그랬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저, 저……. 좀 잘 부탁드려요.”

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슨 부탁인지 알지.’

저 잘 부탁한다는 말은 환자를 잘 낫도록 봐 달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시경 이후에 의료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본인이 매우 곤란해지니 그것마저도 고려해서 잘 봐 달라는 것이다.

지금 저 내과의는 의사 인생에서 가장 크게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본인에게 어떤 피해가 생길까 겁날 것이다.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어쩌면 모든 의사들이 지금 저 내과의의 저런 마음을 어느 정도 품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라면 환자의 안위가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있는 그대로 밝혀내면 된다.

“적어도 우리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겠지.”

“네!?”

순간 이찬희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에 내과의가 반문했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그 최선은 환자를 향한 최선이었지만 잘못 이해한 내과의는 더 절실하게 매달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죠? 잘 좀 부탁드릴게요. 우리 같은 의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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