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07화 (106/472)

107화. 매우 위험한 찌꺼기

“흐윽!”

그 소리에 태경의 눈동자가 좌우로 급히 움직이고 덩달아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서로를 확인했다.

의진도, 임정숙도, 보조간호사도 아니었다.

“크흠!”

마스크 안으로 살짝 코까지 들이마시며 흐느끼던 사람은 놀랍게도 병능제 최모나였다.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 흐느끼자 태경을 제외한 수술방 모든 사람들이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 죄송합니다.”

최모나는 시선이 집중됐다는 것과 자신의 지금 이 행동이 수술에 방해가 된다는 걸 알고 재빨리 사과를 했다.

“최모나?”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 때문에 다들 당황스러우시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진짜 본인이 왜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는지 최모나 스스로도 몰랐다.

평소라면 태경의 술기를 보기 위해 수술에 참여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더 많이 수술에 참여한 이찬희가 부럽고 얄미운 마음도 있었기에 더 악착같이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학대당한 저 작고 여린 아이에게 작은 도움이라고 되고 싶다는 생각에 어시를 자처하여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끔찍한 시간을 견딘 저 아이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런 감정이 처음인 최모나는 본인 스스로 놀라며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처음은 태경의 지시로 마지못해 시작한 일들이 고집불통 병능제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진료를 했던 아동 환자와 노인 환자들. 그리고 우리병원 최초의 최모나 팬클럽을 자처하며 늘 웃기 바쁜 우진이. 늦은 밤 화상으로 치료를 받은 꼬마 아이. 마지막으로 학대 받은 세영이까지.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딱딱한 마음이 허물어지고 있던 것이다.

“하!”

최모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며 마스크 안에서 짧은 숨을 토해 낸 뒤 마음을 다스렸다.

“최모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뭐가 죄송해?”

“예?”

“죄송한 일 아니니까 더 이상 사과하지 마.”

최모나에게 깃든 긍정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경은 다그치기보단 격려했다.

“진정됐어?”

“네, 선생님. 진정됐습니다.”

“수술 시작합니다. 포 주세요.”

태경이 건네받은 수술포를 멸균적으로 아이 배 주변에 설치한다.

“메스 주세요. 최 선생은 여기 배꼽 아래 지그시 눌러 주고.”

“네, 선생님.”

최모나가 아이의 배꼽 아래 피부를 지그시 눌러 평평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태경이 손에 쥔 메스로 약간의 구멍을 피부에 낸다.

“보비(Bovie, 전기소작기) 주세요.”

그 다음 건네받은 보비로 배 안의 지방층을 조금씩 벌려 나가자 근막층이 보였다.

“모스키토(mosquito, 끝이 굽어지고 무뎌서 집을 수 있는 가위 모양의 기구)랑 켈리(kelly, 모양은 모스키토랑 유사하나 두 배 이상 큰 기구) 주세요.”

태경이 기구들을 이용해 근막층을 집고 켈리로 그 근막층을 벌려 가면서 뚫는다.

“트로카(trocar, 복강경 수술시 기구가 드나들 수 있도록 배벽에 고정하는 통로용 기구) 주시고요.”

뚫린 근막을 켈리로 집고 들어 올린 태경이 트로카를 근막의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트로카는 길게 통로 역할을 하는 기구로 근막을 뚫기 위해 끝이 약간 뾰족하다.

소아라서 배 뒷벽에 금방 닿을 수 있기 때문에 태경은 조심히 집어넣었다. 자칫 뒷벽에 닿기라도 해서 큰 혈관에 손상이라도 주면 바로 대형 사고로 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 카메라 들어갑시다.”

성인의 손에서 팔꿈치까지 되는 길이의 카메라가 입구가 1cm정도 되는 트로카를 통해 아이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CO2압력 성인보다 작게 해 주세요. 지금 너무 높아요.”

태경이 아이의 배를 통통 두들기면서 말하자 이윽고 아이의 아랫배에도 2개의 트로카를 설치하고서 수술을 진행한다.

“그라스퍼(grasper, 5mm 직경의 트로카 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는 긴 기구로 끝에 집게가 달려 있음) 주세요. 선 꼬이지 않게 밑으로요.”

“다이렉터(disector, 그라스퍼와 구조는 유사하나 끝에 집게가 켈리처럼 되어 있어서 조직간 분리에 용이함) 드릴까요?”

“네, 주세요.”

태경이 기구를 받아 들자 최모나가 기구 끝을 잘 집어넣을 수 있도록 트로카를 잡아 줬다.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위의 소장들이 정갈하게 보인다.

소아의 소장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투명하고 맑다. 성인처럼 탁하고 흐리지 않고 안에 어떠한 것들이 지나가는지 다 보일 때도 있었다.

태경이 그라스퍼로 소장을 큼직하게 집고서 아이의 윗배 쪽으로 치웠다. 하나씩 치우다 보니 우측 대장이 나타났다.

대장이 시작하는 부위에 꼬리처럼 달려 있는 것이 충수였다.

‘냄새 한번 고약하다.’

충수가 드러남과 동시에 수술실에 퍼진 3단계 분뇨 냄새의 농도가 순간 확 증폭되며 더 독하게 진해졌다.

오늘따라 냄새가 공기 중에 더 날뛰는 느낌이었다.

“네가 문제구나.”

바로 이 충수가 문제인데 지금은 형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염증에 의해 변형되어 있는 상태였다.

“진짜 xxx.”

심각한 상태를 보니 험한 욕을 잘 하지 않은 태경의 입에서 그야말로 쌍욕이 터져 나왔다.

“xxx 맞지. 욕을 먹어도 싸지.”

“아주 인간 말종이야.”

그 욕의 화살이 도한연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의료진은 저마다 작은 소리로 릴레이 하듯 욕을 이어 받았다.

잠시 욕설이 난무하는 사이 태경은 여전히 충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충수가 대장의 앞쪽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앞에 있어 다행이네.’

대장의 뒤쪽에 있다면 대장을 일부 들어 올려야 하는데 이렇게 염증이 심한 충수로 인해 배벽과 고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어렵게 박리할 필요가 없지. 저렇게 염증이 심하니 충수랑 대장 끝을 동시에 절개해서 빼낼게요. GI(쥐아이, 1cm 두께의 긴 기구로 끝에 검지와 중지 정도 길이의 집게가 있으며 이 안에 촘촘한 스테이플러가 있음) 주세요.”

“네, 선생님.”

묵직한 GI를 건네받은 태경이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행동을 멈췄다.

“아니, 안전하게 갈게요. 그라스퍼와 보비(복강경용 보비는 끝이 갈고리 혹은 주걱처럼 되어 있음) 주세요.”

기구를 받아 든 태경이 충수와 대장 사이에 있는 지방층들을 조금씩 파헤쳐 들어갔다.

복강경 보비로 지질 때마다 연기가 카메라 앞에 가득했다. 그때마다 트로카 옆에 있는 환기 밸브로 안의 가스를 빼 준다.

조금씩 파헤쳐 들어가던 손길이 멈칫했다.

“여기 있네. 그 다이렉터 주세요.”

“선생님 저게 아펜디시얼 아터리(appendiceal artery, 충수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 손상 시 분출하는 출혈이 발생할 수 있음)입니까?”

어시에 집중하던 최모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맞아. 특히나 지금 같은 경우는 평소보다 굉장히 큰 거야. 아마도 오랫동안 염증이 심해져서 이렇게 변형이 된 것 같아.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 고통을 받았을지 상상이 안 되네.”

“맞습니다. 이 어린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

“최 쌤 말이 맞아요. 그 여자는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예요.”

“진짜 쓰레기라는 표현이 맞네요. 정말 아팠을 텐데 말도 못하고 생각할수록 딱하네. 헤모락(hemolok, 의료용 클립으로 혈관을 집을 때 사용됨) 주세요. 5mm짜리로 주세요.”

“5mm입니다.”

태경이 기구 끝에 고정된 혈관결찰용 클립을 아주 조심스럽게 방방 뛰는 혈관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혈관의 양쪽을 클립으로 순차적으로 꽉 집었다.

“다시 보비 주시고 GI도 준비해 주세요.”

애초에 태경은 충수에 공급하는 혈관과 충수와 대장 끝을 한 번에 집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출혈을 조금이라도 효율적으로 막고자 혈관을 먼저 헤모락으로 집었다.

그 뒤 그라스퍼로 다시 대장 끝을 들고 GI집게 사이로 밀어 넣는다.

약 2cm 정도 대장의 끝을 기구로 밀어 넣고서 GI집게의 끝을 오므려 꽉 물어 버린 뒤 기구의 손잡이 부문에 있는 단추를 눌렀다.

“딸깍.”

GI기구에 스테이플러가 장전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경은 이제 조심스럽게 기구 손잡이에 달린 스테이플러 버튼을 앞으로 조금씩 밀었다. 집중한 눈빛이 무섭게 모니터를 노려본다.

끝까지 간 버튼을 다시 뒤로 당기고 대장을 물었던 집게를 풀었다. 그러자 기구로 물었던 곳은 깨끗이 절개가 되고 동시에 잘린 면에는 작은 스테이플러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태경은 상태를 확인하고 빠르게 기구를 뺐다.

“자! 충수 나갈 백(bag) 주세요. 안에 염증이 심해서 빨리 담을 겁니다.”

“네, 선생님”

노련한 손길이 백을 카메라가 들어가는 큰 구멍으로 돌돌 말아서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라스퍼로 자른 대장 일부와 충수를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수술실 안을 가득 메운 다섯 번째 바이탈인 3단계 분뇨 냄새가 호떡 뒤집듯이 진한 암모니아 냄새로 바뀌었다.

‘염증 때문이구나.’

진한 암모니아의 냄새 원인이 염증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와 함께 세영이에게서 나던 그 사탕 같은 냄새의 폭이 크게 증가하며 코 속으로 확 밀려들어 왔다.

‘확실히 다섯 번째 바이탈은 아니야.’

지금까지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더 강한 냄새를 내고 있었지만 방금을 기점으로 그 판도가 바뀐 것이다.

그 냄새는 처음 맡았을 때와 똑같았다. 따뜻하기도 했으며 뭔가 깨끗하고 때 묻지 않은 청아한 맑은 느낌이었다.

우스갯소리 같았지만 혼자만 맡기 미안할 정도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일단 수술에 집중하자.’

태경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이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수술이 우선이었다.

“이제 니들 주세요.”

여태까지의 기구들은 총과 같이 손잡이가 끝에 있었으나 복강경용 니들 홀더(needle holder)는 검과 같이 손잡이가 되어 있었다.

태경이 팔을 살짝 아이 옆으로 뻗으면서 배 속으로 기구를 집어넣었다.

“스테이플러가 만능은 아니야. 한 자리를 이렇게 봉합으로 한 번씩 해 주어야 탈이 없어. 무슨 말인 지 알지?”

“네, 선생님.”

그 뒤 태경이 모니터를 보면서 바늘로 대장 끝을 찔렀다. 길이가 50~60cm 정도 되는 기구의 끝으로 작은 바늘을 다루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봉합 한 개에도 큰 팔의 휘두름과 미세한 기구 조작이 필요하며 주변의 장기들을 찌르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해야 한다.

복강경을 많이 다룬 의사도 쉽지 않아서 한 땀 한 땀 할 때마다 몇 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태경의 속도는 다른 이들보다는 좀 더 빨랐다.

‘일정하고 신속하다.’

최모나는 태경의 술기를 하나하나 눈에 새기며 머리에 기억하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어려운 복강경용 바늘을 저렇게 다룰 수 있는 걸까?’

최모나가 감탄하는 사이 태경이 대장 끝을 봉합하고 바늘과 연결된 실을 잘랐다. 그리고 바늘을 잡은 채로 기구를 빼내려던 그때였다.

“어!”

최모나가 쥐고 있던 카메라가 살짝 흔들리며 태경이 빼내던 기구에 부딪혀 바늘이 떨어졌다.

“……!”

바늘이 떨어진 그 밑은 하나하나 모두 중요한 장기들 투성이다.

소장에 바늘이 찔려도 다시 봉합을 해야 하고 만약 정말 드물게 큰 혈관이 찔린다면 지체할 틈도 없이 배를 열어야 할 정도였다.

“밑에! 밑을 봐!”

태경이 다급하지만 침착하게 지시했다.

“최모나 카메라.”

“네, 선생님.”

태경의 오더에 소장과 그 주변을 비추던 카메라가 허겁지겁 바늘을 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다행이 빠르게 바늘을 찾을 수 있었다. 꿈틀거리는 소장들 위에 아주 얌전히 바늘이 놓여 있었다.

“휴!”

태경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기구로 재빨리 바늘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래, 이번 건 죄송할 만했어. 수술이란 건 항상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단 1초라도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돼.”

“네, 명심하겠습니다.”

유달리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힘을 주다가 저도 모르게 생긴 실수였을 것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는 없었지만 태경은 주의를 잊지 않았다.

“자! 트로카 뺄게요.”

대장 일부와 충수를 넣었던 백을 트로카가 고정되어 있던 큰 배꼽 구멍으로 태경이 꺼냈다. 그리고 작은 구멍 3개를 꼼꼼하게 봉합한 뒤 드레인을 마지막으로 수술이 끝났다.

“배 안에 드레인(drain, 염증이나 출혈로 인해 생기는 액체를 빨아들이는 작은 주머니) 넣을게요.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오늘 가장 수고한 사람은 세영이네요. 우리 세영이 수고했어.”

태경은 베드에 누워 있는 세영이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그러게요. 선생님 말씀대로 오늘 제일 수고한 사람은 세영이네요. 아주 기특해요.”

“그리고 병동에 전해 주세요.”

땀에 젖은 수술복을 뜯어 벗으며 태경이 말을 이었다.

“아이 염증이 너무 심해서 계속 금식시키고 소아과 용량 찾아서 항생제 최대로 쓸게요.”

“네, 선생님.”

“타조박캄-피페라실린(tazobactam-piperacillin, 위의 3세대 세파보다 강력한 항생제) 사용할 거구요. lab도 매일 체크할게요. 수액은 소아용으로 사용하고 금액과 상관없이 1인실, 아니 VVIP병실로 주세요.”

태경은 우리병원에서 딱 하나뿐인 VVIP병실을 세영이에게 배정했다.

“금액 문제는 저한테 말하라고 하고, 당연한 소리지만 누가 와도 경찰 외에는 아무도 아이 병실 알려 주지 말고 외부로 나가지 않게 함구하라고 하세요.”

“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냥 아이가 있던 지옥에서 달고 나온 작지만 매우 위험한 찌꺼기를 치워 준 것뿐이에요. 아직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고통과 지옥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걸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 시작은 되어 줍시다. 다들 세영이에게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수술은 잘 끝났지만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태경은 잘 알고 있었다.

법적인 문제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해결해야 할 염증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잘 해결해 보자.”

오늘 수술이 그랬듯이 태경은 남은 문제들도 잘될 거라고 생각하며 수술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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