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좋은 냄새?!
‘또다.’
며칠 전 느꼈던 독특한 다섯 번째 바이탈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놀이동산 사탕의 집과 풍선껌이 섞인 이상한 조합의 분뇨 냄새가 진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확실하다.’
그리고 태경은 확신했다. 이 냄새의 주인공이 현재 병원 안에 있다는 것을.
‘이번엔 절대 그냥 보내지 않아.’
태경은 이고철 때를 생각하며 다짐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아니요. 순간 다리가 저려서 멈칫했어요.”
“환자 보느라 계속 서 있어서 그래요. 참, 좋은 소식 있는데. 글쎄 우리의 거북이 2호가여…….”
임정숙 간호사가 신난 표정으로 최모나의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태경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신중한 발걸음이 응급실 입구를 넘어 병원 복도를 밟았다.
그 순간, 굳이 숨을 깊게 들이쉬지 않아도 범람하는 파도처럼 냄새가 넘쳐 났다.
‘멀지 않은 곳이다.’
태경은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며 집중했다.
“이여정 씨, 저희 병원 처음이세요?”
“아니요. 전에 왔었어요.”
접수처의 직원과 새로운 환자.
=잘못했어요. 아빠 내가 안 그럴게. 제발……. 제발 때리지만 마세요.
“저, 쳐 죽일 놈. 애들 학대하는 사람들은 그냥 옷 싹 벗겨서 광화문 사거리에서 돌팔매질을 시켜야 해.”
“그거 갖고 되겠어. 그냥 사지를 찢어야지. 어디 애들을 때려. 하여간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많아.”
“어르신들 저거 드라마예요.”
“드라마는 무슨. 현실은 더하니까 화가 나서 그렇지.”
인기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목소리를 높이는 대기실 사람들.
복도를 타고 1층 로비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들이 냄새와 함께 귓가에 전달되고 있었다.
이윽고 일직선 복도를 지난 태경이 로비에 도착한 그때였다.
‘……!’
마치 밀가루를 가득 품은 거대한 풍선이 눈앞에서 터지듯 순식간에 냄새가 폭죽처럼 터졌다.
‘여기! 환자가 로비에 있다.’
누구나 맡으며 코를 막을 정도의 분뇨 냄새와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서로 미친 듯이 충돌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 어떤 환자도 이런 스타일의 냄새는 없었다.
“저,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시면 안 돼요?”
“저도요.”
“이걸 어쩌나. 정말 죄송한데 오늘 세리가 아파서 진료 보러 왔거든요. 그래서 사진은 힘들 것 같아요. 양해 부탁드려요.”
“아니에요. 애가 아파서 온 줄 몰랐어요. 많이 아파요?”
“배가 좀 아파서요.”
한 방향에서 밀려오는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태경은 다섯 번째 바이탈과 이질적인 냄새가 저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기 있네요. 너튜브 스타.”
“너튜브 스타요?”
“네, 지금 선생님이 보고 계신 곳에 사람들 몰려 있죠? 너튜브 스타 때문에 그래요.”
몰려 있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는 태경에게 임정숙 간호사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키즈 채널 주인공들이 병원에 왔거든요. 저기 젊은 엄마가 손잡고 있는 애랑 그 앞에 의자에 앉아 있는 작은 애 보이시죠? 저 두 자매가 요즘 인기 절정의 너튜브 스타래요.”
태경은 점점 거리를 좁혀 가며 시선을 옮겼다.
날카로운 시선이 도한연에서 그 옆에 있는 아이에게로, 다시 의자에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아이에게 옮겨졌다.
‘저 애다!’
그리고 지금 병원 로비를 가득 매운 이질적인 냄새의 주인공이 작은 체구의 아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니, 애가 왜 저렇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이의 눈빛과 표정이 이상하다. 도저히 또래 아이의 일반적인 표정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조했다. 아니, 메말랐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아이의 표정이 저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임 선생님? 저, 작은 애 표정 안 좋아 보이지 않아요?”
“저 친구 이름이 세라인데요. 표정 때문에 별명이 얼음공주래요.”
“얼음공주요?”
“네, 저 표정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저도 아까 들었는데 ASD 때문에 그렇다고 하던데요.”
‘ASD 때문이라고?’
ASD(Autism Spectrum Disorders, 자폐 스펙트럼)은 태경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다.
오래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전에 사고로 실려 온 ASD 청소년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뭔가 좀 아닌 것 같았다.
‘아파서 그런 건가?’
사람이 아프다 보면 아이고 어른이고 표정이 일반 사람과 다른 건 사실이다.
냄새가 정확히 저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태경은 아파서 그런 건가 싶었다.
꼬르륵-
배꼽시계가 오늘따라 지랄 맞게 요동쳤지만, 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죽진 않는다. 지금은 저 아이에게 집중할 때였다.
저 작은 아이가 어디가 아픈 건지가 훨씬 중요했다.
‘저 표정이 ASD 때문인지 아파서인지 또 냄새의 원인은 뭔지 확인해 보자.’
태경은 도움이 필요한 작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잠시만요. 진료 때문에 자리 좀 잠시만 비켜 주세요.”
임정숙 간호사가 양해를 구하자 몰려든 사람들이 제자리로 이동했다.
“안녕.”
부드러운 인사말에 세라는 태경을 빤히 쳐다봤다.
* * *
“최 쌤, 최 쌤?”
병동 스테이션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온 최모나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병원에 세리세라 왔다는데 사실이에요?”
“세리세라?”
“몰라요?”
“무슨 만화 캐릭터입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인기 너튜버가 우리 병원에 왔다면서요? 못 보셨어요? 여자 아이들 두 명이요. 지금 로비에 있다던데…….”
가끔 디저트 채널만 시청하는 최모나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최 쌤이 알면 그게 더 신기하죠.”
“선생님…….”
세리세라 뜻이 뭔지 물어보려던 차에 등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최모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우진이라는 것을.
“최 쌤?”
“예?”
“우진이가 부르잖아요.”
“아. 네.”
최모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어, 그래. 우진이 어린이 무슨 일이야?”
“선생님, 우진이 질문 있는데 안 바빠요?”
“질문? 뭐지?”
“네, 선생님 왜 회진 안 와요?”
“어?”
설마 회진에 대한 질문일까 싶었는데 진짜 회진에 대한 거였다.
최모나는 오늘 마주치는 병동 담당 간호사 선생님들마다 우진이가 기다린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었다. 그리고 사실 회진은 계속 돌았었다.
다만 환자 여부에 따라 시간이 유동적이다 보니 우진이와 마주치는 일이 없었을 뿐이었다.
회진을 돌 때마다 우진이를 마주치면 ‘조금 귀찮겠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일부러 피하진 않았다.
“나 때문에 안 오는 거예요?”
우진이는 최모나가 자기 때문에 회진을 안 온다고 생각했다.
“우진이 어린이 나 회진 계속 했는데.”
“어? 이상하다. 난 선생님 못 봤는데?”
“그거야 우리 예쁜 우진이가 코 잘 때 선생님이 회진을 왔으니까 그렇지.”
옆에서 귀여운 대화를 듣고 있던 스테이션 간호사가 대신 답했다.
“정말이에요?”
“어! 맞아.”
“다행이다. 선생님 이거요.”
시무룩하던 얼굴이 금세 환해진 우진이가 손에 쥐고 있던 걸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뭔데?”
“우진이가 선생님께 주는 선물이에요.”
“선물?”
“네, 개모나엔 레모나!”
티 없이 해맑은 표정의 우진이가 그렇지 못한 문장을 내뱉자 간호사는 웃음이 터지고 최모나는 할 말을 잃었다.
“풋!”
“선생님 여기 편지도 있어요.”
“그래, 우진이 어린이 고마워. 근데 내 이름은…….”
“우진아? 엄마 영상통화 왔어.”
“네, 할머니 갈게요. 개모나 선생님 우리 또 봐요.”
최모나가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알려 주려는 찰나, 우진이는 인사를 하며 간병인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개모나엔 레모나라니. 미치겠다. 진짜! 어머, 선생님 죄송해요. 도대체 이름을 왜 저렇게 알고 있을까요?”
“아마 일부러 저렇게 알려 준 것 같습니다.”
“일부러? 누가요?”
“누구겠습니까? 이런 유치한 라임을 아이에게 가르쳐 줄 사람은 우리병원에 한 사람뿐입니다.”
“설마 이 쌤이요?”
“네, 맞습니다. 이! 찬! 희! 선생입니다.”
“근데, 우진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저렇게 순수하고 해맑게 웃는 얼굴이 딱 애들이구나 싶어요.”
‘순수하고 해맑게?’
간호사의 말 때문이었을까?
최모나는 조금 전 로비에서 봤던 처연한 표정의 여자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 손바닥의 검은 점은 뭐였을까?’
* * *
“안녕.”
부드러운 인사말에 세라는 태경을 빤히 쳐다봤다.
“어머, 세리야 선생님이 오셨네. 안녕하세요 해야지.”
그러자 도한연이 마치 의도적으로 가로막으려고 하는 듯 세라 앞으로 천천히 자리를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안녕. 어머님, 이 아이는 어디가 불편해서 왔나요?”
태경이 도한연 뒤로 살짝 보이는 세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어머, 걔는 건강해요. 애가 원래 얌전하고 조용해서 그렇지 잔병 하나 없답니다. 그치 세라야.”
“그럼. 혹시 첫째 딸이 아파서 오셨나요?”
도한연이 손을 꼭 잡고 있는 세라보다 키가 큰 세리에게 태경의 시선이 옮겨졌다.
“네, 맞아요. 배가 자꾸 아프다고 하고 설사를 계속해서 얼마나 기운이 없는지 걱정돼서 왔어요. 근데 제 뒤에 있는 아이가 첫째고 얘가 둘째예요.”
“첫째가 더 키가 작군요. 아이들 나이가 각각 몇 살이죠?”
“우리 세라가 아홉 살인가…… 그렇고 우리 세리는 여덟 살이에요.”
‘아홉 살인가?’
자식의 나이에 대한 대답을 엄마가 저렇게 답한다고?
태경은 도한연의 말투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사소한 말투일 뿐이지만 분명히 두 딸을 표현할 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머릿속에 ‘의심’이라는 단어가 꿈틀거렸다.
사실 태경이 의심한 것은 엄마라는 도한연의 예쁜 언행과 차림새 때문에도 그랬다.
병원이나 응급실에 오는 대부분의 보호자는 결코 옷을 잘 갖춰 입거나 표정이 과하게 밝지가 않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서 병원에 온 건데 좋은 옷을 고를 틈도, 예능 프로를 보는 것처럼 표정이 밝을 수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에 반해 도한연의 차림새는 물론 지나칠 정도로 말끝마다 과하게 보이는 미소와 예의 있는 행동이 이상하다.
‘이 여자 뭔가 있어.’
이런 경우 의심을 해야 한다.
태경은 과거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들이 병원에 오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그럴 경우 남편들은 대게 멋진 신사처럼 차려입고 예의가 발랐으며 극도로 침착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멋진 차림새, 포장된 말투, 웃음으로 가리려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지금도 딱 그랬다.
꽤나 조심스러운 말투와 예의 있는 행동, 그리고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은 모습까지. 마치 무언가를 가리는 커튼처럼 보였다.
아무리 백번 양보해서 옷을 잘 차려입고 올 수 있다고 해도 저 표정과 미소 말투는 확실히 이상했다.
‘세라와 더 얘기를 해야 하는데…….’
태경이 머리를 굴리며 도한연을 떼어 놓을 방법을 생각하던 그때였다.
“엄마! 나 또 똥 마려.”
둘째 딸인 세리의 배가 다시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나 급해 엄마, 얼른! 배 아파.”
“어이구 내 강아지 알았어. 엄마랑 화장실 가자. 조금만 참아요. 잠깐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저쪽에…….”
순간, 태경이 눈짓으로 보내는 사인을 감지한 임정숙 간호사가 직접 안내를 자처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저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세리 화장실 가자. 조금만 참아.”
도한연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둘째 딸의 손을 잡고 임정숙을 따라갔다. 세라에게는 기다리라는 그 흔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딸의 아프다는 말에 정신이 팔려 그냥 대기실 의자에 덩그러니 남겨 두고 간 것이다. 이 모습을 눈앞에서 본 태경은 한 번 더 확신했다.
‘세라’라는 이 아이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태경은 아이와 대화를 위해 한쪽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췄다.
“선생님?”
그런데 지금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세라가 먼저 태경을 불렀다.
“응. 그래 우리 친구 이름이 세라 맞지?”
“세라가 아니고 세영이에요.”
세라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직접 말한 건 처음이었다.
“내 이름 고세영.”
“세영이가 이름이구나. 앞으로 세영이라고 부를게.”
“선생님?”
“응. 그래. 할 말이 있어? 말해 봐. 선생님이 세영이 얘기 다 들어 줄게.”
늘 공허함과 축 쳐진 동공에 힘이 들어갔다. 거듭 태경이를 부르던 세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금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좋은 냄새.”
“응?”
“선생님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