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108화 (107/472)

108화. 혐의 인정하십니까?

세라의 수술이 진행되고 있던 그 시각, 장득칠은 병원 주변을 돌며 보초를 서고 있었다.

“실례지만 어떻게 오셨습니까?”

젊은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장득칠이 다가갔다.

“응급실 왔는데요. 원래 주차하고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문이 잠겨있어서요. 오늘 응급실 안 하나요?”

“뒷문이 고장 나서 안전사고 우려로 교체하느라 잠갔습니다. 정문으로 들어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뒷문 고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상한 외부인들의 출입을 막고자 태경의 지시로 잠가 둔 것이었다.

“장 요원. 수상한 사람은 없죠?”

다시 정문으로 자리를 옮긴 장득칠에게 최 팀장이 물었다.

“예, 지금까지는 특별히 수상한 사람은 안 보입니다.”

“그래요. 계속 수고해 주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사람이 보이면 바로 알려 줘요.”

“네, 걱정 마십쇼.”

“팀장님?”

장득칠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병원으로 들어오는 최 팀장을 접수처 직원들이 불렀다.

“이거 보셨어요?”

“왜, 또 무슨 일 터졌어?”

“그게 아니라 세리세라 너튜브 채널에 도한연 학대에 관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속지 마세요. 저 여자 아동학대범이에요.

-저 미친 여자가 세라 학대하고 지금 난리도 아님. 아마 조금 있으면 영상 뜨고 난리 날 듯.

“그래? 다들 입단속 중인데 누가 그걸 썼을까?”

“누구긴요. 아까 진료 보러 왔던 사람들이죠.”

“아! 그렇군.”

병원 직원들이야 조심하기 위해 함구하는 중이었지만, 진료 보러 왔던 사람들 입까지 단속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나 도한연의 괴물 같은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가만있긴 힘든 건 당연했다.

“안 그래도 언제 소문나나 싶었는데 잘됐네요.”

“뭐야? 근데 이거 댓글 계속 지워지는데?”

“어! 정말이네.”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댓글을 남기고 있었지만,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도한연의 편집자가 삭제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빨리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고 사람들이 다 저 여자 만행을 알아야 하는데. 내가 다 열이 받네.”

“실시간 검색어 오르기가 그게 어디 쉬워?”

“이거 참. 안타깝네.”

직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 팀장도 아쉬운 표정을 보였다.

“사실 워낙 착한 척하면서 활동했던 여자라서 진짜 영상이라도 올라오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저런 댓글 봐도 믿지 않을 거야.”

최 팀장의 말이 맞았다.

-하여간 사람들은 꼭 누가 잘나가면 질투한다니까.

-맞아요. 저렇게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한테 학대라니. 인생 참 삐딱하게 산다.

사람들은 도한연을 배려심과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라는 이미지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인 댓글도 악플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도한연을 두둔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아까 핸드폰으로 좀 찍어 둘 걸 그랬어요.”

* * *

SBC 보도국-

“야! 다음?”

공정과 정의, 진실이라는 커다란 슬로건이 걸린 보도국 회의실에서는 특집을 앞두고 회의가 한창이었다.

“이 미세먼지 누구 거야?”

실속 없이 이어지는 회의에 보도국 팀장인 구고찬의 표정에 점점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접니다.”

“이 기자 네 아이템이야?”

“네. 팀장님.”

“미세먼지와 건강의 심층 분석? 야! 너 지금 이걸 특집 아이템이라고 들고 왔어? 나랑 장난해?”

“…….”

“왜! 그냥 화장실 가서 똥 잘 싸는 법을 가져오지. 미세먼지? 아니, 언제 적 아이템을 또 가져와. 어? 이 아이템 신선한 사람 물구나무 서 봐?”

“…….”

“봐! 없지? 미세먼지가 몸에 안 좋은 건 지나가는 초등학생들도 다 알아. 목 아프고 눈 따갑고! 어! 뉴스에서 백날 천 날 다뤄서 온 국민이 다 안다고.”

“그런 가벼운 주제 말고 호흡기내과나 이비인후과 같은 전문가를 초빙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 들…….”

“나가!”

용기 내서 자신의 의견을 조용히 펼치던 기자는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치는 구 팀장의 기백에 입을 닫았다.

“심층적? 사람들 귀에 딱지가 않도록 안 좋다고 들은 미세먼지 얘기를 너 같으면 고리타분한 전문가 말까지 또 듣고 싶겠냐? 어!”

“…….”

“너 그냥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이거 어떻게 기자 됐나 몰라. 하! 이러니까 우리가 맨날 뉴스 시청률이 만년 2위인 거야.”

똑똑-

“팀장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숨 막히던 회의실에 직원이 들어왔다.

“왜?”

“자꾸 팀장님 찾는 전화 오는데 급한 전화라고 해서요.”

“회의 중이라고 해.”

“회의 중이라 전화 못 받으신다고 했는데 벌서 50통째 하고 있어요.”

“50통! 누군데?”

“늘보프로덕션 박종수 피디라고 하던데요?”

“박종수!”

박 피디의 이름이 나오자 구고찬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미친 새끼. 나 죽었다고 해.”

“그게 제보할 게 있다고 꼭 팀장님 바꿔 달라고 해서요.”

“제보 좋아하네. 예능하는 놈이 뭔 보도국에 제보야.”

“특종이라던데요?”

“아! 됐어. 안 그래도 아이템 그지 같은 것만 들고 와서 기분 x같은데 별 그지 같은 놈까지 나서네.”

“핸드폰으로 방금 영상 보냈다니까 그것만이라도 확인 좀 부탁드린다고 전해 달래요.”

Rrrrrrrrrrr

“영상은 무슨 개똥같은 소리 하네.”

직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구고찬은 마지못해 전송 받은 영상을 클릭했다.

-벌? 내가 왜 벌을 받아. 내가 키워 주고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예뻐해 줬는데…….

“어! 이거?”

박 피디를 오징어 씹듯 무시하던 구고찬은 영상을 클릭하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하, 씨! 번호? 종수 번호가……. 야, 이거 차단 풀 줄 아는 사람?”

“저요.”

“박종수 씹x끼라고 검색하면 나올 거야. 그 번호 풀어.”

“됐습니다.”

“여보세요?”

영상을 접한 구고찬은 급하게 차단했던 박 피디의 번호를 풀며 전화를 걸었다.

-어, 형. 오랜만이유.

“인사는 집어치우고 너 이거 진짜야?”

-그럼 가짜겠어? 아무리 직업이 예능 피디지만 그런 주제로 장난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너, 지금 어디야?”

-뒤 돌아봐.

구고찬이 뒤를 돌자 박 피디가 작가와 함께 회의실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 * *

“이봐요! 도한연 씨?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할 겁니까?”

경찰서에 끌려온 도한연을 조사하고 있는 김 경사는 난항을 겪고 있었다.

“…….”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도한연이 입을 꾹 다문 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계속 입 다물고 있을 거예요?”

“…….”

“딸 안 보고 싶어요? 당신 딸.”

“딸? 우리 세리요?”

입에 본드 칠을 한 것처럼 침묵하던 도한연은 딸이란 소리에 흠칫하며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현재 세리는 도한연과 떨어져 아동보호센터에 분리 조치 중이였다.

“그래요, 딸!”

“봐야지. 내 딸 만나게 해 줘요.”

“일단 조사에 협조를 해야 만나게 해 주죠. 그러니까 서로 힘 빼지 말고 착실하게 조사 받읍시다 알았죠? 이름?”

“도한연이요.”

“생년월일과 나이?”

“198x년 4월 x일. 32살.”

“도한연 씨 의붓딸 고세영 양을 학대한 혐의 인정하십니까?”

드디어 조사에 성실히 임하나 싶던 그때 김 경사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셨어요?”

“예? 뭐라고요?”

“내가 세라를 학대하는 걸 경찰 아저씨가 보셨냐고요.”

사람은 절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 준 도한연은 뻔뻔하게도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다.

“부모가 말 안 듣는 아이를 훈육하지도 못하나요?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했을 뿐이에요.”

“이봐요! 당신 아까 병원에서 세영이가 한 얘기 못 들었어? 당신이 아이를 학대했다고 정확한 상황 설명을 했잖아. 지금 어디서 발뺌이야!”

“저도 들었어요. 근데, 그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전부 믿어요?”

사람들이 있는 곳이든 없는 곳이든 도한연은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한없이 착한 엄마의 탈을 쓰고 행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적으로 학대하는 증거가 없다고 확신하며 끝까지 발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세라는 내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날 안 좋아했어요.”

“도한연 씨. 이래 봐야 당신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증거도 없이 사람 취조하듯 하지 마시고 변호사 불러 주세요.”

“하!”

김 경사는 기가 찼지만 이런 일은 흔했다.

모든 정황이 범인을 가리켰지만 막상 증거가 없으면 나쁜 놈들은 꼭 저렇게 잡아떼기 일쑤였다.

사실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정확한 증거 또는 증인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것도 맞았다.

“증거? 그래, 어디 증거가 나와도 당신이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그 증거 우리가 꼭 찾고 만다.”

* * *

어느 평범한 가정집-

“사과가 아주 다네.”

“그렇죠? 언니가 그러는데 이번 농사가 아주 잘돼서 가격을 잘 받았대요.”

“요즘 농가들도 힘들다던데 그래도 처형네 농사가 잘됐으니 다행이지. 이참에 많이 좀 팔아 드려.”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상희야, 사과 먹어.”

“네.”

“오빠도 불러.”

“오빠 집에 있었어?”

“2층에서 게임하고 있을 거야.”

“아으. 전역하고 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냐. 좀 나가지. 하여간.”

“냅둬. 군대에서 얼마나 하고 싶었겠어. 어차피 실컷 하다 보면 질려서 못 해.”

딩동-

그렇게 가족들의 일상적인 대화 사이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상희 너 택배 시켰어?”

“아닌데. 오빠가 시켰나?”

가족들이 모두가 의아해하는 사이 딸이 비디오폰으로 상대를 확인하자 깜짝 놀랄만한 답변이 돌아왔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경찰이요? 아빠? 엄마? 경찰이라는데?”

“무슨 일이세요?”

-실례지만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 * *

가족들은 경찰임을 확인한 뒤 현관문을 열어 줬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옆집에 사는 여자에 관해서 확인 좀 할 게 있어서요.”

“옆집 여자면 그 젊은 애들 엄마 말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설마 세리세라 엄마 말하는 거예요? 유명 너튜브요?”

“네. 혹시 뭔가 특이점이나 아시는 게 있나 해서요. 선생님 댁이 옆집과 가장 가까운 집이라서 찾아왔습니다.”

“글쎄요. 그 집이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사한 게 전부입니다.”

“저도 남편이랑 똑같아요. 그냥 애 엄마가 잘 꾸미고 애들도 살뜰히 잘 챙기는 거 보고 유명인이라고 하는데 혼자서 대단하다 생각한 게 다예요. 아! 인사 몇 번 주고받았어요.”

“왜요? 그 집에 무슨 일 있어요?”

호기심 많은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경찰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그건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외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무슨 소리가 들린다거나…….”

“아! 북소리!”

“북소리요?”

“네. 우리 딸 말이 맞아요. 그 집에서 북소리가 엄청 자주 났어요. 당신도 들었죠?”

“맞아요. 큰 북소리가 저녁 즈음에 시작하면 새벽까지 쭉 들렸는데 어느 날은 너무 커서 제가 한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습니다.”

“자주도 아니고 거의 매일 아니었나? 난 매일 들은 거 같은데.”

이들 가족이 한 입으로 말하고 있는 북소리의 정체는 세영이 학대를 당하는 동안 들려온 북소리였다.

“하암! 집에 누구 왔어요?”

경찰들이 유리한 증언을 수집하던 사이 2층에서 가족의 아들이 잠을 깨며 내려왔다.

“오빠 지금까지 잔거야?”

“어, 그럴 일이 있었어. 근데 누구세요?”

“경찰분들이셔.”

“경찰!”

“옆집에 대해 뭐 물어보려고 오셨다는데. 상혁이 너 혹시 옆집에 대해 뭐 말할 거 있니?”

“아저씨들 정말 경찰이세요?”

“경찰 맞습니다.”

“정말이죠?”

“정말입니다.”

“오빠 잠 덜 깼어? 왜 저래 창피하게. 할 말 없으면 올라가 계속 자 그냥.”

“저기 경찰 선생님들, 혹시 옆집 여자 학대 때문에 오신 건가요?”

“학대라니,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학대 맞죠?”

“뭔가 알고 있습니까?”

“네, 저한테 증거가 있어요.”

경찰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주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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