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우리병원
월요일.
정신없던 주말을 보낸 우리병원 식구들이 하나씩 출근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 쌤 안녕하세요.”
“안녕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네요.”
“왜요? 잠 못 잤어요?”
“수 쌤. 이거 보이십니까? 다크서클 발밑까지 내려온 거?”
얼마나 억울했던지 이찬희는 아직도 당직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다크서클이 토요일 당직 여파가 아직도 안 가신 거 같아요.”
“어디 보자? 다크서클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정 쌤은 보이세요?”
“아니요. 저도 전혀 안 보이네요.”
“두 분 다 잘 좀 보세요.”
“없어.”
그사이 출근한 최모나가 시크한 표정으로 답을 내렸다.
“최 쌤 왔어요?”
“네, 다들 좋은 월요일입니다.”
“야! 최모나 내가 토요일 날 얼마나 개고생 했는지 들으면 너도 놀랄걸?”
“별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최 쌤 같이 가.”
가볍게 무시하며 의국실로 향하는 최모나의 뒤를 이찬희가 따라갔다.
“수 쌤, 정 쌤, 방금 보셨어요? 오늘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뜬 거 같아요.”
“응? 갑자기 웬 해 타령이야?”
“그러게요. 최 쌤이 왜요?”
“뭔가 묘하게 달라진 거 못 느끼셨어요?”
의국실로 향하는 최모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접수처 직원이 말을 이었다.
“방금 전에 인사하면서 최 쌤이 좋은 월요일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왜?”
“왜라니요. 까칠이 최 쌤이 어디 저런 말 하는 사람이에요.”
맞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최모나는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 진짜 그러네.”
“정말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주말에 화상을 입은 아이 환자 때도 그렇고, 확실히 요즘 최모나의 언행이 전과는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니까. 남자 친구 생겼네.”
“뭐! 남자 친구?”
“예? 최 선생 남친 생겼어요?”
의진이 격한 반응과 함께 물었다.
“네, 남자 친구가 생긴 게 확실해요.”
달라진 최모나를 고찰하던 직원이 내린 결론은 엉뚱하게도 남자 친구였다.
“제가 원래 이런 쪽으로 촉이 상당한데. 보통 저런 경우는 100프로 다 애인이 생긴 경우거든요.”
“그 촉 이번에는 번지수 잘못 찾았어. 아니야.”
“아니라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최 쌤 왜 저러지?”
“안녕하십니까.”
두 사람이 최모나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는 사이 우리병원에 새로운 식구가 첫 출근을 알렸다.
“수 쌤, 그 사람 왔……아니, 오셨네요.”
양아치들을 제압한 장득칠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저도 모르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다들 왜 그렇게 긴장들 하고 그래. 어서 와요. 그날은 바빠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아닙니다. 고맙긴요. 저기 혹시 그날 가져간 내 라이터 좀 돌려받고 싶은데요.”
“왜요? 또 담배 태우려고요?”
“아니요. 저 금연 중입니다.”
“그럼 금연 성공하면 그때 줄게요. 괜찮죠?”
“그, 그러시죠.”
“우리 장 요원 왔군요.”
태경의 진료실에서 나온 최 팀장이 장득칠은 보며 반갑게 맞았다.
“이거 첫 출근이 너무 빠른 거 같은데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놀고 있어서 남는 게 시간인데요.”
“그럼 다행이고요. 자! 다들 잠시만 의국실로 좀 모여 주세요. 우리 장 요원도 따라와요.”
“네, 팀장님.”
* * *
철컥-
“다들 주말 잘 보냈어요?”
활기찬 인사와 함께 태경이 의국실로 들어오자 직원들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안녕하세요.”
“최 쌤, 선생님 얼굴 봐 봐.”
태경이 들어오자 중간쯤에 서 있던 이찬희가 최모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게 말이 돼?”
“뭐가?”
“주말 내내 당직을 하셨다는데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쌩쌩하냐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태경의 피곤한 기색 없는 모습이 이찬희는 부러웠다.
“난 토요일 하루 했는데도 죽겠구만. 진짜 괴물 같은 체력이다.”
“이 선생?”
“네, 선생님!”
“괴물 귀에 다 들리니까 입 다물고.”
“네. 굳게 다물겠습니다.”
“진료 전에 전달 사항이 있어서 잠시 모이라고 했어요. 우선 이번 주말이 특히 바빴는데 다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원장님이 제일 많이 하셨죠.”
“사실 이렇게 모인 건 황석호 씨 어머님 때문입니다.”
“아! 황석호 씨 어머니.”
“어머님 오늘도 오셨던데…….”
‘황석호’란 말이 나오자 직원들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몇 주 전, 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가 극심함 우울증으로 생을 달리하여 응급실에 실려 온 적이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황석호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오늘까지 고인의 어머니가 계속해서 병원을 찾아오고 있었다.
황석호의 어머니는 항상 일정 시간을 병원에 머물렀으며, 그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자잘한 일들을 했다.
액자 먼지 닦기, 환자 안내하기, 병원 마당의 쓰레기 줍기 등 꽤 많은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황석호의 일을 알고 있는 병원 직원들은 처음에 그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태경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편하게 대했다.
‘안녕하세요. 석호 어머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그 모습에 병원 직원들도 점차 익숙해져 황석호의 어머니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기 선생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그리고 어제 황석호의 어머니가 태경에게 모두가 궁금해하던 이유를 털어놨다.
‘선생님. 저 때문에 직원 분들도 그렇고 여러모로 불편하셨죠?’
‘아니요. 직원들도 다들 석호 어머님을 걱정했지 불편해하진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눈치채셨겠지만, 전 병원에 오는 게 좋아요. 여길 오면 그리운 우리 석호의 온전한 모습을 기억할 수 있거든요.’
황석호의 어머니는 우리병원에서 아들을 추억하는 중이었다.
항상 힘들고 아팠던 평소 모습이 아닌 멀쩡한 손과 다리와 편하게 잠든 아들의 모습이 이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자신 말고는 세상이 기억조차 하지 않은 아들의 이름도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불러 줬다. 그게 참 위로가 됐다.
아들을 보낸 직후 시작된 우울증 증세도 병원에 오고 나서부터 사라졌다.
집에서 울기만 하던 아내가 점점 밝아지니 남편도 오히려 병원에 가는 걸 반겼다.
‘선생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 병원에서 지금처럼 계속 봉사해도 될까요? 부탁드릴게요.’
‘석호 어머니. 그럴 순 없습니다.’
‘네? 아무래도 그렇죠. 너무 제 생각만 했나 봐요.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서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는 것도 참 좋았는데…….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니요. 석호 어머님. 그게 아니라 무료로 일하시는 건, 더 이상 안 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무료요?’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저희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 보시면 어떨까요?’
‘일을요? 정말요?’
‘네, 여기서 일하세요.’
태경은 그녀가 미안해하지 않고 아들을 추억하며 병원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안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정이 딱해서 일자리를 제안하는 것도 아니었다. 워낙 깔끔하게 일도 잘하고 직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기에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대신 힘들거나 그만두고 싶을 때는 무리하지 말고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 주세요.’
‘그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환자가 몰아칠 때는 일손이 부족했기에 새로운 직원을 충원할까 했었다. 하지만 정직원을 뽑기는 애매했고 황석호 어머니가 제격이었다.
“그렇게 해서 황석호 어머님께서 우리병원에 파트타임으로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태경은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정말 잘됐네요.”
“집안일만 하셨다고 하는데 진짜 일을 잘하시더라고요.”
“그리고 한 분을 더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부터 보안요원으로 함께할 장득칠 씨입니다. 나와서 소개 한 번 해 주세요.”
태경의 부름에 제일 뒤쪽에 서 있던 장득칠이 앞으로 나왔다.
“장득칠? 장현수 아니었나?”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면접 볼 때와 다른 이름에 최 팀장과 직원들은 의아했다.
“안녕하십니까. 면접 볼 때는 장현수라는 예명을 썼지만 본명은 장득칠이라고 합니다.”
“아니, 장 요원. 왜 예명을 쓴 거죠?”
“그게 저희 어머니께서 얼굴도 무서운데 이름도 무섭다고 예명을 쓰라고 하셔서요.”
“우와 진짜 이름이랑 얼굴이 찰떡이네요. 아! 죄송합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 나온 이찬희는 장득칠과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사과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요즘 악의적으로 펜타닐 패치(Fentanyl,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 일당이 있다고 하네요. 혹시라도 처방해 달라는 사람이 오면 저한테 즉시 알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다들 힘냅시다.”
태경의 격려를 끝으로 직원들은 환자를 맞으러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 * *
“어머! 저기 세리세라 아니야?”
“맞네. 어제 라이브에서 다큐 찍는다고 하더니 우리 동네였어? 대박!”
“야, 사진 찍어 달라고 하자.”
공원을 산책하던 여자 두 명이 구독 중인 너튜버를 보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기, 세리세라 맞죠? 혹시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어요.”
“네, 그럼요. 세리야 세라야. 여기 언니들이랑 사진 한 장 같이 찍을까?”
“좋아용.”
“네.”
“하나 둘 셋.”
찰칵-
“감사합니다. 촬영 잘하세요.”
“세리야 세라야, 안녕.”
“언니들 안녕. 잘 가.”
“세리는 진짜 성격이 통통 튀네요.”
“한 작가 말이 맞아. 너튜브로 볼 때보다 실제로 보니까 두 친구의 성격이 완전히 정반대야.”
촬영을 담당하는 피디와 작가가 애들 엄마인 도한연에게 신기한 듯 물었다.
“이게 우리 세라가 자폐적인 성향이 있다 보니까 세리랑 성격 차이가 더 분명하게 나는 거 같아요.”
도한연은 예상이나 한 듯 세라를 방패처럼 들먹이며 차분하게 답했다.
“아, 맞아요. 아무래도 그런 성향이 있다 보면 뭔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서 더 조용하고 그렇죠.”
“세리가 언니를 참 잘 챙기네요. 보통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러니까요. 세라 옆에 딱 붙어 있는 게 언니 바라기네.”
“저도 딸이 둘인데 어린 녀석들이 눈만 마주치면 싸워서 와이프가 힘들어하거든요.”
“다들 그렇죠. 근데 우리 세리는 자기가 언니보다 크다 보니까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세상에. 기특하다 기특해.”
“엄마~! 엄마?”
어른들이 앉아 있는 벤치 옆에서 세라와 책을 보고 있던 세리가 도한연을 급히 불렀다.
“어, 세리야 왜?”
“엄마 나 또 배 아프기 시작했어.”
“또? 아침에 약 먹고 괜찮더니……. 그러게 아까 아이스크림은 왜 먹었어.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화장실은 아니고 배가 아파. 아까는 참을 만했는데 지금은 점점 더 아파.”
“아무래도 병원 가야겠네.”
‘병원’이란 단어에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세라가 귀를 쫑긋했다.
“그러지 마시고 우리 차로 가세요. 감독님, 괜찮죠?”
“그럼. 어차피 공원에서 애들 노는 장면도 잘 나왔고 촬영보다 애들 건강이 우선이니까 일단 병원부터 가자고.”
“실은 세리가 어제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거든요. 촬영 끝나고 가려고 했는데 감사해요.”
“우리 공주님들, 차에 타자.”
도한연은 세리와 세라의 손을 꼭 잡고 촬영차에 올라탔다.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네비에 우리병원이라고 치면 나올 거예요. 근처라서 얼마 안 걸려요.”
“아! 여기 나오네요. 우리병원. 20분이면 가겠네. 출발할게요.”
세라가 탄 차는 공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우리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