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엄마’ 그 자체
우리병원 주차장-
“참, 피디님. 전에 메디컬 다큐 하셨다고 했죠?”
“갑자기 그건 왜.”
“아니, 후배가 이번에 메디컬 쪽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 왔는데 고민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 메디컬 그거 아주 극한인데. 고민 잘 해 보고 하라고 해. 힘들어.”
“하긴. 그쪽이 빡세긴 하죠. 그나저나 그림이 참 잘 나왔네요.”
차 안에서 세리와 세라를 기다리고 있는 작가와 피디는 낮에 찍은 촬영분을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콧대 높은 오플릭스 본사도 만족 하겠죠?”
“당연하지. 애들 사연도 있고 또 세라가 있잖아.”
“피디님도 흡족하시죠?”
“흡족하지. 솔직히 세리도 세리지만 사실 세라가 다 살렸어. 그냥 카메라에 얼굴만 나와도 그림이야. 그림!”
“그건 맞아요.”
“사람 얼굴 갖고 평가하는 게 안 좋지만, 우리처럼 미디어로 밥벌이하는 사람들은 어떡하겠어. 그게 일인데.”
“근데 꼭 만드는 우리 탓만 하는 것도 그래요. 멋지고 예쁜 사람이 나와야 시청률이 올라가니까 연출진들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안 찾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무서운 거야. 아무튼 우리는 우리 거 잘 마무리하고 세라한테 더 고마워하자고.”
피디도 작가도 지금까지 나온 결과물에 만족하며 세라에게 고마워했다.
“당연하죠. 전 촬영 끝나고 세라한테 선물할 것도 미리 생각해 뒀어……! 피디님 방구 끼었어요?”
갑자기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한 냄새에 작가가 코를 막으며 손부채를 했다.
“냄새났어? 한 작가는 코가 개코인가 봐.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아.”
“무슨 개코 같은 소리예요. 썩은 내가 진동하는데. 도대체 뭘 드신 거예요. 아으 냄새!”
“미안. 내가 장트라블타라서. 커피를 마셨더니 배가 요동치네.”
“그러지 말고 화장실 가서 밀어 내세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빨리 가세요.”
탁-
“아! 배 아파.”
차에서 내린 피디는 아랫배를 움켜쥐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뭐, 뭐야! 야!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내꺼 어디에 있어? 내꺼!”
악을 쓰며 미쳐 날뛰는 도한연을 본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픈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배려하며 이상적인 엄마의 표본이던 도한연은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작가?”
하지만 연출 생활을 오래 한 피디는 대번에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캐치하며 재빨리 작가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빨리 카메라 챙겨서 여기 좀 찍어.”
-네? 피디님 화장실 가신 거 아니에요?
“지금 똥이 문제가 아니야. 빨리 카메라 갖고 와. 도한연 아동학대범이야.”
-뭐라고요? 일단 알았어요.
작가는 카메라는 챙겨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 작가? 설명은 나중에 하고 저거, 저 인간……. 아니다 카메라 이리 줘.”
“피디님 배 아픈 건 괜찮아요.”
“아, 몰라. 놀래서 똥도 들어갔나 봐. 저, 여자 완전 미친x이었네.”
“애한테 내꺼라니. 우리가 아는 도한연 맞아요? 근데 피디님 저 의사 선생님도 한 화면에 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좋긴 한데 가해자야 그렇다 쳐도 일반 사람이 화면에……. 아니! 잠깐만! 저 사람 김태경 선생 아니야?”
작가의 말에 자연스레 포커스를 태경에게 옮기던 피디는 태경을 알아보고 놀라며 카메라를 내렸다.
“왜요? 아는 의사예요?”
“나는 아는데 저 의사는 나를 몰라.”
“무슨 소리예요? 카메라 찍으면서 알아듣게 얘기해요.”
작가는 피디가 내린 카메라를 다시 올리며 말했다.
“나 조연출 때 메디컬 다큐 ‘병원의 명인’ 촬영하러 신화대병원 갔었거든.”
“그런데요?”
“분명 수술의 귀제라고 해서 거기 교수를 찍으러 갔는데 보니까 진짜 귀제는 저 사람이더라고.”
피디는 도한연의 모습을 촬영하며 말을 이었다.
“보통 환자들이 교수를 보고 오는데 거기는 저 선생님한테 수술 받으려고 지방에서도 오고 그랬어. 그때 별명이 수술괴물인가 그랬을 거야. 그리고 저 사람 환자한테 엄청 잘하는데 그래도 세라가 이 병원을 온 게 다행이네.”
“그래요? 진짜 다행이네. 그나저나 피디님 저 여자 그대로 두실 건 아니죠?”
“당연하지 몰랐다면 모를까 이렇게 알았는데 가만 두면 안 되지.”
피디도 작가도 도한연의 추한 모습을 보며 가만있지 않았다.
“근데 오플릭스는 어떡하죠?”
“오플릭스 때려쳐! 한 작가, SBC 구 선배 알지? 당장 연락해.”
“보도국 구고찬 피디님이요?”
“어. 전 국민이 다 보도록 9뉴스에 더러운 면상 제대로 나오게 해야지. 얼른.”
“네, 피디님.”
* * *
“앞으로도 계속 못 볼 거야.”
세영이의 안전이 확보된 이상 인간이길 포기한 이 여자에게 적어도 죄를 졌다는 사실은 알게 해 줘야 했다.
“뭐, 뭐야! 야!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내꺼 어디에 있어? 내꺼!”
광기 서린 도한연은 마치 미쳐 날뛰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괴물 그 차체였다.
“내꺼! 내꺼 내놓으라고!”
“도한연!!”
태경이 큰 소리로 병원 로비가 울리도록 소리쳤다.
“당신이란 인간이 세영이한테 한 짓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내가 세영이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 당신이 이 난리야!”
“이제 당신이 벌 받을 차례야.”
“벌? 내가 왜 벌을 받아. 내가 키워 주고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예뻐해 줬는데…….”
“차일드 어뷰스(child abuse) 즉 아동학대! 당신 아동학대범이야.”
“아, 아동학대?”
‘아동학대’라는 직접적인 단어가 나오자 도한연은 움찔했다.
“세상에! 저 여자 아동학대범이래.”
“세리세라 엄마가 아동학대범이라고? 대박!”
“애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지?”
도한연은 세리세라 못지않은 인플루언서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젊은 엄마이자 유명인인 그녀의 충격적인 민낯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동학대라니. 당신 미친 거 아니야? 내가 세라를 학대했다고?”
사람들의 술렁임을 의식한 도한연은 당연한 듯 발뺌했다.
“의사면 이렇게 사람 함부로 의심해도 되는 거야? 멀쩡한 사람 누명 씌우지 마.”
“피해 아동은 현재 몸에 LUQ, RUQ, LLQ, RUQ에 크고 작은 burn 자국이 빈번하며 abrasion와 laceration 그리고 contusion이 발견됐어.”
별안간 시작된 전문적인 의학 용어가 도한연을 비롯한 로비에 모인 모든 사람의 고막에 때려 박혔다.
어찌나 발음이 정확한지 사람들은 뜻을 몰랐지만 태경에게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뭐, 뭐라는 거야?”
“모르겠지? 지금부터 당신이 아이한테 한 끔찍한 짓을 하나하나 쉽게 말해 줄 테니까 잘 들어.”
“아니, 내가 무슨 짓을…….”
“닥치고 들어.”
“…….”
“현재 학대를 당한 피해 아동의 좌상복부, 우상복부, 좌하복부, 우하복부. 즉 모든 배에 3cm, 5cm정도의 크고 작은 화상 자국이 빈번해. 또한 맞거나 부딪혀 생긴 상처로 근육이 손상을 입어 출혈과 부종이 보이는 멍 또는 피멍인 타박상도 있으며, 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자상의 흔적도 곳곳에 있지. 마지막으로 군데군데 피부가 찢긴 열상도 피해 아동의 몸에 숱하게 있어.
이 모든 상처들이 아이의 얼굴, 목, 손과 발을 제외한 옷으로 가려지는 모든 몸에 있다는 거야.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곳이 이 정도라는 건데……. 이게 당신이란 인간이 아이에게 한 끔찍한 짓이야. 이제 알겠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니 귀로 듣고도 믿지 못할 진단에 사람들은 일제히 할 말을 잃었다.
“도한연 넌 악마야! 평생 교도소에서 죗값 치를 준비해.”
“아니야! 난 아니라고! 네가 봤어?”
태경의 무시무시한 진단명에 당황하던 도한연은 ‘교도소’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억울함을 쏟아 내던 그 순간,
“당신 봤어? 내가 세라 학대하는 거 봤냐……!”
‘쫙’하는 소리와 함께 도한연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힘없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날아든 손바닥에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것이다.
“…….”
얼굴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세게 맞은 도한연은 뺨을 부여잡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어떻게!”
싸대기를 때린 인물은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 어린애를 학대해!”
바로 얼마 전 하나뿐인 자식을 하늘나라로 보낸 황석호의 어머니 이현자였다.
“네가 사람이야! 사람 새끼냐고!”
이현자는 직원 공지 메시지를 본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 세영이에게 따뜻한 보리차를 갖다 주며 아이를 본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이의 학대당한 흔적을 직접 보지 않았어도 아이의 얼굴과 눈빛에서 그 처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 어린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눈빛일까.’
그렇게 병실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향하는데 뻔뻔하게 발뺌하는 도한연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손을 들었다.
“엄마라는 인간이 어떻게 애를 키우면서 그 어린애를 그렇게 만들어! 네가 사람이야!”
이현자는 입술을 꼭 깨물고 눈물을 삼키며 무섭게 소리쳤다.
“아이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거야. 엄마의 사랑 아빠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배우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그 어린애한테 손을 댈 수가 있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하는 이현자의 모습은 ‘엄마’ 그 자체였다.
자식이 아파할까 봐 손과 발도 마음껏 만질 수 없고 그 고통스러운 통증을 대신 짊어지고 싶어 했던 이현자의 모습이 우리네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 여자는 또 뭔데…….”
쫙-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도한연이 뚫린 입을 열자 또 한 번 손바닥이 날아와 입을 막았다.
정확히 반대 쪽 뺨을 맞은 도한연은 전보다 강한 힘에 휘청거리며 입술 끝이 터졌다.
“아고! 이 날씨에 와 모기가 거 앉아 있나? 어이, 미친년 괘안나?”
우리병원의 팩폭 사이다 오계순이 날린 손바닥이었다.
“뭐야, 피? 피나잖아? 야, 이 미친 노인네야!”
입술이 터져 피가 난 사실에 도한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 미친 노인네인 건 마는데. 니년은 그냥 미친년이다. 와! 아프나? 고작 입술 쪼메 터졌뿐 거 갖고 아파 지랄을 하면서 그 얼라는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 안 해 봤나?”
“이 노인네가 입 닥치지 못해! 이걸 확!”
쪽팔림과 분에 겨운 도한연이 오계순을 향해 손을 들자 태경이 가뿐하게 손목을 비틀어 제지했다.
“아! 아! 이거 놔!”
“도한연 당신 이미 충분히 추하니까 그만해.”
“이제 보니까 당신들 다 한 패거리네. 어!”
“니도 느그 엄마한테 사랑받고 자랐을 낀데. 쯧쯧! 인간아 와 그래 사노. 불쌍타.”
혀를 차던 오계순은 바지 주머니에 속에 넣어 온 고운 소금을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정확히 도한연의 터진 입술에 뿌리며 채근했다.
“귀신은 이런 거 안 잡아가고 뭐하나 몰라! 에라이 빌어먹은 화상아! 닌 앞으로 고생 좀 할끼다.”
“아! 따가워. 그만두지 못해!”
“경찰입니다.”
“원장님 경찰 왔습니다. 경찰 선생님들, 저 여자 잡아가세요.”
계단에 서 있던 최 팀장은 경찰이 로비로 들어오자 손을 들어 도한연을 가리켰다.
“여기 신고하신 선생님 계시죠?”
“접니다.”
태경은 손을 들어 일부러 경찰이 들리도록 단어를 강조했다.
“제가 아동학대로 신고한 의사입니다.”
경찰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도한연의 동공이 심하게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