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95화 (94/472)

95화. 구, 구멍이요?

태경은 환자의 배 위아래를 약한 힘으로 누른 뒤 가스를 빼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이찬희! 다시 보고해 봐.”

“환자 혈압 다시 상승합니다. 산소포화도도 다시 회복되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빠르게 수치를 보고했다.

“말씀하신 에페드린(ephedrine) 준비했습니다. 혹시 투여할까요?”

또 다른 간호사가 이찬희가 보고했던 약물을 가져와 보고했다.

“아니 괜찮아요.”

“선생님, 어찌 된 건가요?”

일련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한 이찬희가 물었다.

분명 평소 같으면 보고하라는 소리에 기계적으로 즉각 했겠지만 어찌나 혼이 빠졌는지 보고하란 소리도 잊고 질문부터 던졌다.

“뭐긴 뭐야.”

그런 후배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태경 역시 평소와 다르게 따뜻한 말투로 답했다.

“내시경 중 아프니까 스토막 페포레이션(위천공)인 거지.”

“환자 WBC, CRP의 상승 폭이 크지 않았습니다.”

“노인이잖아. 노인이면 전반적인 면역 기능이 감염이나 염증을 쫓아오지 못할 때도 빈번해.”

“아…….”

“그래서 노인인 경우 검사 수치에 너무 의존하면 안 돼. 이 환자도 통증을 그렇게 호소하고 마약 맞아도 계속 아파했잖아.”

그러고 보니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고도 계속해서 통증이 있었다.

“그러면 수치보다도 천공을 의심해야지.”

“하지만 복부 강직이 완연하지 않았는데요.”

“아, 이거?”

이찬희 질문에 태경이 환자의 배를 지그시 누르자 어느 정도는 푸욱 들어갔다.

“이거는 지방이잖아. 지방은 당연히 잘 들어가지. 근육의 강직을 봐야지. 익숙하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어. 지방이 눌러지는 것을 복부 근육이 눌러진다고 오해해서 아직 페리토나이티스(Peritonitis, 복막염)가 심하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어. 그건 환자를 많이 눌러 보고 그래야 돼.”

“선생님, 그럼 지금은 환자의 혈압이 어떻게 다시 오른 거죠?”

“잠깐만. 우선 보호자에게 설명 좀 하고.”

챠륵-

“많이 놀라셨죠? 병원 책임자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네…….”

보호자는 아직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눈치였다.

“환자분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설명드리기 전에 긴급한 술기 먼저 했어요. 현재 이유는 잘 모르지만, 내시경으로 인해 소화 기관에 천공이 생긴 것 같습니다.”

“천공이라면 혹시 구멍을 말씀하시는 거 같나요?”

“예, 구멍이 나신 것 같아요.”

“구, 구멍이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것이 상부 기관으로 위나 식도 부근일 때는 숨을 계속 쉬니까 공기가 거기로 빠져나오거든요. 그러면 이렇게 배가 빵빵해지십니다.”

“네, 안 그래도 평소보다 더 많이 빵빵하더라구요.”

“문제는 그 압력이 뒤에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관을 누를 수도 있고 심장 자체를 누를 수도 있습니다.”

“심장을요?”

“네. 그러다 보면 혈압이 낮아지고 위험해지실 수 있어요. 사실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지금 환자분이 그런 상태이셨던 거죠. 그래서 제가 공기를 빼고 압력을 낮춰 드린 겁니다. 현재 이렇게 응급조치는 된 상태고요. 저희가 빨리 준비해서 수술을 하겠습니다.”

“아,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경아…….”

“엄마! 괜찮아? 나 엄마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이제 좀 살 거 같아.”

의식을 잃어 가던 환자가 말문을 열자 감사의 인사를 하던 보호자는 엄마의 손을 잡고 눈물을 보였다.

“이 선생, 잠시만.”

“네, 선생님.”

태경은 이찬희를 베드 밖으로 불러냈다.

“사실 저런 경우는 흔하지는 않아. 나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었던 거야. 앞으로 이런 환자가 오면 검사 수치나 영상에 의존하기보다 그것을 참고해서 자신의 지식과 이론과 경험에 기초한 판단을 하도록 해. 그것도 신속하게. 알았지?”

“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거는 없고 환자한테 미안한 맘을 갖고 그만큼 저 환자 잘 보자. 우선 정 선생한테 콜하고 응급 수술 준비해. 들어올 수 있지?”

“네, 그럼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 * *

-어떻게 됐어? 야? 아직 병원이야?

“네 말이 맞았어.”

응급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내과의는 잠시 병원 밖으로 나와 지인과 통화중이었다.

“여기 원장 말이야.”

-김태경 말하는 거지?

“그래, 그 사람. 그 의사 다르더라. 그 노인네 아찔했는데 그 원장이 빠르게 처치하더라니까.”

혹시라도 환자가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던 내과의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였다.

-원래 신화대병원 씹어 먹던 사람이래. 지금은 왜 그런 변두리 병원에 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사람인 건 맞아.

“내 말이. 너 때문에 한 고비 넘겼다. 환자 곧 수술 들어갈 거 같아.”

-보호자랑은 이야기해 봤어?

“말도 마. 보호자 정신 하나도 없어서 말도 못 꺼냈어. 수술 끝나고 얘기해 봐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변호사 선임하고 보호자랑 말할 때 불리한 말을 하지 마.

“그래. 안 그래도 네가 알려 준 변호사랑 연락했어.”

-그러니까 되도록 너무 고령 환자는 받지 마. 나 그래서 안 받잖아. 적당히 둘러대서 거절해.

“앞으로 나도 그래야지 안 되겠어. 어떻게 된 의사인데……. 십년감수했네 진짜.”

이 순간에도 수술을 앞둔 어머니에 대한 걱정 가득한 보호자와 달리 이번 일의 원인인 내과의는 환자보다 자신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 * *

“마취됐습니다. 선생님.”

“고마워. 정 선생.”

“별말씀을요. 근데 우리 이 쌤이 많이 놀란 것 같네요.”

의진이 평소와 달리 말이 없는 이찬희를 보며 한마디 했다.

“이 쌤 괜찮아?”

“네, 쌤. 괜찮아요.”

“전혀 안 괜찮은데.”

사람이 너무 놀라면 얼어 버릴 때가 있다. 이찬희가 그랬다.

실전은 이론과 다를 때가 많다. 지금이 그랬다.

지금까지 그래도 환자를 어느 정도 다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맡은 환자가 잘 못되는 건 아닌가 싶어 솔직히 두려웠고 놀란 마음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 놀라움과 충격이 가시지 않아 수술방에서 느껴지던 두려움을 덮어 버릴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환자분.’

이찬희는 수술방 베드에 마취된 채 누워 있는 환자에게 연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선배! 애 기 좀 살려 줘요.”

태경과 눈을 마주친 의진이 입모양과 눈짓으로 이찬희를 달래 주라고 사인을 보냈다.

“이찬희?”

태경이 모든 소독을 하고서 환자 주변으로 수술포를 덮은 상태로 마주 선 이찬희를 불렀다.

“네, 선생님.”

“트로카(trocar, 늑강 내의 물 및 공기를 빼기 위한 도구) 10mm짜리 두 개 주세요. 그리고 5mm짜리 하나요. 너 아까 많이 놀랐구나.”

태경은 수술을 진행하며 대화를 이어 갔다.

“선생님께서 그때 오셔서 참 다행이구나 생각했어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값진 경험했다고 생각해. 이런 일 한번 겪으면 절대 잊지 못하거든. 아마 오늘 네 뇌 속에 제대로 각인됐을 걸. 메스 주시고 모스키토 주세요.”

태경이 모스키토 끝으로 복부 안의 지방들을 파헤치며 근막을 끝으로 잡고서 들어올렸다.

이제는 워낙 둘의 호흡이 익숙해져서 태경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찬희가 켈리로 근막을 크게 집는다. 그리고 트로카를 들고서 환자 복부에 밀어 넣었다.

“자 여기, 여기 두 군데 더 뚫고 이쪽에 10mm로 하고 저쪽은 5mm로 해.”

“네. 선생님”

이찬희는 오더 그대로 하고서 배꼽 아래로 카메라를 밀어 넣는다.

“어이구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네. 엄청 아팠겠다.”

카메라로 그 내부가 보이자 환자가 얼마나 큰 통증을 느꼈을지 태경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봉합하게 주세요.”

봉합을 위한 기구를 길게 다시 배에 넣는다.

장기의 이동이나 고정을 위해서 사용되는 여타의 기구들은 모두 총과 같은 손잡이에 앞이 50cm정도 길게 생겼다. 하지만 봉합을 위한 기구는 검과 같은 손잡이다.

그래야 조직을 봉합할 때 온전하게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권총과 같은 짧은 손잡이였다면 손목을 돌리면서 힘을 주어서 무리도 가고 힘도 온전히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술 도구들은 대부분 이런 수술적인 상황들을 고려해 설계되고 만들어진다.

“니들 물어서 주시고.”

“바이크릴(vicryl, 체내에서 녹는 실 종류)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손끝인 신체 밖을 봉합해도 어렵기 마련이다. 봉합할 때 힘의 강도 그리고 봉합하는 조직 간의 경계가 잘 맞아야 한다.

지식적인 부분이 아니라 반복되어서 익숙해져야 그때서야 온전히 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하물며 검 모양으로 기구를 잡고서 50cm 넘게 떨어진 조직을 카메라에만 의존해서 봉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배를 열고 하면 훨씬 쉽다.

“이찬희?”

“네, 선생님.”

“네가 나중에 이런 환자를 비롯해서 배를 열어야 잘 봉합할 수 있을 거 같으면 그땐 망설이지 말고 열어.”

“네?”

“지금처럼 복강경으로 잘 해내면 베스트지만 그거야 근본적인 저 구멍을 잘 봉합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 얘기잖아.”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이거 익숙하지 않으면 쉽지 않거든. 위가 워낙에 장력이 좋아서 봉합실로 완전히 입구를 막도록 해야 하는데 매듭을 묶는 과정에서 힘을 유지 못 하면 바로 풀려 버리고 위가 벽이 또 두껍거든. 그러니까 이렇게…….”

태경이 있는 힘을 다해 위의 벽을 깊고 넓게 관통했다. 그리고 구멍을 가운데 두고 다른 쪽 위로 니들을 빼낸다.

여기서 매듭을 하는데 힘이 빠지지 않게 빠르고 정확하게 매듭을 두세 번 한다.

“자, 카메라 조금 더 들어가자.”

주변에 다시 봉합이 풀리기 전에 앞의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다.

“이렇게 반복해서 몇 번 더 봉합해 주면 되는데. 사실 이후가 더 문제야.”

“카메라 한번 닦겠습니다.”

이후 태경은 세 번 더 천공된 부위를 봉합했다. 조심, 또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것이다.

“자, 아래 보자.”

“아래요?”

“어. 위에 있었던 위산과 음식물들이 아래로 다 쏟아졌잖아. 한번 닦아야지. 노말 셀라인(normal saline, 생리식염수) 연결됐죠?”

“네, 연결됐습니다.”

슈왁-

태경이 기구를 손바닥에 대고 단추를 누르자 굵은 물줄기가 앞으로 나왔다.

“이거 좀 차가운데? 따뜻한 걸로 바꿔 주세요. 많이 하고 많이 뺄 거예요.”

노말 셀라인이 따뜻하게 교체되는 과정 중 태경은 카메라로 보이는 소장을 구석구석 살폈다.

“다행히도 소장에 염증이 심하지는 않네. 항상 수술 끝나기 전에 이렇게 소장을 봐서 염증의 정도 그리고 천공의 유무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알았지? 명심해.”

“네,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교체되었습니다.”

“네. 이리게이션(irrigation, 물이나 소독약으로 오염 부위를 반복 세척하는 과정) 합니다.”

이후 트로카를 제거하고 배벽을 온전히 닫는다.

“찬희야. 내가 수술 기록지 쓰고 보호자 만나 볼 테니까. 앞에 계시나 좀 봐 봐.”

“네, 선생님.”

“자! 마무리합시다.”

* * *

“고춘례 씨 보호자분?”

“선생님!”

이찬희가 환자의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아까 그 내과의가 득달같이 달려 나왔다.

“선생님. 환자 천공 부위에 궤양이 심했죠? 원래 지병이 심했던 환자죠?”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달려든 내과의를 보며 이찬희를 빤히 쳐다봤다.

“어라! 보호자셔? 아까 뵌 분이랑 다른데?”

그사이 다가온 태경이 내과의를 쳐다보며 물었다.

“선생님, 보호자가 아니라 내시경을 했던 oo병원 원장님입니다.”

“김태경 원장님이시죠?”

내과의는 태경을 보자마자 마치 오래된 동료를 본 것처럼 반가워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이 이 병원 원장님 맞죠? 수술 집도도 직접 하셨고요?”

“그런데요?”

“고춘례 환자 궤양이 심했죠? 원래 심한 거 맞잖아요. 그렇죠?”

“하!”

미간을 좁힌 태경의 입에서 썩소가 흘러나왔다.

“나이 많은 환자들은…….”

“이봐요?”

더 이상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태경이 내과의 말허리를 싹둑 끊었다.

“네?”

그리고 날카로운 외침을 뻔뻔한 면전에 던졌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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