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얼음공주와 북소리
오래된 주택가가 즐비한 동네.
리모델링을 마친 주택 안에서는 공주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유난히 흰 피부에 커다란 눈망울, 게다가 갈색 눈동자에 높은 콧대까지. 작은 체구의 아이는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공주처럼 예쁘게 생겼다.
“안녕하세요. 세세들. 세리세라맘입니다.”
차분하게 앉아 있는 아이 옆으로 수수한 차림의 아이 엄마가 카메라를 보며 두 손을 흔들었다.
“오늘 세라 공주가 읽을 책은 구독자님이 추천해 준 숲속의 얼음공주입니다.”
-세라. 안녕!
-공주야 랜선 이모 오늘 세라 보려고 약속도 취소하고 왔어.
-우리 세라는 오늘도 너무 예쁘다.
-여기 랜선 삼촌도 추가요.
요즘 너튜브는 물론 미디어 전반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키즈 채널의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자 사람은 열광했다.
-역시 주말 마무리는 우리 세세들과 라이브지.
시작한 지 5분 남짓한 사이, 1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덩달아 실시간 채팅창도 빠르게 올라갔다.
“세라야 준비됐어?”
“준비됐어요.”
“자! 그럼 세라 공주의 주말 낭독회 시작합니다.”
아이의 엄마가 화면 밖으로 나가고 무표정의 세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얼음공주는 오늘도 차가운 성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예쁜 옷과 아름다운 얼음공주의 얼굴을 보며 백성들은 열광합니다. 하지만 공주는 전혀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습니다.
반짝이는 보석과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지만 공주의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얼음공주는 마녀의 저주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표정에 속고 있는 백성들은 공주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주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너무 외롭습니다.
따뜻한 햇볕에 이 차가운 성이 하루 빨리 녹아내리길 바랄 뿐입니다.”
책읽기를 끝낸 아이는 또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책을 덮고 가만히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러자 조용하던 채팅창에 랙이 걸릴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라야 이모 오늘도 세라 때문에 책 한 권 읽었네. 고마워.
-The pretty child's voice is so beautiful.
-The princess is pretty today, too.
-오늘은 뭔가 동화치고 내용이 좀 무겁네요. 그래도 세라가 소개하니까 분위기가 다르고 좋았습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 세라 공주가 읽은 책은 구독자인 세세들 중 한 분이 추천한 외국 동화였어요.”
어느새 나타난 아이의 엄마는 오늘 책에 대해 소개했다.
“우리 세라 공주 별명이 얼음공주잖아요. 그래서 이 책을 꼭 읽어 주면 좋겠다고 해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세라야 너무 수고했어. 사랑해.”
엄마는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한 듯 힘껏 품에 안아 주며 이마에 뽀뽀를 했다.
“네, 엄마. 저도 사랑해요.”
-진짜 보기 좋은 모습이네요.
-역시 세리세라 채널은 다른 키즈 채널이랑 달라서 너무 좋음.
-억지로 과하게 오버하는 것 때문에 키즈 채널 안 보는데 유일하게 보는 채널이에요.
6개월 전 혜성처럼 나타난 세리세라 채널은 조금 독특한 콘셉트로 입소문을 탔다.
보통의 키즈 채널처럼 브이로그나 먹방, 체험 형식이 아닌 아이가 나와 그저 짧은 분량의 동화책을 읽는 게 다였다.
그런데 책을 낭독하는 아이가 특이했다. 과하게 웃지도 말을 많이 하지도 않고 시종일관 무표정을 일관하며 오로지 책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콘셉트였지만, 인기의 포텐은 아이한테서 터졌다.
아역 배우보다 예쁘게 생긴 아이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궁금했던 심한 무표정인 이유가 알고 보니 아이의 자폐 성향 때문이었다는 엄마의 고백이 있은 후로 팬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예쁜 아이와 아픈 아이라는 키워드가 사람들의 호기심과 연민을 동시에 자극시킨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세세님들께 공지 했던 대로 처음으로 라이브 Q&A 시간을 가져 보려 합니다. 그럼 우리 작은 공주 세리도 불러 볼게요. 세리야~”
“안녕하세요. 세라 언니 동생 세리입니다.”
엄마의 부름을 받고 등장한 세리는 세라보다 동생이었지만, 키가 더 컸다. 그에 비해 언니인 세리는 또래보다 더 왜소한 체격이었다.
“언니~ 우리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겸댕이 세리 왔구나.
-세리가 세라 챙기는 모습은 언제 봐도 훈훈하다.
-자매가 너무 보기 좋아요.
언니바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세리는 세라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팔짱을 끼며 좋아했다.
“질문은 그때그때 제가 라이브로 올라오는 질문을 보며 답변하겠습니다.”
-세라는 원래 예뻤나요?
-세리세라 태몽은 뭐예요?
-너튜브 시작 계기?
“그럼 첫 번째 질문 읽을게요. 맑음 님께서 질문해 주신 너튜브 시작 계기는 사실 세라 때문이었어요.”
-진짜요? 왜요?
-세라가 하고 싶어 했나요?
-혹시 자폐 스펙트럼 때문이었나요?
“네. 지금 답변 주신 대로 세라의 자폐 성향에 제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니까 늘 책만 읽어서 그럼 이걸 너튜브에 올려서 추억으로 만들어 주자 해서 시작했어요.”
-세리세라 아버님은 아직도 배 타고 계세요?
“네, 남편은 아직도 배를 타고 있어요. 남편과 저는 채널로 하던 일 그만두고 그렇게 막 일처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요.”
-역시 개념부부.
-다른 너튜부 부부들이 보고 배워야 할 듯.
“근데 배 타는 일이 위험하고 아이들도 자꾸 보고 싶다고 해서 1년 만 더 하고 그만두기로 결정했어요.”
-근데 둘이 친자매 맞나? 어쩜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나도 안 닮았지?
한창 라이브가 진행되던 중 어떤 사람이 자매의 얼굴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광분하기 시작했다.
-미친, 너는 그럼 형제들이 쌍둥이처럼 얼굴이 다 똑같냐?
-아이들 아빠도 종종 라이브 보시는데 말 가려서 합시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 왜 들어와서 굳이 저딴 글 싸지르고 난리야.
-매니저: 인신공격성 문구와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은 단어를 도배하거나 분란을 일으키는 문구는 예고 없이 삭제됩니다.
“자! 여러분 매니저님이 강제 추방하셨으니 이제 그만. 그리고 여러분께 좋은 소식하나 전해 드릴게요. 오플릭스에서 세계 영향력 있는 아동들 다큐를 찍는데 우리 세리세라가 한국 대표로 선정됐어요.”
-헐! 대박. 안 그래도 외국 팬들 많은데 이제 진짜 글로벌 스타네.
-드디어 우리 공주님들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건가요?
-너무 기대돼요.
“응원 감사해요.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피디님과 작가님이 최소 인원으로 딱 하루만 찍겠다고 하셔서 수락했어요. 잘 찍고 알려드릴게요. 그러면 우리 공주님들 아빠랑 통화해야 해서 오늘 라이브는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안 돼! 가지 마요.
-오늘 라이브로 공주님들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우리 공주님들 좋은 꿈꿔.
“세리야 세라야, 우리 세세님들께 인사해야지?”
“안녕히 계세요.”
“세세님들 안뇽!”
아이들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애들 엄마는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이날 짧은 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실시간 후원은 5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대부분 세라에게 들어온 후원금이었다.
“엄마 나 잘했지?”
“그럼. 우리 세리는 언제나 잘했지? 어! 아빠 전화 왔다.”
“아빠!”
방송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매의 아빠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와! 우리 세진이 세영이 이쁜이들.
“오늘도 방송 봤어요?”
-봤지? 항구 근처 숙소야. 당신이 혼자 애들 보느라 수고가 많아.
“수고는요. 오히려 애들 때문에 내가 버티는 걸. 그런 말 말아요.”
애들 엄마는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세영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아빠.”
시종일관 얼음공주처럼 무표정하게 있던 아이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래, 우리 예쁜 세영아. 엄마랑 세진이랑 잘 지내고 있지?
“아빠 보고 싶어.”
-아빠도 우리 공주님들 보고 싶지.
“엄마 나 또 배 아파. 똥마려워. 화장실.”
“지금! 또 배 아파?”
“어어, 빨리.”
그때 둘째 딸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요란을 떨자 엄마의 시선이 자꾸만 휴대폰을 향했다.
“여보, 전화를 이만…….”
“아~! 엄마, 세진이 배 아프다고.”
“그래. 알았어. 세영아, 이제 자야지. 아빠랑 인사하고 전화 끊자.”
“엄마, 나온다고.”
“그래, 빨리 가자.”
엄마가 동생과 함께 급하게 화장실로 향하자 가만히 있던 세영이가 구석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세영아. 어디 아픈 데 없지? 엄마가 늘 세영이 걱정 많이 하더라.
“아빠, 있잖아 나…….”
아빠의 걱정 어린 눈빛에 뭔가를 결심한 세영이 고백하려던 찰나,
“세영아. 씻어야지?”
어느새 다가온 엄마가 핸드폰을 낚아챘다.
“여보, 애들 자야 할 시간이에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여보, 내가 당신한테 늘 미안하고 고마워. 세영이 잘 부탁해.
“우리가 남이에요? 부부 사이에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세영이 예쁜 내 딸이에요. 얼른 들어가요. 몸조심하고요.”
-그래, 끊을게. 우리 세영이 잘 자.
“아빠도 잘 자.”
“헤이, 카카오 큰 북소리 연속으로 틀어 줘.”
전화를 끊은 엄마는 별안간 거실 스피커로 음악을 틀더니 세영이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너 따라와.”
그러더니 표독스러운 눈빛을 장착한 채 지하실로 세영이를 데려가고 있었다.
“용서해 주세요.”
아이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드레스와 목걸이, 반짝이는 머리띠까지.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졌다.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 누가! 누가 네 엄마야?”
“아, 아줌마 잘못했어요.”
“너 미쳤니 누구 보고 아줌마래?너! 아빠한테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한 번만 봐주세요.”
‘쾅’하는 소리와 지하실 문이 닫혔다.
* * *
한참 뒤-
엄마라는 여자는 지하실 계단에 서서 바닥에 엎어져 있는 세영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일 촬영하니까 허튼 짓거리 하지 말고 잘해. 안 그러면 북소리 또 들을 줄 알아. 알았어?”
“…….”
“대답! 대답 안 하지.”
“흐윽……. 네.”
“뭘 잘했다고 울어? 당장 눈물 안 그쳐? 재수 없게 어디서 울고 지x이야?”
“그칠게요. 그쳤어요. 저……. 배고파요.”
하루 종일 식빵 한 장만 먹은 세영이가 용기 내어 꺼낸 말은 위에서 들려오는 세진이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엄마! 세진이 또 배 아파! 어디 있어? 엄마아~!”
“엄마 언니랑 공부 중이야. 지금 갈게.”
“배 아프다고!!”
“우리 공주 엄마 올라가요. 아무래도 내일 병원에 가야겠네.”
쾅-
또다시 지하실 문이 굳게 닫혔다. 오래된 전구 불빛만이 훌쩍이는 세영이를 달래듯 깜빡거렸다.
“거미야, 안녕.”
어두컴컴한 먼지 쌓인 지하실 바닥에 큰 거미가 지나갔다.
또래 아이라면 놀랐겠지만 세영이는 놀라지도 울지도 않았다.
혼자인 것보다는 저 거미라도 있는 게 덜 무서웠기 때문이다.
“거미야 나도 아파…….”
세영이는 자폐 성향의 아이도 무표정의 얼음공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날마다 마주한 공포와 두려운 존재가 표정을 잃게 만들었으며, 있지도 않은 자폐 성향이란 타이틀을 붙여 버린 것이다.
“아빠 세영이 아파요.”
누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자신을 구해 주길 오늘도 간절히 기도했다.
“살려 주세요. 제발…….”
가여운 목소리로 흐느끼던 세영이는 몸에 늘어난 푸른 살결을 쓰다듬으며 울다 지쳐 잠들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